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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 현대 재림기-154화 (154/170)

< -- 154 회: 전쟁과 여인 그리고 과거의 향기 -- >

“당장 내 앞으로 오라고 해!”

“……직접 오시랍니다.”

재떨이가 허공을 갈랐다.

빠악-!

유리로 된 두꺼운 재떨이에 이마를 맞은 남자는 미동도 없었다. 이마가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남자는 피가 시야를 가리자 그제야 손을 들어 슬쩍 피를 닦아 내었다. 제법 아플 법 하건만 여전히 남자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럼 말을 전했으니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번만 더 내 명령을 어기면 마나의 맹세를 발동하겠다고 해!”

론즈의 표정에는 의기양양함과 분노가 동시에 묻어나고 있었다.

“아, 참.”

문을 향해 나가던 남자가 몸을 돌려서 다시 론즈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여전히 무표정했고, 그 모습에 론즈가 약간 의아함을 느꼈다.

“한 번 해 보시라고 하더군요. 자신의 멍청함을 확인하면서 스승님이 죽이기도 전에 스스로 홧병으로 죽을지, 안 죽을지 무척이나 궁금하시답니다.”

“뭐야?”

“애초에 9서클에 다다른 인간을 벗어난 스승님에게 마나의 맹세가 통한다고 믿었습니까?”

“!!!”

론즈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전히 흐르는 피에 그제야 얼굴을 찌푸린 남자가 론즈를 향해 폭발적인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사무실은 곧 질식할 것 같은 살기로 뒤덮이기 시작했고, 소드 익스퍼트 급에 다다른 론즈는 남자의 살기조차 감당할 수 없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건 경고입니다. 스승님이 재미로 살려두고 있었지만, 이제는 론즈 가문 역시 비위에 거슬리면 쓸어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당신은 내 발 밑에서 오줌을 싸면서 살려달라고 빌게 될 겁니다.”

“…….”

자존심이 강하고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무시를 받아 본 적이 없었던 론즈였지만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단 한 마디조차 하지 못했다.

쾅-!

사무실 문이 부서질 것처럼 닫혔고, 론즈는 그제야 의자에 풀썩 주저 앉았다.

“비, 빌어먹을! 이 양년놈들이!”

굴욕감에 몸을 떨고 있었지만, 거대 가문의 수장답게 론즈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마나의 맹세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충격적인 일이었다.

실비아가 론즈 가문 전력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잃는다는 것은 곧 다른 거대 클랜의 도전에 위태롭다는 뜻이었다.

다행인 것은 대외적으로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애초에 떠들기를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실비아가 먼저 그 사실을 떠벌릴 일은 없었고, 론즈는 그 공백을 어떻게 메워야 하는 지 맹렬히 두뇌를 회전시키고 있었다. 론즈 가문의 힘은 수치로 환산을 할 수 없을만큼 강력하다.

세계 제 1의 강대국이라 불리는 미국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과 다름이 없었다.

문제는 검사와 마법사의 존재였다.

‘젠장, 동양의 원숭이 자식을 당장이라도 죽여야 하는데 실비아의 문제가 터져 버릴 줄은 생각도 못했어. 어쩔 수 없이 그 말코 놈들을 이용을 해야겠는데…… 최근에 반목을 하고 있으니 그 원숭이 녀석 성격상 분명 힘을 보여주려고 할 테고, 그 과정에서 내가 중국 놈들을 밀어줘야겠군.’

생각은 빨랐고, 결단은 더 빨랐다.

전화를 연결시킨 론즈가 곧바로 말했다.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준비해. 그리고 무당 말코 놈들에게 내가 직접 방문한다고 해. 은밀히.”

대답조차 듣지 않고 론즈는 곧바로 사무실을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

“괜찮아요.”

“내가 도와준다니까?”

“괜찮아요, 선배.”

한 명문대학교.

수희는 웃으며 남자의 호의를 거절하고 있었다.

그녀의 태도는 예의가 있었고,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단지, 남자의 고집이 꽤 완강해 보였다.

“점심이나 같이 하자. 학교 식당만 이용한다며? 요 앞에 맛있는 곳 알아.”

“전 학교에서 먹을게요.”

