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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 현대 재림기-94화 (94/170)

< -- 94 회: 집 주인 혈마 -- >

으득!

나미코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를 갈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녀는 살기(殺氣)를 넘실넘실 뿌려대고 있었다.

술법문은 10대 문에서도 무력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본 대표 가문이다. 전세기이니 다행이었지, 만약 일반 비행기였으면 다른 승객들이 그 살기에 숨이 막혀 죽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살기였다.

“죽여 버리겠어.”

눈빛만큼이나 서늘한 목소리였다.

그 날, 그 망망대해에서 오연하게 자신의 부하를 바라보던 그 눈빛을 여자는 잊지 못했다. A-급을 길들이려면 엄청난 노력과 자금이 필요하다. 아무 곳이나 서식하는 놈들이 아니었고, 찾기도 힘들었다. 또 길을 들이는 과정도 상당히 힘들었다. 5~1급 괴생명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각고의 노력 끝에 A-급 두 마리와 A급 한 마리를 길들이는 것에 성공했다.

술법에 들어간 제물 또한 엄청났다.

‘미개한 조선인들로 채워졌지만.’

수출 시대.

한국은 수출 시대이다. 좋지 않은 의미의 수출…

입양아들은 대부분 서양으로 넘어가지만, 일본 역시 입양 사례가 은밀하고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그 것은 대부분 술법문의 요구 때문이었다.

가장 큰 제물은…인간인 법이니까.

그리고 그들은 거리낌 없이 한국의 고아들을 제물로 사용했다.

여자가 A-급 이상 세 마리의 괴생명체들을 길들이는 것에 사용한 고아들의 머릿수는 세기도 힘들 정도였다.

여자의 가문 가주는 천외천 고수이다.

본신의 무력만이 아니라 막강한 술법을 이용하여 S급 괴생명체를 길들이는 것에 성공했다.

S급이면 대륙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다.

괜히 천외천이며, 5위에 랭크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자는 창현의 그 오연한 모습을 생각하고 생각했다. 뒷짐을 지며 하늘에 떠 있으면서 자신의 괴생명체를 바라보던 그 눈빛!

그리고 여자는 곧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창현이 그 괴물만 본 것이 아니라 자신 역시 지켜보았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쳤기 때문이었다.

“술법의 창시자? 웃기는 소리지.”

여자는 한줄기 스친 두려움을 부정했다.

제주도는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고, 아직은 가을이 찾아오지 않은 그 섬에서 여자는 해변 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심령을 끌어 올렸다. 술법문 특유의 내공심법이었고, 괴생명체들과 이어지는 줄기라 할 수 있었다.

일본 근처 바다에 서식하고 있는 A-급 한 마리, 그리고 마찬가지로 일본 근처 무인도에 서식하고 있는 A급 한 마리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완벽하게 준비를 하고.”

여자는 그 것들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 올릴 작정이었다.

아무리 천외천 고수라고 하지만 두 마리를 동시에 막을 수는 없다. 한국에는 A-급 이상의 괴생명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창현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황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가 창현을 제외하고는 최고 고수이고, 초절정 고수 한 명과 절정고수 다섯 명은 있어야 아무런 피해 없이 막을 수 있는 A-급 괴생명체를 무황 혼자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설사 그 두 마리 모두 막는다 하더라도 한국은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

시간이라도 끌기 위해 동원되는 모든 무인들이 쓸려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여자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A급 괴수의 힘을 일시적으로 S-급까지 끌어 올릴 방법도 알고 있었다. 그 부적에 쓰일 제물을 위해서 또다시 고아 1000여명의 목숨을 취했다.

“후후후!”

여자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스쳤다.

이번에는 그 오연한 창현의 얼굴을 일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가 아무리 천외천 고수라 평가받는다고 하지만 이제 막 경지에 오른 어린 고수에 불과했다. 가주나, 다른 랭커들처럼…S급을 혼자 잡은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여주었던 그 9클래스를 바라보는 미국의 마법사에 미치지 못한다고 확신했다.

“갈기갈기 찢어주지.”

여자는 그 세 마리만 데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1급 괴생명체 역시 두 마리나 더 가지고 있었다.

여자는 그렇게 한국에 재앙을 준비하고 있었다.

****

윤미, 그리고 무황을 대동하고 창현은 청와대로 향하고 있었다. 경복궁과 그리 멀지 않았기에(하긴 창현에게 먼 곳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금방 도착했다.

아무나 들어 갈 수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을 옮기는 창현의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러웠고, 또 창현의 일행을 맞이하고 있는 청와대 경호원들의 모습 역시 자연스러웠다.

그들만이 아니라 대통령 역시 손수 나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창현은 그저 고개를 까딱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듯 곧 그녀에게 관심을 끄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여러 고수들이 보였다.

확실히 한국 무인 협회는 더 이상 그 위세를 떨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장군들과 군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 역시 상당한 실력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당장 종욱이 이끄는 태극문파 정예들만 와도 견디지 못할 듯 싶었다. 그 어느 때보다 정부의 힘이 약화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창현이 이광길과 부딪힌 그 날, 정부 소속 최고의 고수들과 동이문의 제자들 대다수를 죽여 버렸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그들은 한국인들도 아니었고, 그럴 목적으로 이곳에 온 것이기는 했지만, 일본 10 대 가문의 첩자였다는 무황의 발표를 믿지 않는 대다수의 정부 무인들은 창현을 악의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함부로 행동 할 수는 없었다.

“이 근처이기는 한데…어디지?”

“네?”

대통령이 되물었다.

