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8 회: 세력 -- >
흉측하고 사이코패스적인 살인 사건이 부산에서 강원도로 옮겨가자 강원도 주민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무능한 경찰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치안의 유지는 경찰의 몫이었고, 국제적 발표 이후 무인들 역시 그 활동 반경이 넓어지기는 했지만 아직 정부 특수 요원들을 제외하고는 널리 퍼져 있는 실정은 아니었다.
여론에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지만 창현의 사건이 워낙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비단 그 일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언론이 다루고 있는 중이었다.
태풍의 경로를 바꿔버린 전 세계 랭킹 1위 한혈문 문주!
촬영 된 동영상의 조회 수는 수억을 가뿐히 넘어서고 있었다. 한 인간이 거대한 자연에 맞서 용을 부리며 바다를 갈라버리는 모습이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에 일반인들은 흥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S급 괴수를 홀로 때려잡았던 여마법사의 동영상보다 더욱 큰 관심을 받고 있었다.
한국 정부 역시 나서서 한혈문의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한혈문이 한국에 있음으로써 누릴 효과는 상상 이상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실비아의 예상대로 나미코를 비롯한 일본 잔존 무인 세력들이 한국에서 학살을 벌이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창현이 한국으로 돌아오고 일도각과 대길을 요각 대신 투입한 이후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서 확실히 그 일이 점점 떠오르고 있었다. 자극적인 기사를 찾는 언론들은 다시금 그 일을 다루기 시작했다.
살인 행각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벌써 100여 명을 넘어가고 있었다.
모두 동일범 소행이라고 예상을 했을 때 한 사람이 100여명 가까이 죽인 희대의 살인극이었다. 세계 각국 역시 최악의 살인범이 한국에 나타났다 다루기 시작했고, 한국 국민들은 그 살인범에 대한 분노와 같은 국가 소속이라는 사실에 치욕까지 느끼고 있었다.
한 편으로는…… 강원도 주민들이 아닌 사람들은 약간의 안심을 하고 있었다.
그 살인범의 행동반경이 부산에서 강원도로 넘어간 이후 변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난은 자신을 찾아 온 경찰 관계자들을 보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요괴나 귀들이 하는 짓이 아니에요. 괴생명체의 변형 형태인 소형 괴생명체의 짓도 아니고요. 무인이라면 초고수는 아니에요. 만약 초고수라고 한다면 자신의 기운을 완벽하게 숨기는 것이고요. 슈퍼컴퓨터는 내 능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특별한 상황, 즉 요괴나 귀 그리고 이성을 잃은 괴생명체 등이 뿜어내는 특유의 파동을 감지해서 예측을 하는 시스템이에요. 오차는 없고 완벽합니다. 지금 그 살인 사건은 인간이 벌이는 짓이 분명해요. 일반인이거나 혹은 자신의 경지를 완벽하게 지우고 있는 무인거나 둘 중 하나이겠지요. 하지만 이미 무인들이 사체를 보면서 무공의 흔적은 없었다고 하니…… 희대의 사이코패스라는 결론 밖에 나 역시 내릴 수 없네요.”
설난의 설명은 타당했고, 경찰 관계자들 역시 그 것이 정론이라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단지 한혈문을 찾은 이유는 그녀가 여러 가지 정보를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 그 어떤 정보력보다 설난이 더 우위에 있으니까.
“……저 혹시 CCTV와 같은 모든 네트워크 역시 각주님이 마음만 먹는다면…….”
설난은 싱긋 웃었다.
그 미소에 남자들이 잠시 얼굴을 붉혔지만, 설난은 별 상관하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이에요. 하지만 난 지금 경찰 관계자 여러분을 만나는 시간조차 내기 힘들었던 만큼 바빠요. 전 세계에 예측 시스템을 돌리고 있고, 한혈문 내부에서 난 각주죠. 그 것도 문주님의 최측근 중 한 명이고 내 손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일들을 모두 처리하기에도 하루가 빠듯합니다. 무인이건, 일반인이건 그런 살인마를 잡는 것은 나의 역할이 아니라 바로 공권력의 역할이 아니었던 건가요?”
설난의 말은 이번에도 정당했다. 흠 잡을 곳이 단 한군데도 없었다.
설난이 그 살인마를 잡는데 나서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공식적으로 도움을 요청해라.”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말에 남자들이 몸을 돌렸다.
창현이었다.
그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경찰 고위 관계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창현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저절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었다.
창현의 반말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한혈문 역시 한국에 있는 문파, 그리고 나 역시 이 땅의 국민이지. 정부가 공식적으로 도움을 요청한다면 나서 줄 용의는 있다.
“창현.”
“그만.”
창현은 설난이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예상하고 있었다. 아마, 일본의 지부화와 그 이외의 여러 세력들이 슬슬 눈치를 보며 충돌을 유도하고 있는 요즘에 자신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크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할 것이 분명했다.
“국민들의 관심이 쏠려 있다는 것은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안감에 떨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일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 대통령과 직접 상의를 한 이후 정부 차원에서 한혈문에 공식적으로 요청을 해라. 그럼 내가 직접 지시를 해서 움직여 보도록 하지.”
사실 창현이 살인범을 잡는 전문가도 아니었지만 경찰 관계자들은 허리까지 숙이며 고마움을 표했다.
곧 그들이 나가자 설난이 볼을 부풀리며 툴툴 거리기 시작했다.
“왜 쓸데없는 일에 나서려고 해?”
