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5 회: 세력 -- >
‘조금만 버텨라.’
창현은 이를 악물었다.
서울로 돌아 온 이유는 간단했다.
그 마법사는 직접적으로 살인에 참여 하지 않았고, 그저 흔적만 지우고 자신의 존재만을 과시했다. 마치 자신에게 보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은…… 무황과 설난이 위험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창현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경공을 펼치고 있었다.
그렇게 창현이 달려가고 있는 시각,
손을 휘저은 실비아의 앞에 투명한 막이 생겼다.
펑-! 퍼퍼펑!
검에서 일어난 푸르른 검강이 투명한 막에 금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무황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최고의 한수, 무력문의 가주조차 무찔렀던 한 수였다. 비록 창현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토록 쉽게 막힐 줄은 무황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
“늙은이가 제법 강하네!”
실비아는 이내 호호홋,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동생, 그 쪽 빨리 끝내, 그 아이를 잘 이용하면 가능 할 거야!”
나미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에 담긴 것은 끝없는 증오와 살인에 대한 희열이었다.
‘거리를 좁혀야 해, 저 괴물이 생각보다 지능이 높아…… 술법사가 나보다 약하다는 것을 알고 지능적으로 방어 위주로 움직이고 있어, 마치 저 여자를 기다리는 것처럼.’
무황과 실비아의 대결에 무황이 오래 버틸 것이라 설난 역시 생각하지 않았다.
상대는 천외천 고수!
무황이 초절정의 끝자락을 바라보고 있지만 한 단계 더 높은 경지인 실비아에게 버티기 힘들 것은 분명했다.
더구나 그녀는 공간 지배력이 최강이라 불리는 마법사!
일 대 일 전투에서 결코 무인에게 밀리지 않았다.
“후우!”
설난은 가볍게 숨을 몰아쉬었다. 창현이 이곳으로 오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서울에서 강원도까지의 거리 따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적어도 30분 이내에는 도착할 것이 분명했다.
용신을 타고오든, 경공을 써서 달려오든 말이다.
“……미친 계집 죽여주지.”
설난이 살기를 피워 올리기 시작했다.
“이히히히힛, 네년 따위가 날?”
나미코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괴물에게 말했다.
“죽여버려!!”
괴물은 스스로 생각했다. 자신이 전력을 다해 공격을 하기 시작한다면 상대에게 주인에 대한 거리를 내 줄 수밖에 없고, 그 찰나의 순간에 주인의 목을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고. 명령은 죽이라는 명령이었지만 괴물은 주인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카아아……!”
가래를 끊는 목소리가 들렸고, 괴물이 순간적으로 신형을 감췄다.
“!!!”
퍽-!
설난이 괴물의 움직임을 못 잡아낼 리 없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마법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실비아와 같은 일반적인 마법사와는 그 종류가 달랐다.
무공도 충분히 익히고 있었다.
그녀는 오랜 세월을 살아 왔고, 모든 과정을 눈으로 지켜보았던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괴물의 그 스피드는 설난 역시 처음 겪어 보는 것이었다.
탓-! 탓-!
괴물이 몸을 부딪쳐 오자, 설난은 치잇 하고 짜증을 내었다. 주먹 하나에 실려 있는 힘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거구인 탓도 있지만 바위로 이뤄져 있는 손은 굉장히 딱딱했다.
거기에 내력이 실려 있었다.
“괴물 주제에 무공을 사용해?”
설난이 놀라는 근본적인 이유였다.
괴물의 움직임은 분명 박투술의 일종이었고, 그냥 박투술 정도가 아니라 오랜 세월 보완을 거듭한 하나의 무공이었다.
몸을 180도 돌리면서 손등으로 쳐 오는 괴물의 모습에 설난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내력을 끌어 올렸다.
짙은 노란색의 내력이 손에 맺히고 있었다.
그대로 비어 있는 괴물의 복부를 노렸다.
퍼억-!
괴물은 두 발자국 물러섰지만, 나미코를 힐끔 쳐다보면서 다시 시선을 설난에게 돌렸다.
‘만만치 않다.’
설난은 봉인되어 있는 힘을 빨리 끌어 올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각오해, 너. 고귀한 피의 주인이 괜히 성스러운 피의 주인의 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게.”
설난의 내력이 점점 커지면서 그녀의 주위로 흙먼지가 일기 시작했다.
