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47 회: 전쟁과 여인 그리고 과거의 향기 -- >
“중원 문파들이 당장에 움직이지는 않겠지. 설난의 정보도 그렇게 들어오고 있고. 아마 론즈 가문 역시 마찬가지일거야. 명분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니까. 실비아의 패배가 주는 충격도 클 테고.”
창현의 말에 윤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비아가 이미 한국에서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기에 론즈 가문은 한혈문에게 선전포고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비록 클론이라고는 하지만 실비아의 그 막대한 무력의 80%까지 발휘를 할 수 있었고, 여벌의 목숨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그녀의 정신이 깃들어 있던 육체였다.
똑같은 육체이지만 자신의 본래 육체는 깊숙한 곳에 보관해 두고 클론으로 생활을 했던 실비아다.
마법의 놀라움이었지만, 또한 그녀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클론이라는 자체가 한 번 이상은 만들 수 없기에 무한한 목숨을 가진 것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북한과의 관계 역시 애매하지. 그들의 독재 가문은 중원 문파의 힘이 미쳐 있으니까.”
지난날의 역사를 세세하게 기억하는 창현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일반인들은 알 수 없던 정보를 한혈문 문주가 되면서 설난이 공급해 주기 시작했다. 숨겨져 있는 역사의 이면을 모두 들여다 볼 수 있었기에 지금의 상황판단 역시 정확하게 할 수 있었다.
무인들과 마법사 그리고 능력자들이 전면에 나서고 괴물들의 출현 시기가 빈번해지고 또 그들이 갈수록 강해지면서 그들을 대처할 수 있는 무인들이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과도기였던 시절은 짧게 지나가 버렸고, 무인들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세계의 흐름이었다.
한국 국민들 역시 과도기를 지나 무인들을 대접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고, 그들의 보호를 중요시 여기기 시작했다.
한혈문은 당연히 그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다.
많은 것들을 바꾸고, 주변국과의 관계, 그 어떠한 정부도 해내지 못했던 완전 복지의 실현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 붓고 있기에 한혈문에 대한 시선은 긍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이 지부화가 되면서 그들의 기술 자체가 한혈문의 것이기에 그 것들로 인한 수익도 엄청났다.
엄연히 그들은 세계 제 2 경제 대국이었으니 말이다.
여러모로 일본 10대 가문을 정리하고 일본을 지부화 시킨 것은 창현에게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창현 스스로도 지부에 대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편이었다.
전쟁은 힘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정보력, 자금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압도적인 힘으로 누를 수 없다는 사실을 창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실비아의 존재가 가장 컸고, 실버 론즈 가문의 힘은 확실히 한혈문을 앞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창현은 전쟁에 대한 밑바탕부터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다.
“동양을 먼저 정리 하시려 합니까?
윤미의 질문은 창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생물은 없지. 하지만 우습게도 가장 변하지 않는 것 또한 인간이다. 그 간극은 참으로 재밌어. 정파라는 족속은 이미 물릴 정도로 많이 겪어 보았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근대화를 이루면서 그들의 정부는 구파일방이 장악을 하기 시작했다더군. 그들 역시 한국보다 훨씬 빨리 무인의 정부화 체제가 이뤄진 거야. 그리고 북한 역시 마찬가지이고. 구파일방을 정리한다고 해서 일본처럼 지부화를 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은 한혈문이 그들을 포용할 수 있을 만큼 크지는 않으니까.”
창현은 짧게 숨을 내쉰 후 말을 이었다.
“설난은 존재는 굉장해. 그녀가 취급하는 정보는 하나 같이 고급 정보이지. 론즈 가문이 이미 무당파와 접선을 하고 있다더군. 그렇다면 그 말코도사들 성격 상 분명히 나서려 할 것이다. 자신들 위에 누군가 있는 꼴을 보지 못하는 것들이니까. 아마 이미 먼저 움직일 수도 있었을 거다.”
창현은 종욱을 떠올렸다.
꽤 오래전의 일이었지만 무당파와의 반목은 이미 시작 되었다.