“아, 거 진짜 딱딱하게 구네. 야, 선배가 이 정도까지 했으면 모르는 척이라도 따라와야지.”

“…….”

남자의 뒤에 몇 명의 남자와 몇 명의 여자가 보였다.

그들은 무척이나 재미가 있다는 표정으로 수희와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자신을 두고 또 어떠한 내기 비슷한 것을 했다는 사실을 수희는 짐작했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교우관계가 원만한 편에 속하기는 했지만 딱히 누군가와 친밀하지는 않았다.

창현의 후광이라는 이야기를 듣기 싫어 당당히 정당한 시험을 통해 명문대에 입학을 했지만 돌아오는 시선은 시기와 질투였다.

실력보다는 후광으로 입학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확신하고 있었다.

수석을 하지 못한 것이 수희는 그래서 한이었다.

만약 수석을 했다면 애초에 그런 시선조차 받지 않았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희는 창현을 위해 자신의 행동거지를 늘 조심했다.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학교를 다녔고, 자신이 한혈문 문주의 유일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 사실을 이용해서 편의를 추구하지도 않았다.

피콜로가 늘 자신의 곁 어딘가에서 호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불편해 창현에게 따로 말까지 했다.

높은 무공 수위는 아니지만 눈앞에서 깔짝대고 있는 남자 선배 한 명 정도는 충분히 때려눕힐 수 있는 실력이었다.

제법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안경을 추켜 올리며 호리호리한 몸이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껄떡 거리고 있는 남자는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았다.

‘후우.’

이번에는 피하기 힘들 것 같아 수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

뒤에 있던 남자 선배들과 동기들의 환호성이 들렸고, 여자 동기들과 선배들의 피식 웃는 비웃음이 보였다.

수희에게 말을 건 학생은 학교에서도 유명했다.

공부도 공부였지만 그 집안이 꽤나 대단했기 때문이다.

한국 최고의 명문대로 불리는 곳에 집안의 힘으로 들어오기란 결코 쉽지 않았지만 남자 집안의 위세는 그 것을 가능하게 할 만큼 대단했다. 창현에 의해 많은 권력자들과 재계 인원들이 정리가 되었지만 남자의 할아버지는 청렴하기로 유명한 정치인이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실제로 남자의 할아버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 대단했다.

흠이라면 하나 밖에 없는 5대 독자인 손주에 대한 지나친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 것을 제외하고는 정치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그리고 그 능력까지 완벽을 겸했기에 남자는 이미 차기 대통령으로 내정이 되어있다고 할 수 있을만큼 높은 지지율을 자랑하고 있었다.

창현이 정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면 그 것 역시 단숨에 뒤집어 지기는 하겠지만, 창현은 그저 한혈문에만 힘을 쓰고 있었기에 정치적인 영향력은 분명 남자의 할아버지가 국내에서 제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남자는 그 할아버지의 후광을 믿고 전형적인 권력자형 집안의 양아치 손주였다.

“가자.”

자연스럽게 손을 잡아오려는 남자의 손을 수희는 가볍게 피해내었다.

“?”

“얼른가요. 저 1시 30분 강의에요.”

무슨 일이 벌어진지도 모른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다시 한 번 수희의 손을 잡으려 시도했다.

탁-!

“그건 사양할게요.”

수희의 손이 보이지도 않게 남자의 손을 쳐 버리자 남자는 급격하게 얼굴을 굳혔다.

“야, 야 그래도 전 세계 랭킹 1위의 여동생인데 한가락 하지 않겠냐?”

한 여자의 넉살스러운 말에 남자는 그제야 수희가 누구인지 기억해 낸 것 같았다. 피식 웃은 남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학생 무리와 함께 수희를 데리고 정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대부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수희가 무리에 섞여 있자 단 번에 시선이 몰렸다.

“우와 좋겠다. 역시 퀸이라 불리네.”

“…….”

여선배의 비꼬는 표정과 말에도 수희는 그저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후우,

하고 가볍게 한숨이 나 올 것 같았다.

마치 연예인이라도 된 것처럼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든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들은 앞에서는 간이라도 빼어 줄 것처럼 친절하게 굴지만 뒤에서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추악한 말을 서슴치 않는다.

