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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 현대 재림기-158화 (158/170)

< -- 158 회: 전쟁과 여인 그리고 과거의 향기 -- >

“역사를 자랑하는 곳…… 여전하군.”

창현은 당문의 내부를 둘러보며 감회에 젖었다. 자신이 중원을 호령하던 시절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수백 년도 더 지난 일이었지만, 여전히 이곳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인간사는 끊임없이 변했지만, 그 속에서도 가문을 이토록 지키고 있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었다.

그래서 오대 가문과 구파일방이 아시아 문파들 중에서도 으뜸으로 뽑히고 있는 것이다.

오대 가문이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아직도 강한 문파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유구한 역사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향력은 결코 무시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니까.

그런 면에서 한국의 문파들은 아쉬운 점이 많았다. 3대 문파로 대표 되는 이들은 속가였고, 동이각과 천명문이 그나마 그 오랜 전통을 지켜왔다. 오히려 북한의 문파 쪽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그들이야 워낙에 폐쇄적인 면이 있어서 그러한 것들이 작용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예상 되었던 전투는 전혀 벌어지지 않았다.

“가주와만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

마치 관광을 온 사람처럼 당문 내부를 둘러 보다 창현은 한 전각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주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창현은 말을 이었다.

“적당한 곳을 내어 줘. 수연이 너는 쉬고 있어라.”

“네.”

한 남자가 수연을 안내했고, 가주와 창현은 전각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가 전각 안을 감싸고 있었다.

전형적인 객잔의 모습이었고, 식당 같았다.

차 한 잔 없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것은 꽤 어색한 일이었지만, 창현의 얼굴에는 여전히 은은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눈앞의 가주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가문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 의무는 꽤 부담이 된다.

“여러모로 고민이 많아겠군.”

자신을 당문호라고 소개한 그 남자 덕분에 창현은 기분이 꽤 좋아진 뒤였다. 암왕의 향기를 오랜만에 느꼈기 때문이다. 인간사를 초탈하고 하루하루가 무의미하던 날 검선과 암왕은 창현에게 작은 기쁨이자 소소한 일거리였다.

그 당시에 그들의 나이가 자신의 할아버지뻘이었다는 것도 즐거웠다.

정파 인물들 중 유일하게 반기던 인물들이었다.

-에이, 이 괴물 같은 자식은 계집질만 하는데 또 강해졌네?

-그건 암왕 자네가 늙어서 그런거야.

-말코 자식이 너도 저 자식처럼 계집 밝히냐? 그러니까 강해지지. 하여간 괜히 말코가 아니라니까!

어느 날이 회상이 되었다.

그의 후손이 불안감에 떨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 시대의 암왕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기는 있나?”

창현의 질문에 가주는 차마 자신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의 기준이 워낙에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그가 칭하는 암왕은 아마도 전설로 기록되는 옛 선조가 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파의 유일한 두 기둥, 혈마와 스스럼 없이 어울렸던 자들!

정파 역사 입장에서는 가장 강한 두 사람이기도 했고, 가장 치욕적인 두 사람이기도 했다.

속이 좁은 탓일까?

중원을 지배한 혈마의 역사를 그들은 스스로 지우기 시작했고, 정파의 찬란했던 역사만을 강조했다. 그러기에 정파 역사상 가장 강했던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이 전해져 내려오는 편은 아니었다.

단지, 당문과 무당파만이 그 두 사람의 존재를 아직도 뚜렷하게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 스스로는 결코 자랑을 하지 않고 있지만.

“선조 암왕 당제진님의 기준으로는 한참이나 미치지 못합니다.”

“그 정도야 이미 알고. 방계에 꽤 괜찮은 녀석이 하나 보이던데.”

“…….”

방계에서 일어났던 소란은 가주 역시 알고 있었다.

“대대로 당문이 독하다 소문이 났지만 이상하게 가주들은 유약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어. 자네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군.”

50대 중반의 외모인 가주와 20대 초반인 창현이었지만, 창현의 하대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재능이 있는 아이를 방계라 외면한다면 이토록 오랫동안 당문이 유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무당파와 손 잡은 놈들이 누구지?”

“…….”

신변잡기와 엉뚱한 이야기만 하다가 갑작스레 본론으로 치고 들어오는 창현의 말에 가주는 몸을 움찔 떨었다.

“스스로 당천위라고 소개를 하더군. 자네의 혈족이 찢어 죽인 것은 분명 미안한 일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본좌를 도발한 대가는 커. 그 것을 너희 가문 전체에 물을 수 있을만큼.”

“…….”

창현은 나무 탁자를 가볍게 두드렸다.

“피를 꺼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굳이 피를 보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피를 보는 성격은 아니다. 본좌는 꽤 자비로운 편이니까. 멸문, 봉문의 길을 면할 수 있는 길은 당문 스스로 암 덩어리처럼 자란 부위를 잘라내는 것이야. 그건 굳이 본좌를 도발한 징계가 아니더라도 너희 스스로 해야 할 일 아닌가? 그런 면에서 볼 때 오히려 나의 등장은 가주 자네에게 좋은 일이라 할 수 있지.”

