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5 회: 집 주인 혈마 -- >
근정전 한 편에 슈퍼컴퓨터가 들어서고 있었다. 셀린, 아니 설난의 존재 덕분에 정보각은 따로 신설 하지 않아도 되었다.
컴퓨터를 설치하고 설난은 컴퓨터에 자신의 예지력과 의지를 불어 넣기 시작했다. 슬금슬금 연기와 같은 것이 그녀의 손을 통해 기어 나와 컴퓨터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 것은 일종의 술법이었는데 창현마저 인정할 정도로 고급 술법이었다.
시간이 꽤 걸리는 모양이었다.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고 있는 설난을 보면서 창현은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가 손을 가만히 대었다.
붉은 혈마지기가 설난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면서 급격하게 힘이 빠져나가고 있던 설난의 안색은 차츰 다시 붉은 혈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연기가 크게 터져 나오면서 컴퓨터를 휘감았다.
츠츠츠!
“흐아!”
설난이 이내 손을 내리면서 크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창현이 빙긋 웃었다. 자신이야 이 시대에 문명을 아직까지 전부 낱낱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완벽한 영혼의 동화가 이뤄지면서 흐릿했던 기억들도 선명해졌지만 겪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니까.
설난은 오랫동안 셀린이라는 역할로 살아왔고, 그만큼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예측 등 여러 가지 일들을 잘 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문파에서 정보를 도맡아 주는 것은 참으로 유용한 일이었다.
“끝났나 보군?”
“그래. 재정 관리는 수연이라는 아이가 해?”
“응.”
앞으로 모든 국가들에게서 받는 예측료는 더 이상 한국 정부가 아니라 한혈문으로 들어오게끔 되어 있었다. 이미 각국에 전문을 보냈고, 각국 역시 동의했다. 그들에게는 셀린이라는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인지 사람인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랭킹 시스템과 자연 재해, 요괴와 괴생명체의 습격만을 변함없이 예측 해 줄 수 있다면 그만이었다.
“다시 네게 돌아왔으니 아마 예지력이 더 올라 갈 것 같아.”
“그렇군.”
고귀한 피와 성스러운 피의 만남.
크게 다른 뜻은 아니었지만 설난은 창현의 존재 자체가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지금까지 내려오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위대한 성지의 주인과 그 주인을 곁에서 지켜야하는 그런 운명!
“각주님 더 필요하신 것은….”
“없어.”
수연이 곧 창현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각주님께서 오시면서 약간 모자랐던 재정이 이제는 무난하게 문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늘었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주인님, 아무래도 한국정부를 위해서 궁 관람료를 그들과 어느 정도는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런 문제는 수연 네가 정하고 나에게 이런 식으로 처리한다 보고만 하면 된다.”
“네, 문주님.”
설난이 끼어들었다.
“무황님과 윤미는 출발했니?”
“네, 피콜로까지 전부 출발했어요.”
설난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되지 않아?”
그녀 역시 일본에서 넘어오고 있는 두 명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윤미와 무황 그리고 동이각 제자들로만은 무리라는 사실까지도 전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을 보낸 것은 그동안 창현이 압도적인 힘으로 모든 것을 처리했기 때문에 창현이 없을 때의 상황판단을 보고 싶어 한 것도 있었고, 무력문 가주가 그들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예지를 통해 보았기에 강자와의 경험을 쌓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괜찮을거야.”
“너는 주인이고 주군이니 실력의 차이가 나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어. 하지만 적이 그토록 강하다는 것을 알면 무황님은 모르겠지만 동이각 제자들이나 윤미는 열등감에 절망할 수도 있어.”
창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나약한 아이들은 아니지.”
수연 역시 동조했다.
“네, 맞아요.”
“너도 마찬가지야.”
갑작스러운 설난의 말에 수연이 움찔 몸을 떨었다.
“모든 국가에서 창현을 주시하고 있어. 10대 가문과의 승패가 많은 것들을 달라지게 할 거야. 그리고 예전에도 그랬지만 창현에 관한 미래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너희들도 마찬가지이고. 한혈문도 그렇고…아마 창현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지만 뿌얀 안개 속에서 불안감은 확실히 느껴져. 이 세계에서 창현은 분명 절대 강자 중 한 명이야. 그렇지만 나머지 천외천 고수들도 만만치는 않지.”
“천외천 고수들 모두가 주인님을 적대 할 까요?”
“꼭 그들만이 아니더라도 괴생명체나 요괴들 역시 변수야. 내가 예지하는 것은 그들의 습격이나 탐욕이지 그들 전력 자체는 아니니까.”
“…네.”
“그러니 좀 더 강할 필요가 있어.”
창현은 두 여자의 말을 들으면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일도각으로 가자.”
“…네.”