언론은 경쟁적으로 그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면서도 수희에 대한 사소한 일상조차 기사를 올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이 나서면 창현에게 누가 될까봐 두고 보고 있었지만 점점 힘겨워지는 오늘이었다.

또 이렇게 남자 선배들과 여자 선배들이 같이 있기는 하지만 누군가와 같이 동행을 했기 때문에 가십거리용 기사가 쏟아질 것이 분명했다.

악의적인 반응 역시 마찬가지였고.

‘조용히 공부만 하자. 그게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오빠를 위한 길이니까. 난 그저 내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최근에 중국 문파와의 문제가 붉어져 또다시 국민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창현이었기에 수희는 당분간 더 조심하기로 결심했다.

“수희 진짜 연예인 같아. 어제는 공부하는 게 기사로 올라 온 것 봤어?”

비꼬던 여자의 말에 수희의 여동기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혈문 문주의 여동생, 패션계 정복 이러면서. 피부 관련된 말도 나오던데? 수희 너도 봤지?”

가만히 있어도 광채가 빛나는 수희였기에 그녀의 미모는 늘 관심 대상이었다.

“잘 안봐요.”

여선배는 피식 웃었다.

“그래 안보는 것이 좋겠더라. 공부하는 모습을 기사로 올리는 것도 웃기지만, 그 밑에 악플들은 다 뭐라니. 괜히 공부 잘하고 예쁘고 부러우니까말이야.”

수희의 여선배는 수희의 동기생의 어깨를 툭 쳤다.

자연스러웠지만 그건 일종의 신호 같았다.

“맞아, 그런 댓글도 있더라. 너랑 문주님이랑 성이 다르니까 이상한 관계라는 말도 있고. 또 그걸 기사로 내는 용감한 언론사도 있잖아? 그런데 문주님은 그런 기사를 보고도 신경을 잘 안쓰시나봐? 원래 응징은 철저하기로 유명하신 분이잖아.”

묘하게 둘 모두 비꼬는 말이었다.

수희의 얼굴이 처음으로 딱딱하게 굳고 있었다.

“오빠는 바쁘니까요.”

차가운 말에 여선배의 몸이 움찔 거렸다.

“야, 밥 먹기 전에 무슨 그런 말을 해. 학교 퀸이랑 같이 밥 먹으면 영광인 줄 알아야지.”

“고맙네요. 킹이랑 퀸분들이 비천한 우리랑 식사를 해주시고.”

남자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수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음, 이건 문주님에 대한 내 의견인데, 그런 가십거리 같은 것은 철저하게 대응을 해줘야 떠들지 못하는 법이라 전해드려. 한혈문의 힘이 전 세계 모두가 알고 있을 만큼 강력하기는 하지만 사람들 입방아만큼 무서운 것은 없으니까. 그리고 수희 네가 괜한 희생양이 되고 있잖아? 문주님이 반응이 없으시니 문주님에 대한 이야기만 안하면 되는 줄 알고 문주님에 대한 것은 찬양만 쏟아내고,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가십은 모두 네가 대상이 되고 있으니까.”

남자의 말은 꽤 그럴 듯 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빠에게 말을 해 볼게요.”

“아하하핫! 문주님에게 내 존재가 알려지는 건가? 이거 부끄러운데?”

“좋겠다. 강창현이 알아줘서?”

없는 자리에선 대통령도 욕을 한다고 여선배는 태도를 싹 바꾸고 있는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은지 비꼬고 있었다.

“본좌가 네 친구냐?”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모두가 몸을 떨었다.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시선이 대학교 정문에 몰리고 있었다.

“본좌가 물었는데? 본좌가 네 친구냐고.”

“!!!”

수희와 함께 있던 학생 무리들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특히 창현의 이름을 서슴없이 부르던 여자의 얼굴은 무척이나 새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여기가 학교야?”

“……응.”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창현은 수희의 머리를 다정하게 헝클이고 있었다.

“볼 일이 좀 있어서. 너희들이 안내 좀 해라.”

창현은 수희와 더불어 학생 무리들에게 씨익 미소를 지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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