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8 회: 집 주인 혈마 -- >
동이각 인원들이 가장 먼저 남은 호위무사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일도각 인원들 역시 대길과 함께 천천히 다가갔다. 호위무사들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중년인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는 가주가 패했다는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상대는 한혈문의 문주인 창현도 아닌 일개 각주에 불과한 무황이었다. 그가 한국 최고의 고수라 칭송 받았던 시절이 있기는 했지만 그는 가주와 분명한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한순간의 방심이 화를 부른 것인가.’
호위무사의 수장조차도 창현이 끼어들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경복궁의 기운이 가주를 가장 압박했을 것이 분명하고, 그 차이점을 생각보다 작게 생각한 가주는 무황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강한 경지이자 틈을 보인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무황은 최후의 초식을 펼쳤고, 거둬들이기에는 자신이 보아도 그 초식은 너무나 강력한 초식이었다.
결국 비무를 통해 가주는 패한 것이다.
그 사실이 더욱 남자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미천한 조센징 따위가…!”
창현은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남자를 보면서 진한 미소를 그렸다.
“전부 죽여라.”
“…!”
전쟁 선포를 하기는 했지만 설마 한 명도 남김없이 죽일 것이란 생각은 은연중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한 명쯤은 남기겠지,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비참하지만 가문에 이 상황을 똑똑히 전해야 할 한 명 정도는 창현이 죽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남자의 그 생각을 알겠다는 듯 창현은 조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무력문에 알려 줄 수 있는 증거들은 충분하다.”
“…조센징!!”
남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식간에 창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렇지만 곧 자신의 검을 막는 손을 느껴야했다.
“잘 봐라, 예로부터 개새끼들은 베어 죽이는 것이 아니라 때려죽이는 것이니까.”
남자의 경지는 제법 높았고, 대길보다도 높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대길은 자신이 있었다. 지금 그는 극도로 흥분한 상태이고,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이다. 그 것도 스스로 미천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말이다. 그토록 존경했던 가주는 한 수에 죽어 버렸고, 머나먼 타국에서 스스로 사무라이라는 명예와 자긍심을 가지고 있던 그들은 비참한 죽음만을 앞두었다.
평소의 실력이 제대로 나 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대길의 주먹에 만근의 힘이 담겨 있었다.
퍼억-!
자신의 검이 주먹에 막힌 것에 잠시 넋을 잃었던 남자는 곧 얼굴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통증에 비명을 내질렀다.
“크악!”
“동이각 제자들이 베어 죽이는 것보다 더 빨리 때려 죽여라.”
“네, 각주!”
일도각 인원들은 대길이 원하는 대로 대부분 문파에서 환영 받지 못했던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들은 정통 무공을 익히지도 못했고, 내력도 보잘 것 없었지만 모두 대길의 독문무공이라 할 수 있는 철갑외면피공을 하사 받았다.
각주가 자신의 무공을 각원들에게 전수하는 것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동이각이야 본래 동이문이라는 하나의 문파였고, 그들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수호 무공이 있으니 그 것만을 익히는 것이 당연했지만, 일도각은 새로이 창설 된 것이었고 당연히 인원을 새로 뽑았다. 대길은 은밀히 알고 지냈던 무인들, 즉 각 문파에서 폐기처분이라는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 삼류 무인들을 끌어 모았다.
“쪽빠리는 때려 죽여야 제 맛이징.”
한 각원의 말에 다른 각원들이 큭큭, 거리기 시작했다.
언뜻 가벼운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었고, 문의 이미지에 그리 썩 좋지 않을 수 있었다. 각원들 사이에서 잔소리 대마왕으로 불리는 수연에게 몇 번이나 지적을 받았지만 그들의 그런 면은 고쳐지지 않았다.
대길과 같이 거친 세계에서 살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미 문파에 한 번 쓰레기처럼 버려졌던 인원들이라 아직 창현에 대한 충성심은 대길에게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창현은 그들을 받아들였고, 동이각 각원들보다 더 많은 내단을 하사했다.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창현이 나섰다.
퍼억-!
한 명이 가볍게 허공으로 떠올랐다. 맞은 남자는 창현이 자신을 때리는 것도 모른 것 같았다.
