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2 회: 전쟁과 여인 그리고 과거의 향기 -- >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이죠?”
수연의 말에 남자는 재빨리 대답했다.
“문주님께서 직접 손을 쓰셨다고 합니다. 독도 입수를 했고요.”
“천혈고지독이라…… 굉장한 독이네요. 중국 쪽 반응은요?”
“중국 정부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 당문과 한혈문의 문제라 못 박았습니다. 자신들은 전혀 이 번 일을 알지 못했다고 부인했고, 그 이후의 문제에 관해서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한국 정부 역시 언제나처럼 한혈문에 맡기겠다고 발표를 곧바로 했습니다.”
수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국제 정세에서 각국의 정부가 미치는 영향은 그렇게까지 크다고 할 수 없다. 국제기우인 유엔과 더불어 여러 가지 기관들보다 클랜들의 모임이나, 문파들의 정기적인 회의 등의 발언권이 훨씬 더 강력해지고 있었다.
그 것은 대부분의 국가가 문파들이나 클랜들 또는 무인 가문들에 의해 정부의 권력이 잡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재 정권의 출현도 꽤 많이 나타나고 있는 추세이지만, 아직 심각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한 가문이 나라 전체를 아우르기는 다른 문파들의 견제 역시 잘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다음 독재 정권 출현 예정지로는 한국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한혈문의 힘이 워낙에 막강하기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든 수연은 창현의 생각을 읽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론즈 가문이 구파일방과의 밀약을 하고 있다는 정보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당장 암살 명분을 통해 그 쪽을 도발 할 필요는 없었다. 주요 세력인 무당파 한 곳과의 전쟁이라면 모르겠지만, 중국 정부까지 장악하고 있는 구파일방과의 전쟁은 아직 시기상조이기 때문이었다.
“멋대로 주무르게 할 수는 없어.”
수연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문파를 창건하고 중심인 것은 창현이 분명하지만 여기까지 키운 것은 자신이었다. 각주급의 권력이 상당하다고는 하지만 그들 모두가 한혈문 내의 일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창현의 명령에만 충실했다.
무황이 회복을 한 이후 동이각 각원들을 나이를 잊고 더욱 몰아붙이고 있었고, 일도각의 대길 역시 마찬가지였다.
요각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무릇 문파의 권력이란 힘에서 나오는 법이고, 유일한 무력각인 두 곳의 움직임을 수연은 가장 신경 쓰고 있었다. 후계자로 언급했던 도사 청년과 천명문의 장문인은 두문불출 하면서 무공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고, 유일한 직계 제자라 할 수 있는 솔 역시 제 1 지부로 건너가 아보 총리와 창현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가장 까다로운 것은 수희였다.
‘그 아이가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유일한 가족임에도…….’
“생각이 많은가 보군.”
“!”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수연이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문주님.”
“많이 바쁜가?”
“아니요.”
수연은 짧게 대답했고, 창현은 이내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오랜만에 네가 타 주는 차 한 잔 하고 싶은데?”
“……금방 준비 할게요.”
육감적인 엉덩이가 창현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하얀색 정장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수연이었다. 최근 그녀가 많은 욕심을 내고 은연중에 반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창현 역시 알고 있었기에 괜스레 욕정이 더욱 강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피식 미소를 짓고는 차를 테이블 위에 조심히 놓는 수연의 눈을 바라보았다.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눈빛은 이미 변해 있었다.
“지부에서의 일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지?”
이미 다 알고 있는 일이지만 굳이 창현은 물었다.
“중국 정부와 한국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문파끼리의 문제라 못 박았어요. 당사자인 당문은 조용하지만 구파일방이 들고 일어나고 있고요. 중국 무인을 그런 식으로 죽였다는 것에 큰 불쾌감을 나타내고, 조만간 응징을 할 것이라는 선전포고까지 했어요.”
“여전하군.”
창현은 현 무당파 장문인이 누구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러고보니 진선도인의 사형이 무당파 장문인이 아닌가?”
“네.”
“그 돼지 같은 놈의 사형이라니 안 봐도 훤하군. 그래, 앞으로 한혈문의 행보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수연은 눈빛을 빛냈다.
“……뜻대로 하시는 것이…….”
“전쟁은 힘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인 큰 그림은 실버 론즈와의 전쟁이지. 구파일방 따위는 아시아 지배권을 강화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해.”
“무, 문주님.”
생각보다 큰 스케일에 수연은 몸을 떨었다.
구파일방은 아시아 전역에 속가를 가지고 있고, 그 지배력이 상당하다. 서양에 론즈 가문이 있다면 동양에는 구파일방이 있는 것이다.
흔히 미국과 중국을 떠올리면 쉬웠다.
미국이 세계적인 지배력을 크게 가지고 있지만, 중국의 성장세는 무서웠고 이제는 결코 뒤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의 힘은 날로 커져가고 있었으니까.
