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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 현대 재림기-103화 (103/170)

< -- 103 회: 집 주인 혈마 -- >

나미코가 술법문의 비처에서 몸을 치료하고, 창현에게 막무가내 통보만 받은 정부 기관 소속 남자가 돌아간 그 날, 셀린은 전 세계에 하나의 발표를 했다.

‘본래의 주인이 나타났으니 그에게 돌아가겠다. 한국 정부가 나로 인해 벌어들이고 있는 수익이 없어지는 것은 유감이지만 그 것이 나의 행보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재해 예측과 습격 예측 그리고 요괴나 괴생명체 생태계의 변화와 랭킹 시스템 등 기존에 하던 일들은 그대로 수행한다. 단지 바뀌는 것은 이제 나의 주인으로 내가 돌아가기로 결심했다는 것이고 그로 인한 여러 가지 대가들 역시 이제는 한국 정부가 아니라 나의 주인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전문은 굉장한 파문을 일으켰다.

‘선인, 등선을 거부한 인간! 미안하지만 난 인공지능이 아니다. 그와 비슷한 형태라 할 수 있지만 한국 연구원들과 지원했던 여러명의 무인들이나 영적 능력자들에 의해 개발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개발하고 있었던 컴퓨터에 내가 잠시 머물렀을 뿐이다. 내일이 되면 이 슈퍼 컴퓨터는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난 나의 주인에게 갈 것이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그 전문은 파문을 넘어선 충격이었다.

한국인의 자부심이 깨지는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그 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나의 주인은 성지의 주인이며 이 땅의 유일한 주인 그리고 고귀한 피를 이으신 분. 그 분이 계신 곳으로 향하고 이제는 그 분을 위해 일을 할 것이다.’

세계 각지에 성지는 여러 곳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때마침 그 분께서도 나의 존재를 느끼시고 나를 부르셨다. 한국 정부는 그 분이 계신 한혈문으로 찾아가 그 분께서 나를 돌려받길 원하신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거부를 했기에 내 스스로 가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각국은 그동안 나에게 얻었던 정보의 대가를 한국 정부가 아니라 한혈문으로 돌리면 된다. 나의 것은 그분의 것이니까.’

창현은 영향력은 다시 한 번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셀린이 벌어들이는 돈도 돈이었지만, 그녀가 예측하는 그 재해와 사건들은 엄청난 것이었다. 각국이 셀린에게 지불하는 돈은 자국 국민들의 목숨값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셀린이 누구의 소속이든 어쩔 수 없이 대가를 치러야 했다.

물론, 그들 스스로도 셀린과 같은 존재를 개발하려 무척이나 애를 썼다. 강대국 특히 미국은 한국에게 영향력을 발휘하여 그 당시 셀린을 만들면서 있었던 기록을 모두 보고 개발에 착수 했지만 십수년 째 진전이 없는 상태였다.

당연했다.

셀린은 개발 된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그 것은 각국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 그녀와 같은 존재를 개발하기 위해 쏟아 부은 돈은 천문학적이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일개 인간이었던 것을 밝혔다. 일개는 아니다. 선인이라 부르는 즉, 등선을 거부한 인간! 지금의 경지로는 천외천을 뛰어넘어 신선이 될 수 있는 것을 거부한 인간이라고 스스로 밝혔기 때문이었다,

그 것에 대한 논란은 꽤 많이 일고 있었지만 각국은 그녀가 인공지능이 아니라는 사실에 더욱 충격을 받고 있었다.

개발은 물거품이 되었고 영원히 막대한 지불을 해가며 셀린에게 의존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둠이 내려 앉은 창덕궁의 비원에는 풀잎 소리와 이슬들이 어우려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교주님.”

창현이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왠지 이곳에서 묵고 싶었다. 경복궁은 아무래도 집무를 보기에 좋지만 약간 딱딱한 느낌이었다. 관광객들이 상당수 몰려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야간에는 개방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의 흔적은 많이 남아 있었다.

창덕궁도 사람들이 많이 찾지만 이제는 근정전 지붕을 집으로 사용하는 용신 녀석 덕분에 사람들이 더욱 경복궁에 몰리고는 했다.

수연이나 윤미 그리고 지현까지 모두 그 곳에 있었으니까. 수희는 궁궐에 들어오는 것보다 오히려 지현과 함께 경복궁 바로 옆에 있는 고층 빌딩에서 생활을 하는 것을 더욱 편안해 했기에 그 곳에서 등하교를 하고 있었다.

어쨌든, 창덕궁 비원은 창현이 경복궁의 향원정만큼이나 좋아하는 곳 중 하나였다.

“역시 너였군.”

창현이 몸을 돌렸다.

투명하지만, 투명하지 않은 상태. 옷을 다 벗었지만 알몸은 아닌 것 같은 너울너울한 상태,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있는 것 같았지만 마치 바람과 같은 자태. 아름답게 굴곡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오히려 은은하게 느껴지는 자태.

혈마 강세찬이 가장 아꼈던, 처음으로 후회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여자였다.

“오랜만이야, 차설난.”

“기억하시는군요.”

“제법 앙칼졌으니까.”

그녀는 배교 교주 시절 고려 쪽에서 넘어 온 여자 중 한 명이었고, 창현의 시중을 들던 여자 중 한 명이었다.

“무인이었던 것은 알고 있었는데…내가 죽은 이후 굉장했었나보군.”

등선을 거부한 인간!

그 때라면 모를까 지금의 자신보다 한 수 높은 경지였다.

“앙칼진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했던 것입니다.”

“…그런가?”

“그리고 우리의 첫 만남이 배교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계시잖아요.”