붕 떠 있는 남자를 향해 창현이 가볍게 발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철갑외면피공은 몸 자체가 무기인 무공이다. 단순히 주먹만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 무공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
퍼어어억-!
가벼운 앞차기 한 방에 다시 높게 떠오른 남자를 보면서 창현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신체의 모든 부위를 사용해라. 그 무공은 결코 가벼운 무공이 아니니까. 너희들에게 내단을 하사한 것은 비단 내력을 키워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본디 무공은 하나. 외공이든 내공이든 그 끝을 이루면 결국에는 그 길이 같아지기 마련이다.”
번쩍이는 검강과 검기!
패도적인 도강과 도기!
화려한 그 기술들은 분명 무공을 익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동경 대상이었다. 하지만 일도각 각원들은 물론 대길까지 창현의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을 보면서 눈을 빛내고 있었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지 못하고 다시 떨어지고 있는 남자의 머리를 가볍게 붙잡은 창현이 그대로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크아아아아아악!”
엄청난 비명이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공명정대하고 너그럽고 자비로운 강창현.
그 것이 그동안 창현이 만들어 온 이미지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붉은 혈마지기 덕분에 눈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네 저 모습.”
설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늘 따분한 일상을 보내던 창현이었지만 가끔 정파와 전쟁을 하기라도 한다면 가장 선두에 나서 아예 학살을 하곤 했었다. 황제조차 협박했던 그 성격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설난을 잘 느끼고 있었다.
손아귀에 힘이 점점 강해지자 남자의 얼굴은 기괴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리고…그렇게 남자의 머리가 찌그러지고 있었고 곧 피분수가 터졌다.
몇 명 씩 합공을 해서 호위무사들을 정리하고 있는 동이각 각원들조차도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길과 대결을 앞두고 있는 호위무사 수장도 마찬가지였다.
“육체로 낼 수 있는 모든 힘이 극한적으로 강해지는 것이 철갑외면피공의 강점이다.”
“네, 문주!”
한 명이 대답했고, 곧 일도각 각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럼…너희들 각주의 말대로 때려죽이도록.”
창현이 다시 계단을 오르며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있었다. 설난이 손수건을 꺼내 창현의 손을 닦아 주었다.
“…잔인하기는.”
“기억 속에 배운 것에 의하면 이들은 잔인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일을 무던히도 많이 저질렀더군.”
“뭐, 그 것은 그래.”
호위무사는 애초에 열 댓 명밖에 되지 않았다.
동이각 각원들과 일도각 각원들에게 인원부터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이미 그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힘을 내라, 사무라이.”
“…미천한 조센징 따위가…!”
아직 죽지 않은 호위무사 수장은 대길과 손속을 겨루고 있었다. 검강이 아니면 대길의 주먹에 타격조차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놀라움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싸움 방식도 무척이나 투박했다.
대길은 창현처럼 군더더기없는 깔끔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일정한 보법은 그런 군더더기를 지워주는 역할을 하지만, 창현은 이제 그런 보법과 같은 것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었으니 대길에도 딱히 철갑외면피공에 맞는 보법을 알려주지도 않았다.
대길의 입장에서는 물론 달랐다.
보법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효율적이지 못한 움직임이다. 검강 자체도 찌릿찌릿한데…만약 동요하지 않았으면 금방 죽었을 거야.’
대길과 일도각 각원들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무공에 대한 허레의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서슴치 않고 동이각 각원들은 물론 요각의 요괴들에게까지 자문을 구했다. 어려운 줄 모르고 윤미나 수연 또는 새로이 등장한 설난에게까지 물었다.
그 모습이 자칫 규율이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그들은 허레의식이 없는 것이지 예의와 자존심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창현은 그런 분위기를 썩 마음에 들어 했다.
문파에게 버림을 받아 무공에 대한 열정이 크고, 거친 세계에서 살아가면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려 노력했던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자존심이 있었고, 묻는 것을 창피해 하지 않았다.
대길이 나름대로 골라 뽑은 것이기 때문이다.
“위험하지 않아?”
“글쎄…보법 하나가 필요하긴 하지. 효율적이지 못하군.”
“알고 있으면서 왜 안 만들어 줬어?”
“본좌는 바쁘니 네가 만들어주도록.”
“….”