그 뿌리 깊은 전통과 무공의 근원지라는 자부심, 그리고 즐비한 고수들의 존재가 중국을 강하게 만들고 있는 이유였다. 은연중에 국내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는 론즈 가문과는 달리 중국의 공산당은 구파일방 그 자체였기에 그들은 국내 지배력은 전 세계 그 어떤 국가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했다.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그들의 국민은 한국 국민들의 대부분이 굶어 죽고 있다고 믿는 맥락과 비슷했다.
독재 정권이란 그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여러모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구파일방과의 대결을 전쟁으로조차 생각하지 않고 있는 창현의 모습에 수연은 경각심을 주어야한다고 생각했다. 한혈문이 통째로 무너져 버리면 자신이 정부 기관에 있을 때는 이루지 못했던 꿈이 산산조각이 나버리기 때문이다.
“그 전에 수희 문제도 처리를 해야 하고. 설난에게 들으니 개잡놈들이 많더군.”
“……그런 문제는 나중에.”
창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문제부터. 상당한 반발을 살 것이 분명하지만 익명을 믿고 나대는 놈들은 충분히 벌을 받아야 해. 네가 만나는 정부 사람들을 이용해서 그들을 모두 색출 하도록 해.”
“!!!”
창현의 눈빛에 수연이 몸을 크게 떨었다.
“문주님 지금 무슨 말씀을…….”
“네 할아버지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잊었나?”
“!!!”
폭발적인 기운이 창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번에도 말했다. 본문의 문주는 본좌라고. 네가 수고를 하고 있기에 그들로부터 받아먹는 많은 것들도 묵인했던 것이야. 하지만 그런 식으로 권력을 움켜쥐면 그들과 네가 다른 것이 무엇이지? 내게 죽었던 그 수많은 정치인들과 같다는 것이다.”
설마 이토록 갑자기 직접적으로 치고 들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수연은 당황해버리고 있었다.
그동안 준비했던 여러 가지 힘들은 써 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한혈문 내에 충성적인 부하들도 많이 심어 놓았고, 각 각의 주요인물 역시 상당수 포섭을 완료했다.
문주라는 이름하에 모든 명령을 내리는 것은 창현이 분명하지만, 그 중간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자신이 되게끔 상당한 준비를 했었던 것이다. 그 것이 끝이 아니라, 천문학적으로 들어오는 자금 역시 상당부분 자신만의 이득으로 돌리면서 추후에 대한 대비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 모든 것들이 창현의 짧은 말에 휴지조각처럼 변하고 있었다.
수연의 무공은 아직도 일류.
천고의 재능이라 칭송 받던 그녀는 이미 무공 수련을 멀리 한지 오래였고, 다른 각주들이 모두 발전하고 있는 것에 반해 수연의 무공은 답보 상태였다. 물론, 그녀가 바쁜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각주들 역시 바쁜 와중에도 수련과 창현과 직접 동행을 하면서 견문을 넓히는 것에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네가 나에게 복종했던 그 때를 떠올려.”
“…….”
수연은 애써 견디려 해보았지만 점점 강해지는 창현의 기운에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힘이야…… 힘. 결국 힘의 차이야.’
“그가 망한 것은 한 줌도 되지 않는 권력에 취해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네가 많은 것을 준비했다고 하지만 네가 포섭한 인원들은 나의 절대적인 강함과 은혜에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이고, 설난을 통해서 너의 모든 것들이 속속들이 나에게 전해져 왔던 것뿐이다. 천문학적인 돈을 네 아가리에 넣어 주었던 그 많은 인사들 역시 결국에는 너를 통해 나를 만나고 싶어 했었던 것일 뿐, 그들이 네가 한혈문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믿지도 않았다. 너는 그저 그들이 고개를 숙이기에 그 한 줌에 취해 권력을 쥐었다고 착각을 한 것이지.”
수연은 허탈함과 배신감 그리고 억울함까지 들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째서.”
꼭 창현이 자신을 가지고 논 것 같았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믿었지만 부처 손바닥 안에서 몸부림 친 손오공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모습 또한 너의 모습이기에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네가 처음 그 때로 돌아올 것이라 믿었기에.”
“!”
창현은 몸을 일으켰다.
“본좌를 농락하고, 본좌에게 도전한 사람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되었지?”
수연의 얼굴에 그제야 두려움이 비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자비롭고, 공명정대하다고 알려진 창현이었지만 당천위에 대한 처리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 사람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설난이 왜 내 이름 앞에 혈마라는 별호를 붙여 놓았는지 망각을 하곤 해. 그 옛날 수십만 명의 무인도 죽인 나다. 그 목숨의 무게조차 견딘 인간의 심성이 살인을 뭐라고 느낄 것이라 생각하나?”
“주, 주인님!”
수연의 입에서 예전처럼 그 칭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랜만에 연참.
적은 코멘트에는 연참이 답.
수연이 처리하고 수희 일 처리하고 당문 처리하고 구파일방 밟아주고
이번 챕터 스포였습니다.
히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