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48 회: 전쟁과 여인 그리고 과거의 향기 -- >
수희 일을 따로 지시를 해 놓은 창현은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타고 있었다.
일행은 설난과 윤미 둘 뿐이었다.
“총리가 직접 마중을 나오겠지?”
“아마도.”
설난의 말에 창현이 짧게 대답한 이후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가 번득 머릿속을 스쳤기 때문이다. 일본 극우 정치인의 대표적인 선두주자로서 전범들에 대한 예우와 한국에 대한 망언을 일삼던 총리가 이제는 지부화의 수장이 되어 그 누구보다 강한 충성을 보이고 있었다.
무력문 집안이 아주 오래 전부터 한국의 식민지화에 힘썼지만 이제는 유일하게 남은 무력문 인원이 가장 한국에 충성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징계나 마찬가지였다.
“미리 알려 놓았으니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실제로 보내 온 일정 역시 그렇고요.”
주인의 방문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이제 없고 한혈문 제 1지부만 있을 뿐이었다.
본문의 문주가 지부를 방문하는 것이기에 대대적인 행사는 필수였다. 그 어떠한 외국의 귀빈보다도 성대한 행사를 함으로써 아보 총리는 자신의 충성을 보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 곳이 잘 돌아가니 한혈문의 힘이 점점 막강해지고 있는 것이지.”
창현의 말에 설난과 윤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끔찍한 참사가 벌어졌던 곳이지만 이제는 모두 회복이 되었다.
아직 예전처럼 세계 제 2 경제 대국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밑바탕이 있기에 차츰 예전의 위세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정부에서도 연락이 온 것으로 아는데?”
윤미에게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에서 지부에 관한 많은 질문을 했어요. 아무래도 예전부터 우리 경제가 그 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지부화가 되면서 오히려 이득만 보고 있는 입장이잖아요. 기업들이 기술력을 사면서 더 성장하고 있지만, 전과 같이 거의 무료 제공이 아니라 이제는 상당한 대가를 받아내고 있으니까요.”
재계 인사들과 한혈문은 밀접한 관계이다.
창현이 복지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는 것도 마치 대기업의 의무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창현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론 자체가 그렇게 형성이되고 집단적인 움직임이 예전보다 훨씬 심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슬슬 창현을 중심으로 여론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한 마디를 하면 마치 진리라도 되는 것처럼 우르르 일어났고, 그래서 재계나 정부는 창현의 행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창현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절대적인 완벽한 지지라는 것은 없으니까.
“그 쪽 일은 대충 타협을 하도록 수연에게 전해. 척을 지어서 좋을 것은 없으니까. 때로는 정부에 협력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는 법이거든.”
창현은 중원 시절을 떠올렸다.
황제가 자신을 탄압해 직접 자금성으로 가서 황제의 멱살을 잡고 협박했던 것이 기억에 떠올라 옅은 미소가 번졌다. 심약한 황제는 그 이후로 배교를 국교로 정해버리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고, 여러 신하들이 반발을 했지만 감히 배교의 성세를 무시할 수 있는 신하들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실제로 군왕 중 한 명이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독단적으로 배교 본단으로 진군했지만 창현에게 쓸려 버린 이후 중원의 주인은 정해져 버렸다.
“그 것도 나쁘지 않은데.”
지금처럼 이것저것 신경을 전부 쓰는 것이 아니라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누르는 방법도 있었지만 창현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때와 같은 시대가 아니지. 하지만…… 괜찮기는 할 것 같아.’
혈통의 의무!
딱히 크게 생각 해 본 적은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욕심이 났다.
이 땅의 주인이라는 운명을 받고 태어 났다는 것을 한 번도 크게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그리고 사실 관심도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욕심이라는 것은 결국 원하는 것.
창현은 옆에 앉아 있는 설난의 머리를 가볍게 쓸었다.
“뭐, 뭐야?!”
갑작스런 창현의 손길에 설난이 괜스레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이내 뜨거운 창현의 눈빛을 보면서 흠칫 몸을 떨었다.
“아니, 그냥 네가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껴서.”
“이, 이 멍청한 자식! 그건 너 혼자 몰랐던 거야!”
떽떽 거리기는 하고 있지만, 그 칭찬이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지 설난은 싱글벙글 하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유를 물으며 기대감을 표출하는 얼굴에 창현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지금도 왕이 있는 국가는 꽤 되지?”
“그렇지. 당장 지부에도 일왕이 있었으니까.”
“참 그들은?”
창현은 그제야 그들 일가의 존재를 떠올리고 물었다.