설난은 피식 미소를 터뜨렸다.
“저 사람이 가끔 형님이라 부르던데…은근히 많이 아끼는 것 같아.”
창현은 대답하지 않고 대길과 호위 무사 수장과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길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고, 그 틈을 타 호위 무사 수장의 검이 푸른 검기를 일으키며 대길의 옆구리를 노리고 있었다.
“검기로는 안 되지.”
캉-!
사람 몸을 베었지만 베이지 않고 쇳덩어리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으며 호위 무사 수장은 이를 악물었다. 손에서 전해져 오는 느낌 역시 묵직했다.
그리고 다시 찰나의 틈이 생겼다.
대길이 그대로 몸을 180도 회전 시켜 손등으로 호위 무사 수장의 얼굴을 가격했다.
퍼어어억-!
수박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단 한 방이었어 넌 이 자식아.”
“거 대장 비리비리한 놈 제일 늦게 눕혀 놓고 되게 잘난 척 하네.”
“뭐 임마?”
“주위 좀 둘러보쇼. 꼴찌면서 주인공인척하기는.”
일도각 무사들이 낄낄 대기 시작했다. 대길은 얼굴을 살짝 일그러뜨리며 미천한 조센징, 이라는 말을 쓰러진 상태에서도 내뱉고 있는 호위 무사 수장의 얼굴을 그대로 밟았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축 늘어졌다.
대길은 주위를 둘러 보았다.
모두 끝나 있었다.
“말살이 끝이 났군.”
설난이 창현의 말에 대답했다.
“이제는 전면전이 벌어질거야. 10대 가문의 연합은 잠시 흔들리겠지만, 무력문은 단독으로라도 전면전을 벌일 것이 분명해.”
설난의 말은 지극히 당연했다. 가주가 죽었다. 그 것도 세계 랭킹 3위를 자랑하며 전 일본인의 우상과도 같은 가주가 무황에게 죽어버렸다. 같은 천외천 고수도 아니었다.
“무황의 순위를 업데이트해.”
“이거, 이거 정보조작은 안 돼.”
설난은 창현이 왜 그 것을 요구하는 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무황은 분명 천외천에 미치지 못했다. 창현의 도움으로 죽일 수 있었던 것이고 사실, 창현이 치도이의 죽음에 80%이상을 차지했다고 보아야했다.
“일단 이 비무의 결과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 좋겠지. 일반인들은?”
“애기들이 잘 치료하고 각자 보상 받는 방법을 알려주고 모두 돌려 보냈어.”
눈앞에서 사람의 목젖이 꿰뚫는 것을 보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심신이 약한 사람이라면 한동안 시달릴수도 있었다. 다행인 점은 경복궁의 기운과 수연이나 윤미가 그들의 심신을 재빠르게 안정 시켜 주었기에 다행이었다.
나름 보상도 철저히 할 계획이었고.
“관람객들은 당분간 받지 않는 것이….”
“무황.”
창현은 설난의 말을 무시하고 무황을 불렀다.
“네, 주군.”
“동이각 정예, 그리고 운수대통 너 역시 정예들을 뽑아라. 요각도 마찬가지이고. 용신 너도 준비해.”
“…창현?”
창현의 표정은 무심했다.
“무력문으로 간다. 가서…그들의 혼과 역사를 전부 지운다.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예! 주군!”
“설난 넌 이 사실을 미리 발표해라.”
설난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은밀히 가도 모자랄 판에 창현은 대놓고 일본으로 건넌간다는 말이었다.
창현은 그제야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예전 생각나고 좋군. 중원을 누빌 때는….”
“혼자 가서 봉문 시켰지. 특히 무당파를 봉문 시켰을 때는 전 중원인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었어.”
“옛날이니까.”
“아무튼 정보조작은 꽁짜가 아니야.”
설난이 빙그레 웃으며 창현의 귓가에 속삭였다.
“애기들과 같이 노는 경우가 많다며? 오늘은 나도 애기들과 밤에 갈 거야.”
창현은 그저 어깨를 으쓱이고 있었다.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오랜만에 다 같이 열락에 휩싸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이 삶에서 오욕칠정을 무척이나 좋아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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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작 마감쳤습니다.
하하하핫!
이제 다시 연참..은 좀 쉰 이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