진선도인의 존재.
묵사발을 만들어버린 그 진선도인의 일로 무당파는 자존심이 상당히 상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물며 그 때는 지금과 같이 한 단체의 수장도 아니었고 일개 야인에 불과한 무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치기에는 그 때에도 무지막지한 강함을 자랑했지만.
작은 원한도 결코 잊지 않는 그들이다.
언젠가는 그 명분으로 자신에게 칼날을 겨눌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창현은 론즈 가문과 접선을 한 무당파가 지금 움직일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시도할 것은 암살.”
“……!”
창현의 눈가가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본디 그는 천재라 불렸던 사람이다.
완벽한 영혼의 동화가 이뤄지면서 예전의 두뇌 회전력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설난의 정보력, 이제는 완전히 적응이 된 현대 사회의 법칙 등 모든 것들을 조합하여 작금의 상황 판단은 물론 상대에 대한 예측까지 완벽에 가깝게 해내고 있는 것이다.
“사파와 천마교가 몰락하고 그들의 후예조차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구파일방의 상대는 아무도 없었지. 그들은 나라를 장악했고, 그 권력에 단 맛을 느꼈을 것이 분명해. 그 와중에 제외 된 것은 도토리처럼 남은 오대 가문이다. 그들은 근대화 과정에서 줄을 잘못 섰기에 완벽하게 구파일방에 밀려버렸어. 그렇지만 그들 역시 야심은 상당해. 나를 통해서 그들은 옛 명성을 찾으려 할 것이고, 무당파는 자신들이 직접 나서기 전에 또 그들을 이용할 생각이겠지.”
“그럼…….”
윤미는 궁금증을 담아 말꼬리를 흐렸다.
“가장 일차적인 것은 명분이다. 무당파는 진선 도인의 일로 걸고넘어질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난 명분에서 밀리지. 어쨌든, 야인의 입장에서 날 도발했다는 이유로 무당파 주요 인물의 무공을 폐해버렸으니까. 그렇지만.”
창현은 옅은 미소를 그렸다.
“본디 본좌에게는 본좌의 기분이 명분이었지.”
기지개를 피며 창현은 생각을 마저 정리하고 있었다.
“지부에 가자.”
“……지부요?”
“아마 지금쯤 오대 가문 중 한 곳에서 날 암살 하려 한국에 들어 왔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한국에서 일을 벌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야. 어쨌든 난 세계가 공신하고 있는 랭킹 시스템에 제일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니까. 더군다나 여기는 내 집인데 당연하지. 하지만 지부로 가면, 이제는 무인도 없는 그 곳에서 그들은 기회가 생길 것이라 생각하고 움직일 것이다.”
지부는 기억에 많이 남는 곳이다.
윤미는 그 곳에서 자신의 마음을 확인했고, 창현과 훨씬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 곳에서의 여러 가지 추억들은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이번에도 너랑 가면 상당히 말이 많을 것 같은데.”
“그 것은 딱히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창현은 수연을 떠올렸다.
그녀가 최근에는 또 수희를 비롯해서 자신이 후계자라고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뉘앙스를 풍긴 도사 청년은 물론 그보다 먼저 들인 제자인 솔에 대해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순히 문주 측근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추후 권력 승계와 더불어 또는 지금 당장 문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확실히 후계자를 한 명 정하면 그가 가지는 권력도 상상 그 이상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연이 변한 것을 알고 있기에 창현은 그녀가 이제는 예전과 같은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윤미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창현의 여자는 지현과 더불어 설난, 윤미 그리고 최근에는 솔, 마지막으로 수연이 있었다.
그 중 가장 가까이하고 있는 것은 윤미였고, 문주 중심의 권력 체계에서 측근 여자가 권력을 가장 쉽게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주와의 혼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연은 경계의 시선으로 다른 여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창현과의 결혼으로 지금의 권력을 유지하고 더욱 큰 권력을 쥐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스스로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자부를 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그런 방법은 천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윤미를 고깝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자신이 가장 바쁘게 움직이며 한혈문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을 동안 창현의 마음을 사로잡아 쉽게 한혈문 권력 중심에 뛰어든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이 나거나, 아니면 그 전에 한 번 수연이에 대해 정리를 해야겠어.”