“그들 자체가 무력 세력은 아니었으니까. 전쟁에서 패한 이후 조용하게 살았거든. 국정에 대한 권한은 대부분 잃었고. 지금도 조용히 살고는 있어. 총리가 지부화가 된 이후 가장 먼저 한 것이 그들 존재 자체를 잊게 만드는 작업이었고, 그건 꽤 성공했지. 거기의 영웅은 너니까.”
한 때 신이라고 오만한 칭호를 썼었지만 전쟁에서 패한 이후 대부분의 권한을 잃고 말 그대로 상징적인 존재로만 지내오다 이제는 완전히 잊혀진 채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사실 숨은 비화이지만 10 대 가문에 의하여 만들어진 존재였기에 권력 자체에는 큰 영향력이 없었다.
“그렇군.”
어쨌든, 창현은 나름 성지의 주인이라는 명분과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하여 기반을 충분히 닦아 놓았다고 생각했다.
‘궁도 있고 말이야.’
하지만 그 일은 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가장 먼저 선결해야 할 과제는 지부에서 구파일방이 오대 가문 중 어느 곳에 지시를 한 암살을 막아내고 명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 오대 가문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가 날 것이고 그 시간동안 수희의 문제를 확실히 해결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유일한 혈육이라는 이유로 유명세를 견뎌가며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 수희를 가만히 두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찔러보는 것은 물론, 치졸한 질투와 시기를 발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혈문이 커 가면 커갈수록 그 정도가 점차 심화가 되었고, 수희가 늘 조신하게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본래 그 성격으로 보아서는 분명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을 것이다.
“뭐 어쨌든, 지부로 건너가면 어떤 놈이 나올지 궁금하군.”
창현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수희의 일을 정리한 이후 곧바로 오대가문으로 향한다. 중원의 향기는 오랜만이야. 다시는 갈 일이 없을 줄 알았지만…… 내 시절의 성격으로 보아서는 당문일 가능성이 높겠지. 그들은 유난히 욕심이 많았으니까. 암습이 아니라 독살을 시도할 가능성이 가장 높겠군.’
창현이 표정이 잠잠해지자 설난은 핑크빛 기운이 어느새 줄어드는 것을 느끼고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렇게 삐지는 것은 주군이 썩 좋아하시는 행동은 아닙니다.”
윤미가 끼어들자 창현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야! 너 요즘 예쁨 받는다고 많이 건방져졌다?”
“부러우십니까? 설난 각주님은 주군에게 예쁨을 받는 것이 별로 내켜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마, 맞아! 내가 저 녀석 따위에게 무슨 예쁨……!”
창현이 부드럽게 설난의 손을 잡았다.
이내 그녀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한 시간 정도 남았어.”
비행기는 당연히 한혈문 전용이었고, 셋의 모습 밖에 보이지 않았다. 윤미까지 얼굴을 붉히며 검은색 정장 재킷을 벗었다. 하얀색 와이셔츠가 터질 듯이 풍만한 가슴을 드러내고 있었다.
색욕을 돋구고 있는 매끈한 다리에 입혀져 있는 스타킹을 날카로운 손톱으로 찢으면서 설난을 향해 말했다.
“각주님은 별로 내키시지 않으니 주군과 저는 좋은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창현에게 시선을 돌린 윤미가 그의 얼굴을 살며시 부여잡았다.
“그럼 실례를……!”
입술을 맞추는 둘을 보면서 설난이 꽥 소리를 질렀다.
“이, 이것들이!”
도쿄로 향하고 있는 비행기에 열락이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짝짝짝짝짝-!
비행기에서 내린 이후 공항 밖을 나서자 수많은 인파가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 것만이 아니었다.
무인은 더 이상 없지만, 창현은 지부의 자력 방어를 위하여 군대는 남겨 두었다. 당연히 최고 통수권자는 창현이었고, 그들은 절도 있는 행동으로 창현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마치 파도 물결처럼 기수들이 깃발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고, 일반인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었다.
그들이 흔들고 있는 깃발은 태극기였다.
“준비를 많이 했군.”
“그렇습니다. 문주님.”
아보 총리는 시종일관 허리를 숙여가며 창현과 함께 걷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국가 원수끼리 만나는 장면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들의 관계는 수직 관계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준비한 곳으로 가지. 점심 만찬을 준비했다고 들었는데.”
“네!”
총리의 간결한 대답에 창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행보로 인해 중원에 대한 견제는 시작되고 있는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생활패턴 낮으로 바꾼지 일주일만에 낮잠을 너무 자버려서
결국 다시 새벽에 잠을 못자고 있네요.
내일은 낮에 안자고 밤에 자서 다시 월요일부터는 낮에 활동을
하는 것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