자체 봉문을 생각했었던 가주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내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일본의 경우처럼 당문이 한혈문의 지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자체 봉문을 하고 노여움이 풀리실 때까지 자숙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존심이었다.

그리고 가주의 도박이기도 했다.

편안하게 숙이고 들어가는 사람을 창현은 오히려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주는 느꼈다. 자부심을 내보이고, 자존심을 세울 때는 세우는 것이 창현에게 어필 하는 길이었다. 어차피 그의 마음에 따라서 당문의 존속 여부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차라리 편했다.

“가문의 일은 가문이 알아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혈문 문주의 암살 시도는 분명 국제법의 의거 전쟁의 명분이니, 처분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문파의 세상에서 뜻을 거스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문의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을 하시고, 당문을 지배하에 두려 하신다면 멸문을 당할지언정 끝까지 저항해보겠습니다.”

“가주가 제법 기개가 있군.”

창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일본이야 너무나 큰 죄를 지었기에 지부화가 되었고, 한혈문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일이었으니 그런 일을 벌였지만 당문의 경우는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안다. 가주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도록 하지.”

창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암 덩어리야 가주가 알아서 정리한다고 하니, 당사자를 찢어 죽인 것으로 그 일은 마무리 하도록 하고. 가주도 알다시피 구파일방의 머리인 무당파가 나와의 전쟁을 위해 명분 싸움을 걸었고, 그 것에 당문은 이용만 당했다는 것을 가주 역시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습니다.”

가주는 분노에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릇된 방식으로 가문의 옛 성세를 회복하려다 멸문의 위기까지 놓이게 한 이들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그들은 당문의 자존심까지 팔아버렸다는 사실이었다.

“구파일방은 대대로 한 번씩 두드려 줘야지 정신을 차리는 것들이니까. 그 일을 진행할까 하는데…… 동맹의 관계는 어떤가?”

“!!!”

가주의 눈에 경악이 스쳤다.

그 말은 당문이 공식적으로 중국을 져버리고 한국에 붙으라는 말로 들리고 있었다. 그 기색을 눈치챈 창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조국을 배신하라는 일은 아니야. 정부는 구파일방이 장악하고 있고, 체제가 다른 너희들은 그들의 권력을 막을 방법이 없지. 그들의 힘은 더욱더 강해지고 있고, 오대 가문은 결국 그 차이를 메워내지 못해 지금에 이르지 않았나? 나의 힘으로 바꿔 주겠다는 것이 아니다. 너희 역시 무당파와 대립할 명분이 있으니 그 명분을 내세우면 여론이야 어느 정도 설득 할 수 있을 것이고…… 나 역시 배후가 무당파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너희들과 함께 구파일방을 정리한다. 그 이후 정리는 너희들의 몫이고.”

“그렇다 하더라도 반발은 심할 겁니다. 외부의 세력이 힘을 더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니까.”

창현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오대 가문이 전력을 건다면?”

창현이 반문을 듣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무당파가 론즈와 연결이 되어 있다면?”

“!!!”

그렇다면 중국은 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아시아의 별로 떠오르고 있는 창현과 론즈 가문이 중국에서 충돌을 하는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창현은 직접적인 행동으로 나선다는 것이고, 론즈 가문은 실비아의 행방이 두문불출한 가운데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외부 세력이 조국에 땅에서 힘 겨루기를 한다는 사실이 달가울리 없지만, 혼란이 다가온다면 분명 기회 역시 다가오는 법이었다.

“……어떻게 할 작정이십니까.”

“론즈와의 전면전 선전 포고는 아직까지 큰 명분이 없다. 내가 국내 살인 사건을 일본 잔재 무인 세력들로 덮었기 때문이지. 개인의 힘은 앞서지만 아직 론즈의 힘에 비하여 한혈문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렇다면 동맹을 얻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 그 동맹이 중원을 호령하는 문파라면 더더욱 좋고.”

“…….”

창현은 빙그레 웃었다.

“당문 독단의 힘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오대 가문의 결속력은 여전하더군. 특히 남궁세가 놈들은 내게 관심이 많을거야. 검의 목숨을 건 그 놈들은 아마 내 한 수 가르침을 원할 가능성조차 있으니까. 가주도 알지 않나.”

가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머리 쓰는 제갈세가 놈들과 잘 회의를 해보라고. 어치파 여기 내가 온 것을 알고 있는 인원들은 당문 인원들이 전부. 도착을 했다는 소식이야 퍼져겠지만 그 이후로는 술법을 사용했으니까. 시간은 어느 정도 있다. 그동안 공식적으로 당문의 대접을 받아볼까? 요새 사천 음식이 매우 땡기기는 했거든.”

폭풍 속의 선택의 길이 갈렸다.

가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오랜 만에 오대 가문의 회의를 자신이 소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작품 후기 ============================

자정에는 웬만하면 올리려 합니다.

그 이후 연참 같은 경우에는 쓰는 시간에 따라 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뒤죽박죽인것은 사실입니다.

앞으로는 오전에 연참분을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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