피식 미소를 짓던 창현이 물었다.
“굴리게?”
“가장 약하니까. 수연이도 마찬가지이고. 지금 바쁜 것은 알지만 본신의 무력이 강해야지.”
“한국에 습격이 많아질 예정이야. 강창현 네가 모조리 잡아들여.”
잠시 창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너를 주인님이라 따르는 애들을 강하게 해야 할 것 아니야. 가지고 있던 것들은 일반 제자들에게 쓰고 또 팔았다며.”
“그러지.”
“용신 데리고 다녀. 고작 뱀 따위 주제에 지붕 위에서 용인척 하다니. 뒈지게 맞을라고.”
잠시 근정전 지붕이 떨리는 것 같았다.
“난 솔이한테 잠시 가보지.”
“솔이?”
두 여자의 호기심에 창현은 그저 옅은 미소만 지었다.
****
“저 사람들인 것 같네요.”
윤미의 말에 무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풍기고 있는 한 명의 노인과 한 명의 중년인…그리고 설난의 예측과는 다르게 그 둘을 따르고 있는 십 수 명의 무인들은 일본 10 대 가문 중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는 무력문이었다.
가주 가나코 치도이를 비롯해서 그를 개인적으로 호위하는 호위 무사들이 모두 함께 온 것이었다.
한국 정부에서도 그들을 맞이하러 나왔다.
공식적인 방문이었고, 치도이가 가지는 영향력은 아보 총리 못지않았다. 아무리 적대 관계가 심해지고 외교 관계가 냉정하게 흐른다 하더라도 일본에서 총리가 온다면 당연히 정부에서는 맞이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다.
그렇지만 치도이는 그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윤미와 무황 그리고 동이각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이미 무황과 윤미는 유명인들이기에 공항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들에게서 떨어질 줄 모르고 있었다.
호기심이 가득찬 얼굴로 무력문과 한혈문의 대치를 사람들은 주목하고 있었다.
“이거, 화면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우시군요.”
치도이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거, 근데 생각보다 저희를 반기시지 않는 것 같군요.”
일본 내에서 거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말을 했었던 치도이의 말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적반하장이었다.
무황이 나섰다.
“자국 방송에서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던 말씀을 한 것으로 알고 있소. 더구나 그대는 무력문의 가주! 10 대 가문의 회장으로 있는 사람이요. 그런 발언을 한 이후 한국 방문이라니…그대가 비록 천외천 고수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광오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시오?”
대답은 치도이에게서가 아니라 옆에 있던 남자에게서 흘러나왔다.
“미개한 조선인 주제에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리지마라.”
“….”
얼마나 만만히 보았으면!
그 말을 듣고 있는 한혈문 사람들만이 아니라, 일반인들 그리고 정부의 요원들까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었다.
“당신들은 분명 우리 정부에게 방문을 알리고 공식적으로 한국으로 온 것으로 아는데…지금 그 발언 양국의 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까?”
정부 요원은 생각보다 침작했고, 이상적이었다. 아무리 10 대 가문이 잘 나간다고 하지만 국가간의 전쟁은 문파간의 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무인들이 전쟁을 주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군대는 여전히 강력한 존재였고, 한국 역시 몇 십 수 년 동안 전력 보강을 꾸준히 했기 때문에 군사력에서 그리 밀리지 않았다.
진짜 전쟁을 한다면 양측 모두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귓등으로 들었나? 우리는 한혈문을 방문하러 온 것이고 목적은 강창현이라는 그 건방진 놈과의…”
무황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것은 그 자리에서 오로지 치도이 밖에 없었다.
최근들어 그 실력의 간극을 상당히 좁혔다고 믿고 있는 윤미조차 무황의 움직임을 볼 수 없었다.
창현이 너무나 강력했고, 천외천 고수에다가 그동안의 행보가 파격적이어서 그렇지 분명 무황은 몇 십 년이나 한국 최고의 고수였다.
무황!
무의 황제!
그 칭호를 괜히 받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목 밑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칼날의 예기를 느끼고 있는 남자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무황의 입이 스산하게 열렸다.
“너 따위가 함부로 부를 분이 아니다. 한 문파의 수장을 그렇게 부르다니…너희 가문의 수준을 알만하구나!”
서늘한 예기는 남자의 살갗을 조금씩 파고들어 긴 줄기를 만들어내고는 진한 핏방울을 흘리게 만들고 있었다.
“무황…이라!”
이내 치도이가 빙긋 웃고 있었다.
두 노인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히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승부의 신 이제 거의 마무리 작업이네요.
마무리 끝나면 혈마 다시 달리기 시작!
이삼일 정도 걸릴 것 같은데 그동안은 하루에
한 개나 두 개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마무리 끝나면 하루에
두 개..연참은 꾸준히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