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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 현대 재림기-104화 (104/170)

< -- 104 회: 집 주인 혈마 -- >

의식 속 공간은 답답할 정도로 어두웠다.

평소에 창현이 자신의 의식 속 공간을 들어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팔찌에 깃들었던 힘과 더불어 일종이 술법 형태로 의식 속 한 구석에 있던 본래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그렇군.”

“고맙습니다.”

창현과 그는 성격이 많이 달랐다. 창현이 그의 영향을 받아 많이 유순해지기는 했었지만 그 옛날 잔인했던 혈마는 혈마였다.

“네 삶의 의지가 본좌를 부른 것뿐이다. 피의 공명이 마침 이뤄진 것 같았고. 뭐 운이 좋았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지.”

영혼은 맑게 웃었다.

‘내가 본 그 어떤 인간보다 선천지기가 강하군. 그렇다면 지금껏 내가 이뤄 놓은 것을 보고 욕심을 부려 볼만도 하다. 동화가 이뤄졌다고 하지만 한 사람이 육체에 대한 욕심을 내면 의식 속 전투에서 육체의 경지는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까.’

“아저씨 덕분에 수희가 많이 행복해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저라면 아마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겁니다.”

너무나도 착한 심성. 부모님의 유언을 끝까지 지키고 오로지 그 것만을 위해 살아왔던 녀석의 삶이 창현은 살짝 답답했다.

그렇지만 그 것을 내색 할 필요는 없었다.

“왜 날 부른 것이지?”

“이미 죽었어야 할 몸이었어요. 부모님 곁으로 가고 싶어요.”

“…그렇다면 이 몸은 정말로 그 옛날 혈마 강세찬이된다. 강창현이 아니라. 지금까지 너의 영향을 받아 나 역시 많이 변했어. 하지만 너의 영혼이 의식 속에서 사라진다면 이 육체는 나와 완벽하게 동화를 이룰 것이고 너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해.”

“아저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

창현은 헛웃음을 삼켰다.

“아저씨가 말씀하셨죠. 제 삶의 의지가 아저씨를 부른 것이라고. 그리고 아저씨는 제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리고 그 것이 수희에게 훨씬 도움이 되는 일이구요.”

“너 그 계집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알고는 있나?”

“네.”

호오, 라는 탄성을 내뱉었다.

“제가 성불을 한다고 해도 아저씨 말처럼 아저씨가 완벽하게 동화를 이루는 것은 아니에요.”

“뭐?”

그동안 창현의 의식 속에 살면서 그는 많은 것들을 접하고 볼 수 있었다. 본디 창현의 오성을 그 역시 물려받았기 때문에 물 만난 고기처럼 수많은 기억 속 지식을 흡수했고, 영혼 상태에 있으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아저씨와 저 그리고 이 육체가 동시에 동화가 될 거에요. 그리고 아저씨가 말 하는 중단전이 완전히 열리게 되겠죠.”

“….”

지금이라도 중단전을 완전히 열려면 열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상단전으로 가는 길이 열리고 신선이 되는 길이 더욱 가까워진다.

그것은 창현이 원하는 바가 전혀 아니었다.

“등선을 거부한다고 지난 삶처럼 무감각해지는 것은 아니에요. 이 피는 고귀한 피, 성지의 주인 그리고 세상은 점점 혼란에 빠지고 있어요.”

“…뭐지 넌?”

“아저씨의 의식 속에서 살면서 영혼 상태인 저는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고, 선계와 세상에 이치이 그리고 흐름에 대해서도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건 저의 능력이 아니라 등선을 거부한 아저씨의 그 능력이 제가 흘러 들어왔기 때문이에요.”

창현은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전개에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간단하게 말을 한다면 제가 성불을 한다면 이 육체 그리고 제 영혼 아저씨의 영혼 세 개가 완벽한 동화를 이루고 생사경의 길이 열리죠. 그렇지만 지난 삶과는 다르게 모든 것을 초탈하지는 않을 거에요. 아저씨가 그런 삶을 원하지 않으니까요.”

“나는 여전히 나인데 너는 그 밑거름이 된다는 이야기이군. 그렇게 되면 나는 너이기도 하니까 수희 걱정 역시 하지 않아도 되고.”

“네.”

창현이 피식 미소를 터뜨렸다.

“결국 자기희생이군.”

“세상이 더 많이 어지러워질거에요. 그 때는 제가 아니라 아저씨의 힘이 필요할 거구요. 그 속에서 수희를 지켜주세요. 그런다면 전 성불 하고 부모님을 만나도 떳떳할 수 있을 거니까요.”