그녀는 긴장하고 있었다. 명분 싸움을 걸었다가 여론의 맹비난을 받고 있고, 정작 이득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 가만히만 있었어도 창현이 국내 기업과 거래를 했더라면 정부는 그 것을 이용하여 적절히 어느 정도 보상은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욕심을 내었다.

이두후 장군의 말은 분명 그럴 듯 했고, 그동안 창현이 여론에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처참했지만.

대통령은 국제적 발표가 있기 이전 국정원 사건과 그 이외의 여러 가지 의혹들이 불거졌을 때보다 몇 배는, 아니 몇 십 배는 더 여론의 압박과 야당의 압박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야당 역시 어떻게든 창현에게 줄을 대려 하고 있지만 애초에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는 창현은 그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야당 역시 창현이 자신들의 편에 서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창현의 덕을 어떻게든 이용하려든 사람들의 말로를 잘 알기에 정치인들 역시 창현을 섣불리 이용하려 들지 않고 있었다.

대통령의 경우를 잘 보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창현은 자신을 둘러 싼 계산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오늘 이 곳에 온 목적이 중요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날 지켜보던 영적인 존재…아니, 그 셀린이라는 슈퍼컴퓨터를 만나러 왔다.”

“…말을 가려서….”

참지 못하고 나서던 경호원 한 명이 윤미의 눈빛을 받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주인님 앞에서 함부로 주둥이를 나불대지 마십시오.”

“….”

윤미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대통령에게 시선을 돌렸다.

“…청와대 뒤 쪽 지하실에 있습니다.”

“거창한 안내는 필요 없다. 그냥 신경 쓰지 말았으면 좋겠군.”

그건…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창현의 말에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곳을 휩쓸어 버리는 일은 일도 아니다. 명분도, 무력도, 그 어느 것도 창현에게 이길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대통령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청와대 정문에서 비켜서고 있었다.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주인님께서 사체와 나머지 마나석 반은 중소기업을 통해서 유통하고 가공하시기로 했으니까요. 그 것을 정부에서 사들인다면 정부 요원들도 꽤 강해질 수 있을 것이 분명하잖아요? 그리고 그동안 내단을 꽤 많이 모은 것으로 아는데…한국에 있는 요괴들이 이를 갈 만큼이요.”

“….”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이광길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다. 그리고 이두호에 대한 것도.

중소기업을 통해서 유통을 한다면 서민 경제에 신경을 써준다고 다시 한 번 창현은 칭송을 받을 것이고, 날로 먹으려던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질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문파들이 득세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는 무인이 된다면 앞길이 창창 열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 자체에서 무인에게 주는 혜택을 엄청났고, 그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이 되었다. 또 범죄형 요괴를 잡아 내단을 취해서 유통 시키거나, 무기를 만들거나, 셀린의 존재를 이용해서 괴생명체 출현을 예측 해 주거나, 때로는 괴생명체 퇴치에 무인들을 파견하면서 그 재정을 충당했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이 힘들어졌다.

요괴들은 점점 정부를 적대시하고 있었다.

그 것은 이광길이 범죄형 요괴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 귀력이 모인 요괴들을 거의 사냥하다 시피 했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은 그 보고를 이광길이 모든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나 알 수 있었다.

정부는 여러 가지로 최악이었다.

그나마 셀린의 존재가 재정적으로 상당히 도움이 되었는데…창현이 만나러 왔다고 하니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윤미의 말에서 가뜩이나 아시아 쪽에도 자주 출몰 하고 있는 괴생명체들의 대한 걱정만이 아니라 요괴나 귀의 대한 걱정도 되기 시작했다.

독도 사건이 워낙 컸기에 가라져 있는 것이지 요즘 들어 심심치 않게 요괴들의 습격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문파 무인들을 동원하려면 일정의 보상이 필요했다.

그들에게 혜택을 주는 만큼 강제적 동원 방법 역시 있었지만 그 법에도 무인들에게 따르는 보상은 명시 되어 있었기에 대통령은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국제적 발표가 이뤄진 이후에는 세금을 걷을 명분이 확실했기에 국가의 재정이 훨씬 풍족해 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중이었고, 많은 전문가들은 그 악순환에 대해서 우려를 표하고 있었다.

셀린은 그 모든 것을 막아주고 있을 만큼 강력한 존재였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이나 중국까지도 특히 국제적 관계가 최악인 일본마저도 괴생명체나 1급 이상의 요괴 습격을 예측하는 셀린의 정보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뒷짐을 지고 오연하게 청와대 뒤쪽으로 사라지고 있는 창현의 뒷모습을 보면서 대통령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중소기업에 유통 시킨다는 것은 최후의 통첩이나 다름없었다.

차일피일 미루던 경복궁 성지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동시에 지금이라도 그 경제효과를 정부 역시 누려야 했고, 그가 앞으로 개파 할 문파에 막대한 혜택을 약속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대통령에 앉아 있는 그 누구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이두호 장군은 퇴역 했죠?”

“네.”

“후! 이광길 협회장은요?”

“충청도에서 강창현 제자 중 한 명인…전 한국 무인 협회 실장 이수연의 보살핌을 받아 평온하게 지내고 있답니다.”

“기억을 잃었다죠?”

“그렇습니다.”

대통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속이라도 편하겠네요. 난 인복이 없는 모양이에요.”

친 강창현파인 그는 나오려는 말을 삼켰다.

‘한국에 천외천 고수가 존재한다는 그 사실만으로 엄청난 인복입니다. 당신 역시 그저 욕심을 아직 버리지 못해서 그에게 고개를 숙이지 못했기 때문에 인복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죠.’

경호원은 고개를 돌려 혀를 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

“날 왜 지켜보았지?”

창현은 거대한 모니터를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3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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