나무들은 순풍이 아니라 강풍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어머, 저 아이가 제법 힘을 내는 모양이네? 늙은이도 힘을 내야지! 나처럼 예쁜 여자가 앞에 있는데…… 나이는 상관없지 않아?”
실비아는 한 쪽을 살짝 감으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무황은 그 모습에도 그저 검을 고쳐 잡았다.
“그대가 강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나 역시 수양이 얕지 않소.”
검에 푸르른 기가 다시 맺히기 시작했다.
‘검은 또다른 손이다. 그런데 그 것을 손에서 놓는다? 그럼 손을 떼는 것과 마찬가지이지. 어검술이라는 것은 그저 겉멋에 불과해.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르면서 내력의 끈으로 검을 조종해서 뭘 어쩌자는 것이지?’
무황은 창현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검신(劍身)이 푸르른 기에 쌓이고 있었다.
“검강은 사용하지 않게? 동양 무인의 최고 기술이라 들었는데…… 방금 전 그 것도 내 실드니까 막아낸 것이지 다른 일반 마법사였으면 온 몸이 찢겼어!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돼, 늙은이!”
실비아는 옅게 웃고 있었다.
“타앗!”
무황은 그 말을 무시하고 곧바로 실비아에게 달려들었다.
부드럽게 지면을 밟으면서 가볍게 찌르는 공격부터 이어 나갔다.
가벼워 보였지만 기를 두르고 있는 검의 기세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실비아가 가볍게 몸을 뒤로 빼며 다시 한 번 손을 휘둘렀다.
어떤 마법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순식간에 수백 개의 얼음 화살이 형성 되면서 무황에게 동시에 쏟아지고 있었다.
무황은 검을 고쳐 들고 360도로 회전했다.
팟-! 파파파팟-! 파팟-!
투투툭-!
얼음 화살이 떨어져 내리는 것과 동시에 무황의 검이 다시 한 번 실비아가 있는 방향으로 쭈욱 뻗었다.
팟-!
실비아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사라졌고, 검은 허공을 갈랐다.
실비아가 다시 나타난 것은 공중이었다.
“역시 동양 무인들은 신기해. 배리어도 치지 않고 그 화살을 전부 막아내다니…… 생각보다 무척 재미있잖아? 그럼 이것도!”
방금 실비아가 펼쳤던 공격 마법은 아주 기초적인 것에 불과했지만 그녀였기에 강력한 마법으로 탈바꿈 한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스 에로우라 불리는 이 얼음 덩어리 마법은 3서클만 되어도 펼칠 수 있는 기초적인 공격 마법이지만, 그 막강한 마나력을 이용해 펼치니 한 두 개가 아니라 수십 개, 수백 개로 늘어나고 있었다.
전방위를 점령하고 곧바로 쏟아져 나가는 그 얼음덩어리들에는 하나하나 강력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무황은 방금처럼 몸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검을 전방으로 둥그렇게 휘둘렀다.
검막이었다.
탕-! 퍼어어엉-!
검막은 앞에 두고 곧바로 허공으로 솟구쳤다.
마치 계단이라도 있는 것처럼 허공으로 올라가는 무황의 모습은 신선과도 같았다. 푸르른 기가 검에 다시 한 번 진하게 맺히고 있었다.
이내 무황이 힘차게 발을 굴렀다.
“!!!”
실비아가 처음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타앗!”
다시 한 번 실비아가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가공할 블링크였다.
순간적으로 다른 곳으로 공간이동을 하는 블링크는 긴 거리를 이동할 순 없지만, 상대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느낌이 났다.’
무황은 확실히 이번에는 검에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두두둑-!
검막에 의해 떨어지고 있는 얼음 덩어리들과 함께 무황 역시 지면에 발을 붙였다.
“……늙은이가…… 명을 재촉하네!!!!”
실비아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아주 살짝 스친 것에 불과 했지만 눈 밑에 나 있는 상처는 무황이 찌르면서 살짝 사선으로 그었기에 난 상처가 분명했다.
무황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천외천 고수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주군은 희대의 무인이었다.
그에게 늘 가르침을 받는 자신이 쉽게 지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감히 이 몸에 피를 나게 하다니!!”
실비아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또다시 블링크였다. 마법사들을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이유가 바로 블링크 때문이라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었다.
경공이나, 몸의 움직임이 아니라 마법이라는 힘으로 공간 자체를 이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위치를 잡아내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흐르는 마나로 위치를 잡아내야 하는데, 그 찰나의 순간을 잡지 못하면 그 다음 마법을 막아내야만 했다.