“고귀한 피의 주인은 그 백성들에 대한 생각도 해야 하는 법이다.”
“지금은 백성들이 아니야. 그 옛날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 옛날에도 너는 이 땅에서 성군 노릇을 한 적도 없잖아.”
“나에게 주어진 책임이기 때문에 지려고 하는 것이다. 그 때는 이미 인간사를 초월 했기에 그 책임조차 초월했지만 지금은 아니야.”
“너 그냥 윤미랑 나다니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창현은 움찔했다.
그 미세한 차이를 설난이 정확하게 짚어내고 도끼눈을 떴다.
“요새 너 윤미랑 자주 붙어 다니더라? 그리고 윤미 고 계집애도 뭔가 확실히 달라졌어.”
“정서적 교류가 원만해졌을 뿐이야.”
“네가? 정서적? 풋!”
설난은 비웃었지만 창현은 어깨를 펴며 말을 이었다.
“너 같은 꼬맹이가 알 리가 없지.”
“꼬, 꼬맹이?”
창현은 말 대신 자신의 가슴 언저리를 가리켰다.
설난의 키는 딱 그 정도였으니까.
“……재밌냐?”
“재밌는데 꼬맹아?”
“야!”
세상에서 한혈문 문주를 저토록 쉽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하게 설난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러한 사실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너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하지만 창현은 이미 근정전 안을 빠져 나간 뒤였다.
씩씩 거리고 있는 설난이 나지막하게 중얼 거렸다.
“윤미 고 기집애가 굉장한 기술이라도 익혔나? 방중술이라면 내가 최고인데…….”
오늘 밤에는 창현을 독점해야겠다고 설난은 굳게 다짐하고 있었다.
그 시각 강원도에서는,
나미코는 실비아를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그녀에게 실비아는 유일한 가족이었고, 자신을 믿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미코에게는 그저 푸근한 인상의 실비아였지만 그녀는 그 것이 자신에게 일루젼 마법을 실비아가 걸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과 그 목적도 똑같았다.
창현의 몰락.
실비아는 자신을 칼슨 용병대의 일원이었다고 소개했다.
창현에게 완전히 부서져 버린 용병대였다는 사실을 나미코는 알게 되면서 함께 복수심을 태우고 있다는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에 실비아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녀의 마법을 통해서 제물들의 효과가 극대화 되고, 무공을 회복하는 속도는 점차 빨라졌고, 오히려 전보다 더 높은 경지를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실비아 역시 술법의 효과를 새로이 깨달았고, 자신의 술법의 효과에 따라 7서클을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믿으면서 그녀는 실비아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아프지 않아 금방 끝나, 그리고 오히려 영광이라구. 미개한 조선인 주제에 나의 제물이 된다는 것은 말이야.”
“사, 살려주세요.”
“그렇게 바라보지 마. 자꾸……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잖아. 언니가 이번 시체는 좀 형태를 갖췄으면 좋겠다고 그랬어!”
나미코는 손속은 점점 잔인해지고 있었다.
푸욱-!
절대로 나미코는 일반인들에게 무공을 사용하지 않았다. 피를 흡수하는 과정에서는 술법을 사용했지만, 같은 술법을 고강하게 익힌 사람이 아니라면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부산의 무인들이 무공의 흔적이 없다 단언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강원도로 넘어 온 이후 나미코는 그저 간단한 체술만을 이용하여 일반인들을 제압했고, 살인을 거듭하고 있었다.
“히힛, 히히힛, 히히히힛!”
여자의 배에 깊숙이 박힌 칼을 휘저으면서 나미코는 부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느낌은 마치 오르가즘과 비슷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장면을…… 실비아는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꼴에 어느 정도 느끼나 보네? 어머! 내가 그렇게 만든 건가? 후훗!”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무인은 살인에 일반인보다 무감각한 편이었다. 실비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녀는 무인들 중에서도 드물게 피를 많이 묻힌 편에 속했다. 예전부터 술법문을 위해 한국의 고아들을 그녀가 제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미코에게 일말의 양심은 있었다.
하지만 강해지기 위해서, 그리고 어차피 자신이 정당한 대가라고 생각하는 돈을 주고 사온 아이들이라 거리낌이 없었다. 시체를 조용한 곳에 묻어 주기도 했었다.
이제 그런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시체를 온전히 가져 와 달라는 자신의 부탁이 있었건만, 실비아의 눈에 보이는 것은 젊은 여성을 난도질 하고 있는 나미코의 모습이었다.
이내 그녀가 정신을 차린 듯 얼굴을 가볍게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언니가 온전한 시체를 가져다 달라고 했는데…… 젠장, 조센징 따위 때문에 일을 한 번 더하게 되었군.”
살인을 하고 죽은 사람을 탓하고 있는 나미코의 모습은 무척이나 섬뜩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싱긋 웃고는 대충 시체를 던져 버린 뒤 다른 대상을 찾으러 걸음을 옮겼다. 이내 실비아가 그 현장에 가볍게 손을 휘둘렀고, 시체를 제외한 모든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경찰이 절대로 살인범을 잡을 수 없었던 이유였다.
그녀의 그 간단한 마법은 8서클 마법사가 펼치는 마법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몇 명 더 죽이는 것을 보고 그 놈을 꺼내러 가 봐야겠다!”
실비아 역시 그 자리를 떠나며 싱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두 여자가 떠난 자리에는 온 몸이 난자당한…… 불쌍한 한국 여자 한 명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창현이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마음이 춥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