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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 현대 재림기-107화 (107/170)

< -- 107 회: 집 주인 혈마 -- >

무황을 바라보고 있는 치도이의 눈빛은 부드러웠다.

일종의 핸디캡 매치!

성지, 경복궁의 강대한 성스러운 기운이 치도이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런 압박을 받는 와중에서도 치도이는 무황과 상대를 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창현과도 상대를 하려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그만큼 자신의 무공에 대하여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세계랭킹3위는 결코 만만한 랭킹이 아니었다.

“창현….”

설난은 살짝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창현을 불렀지만, 창현은 여전히 뜻 모를 미소를 짓고 있었다.

창현은 배교 출신.

온갖 암계와 음모가 난무하던 그 배교에서 자라고 성장했다. 세력도 없는 명예만 있는 장로 한 명이 주워온 아이에 불과했던 창현은 그 천재적인 재능과 강함을 더불어 아주 쉽게 교주가 된 것이라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 것은 아니었다.

그의 천재적 재능을 깨닫고 그의 사부는 그를 교주로 만들기 위하여 수많은 모략과 배신, 그리고 암계를 펼쳤다. 어린 창현은 그 것을 그대로 보고 배웠고, 배교의 교주가 되면서 그런 일들을 숱하게 겪었다.

딱히 암계라고 할 수도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치도이를 죽이는 것은 간단했으니까.

‘그동안 보여준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일부러 그렇게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큭!’

아마 창현의 영혼의 영향을 받은 탓이었을 것이다. 은근히 공명정대하고 정정당당하고 대인배적 모습을 많이 보여줬던 창현이었기에 일본 10 대 가문 사람들조차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것은 비단 치도이라도 다르지 않았다.

‘범의 아가리에 들어온 하룻강아지를 고이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치도이와 대결을 벌인다면 이길 자신은 있었다. 그렇지만 그동안의 전투처럼 압도적으로 단 한 수만에 압살하지는 못할 것이라 창현은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창현은 옅게 웃었다.

“선공을 양보하도록 하겠네.”

“사양하지 않겠소.”

무황은 검을 고쳐 잡아 보았다. 그토록 염원했던 검명이 가볍게 들렸다. 검이 울고 떠는 것이 느껴졌다.

목숨을 맡기지 않고서 어찌 검이 나를 위해 울기를 바라는 것이지?

창현의 그 한 마디는 무황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손에서 울고 있는 적명검의 떨림을 느끼면서 무황은 신중하게 호흡을 골랐다. 검을 가만히 늘어뜨리고 있는 치도이의 모습에는 전혀 빈틈을 찾을 수 없었다. 역시 천외천 고수라는 말이 느껴졌다.

창현을 보고 있자면 끝없는 부드러움이 느껴지면서도 그 속에서 패도가 느껴졌다.

그렇지만 치도이는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오르지 못할 산이 아니라는 뜻이지.’

무황은 내심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이길 것이라 장담은 하지 않았지만 붙어보기도 전에 패배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호승심이 괜히 들끓은 것이 아니다.

섬광이 번쩍이면서 무황의 신형이 사라졌다. 무황은 품을 밟으면서 가볍게 찔렀다. 단순한 찌르기였지만 그 속에 담긴 힘은 해일과도 같았고, 성지의 기운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성지는 치도이를 압박하고 있지만 동시에 무황에게 힘을 주었다.

자연의 기운을 끌어다 쓰는 것을 조금 깨닫고 있었던 무황은 그 힘이 잠시 놀랐지만 그것은 찰나에 불과했다.

‘주군께서 말씀하신 것이 이것이구나!’

공간 자체가 자신에게 허락되는 느낌이었다.

초고수들끼리의 싸움에서는 공간의 지배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초식 따위는 더 이상 중요치 않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어떤 공간을 얼마나 또 어떻게 지배하느냐가 승패를 가르곤 했다. 그리고 그 공간을 지배하는 힘은 근본적으로 내력이었고, 내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으로 상대방을 압박하고 묶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형 마법사들이 일 대 일 대결에서 강세를 보이는 이유였다.