지금의 무황처럼!
더구나 상대는 실비아! 최강의 마법사였다.
동시에 몇 개의 캐스팅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커어억!”
무황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화력에 재빨리 몸을 돌리고는 검을 뻗었다.
하지만 다시 양쪽에서 날아오는 마법의 기운이 느껴져 재빨리 오른 쪽으로는 검을 휘둘렀고, 왼쪽으로 날아오는 기운은 뒤로 빠지면서 피하려했다.
“벌레 같은 자식이!!”
실비아의 얼굴이 바로 앞에서 보였다.
그녀의 손은 어느새 큰 바위로 변해 있었다.
퍼어어억-!
“커억!”
양쪽은 어떻게 막아 내었지만, 안면은 막아낼 수 없었다. 무황이 뒤를 쭉 밀려 나고 있었다. 엄청난 위력이 담긴 돌주먹이었다.
어떤 마법인지 알지도 못했다.
“하, 할아버지!”
설난이 무황의 위기를 눈치 채고 괴물의 시선을 돌렸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고, 괴물이 S급 이상이라고 하지만 설난의 움직임을 잡아내지는 못했다.
“어디가!!”
나미코가 괴물에게 빨리 쫓으라는 명령을 내렸고, 괴물은 곧바로 명령에 따르지 않고 나미코 주위를 둘러 본 이후에야 움직였다.
그 순간적인 움직임이 무황을 살렸다.
카앙-!
설난의 실드와 실비아의 마법이 부딪히면서 강한 폭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동생…… 실망이야.”
“어, 언니!!”
실비아가 슬픈 표정을 짓자, 나미코의 얼굴에 절망이 떠올랐다.
“그래도 난 동생을 믿어!”
이내 나미코가 설난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표독스러워져 있었다.
“네 년 때문에 언니가……!”
그러거나말거나 설난은 무황을 부축했다.
단 한 수였지만, 그 속에 담긴 마나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아무리 무황이라 할지라도 제법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다시금 실비아의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괴물은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스스로 판단해서 가장 우선 순위는 나미코의 보호였는데 강력한 나미코의 술법이 괴물의 그런 이성을 말려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내 괴물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실드!”
설난이 재빨리 실드를 쳤다.
달려든 것은 나미코만이 아니었다.
‘저년은 반드시 없애야 해. 만약 그 놈과 함께 한다면 제법 골치가 아프겠어.’
실비아가 괜히 최강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힘을 믿고 오만한 성격이었지만 자신의 그 힘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상대편의 힘도 말이다.
실비아의 손에서 강력한 화염바람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빙그르르 돌면서 설난과 무황에게 날아가고 있었다. 괴물이 먼저 실드에 콰앙, 하고 부딪혔고, 실드는 생각보다 빠르게 깨어져 버렸다.
S급 그 이상의 괴생명체의 위력이었다.
화염돌개바람이 두 사람을 덮치는 순간 설난은 이를 악물었다.
계속해서 피를 토하고 있는 무황의 상태는 심상치 않아 보였고, 피할 수 없는 타이밍이었다. 괴물이 옆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중이었고, 앞은 화염바람이 거세가 달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뒤에는 실비아가 직접 날아오고 있는 중이었고, 나미코 역시 검에 무엇인가 술법을 걸고 곧바로 일직선으로 날리고 있었다.
사방이 적이었다.
설난이 기세를 뿜어내면서 가장 강한 힘을 실드를 둘렀다.
봄 날의 개나리 같은 노란색 내력이 뿜어져 나오며 강력한 방어막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붉은 아가리를 용틀음하며 날아오는 화염바람은 그 것보다 더욱 강해보였다.
츠팟-!
퍼어어엉-!
화염 돌개바람, 나미코의 검, 그리고 실비아의 또 다른 마법과 괴물의 주먹까지 모두 한 곳에서 만나 강력한 폭음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이게 어떻게?”
무황과 함께 둥둥 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는 설난이 입을 벌렸다.
실비아가 처음으로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었다.
“……동이각 각원들 수십 명이 죽었다. 이들 말고 또 다른 일본 무인들이 남은 모양이더군. 그들인 퇴각하고 있던 각원들을 덮쳤다. 괴물과 함께…… 그리고 무황은 꽤 상처가 심해 보이는군.”
창현은 시선을 실비아에게 돌렸다.
“……계집 넌 본좌를 무척이나 화가 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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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