“……정리 하실 겁니까?”
“아, 아 그런 정리의 의미는 아니야. 이미 품 안에 들어 온 여자는 놓지 않거든. 예전이라면 모르지만 지금은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잡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고 있거든.”
“주군.”
윤미가 살짝 토라진 듯 눈에 불을 켜며 말하자 창현이 피식 미소를 터뜨렸다.
“그럼 지부로 건너갈 준비를 하지. 예전처럼 용신을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대대적으로 알리면서 공식적인 방문 개념으로 가는 것이 좋겠어.”
창현은 말과 함께 근정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식적으로 각주들에게 지시를 할 것이 있으면 업무 공간인 근정전에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부로 가는 준비 역시 일종의 공식 행사나 마찬가지였기에 수연을 호출 할 수밖에 없었다.
이내 수연이 설난과 함께 들어왔다.
“부르셨어요?”
“지부에 방문을 할 생각이야. 이제는 완전히 정상화가 되었으니까 한 번 들를 때가 되었지. 아직 론즈 가문과의 일은 물밑 작업이니 지금은 평화롭다는 분위기를 풍길 때도 되었으니까.”
“네, 언제 쯤 가실 건가요?”
“일주일 뒤쯤이 좋겠군. 그 쪽에서도 준비 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동행자는 감찰각 각주 정도가 좋겠고.”
수연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차가워지며 윤미를 힐끔 거렸다.
하지만 곧 수습하고는 대답했다.
“네, 차질없이 준비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 나도! 나도 갈래!”
설난이 황급히 나서자 수연은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한창 바쁜 와중에 설난이 자리를 비우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꽤 굳게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그러도록해. 그런데 네가 하는 일은?”
“컴퓨터가 알아서 하도록 해 놓을게. 어차피 그 작업이 일주일정도 걸리니 딱 맞네.”
수연이 조용히 나섰다.
“공식적인 업무의 자리에서는 문주님에 대한 호칭과 말투는 공손히 해주세요.”
“…….”
“한혈문은 더 이상 작은 문파도 아니고 또 우리들의 문파만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언제나 쏠리는 곳이에요. 가뜩이나 말이 많이 나오고 있는 문주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수연의 말에 설난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내성주님.”
“감사합니다.”
이내 수연이 깊게 고개를 숙이며 근정전을 빠져 나갔다.
“규율이라!”
창현은 이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수연이 갑자기 그런 것을 강조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먼저,
“우리에 대한 말이 많이 나오다니?”
설난이 지금에서야 생각이 났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잠시 망설였다.
“우리의 관계만이 아니야. 일본에 가기 일주일 전에 그 문제부터 해결하자. 수희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도 나오고 있어.”
창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수희? 왜지? 그리고 어떤 놈들이?”
============================ 작품 후기 ============================
첫 작을 쓰기 시작한 것이 12년4월이군요.
딱 1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
1년 6개월 동안 대충 50권 가량의 소설을 ㅤㅆㅓㅅ습니다.
첫 작도 조아라서 시작했는데 그 전에는 그저 소설이라는 것 자체를
읽기만 하고 써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50권 가량 ㅤㅆㅓㅅ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그런데 요새가 가장 힘든 것 같습니다.
의욕이 없다고 할까요?
예전에는 마냥 재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일로 하다보니까 그런 것인지
아니면 쉼 없이 쓰기만 해서 질리고 지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공허한 것 같습니다.
업계 자체에 미래가 크게 잘 그려지지도 않고요.
뭐 이것저것 고민이 많습니다.
한 편으로는 가을 쯤 되면 늘 번뇌와 고민에 빠졌던 가을남자라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요ㅋㅋㅋ한 번 컨디션이 떨어지니까 잘 회복이
되는 것 같지도 않고, 하루하루가 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해야죠, 먹고 살려면.
사실 현실이 불황하니까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러나 저러나 열심히 써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