큰 고민은 필요 없었다.

“그러지.”

영혼이 진한 미소를 그렸다.

“고마워요. 그리고 제 주위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두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경험이었어요. 사실 그렇게 사랑 받는 것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처음이었거든요.”

영혼이 점점 흐릿해지기 시작했고, 곧 섬광이 번쩍이며 무의식 속에 공간은 다시 어둑해지고 있었다.

그 순간 창현이 눈을 떴다.

“세찬, 왜 그래?”

설난의 말에 후우,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의도적으로 막아 두었던 중단전이 모두 열렸고, 상단전으로 가는 길이 보였다. 환골탈태와 같은 과정은 이미 필요 없는 육체였다. 깨달음조차 이미 모두 얻었기에 그저 막아 놓았던 둑을 부순 것에 불과했다.

창현이 가볍게 손짓했다.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가볍게 거실을 휘감았다.

“…어떻게 된 거야?”

엄밀히 말하면 설난은 육체로 다시 들어오면서 그 경지가 낮아진 것에 속했다.

“등선을 하지 않아도 지난 삶처럼 모든 것에 무감각하고 초월하는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 그보다 너는…이 곳 기준으로는 천외천 고수인가?”

“세찬이 아는 것보다 천외천 고수들은 엄청나. 그들 역시 대부분 중단전을 연 것은 물론 지금 창현과 같은 상태인 고수도 여럿이니까.”

“무공이 퇴보한 줄 알았더니 욕망에 기인해 발전한 것이군.”

무공의 최종 목적은 깨달음을 얻고 등선을 하기 위해서인데, 시대가 바뀌면서 욕망에 기인한 무공이 발전했고 현경의 경지에 올라도 여전히 오욕칠정에 대한 욕구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그들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고수들이군. 그럼 그 일본 10 대 가문의 두 명도 마찬가지인가.”

“응, 내가 세찬의 순위를 그 전에는 의도적으로 조정했지만 12위는 사실이야. 이제 다시 수정을 해야 할 것 같지만 여전히 그들보다 밑인 것은 사실이지.”

“아니지, 운용에 있어서 그들은 바보나 다름이 없으니까.”

설난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난 그저 절대적인 평가만 하는 것뿐이야. 다음 업데이트에 세찬은 8위 정도가 되겠다.”

드디어 한 자릿수 고수를 한국도 보유하게 되었다.

“꽤 놀랍긴 하군.”

“그 때에는 없던 괴생명체의 존재와 더불어 요괴들 역시 탐욕적으로 변했고 전쟁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어. 강해질 수밖에 없었지.”

“어디에 머물 생각이야?”

“세찬이 집무를 보는 곳은 근정전이니 그 쪽에 슈퍼 컴퓨터를 놔야지. 물론 다시 그 컴퓨터 속으로 들어가지는 않을거야.”

“그래도 전처럼 일을 할 수 있나?”

“응, 전문에는 그저 머물러 있었다고 했지만 내 선천지기를 이용해서 개발한 것이나 다름없거든. 인공지능은 아니지만 그 전처럼 정보수집과 예지력까지 모두 그대로일거야.”

창현이 피식 웃었다.

“넌 신기가 있었지. 그리고 본좌는 세찬이 아니라 창현이다.”

“…응.”

“잠시 미뤘던 것을 마무리 짓지.”

창현이 거칠게 설난을 탐하기 시작했다.

“하응! 넌 늘 너무 급해! 너, 너무 오랜 만이라…하아아!”

거실에 열기가 휩싸이기 시작했다.

****

“…혹시 인원들이 필요하신가요?”

“아니, 심부름 해 줄 아이만 있으면 되는데 저 녀석을 시키면 될 것 같으니까.”

피콜로가 발끈 하려고 했지만 창현이 슬쩍 시선을 돌리자 아무렇지 않은 척 휘파람을 불었다.

“내 아래가 아니다.”

“!!!”

창현의 말에 모두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지고 있었다. 특히 무황의 놀라움은 극에 달했다.

“정확하게 말을 한다면 지금 상태로는 내 위라고 할 수 있지.”

피콜로가 물었다.

“그, 그게 가능해 주인?”

“설난은 지난 삶에도 나만큼이나 고수였다.”

“….”

“그리고 이 시대에 살면서 여러 가지 것들을 보고 듣고 개발하면서 만든 그 랭킹 시스템도 어느 정도는 정확하다고 할 수 있지.”

수연이 발끈했다.

