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 현대 재림기-160화 (160/170)

< -- 160 회: 전쟁과 여인 그리고 과거의 향기 -- >

“우리는 도사네.”

“하지만 거대 문파이기도 하지요.”

“도사의 본분이란…….”

남자는 노인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도사의 본분을 열심히 지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미 물러나신 사숙께서는 문파의 일에 크게 관여를 하시는 것은 자칫 보기 좋지 않은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한혈문과의 관계는 장문인인 제가 알아서 하도록 하지요.”

“……내가 직접 한국으로 가겠네.”

남자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너무나 찰나의 순간이기에 신음성을 내뱉고 있는 노인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한혈문과의 일은…….”

“인간을 뛰어 넘은 강자가 무당파가 간악한 집단이라 생각하는 것은 내가 참을 수가 없네. 이 일은 장문인인 자네가 말리더라도 어쩔 수 없어.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사숙의 명령이라 생각했으면 좋겠군.”

“……그럼 적어도 수행인은 데리고 가시겠다고 약속하십시오. 사숙께서는 무당파는 물론 정파를 대표하는 고수이십니다. 홀로 훌쩍 떠나 품위를 지키시지 않으시면 무당파의 명예에도 분명 흠집이 날 겁니다.”

거추장스러운 짐 덩어리들을 달고 다니고 싶지 않았지만 검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사질의 말에 따르겠네. 자넨 장문이니니.”

“감사합니다.”

검선은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내일 쯤 출발 하도록 하지.”

“준비는 해두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많은 시선들이 몰릴 겁니다.”

“그와 검을 섞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 생각하네. 사질 역시 그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군.”

“설사…… 도사의 본분을 지키는 일이 아니더라도 저는 무당파를 세계 최고의 문파로 만들 겁니다. 그 첫 번째가 사숙께서 그를 꺾는 일이 되겠죠.”

“애초에 말릴 생각은 없었나보군.”

장문인은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제가 아무리 날고 기어 보았자, 초절정 고수일뿐입니다. 힘의 논리를 가장 앞세우며 도사의 본분을 잃어가는 저를 붙잡아 주는 것도 사숙, 무당파를 이끄는 기둥 역시 사숙입니다.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오물을 뒤집어쓰더라도 검선으로 대표되는 무당파는 세계 최고가 될 겁니다.”

검선은 장문인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장문인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검선은 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최고의 문파는 저의 것입니다, 사숙.”

후우, 하고 숨을 몰아 쉰 왕효명은 밖에 대기하고 있는 제자 한 명을 불렀다.

“여봐라!”

“네, 장문인.”

“비밀리에 론즈 가문의 론즈가 직접 방문한다고 했는데 어디쯤이라더냐?”

“이제 곧 입국을 할 것 같답니다.”

“잘 데리고 오도록 해. 그 놈은 한혈문과의 본격적인 전쟁에서 중요한 자금줄이 될 것이 분명하니까.”

왕효명은 알고 있었다.

론즈가 어째서 무당파를 직접 방문을 하는지.

‘거대한 기운의 흔적이 사라졌다. 실비아라는 그 계집에게 틀림없이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해. 그러기에 직접 나서지 않고 론즈 녀석이 우리를 이용하려 하는 것이지…… 멍청하긴, 이용한 뒤 한혈문과 양패구상을 노리겠다? 무당파를 너무 모르는 군.’

비릿한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점점 뜻대로 일이 풀려가고 있었다.

하나 밖에 없는 친동생이자 사제인 진선도인이 폐인 된 이후로 왕효명은 은밀히 준비했던 모든 것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무당파의 힘이 드러나면서 구파일방 중 화산, 소림과 함께 대표 되었던 세 문파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드러낸 것은,

검선의 존재였다.

화산의 매화일검과 소림의 오대 선사의 합공을 가볍게 물리친 검선.

또 한 명의 천외천 고수의 출연이었다.

그 사실은 무당파의 성세에 기름을 부었고, 구파일방은 무당파를 구심점으로 강력한 결속력을 다시 한 번 공고히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영광은 왕효명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사숙께서 은거를 하시고 등선을 하시길 바랐지만…… 사숙, 인간이란 죽으면 누구나 등선을 하는 것이 아니오? 그토록 사랑하는 문파를 위해 한 줌의 먼지가 되는 것이니 너무 원통하게 생각하지는 말구려.’

한국에서의 일이 벌써부터 정해져 있다는 듯, 왕효명의 미소는 점점 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

챙-!

챙-!

챙-!

정확하게 두 사람의 움직임을 보고 있는 것은 창현 한 명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 많은 관광객들은 물론, 한혈문 내부 인원들도 상당히 많이 두 사람의 비무를 관전하고 있었지만, 칼날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밖에 듣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움직임이 워낙 빠르기 때문이다.

‘무황은 검과 하나가 되는 법을 완전히 깨달은 것 같군. 윤미 역시 지난 번 실비아 사건 이후로 상당히 많이 늘었고.’

두 사람만이 실비아의 무력을 직접 느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창현조차 그저 클론을 상대했다는 것은 두 사람의 경각심을 키우기 충분했다. 창현만이 절대적 고수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한 충격이었다. 인간의 경지를 넘어섰고, 8서클 마스터 마법사의 위력을 뼈져리게 느꼈다.