그들은 애초부터 공간을 비트는 행위를 타고나는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각설하고,

무황은 찌르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검이 가르는 바람과 치도이의 상체 부분에 펼쳐지고 있는 그 공간을 자신의 내력과 성지의 기운을 곁들여 완벽하게 지배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창-!

들려오는 소리는 무황의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섬월(纖月)이라는 기술이네.”

가는 초승달!

그 말이 무척이나 어울린다고 무황은 생각했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공격이 막혔지만, 무황은 당황하지 않았다. 연계 공격을 곧바로 이어나갔다. 창, 하고 부딪힌 검에서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내력의 힘으로 그대로 찍어 눌렀다.

아직 공간의 지배는 벗어나지 않았다. 그 공간을 치도이가 가른 것뿐이었고, 그것은 찰나의 틈에 불과했으니 아직 무황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차앙-! 창-!

두 사람의 검이 연속적으로 맞부딪히고 있었다.

그 움직임을 제대로 보고 있는 사람은 창현 한 명 정도밖에 없었다. 윤미조차 무황과 치도이의 움직임을 쫓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그에게 멀었구나.’

새삼 깨닫고 있는 윤미는 가늘게 눈을 뜨고 격전의 현장에 집중하고 있었다.

“타앗!”

무황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다시 한 번 일직선으로 치도이의 어깨를 노렸다. 어검술이나 검강 같은 기술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무황은 창현의 말에서 가장 강한 힘을 내는 것은 역시 가장 먼저 배웠던 찌르기와 베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것은 치도이에게 색다르게 다가가고 있었다.

“화려한 초식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역시 자네는 고수라 불릴만한 자격이 있네.”

그런 공격을 여유롭게 말까지 해가면서 막는 치도이의 경지도 대단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어깨를 노리고 달려오던 검을 부드럽게 쳐낸 치도이가 곧바로 반격을 개시했다. 창, 하는 소리와 함께 뱀처럼 꿈틀 거리던 검이 세로로 세워져 그대로 무황의 상체를 벨 듯 공간을 완전히 갈라버리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섬월(閃月)이네.”

달이 반짝인다.

그 것은 무엇을 뜻할까.

“크으윽!”

무황은 자신의 상체를 가르는 검을 느끼며 그 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검이 뱀처럼 꿈틀거리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밤하늘에 유난히 반짝이던 그 빛이 어느새 자신을 비추고 있던 것처럼 검은 자신의 상체를 베었다.

크게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지만 피가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어서 가겠네.”

치도이가 가볍게 품을 밟자 그의 신형이 쭈욱 무황에게 다시 다가갔다.

“다시 섬월(殲月)이네. 제 3초식. 그리고 섬월공은 제 3초식 밖에 없네. 자네가 막기를 기대하겠네.”

검이 몇 개나 더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환의 묘리가 담겨 있는 섬월이라는 기술은 무황이 서 있는 공간 자체를 모두 찢어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수십 개…수백 개로 늘어나고 있었다. 무서운 것은 저 것들 모두가 극강의 기운을 담고 있는 진짜라는 것이다. 극한의 환은 구분 할 수 없는 환영이 아니라 모두가 진짜였으니까.

그리고 그 때 창현의 눈이 반짝였다.

“!!!”

그 순간 다시 무황이 검을 위로 쳐 내면서 수백 개의 검을 모조리 갈라버리기 시작했다.

“타앗!”

무환이심공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무연심의 마지막 초식!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그 무공은 살상보다는 적을 밀어내는 것에 더 중점을 두었다. 그 것은 동이문이 성지의 주인을 위해 만들어진 문파이고, 대대로 살상을 멀리하고 깨달음에 중점을 두었던 한국 전통 문파의 특색이기도 했다.

지키기 위한 무공!

그들은 늘 적으로부터 소중한 것들을 지켜야 했다.

적을 죽이는 것보다 소중한 사람,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힘이 딱 적보다 반수 정도 강해야했다. 힘의 여파로 다른 것까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무황의 무공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는 초식에 일반인들은 물론 동이문 제자들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최후의 무공이라 불리는 무연심의 마지막 초식이 현 각주에게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나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속도가 너무 빠르기에 오히려 천천히 보였다. 일반인들은 섬광을 번쩍이며 수 백, 수 천 개의 검을 모조리 쳐 내며 회전하고 있는 무황을 보면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검을 조종하고 있던 치도이가 입술을 질끈 깨문 이후 이내 소리치려 했다.