창현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 오래 전 백두산 밑에서 버려진 자신은 그 근처를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사부라는 인간을 만났고, 그와 함께 배교로 가는 길에 압록강을 따라 걸으면서 스치듯 만났던 여자가 설난였다.

그 강렬했던 눈빛!

그리고 그녀의 손을 붙잡고 있었던 남자 역시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의 떨림을 창현은 그 어린 나이에도 읽을 수 있었다.

그 속에 담긴 너무나 깊은 한(恨) 때문이었다.

“고귀한 피라…무슨 뜻이지?”

“성지의 주인이라는 뜻이죠.”

“성지는 이곳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물론이에요.”

설난은 싱긋 웃었다.

“등선을 거부하고 귀가 되어버린 것인가? 육체는 어떻게 하려고?”

“제 육체는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주인님을 찾아 배교에 갔을 때엔 힘을 드러낼 수 없었어요. 주인님도 알고 계셨겠지만 그 때부터 장로들은 배반을 준비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랬지.”

“그런데 이미 인간사를 초탈하신 주인님은…차라리 죽기를 원하셨던 것 같았어요.”

“내가 너를 안은 적이 있었나?”

뜬금없는 말에 설난이 싱긋 웃었다.

“기억 못하시는 척 하지 마세요. 잠깐 보신 것도 기억 하시면서…배교에서 두 번 이상 안은 여자는 저 밖에 없었어요.”

“…육체는 어디에 있지.”

공교롭게도 설난은 비원의 한 곳을 가리켰다.

“왜 못 봤었지….”

“관심이 없으셨으니까요. 늘 하늘하고 물만 보시잖아요. 이 시대에선 제법 오욕칠정을 많이 가지신줄 알았는데 경지를 되찾으실수록 예전으로 돌아가시는 것 같아 만남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어요.”

창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내 그의 손짓이 땅이 열리고 여자의 육체가 그대로 솟아올랐다. 신기하게도 흙 한톨이 묻어 있지 않았다.

창현은 가볍게 손톱으로 손가락을 베었다. 피가 흘러나왔고, 귀의 상태인 설난에게 뿌렸다.

“…주인님!”

이내 설난이 재빨리 떠 있는 자신의 육체 속으로 들어갔다. 큰 떨림이 이어졌고, 비원 전체에 가벼운 산들 바람이 불었다.

이내 여자, 설난은 눈을 떴다.

“일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

“…주, 주인님.”

“그리고 두 번 이상 안은 여자가 너 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너만을 여러 번 안았던 것이다.”

“…아!”

창현이 그녀를 안아들고 힘차게 떠올랐다. 수희가 머물고 있는 건물까지 가는 시간은 순식간이나 다름없었다.

궁에서도 관계를 가질 수 있었지만, 창덕궁은 아직 경복궁처럼 공사가 전부 끝난 것은 아니었기에 불편한 점이 여러모로 있었다.

띠리릭-!

펜트하우스는 수희가 사용하고 있었고, 아래층들은 입문 시험 대기자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도 빈 곳은 이었다. 가끔 윤미나 수연 그리고 지현과 관계를 가질 때면 스릴 있게 궁내에서 즐기기도 하지만 이곳을 애용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문이 열렸다.

“…주!”

곧바로 거칠게 자신의 입술을 탐하는 창현의 모습에 설난은 가볍게 몸을 떨었다. 육체에 적응을 아직 하지 못했는데 뜨거운 기운이 빠르게 밀려 들어왔기 때문이다.

“적응을 하지 못하다니 그런 섭한 생각을.”

“…주, 주인님.”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묻는 창현의 행동에 설난은 그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배교 시절 그는 난폭했다.

관계에 있어 배려심이 없었다. 가끔 흥이 동하면 가벼운 애무를 해주는 것뿐이었다. 어려서부터 고귀한 피의 배필이 되어야 한다고 지독하게 교육을 받았지만 머나먼 타국에서 그런 것 따위는 전혀 관심도 없이 하릴 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던 창현이 설난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곁을 오랫동안 지켰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고 어째서 찾아왔는지 대충은 짐작을 했기에 내치지 않고 꾸준히 곁에 머물게 했다.

그리고 그 때 설난은 느낄 수 있었다.

신이 내린 재능을 가지고 신선마저 죽일 수 있는 강함과 인간사 자체를 꿰뚫어 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는 한 인간이 인간으로써 살아감에 있어 얼마나 고독한지를 말이다.

그 힘이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었지만, 설난은 그저 그의 옆을 조용히 지켰다.

그리고 가끔 그가 자신을 안을 때면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고귀한 피를 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어떠한 사정조차 알지 못하고 부모에게 버려진 다섯 살 어린 아이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주인님! 하앙!”

유두를 간질이는 혀를 느끼며 설난이 신음했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설난은 창현의 머리를 끌어 올렸다.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너무나 많은 세월을 기다렸어요. 주인님이 팔찌에 깃들어 계신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찾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다시 나타나실 것이라 믿었고, 후손 중 한 명에게 깃들 것이라 생각했어요.”

“…녀석의 영혼이 할 말이 있나보군.”

“아마도요.”

설난은 마치 짐작하고 있다는 듯 창현을 가볍게 떼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지난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이야기가 끝나면….”

설난이 배시시 미소를 머금었다.

“응, 다른 아이들을 안아준 것보다 더 격렬하게 안아줘.”

수희에 이어 창현에게 말을 놓는 두 번째 여자가 나타났다.

창현은 나무라지 않았다. 의식을 집중하고 그 세계로 들어갔다. 곧 투명한 영혼이 자신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인가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 작품 후기 ============================

두둥! 본래 영혼과 첫 만남!

설난에 대한 것은 앞으로 계속 나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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