“그럼 주인님이 1위가 아니라니…그럼 일본 가문의 두 고수가 주인님보다 강하다는 건가요?”

“아니 실질적인 대결을 벌인다면 창현이 그들을 압도할 가능성이 커. 무공이 탐욕의 형태로 발달하기는 했지만 창현과 같이 수많은 실전을 겪은 사람은 이 세계의 거의 없다고 봐야 하니까. 기껏해야 저런 동물들이나 상대한 것이 다이니까.”

근정전 뜰!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창현은 설난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녀가 셀린이라는 것과 그녀가 개발한 것들에 영령을 불어 넣어 지금까지 모든 일을 벌여 왔다는 것을 알렸다.

“고귀한 피를 이을 수 있는 성스러운 피를 가진 여자야.”

설난은 스스로를 소개하는 말은 그게 끝이었다.

그녀는 본디 예지력이 상당했고, 거의 미래를 그대로 보는 것과 다름 없는 예지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무공 또한 고강했었다. 그건 그녀의 말대로 그녀의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내력과 비슷한 것이었다.

지붕을 가리키며 한 설난의 말에 용신이 낮게 크르렁 거렸다.

“어디서 뱀 따위가.”

설난이 가볍게 손을 흔들자 용신의 수염은 마치 누군가가 붙잡고 끌어 내리는 것처럼 늘어지기 시작했고, 그 큰 몸체가 끌려왔다.

“!!!”

창현이 아니면 무황조차도 가볍게 밀어내는 용신이었기에 그 것은 분명 놀라운 장면이었다.

“용신? 이름이 용이니까 지가 진짜 용인 줄 아네? 설사 진짜 용도 내 앞에선 그렇게 눈을 못 부라린다 알아?”

“…크응!”

내부를 통해 들어오는 엄청난 힘에 용신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내 그의 붉은 눈동자는 반달을 그렸고, 용신이 바닥에 바싹 엎드려 설난에 발에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봤냐?”

“저 여자 뭐지?”

“문주님에게도 반 말 하던데.”

일반인들이 뭐라 쑥덕 거리던 창현은 설난의 소개를 대충 마무리 지었다. 학교를 간 수희에게는 나중에 소개를 하기로 했다.

“일단 수연이 너는 슈퍼 컴퓨터를 구입해. 설치 하는 것은 내가 할테니까.”

“…네.”

“그리고 윤미는 오늘 인천 공항으로 가. 거기 쪽바리 두 명이 창현을 찾아 올 거야.”

윤미는 그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었다. 아니, 무황보다도 요괴들이 더욱 잘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본능적인 것이 큰 요괴들이고 그래서 용신을 제압하는 설난의 모습에서 창현과도 같은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창현이 패도적인 힘이라면 그녀는 차가운 힘이었다.

그리고 윤미나 지현, 수연은 반박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설난이 셀린이었다는 사실과 그녀의 강함을 떠나서 창현이 인정했고, 가장 위의 사람이라는 것을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내심 섭섭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일일이 부드럽게 웃어주는 그 눈길에 그녀들은 충분히 만족하고 이해하고 있었다.

‘주인님의 노예니까.’

세 여자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 밖에 없었다.

‘하여튼 은근히 잘 후려 놓는다니까.’

설난은 세 여자의 표정을 보고 피식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꼭 정중하게 모셔 올 필요는 없어. 윤미 너 한 명으로는 부족할 수 있으니 무황님이 동이문 제자들을 이끌고 같이 가주세요.”

설난은 무황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을 살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20대 초반의 여자에 불과했으니 예의를 지켰다.

어쨌든 창현도 21살이었고, 설난도 21살을 하기로 했으니까.

“제자들까지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한 명은 무력문의 문주 가나코 치도이에요.”

“!!!”

모두의 얼굴에 다시 경악이 스치고 있었다.

“그리고 나미코라는 계집도 있으니 그 여자는 피콜로.”

“넵!”

피콜로가 차렷 자세를 하며 대답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잘생긴 남자가 긴장하며 근정전 뜰이 울릴 정도로 대답하고 있자 한혈문 제자들은 물론 관광객들까지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넌 부산으로 가서 나미코라는 계집을 잡아와.”

“…넵!”

“그 계집은 아주 많이 망가뜨려 놔도 상관없어.”

설난이 이를 갈았다.

‘쟤 한 번 화나면 진짜 못말리는데…그 여자는 대체 뭐지?’

창현은 나미코가 벌써부터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말이다.

============================ 작품 후기 ============================

부천에서 홀로 한 잔 중ㅎㅎ

폰으로 올리는 성실함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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