하지만, 이미 잘려졌던 공간의 지배력을 다시 회복하고 있는 무황의 공격이 먼저였다.

그리고 그 것은 치도이도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주군!’

무황은 공격을 하면서도 창현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 자리에서 그를 죽인다. 내가 아니라 네가.’

‘하지만…이건 정당하지 못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

‘…주군.’

‘한스러운 피가 이곳에 맺혀 있음을 잊지말라. 우리는 똑같이 되돌려주면 되는 것이다. 성불조차 하지 못하고 성지의 일원이 되기를 원했던 그 수많은 원혼들을 기억하라. 그들이 원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자의 피! 그리고 그 자의 피가 이곳에 흩뿌려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군!’

‘망설이지마라. 그는 너와의 대결 이후 나를 피할 것을 결심한 상태. 그를 죽일 수 있는 것은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다. 모든 명분을 갖춘 지금.’

무황은 이를 악물었다.

성지의 기운은 치도이를 압박하고 있었고, 방금 전 창현이 이 대결에 끼어들었다. 그가 보이지 않는 내력을 날리며 치도이를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한 수, 한 수가 오히려 자신의 최후의 초식보다 더욱 막강하기에 치도이의 손은 어지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말 한마디조차 내뱉지 못하고 악독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한스러운 피가 이곳에 맺혀 있음을 잊지 말라.’

그렇다. 창현의 그 목소리가 머릿속을 천둥처럼 때렸다.

검조차 들지 못하던 나약한 사람들은 이들은 자신의 탐욕을 위해 거침없이 베었다.

“그대의 몸 속에 흐르고 있는 피…그리고 그대의 탐욕에 대한 대가를 지금 받는 것이라 생각 하시오!”

무황은 내력을 폭발 시키고 있었다.

새하얀 섬광이 번쩍였다.

창현의 혈마지기가 붉은색이라면 무황의 무환이심공의 색은 성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투명한 빛의 색이었다.

그리고 그 빛은 치도이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었다.

“어, 어 저, 저거?!”

창현이 끼어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무황과 치도이 밖에 없었다. 치도이의 호위무사들 중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중년인조차 그저 무황이 치도이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타아앗!”

공간과 빛을 가르는 무황의 검은 달조차 베어 버린다는 섬월 역시 가볍게 갈라 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검이 치도이의 목젖을 꿰뚫었다.

“꺄아아악!”

일반인들 중 그 광경에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이건 영화 촬영이 아니라 실제!

“운수대통, 일반인들을 통제해라. 귀가 시키지는 말고 향원정 쪽 뜰에 모아 놓도록. 수연과 지현은 함께 가서 성지의 기운과 함께 그들에게 따뜻한 기운을 불어 넣어줘.”

“예.”

투명한 막이 걷히면서 치도이의 목에서 분수처럼 터져나오는 피가 근정전 뜰을 검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아주 신기하게도 그 피는 금방 메말라 버리고 있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창현이 나섰다.

“무력문 가주와 한혈문 각주 무황의 대결에서 무황이 승리했다. 너희들도 보았듯 긴박한 상황이었지.”

“…이 미친 조센징들이!!!!!!!!!!!!!!!!!!!!!!!!!!”

중년인은 황급히 치도이에게 다가갔다. 그렇지만 이미 시신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햇살에도 불구하고.

“다 죽여 버리겠다!! 모두…모두 이 미개한 조선인들의 피로 가주의 원한을 갚아라!”

달려드는 호위무사들을 보면서 창현은 무심하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영상을 찍었지…가주는 정당한 비무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시작부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고, 상관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닥쳐라 조센징! 너의 사지를 씹어 먹어 무력문의 혼을 보여줄 것이다.”

창현이 비릿하게 웃었다.

“한혈문과 무력문간의 전쟁이군.”

중년인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지만 창현의 말이 먼저 이어졌다.

“동이각 제자들…용신, 쓰레기들을 정리해라. 이 자리에서 한혈문을 욕보인 저들의 말살을 허락한다.”

============================ 작품 후기 ============================

끼어들기 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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