놀라운 것은 실비아가 조만간 9번째 고리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행방이 두문불출해서 클론이 죽은 타격을 회복하고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지만, 그녀는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전무후무한 엄청난 강자가 되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시점은 론즈와의 전면전이 벌어지는 시점을 의미했다.

구파일방을 정리하고 아시아의 세력권은 물론 세계적인 지배력을 높인 한혈문이 론즈 가문과 직접 맞서게 된다면 그 이후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고수의 숫자이다. 창현 이외 각주급 고수들만이 전부인 한혈문은 분명한 약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각주급들까지도 론즈 가문의 마법사나 검사들의 비해 그 수가 부족한 편이었다.

‘그래서 더욱 강해져야해.’

‘더욱 강해져합니다.’

두 사람의 생각은 똑같았다.

챙-!

검이 허공에서 맞부딪치면서 드디어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무황의 몸이 빙그르 돌았다.

‘바람은 언제나 분다. 물은 언제나 흐른다. 자연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또, 무엇인가에 맞서지도 않는다.’

창현의 말이 무황의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한기가 서린 윤미의 검은 매서웠다.

손이 아려 올 정도였다.

예전에는 두 수 정도 앞선다고 생각했지만, 비무를 펼치면서 어느새 그 승부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매서운 검은 빈틈을 정확하게 노렸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찔러 들어왔다.

내력은 한층 더 풍만해졌으면서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검에 담긴 한기가 폭발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빙그르르 돌면서 무황은 그 폭발적인 한기를 가볍게 흘리고 있었다.

콰아아앙-!

용신이 만들어낸 투명한 막이 부서질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하나의 파괴적인 초식이 끝이난 그 찰나의 빈틈을 무황은 가볍게 찔러 들어갔다.

챙-!

어느새 회수한 검으로 윤미가 가볍게 막았지만 그 다음부터 시작이었다.

물결처럼 유려하게 흐르는 무황의 초식은 이미 틀을 벗어나 있었다. 끝이 없이 찔러 들어오는 검은 바람을 타고 윤미의 모든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반격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막아내는 것만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

창현의 말이 들려왔다.

무황은 검을 회수하는 것조차 자연스러웠다.

끊이지 않는 검술을 펼친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많은 것을 얻어겠군.”

가볍게 숨을 몰아 쉰 윤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창현은 흐뭇한 눈빛으로 무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선의 소식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또 한 명의 천외천 고수가 한혈문에서도 탄생했다.

“많이 늘었군.”

“주군.”

무황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도괴.”

창현은 말을 곧바로 이었다.

“용신, 전력을 다해 방어막을 쳐라.”

말이 끝나자마자 창현은 무황에게 달려 들었다. 그가 방금 얻은 무론을 정리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생각 할 시간을 주는 것이 정상이라 느낄 수 있지만 창현은 오히려 방금 전의 무론을 다시 한 번 펼치는 것이 확실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하면 도리어 무론에 대한 느낌을 잊기 때문이다.

장난이 아니었다.

도괴는 패도적인 검이다.

피를 먹고 살아왔던 그 요마의 검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강렬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무황은 창현이 진심으로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다시 한 번 바람을 탔다.

창-!

한 수를 막아낸 것이 무황 스스로조차 얼떨떨했지만, 곧바로 부드럽게 반격을 이어갔다. 창현만한 고수에게 공간을 내주면 애초에 답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어막 안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창현의 내력을 갈라가면서 무황은 다시 몸을 돌리며 검을 찔러 넣었다.

차앙-!

윤미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녀는 막기에 급급했지만, 창현은 막은 이후 곧바로 반격을 가해왔다.

챙-! 챙-! 챙-!

너무나 빠르기에 오히려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러니했지만, 분명 사실이었다. 마치 검무를 추는 것처럼 혈마지기를 머금고 있는 도괴와 투명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무황의 검이 허공에서 부딪히고 있었다.

무황은 방금 전의 느낌을 다시 찾았다.

바람을 타고, 물이 흐르는 것처럼 창현의 빈틈을 찔렀고, 연계 공격은 끊이지 않았다. 내력의 소모가 아예 느껴지지 않았다. 공간을 지배한다는 느낌을 정확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의 내력이 흐름을 타고 창현의 내력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콰아아아앙-!

창현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수 만 갈래의 혈마지기가 무황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가 지배하고 있던 공간을 소멸 시키고 있었다.

무황은 입술을 질끈 물고는 몸을 회전시키며 쏟아지는 혈마지기의 향연을 막아내고 있었다.

“후……!”

털썩 자리에 주저 앉은 무황이 눈을 감았다.

“윤미, 장내를 정리하고 호법을 서주거라.”

“네.”

창현의 미소가 진해졌다.

‘검선이라…… 왕효명이라 했던가? 설난의 분석에 의하면 그 녀석이 검선을 이용할 것이라 하던데…… 너의 후예는 어떨지 무척이나 궁금하군. 암왕 자네의 후예는 무공면에서는 날 만족시키지 못했으니까.’

무황은 훌륭한 상대를 얻었다.

창현은 검선이 자신에게 올 것이라 확신했고, 자신과의 비무보다 무황과의 비무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얻은 무론을 또다시 정리할 수 있는 가장 큰 길은 바로 실전이니까.

새로 탄생한 천외천의 고수들.

아시아를 대표하는 무당파와 한혈문에서 마치 짠 것처럼 탄생했고, 둘의 대결은 그리 멀지 않은 시일에 이뤄질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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