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62 회: 전쟁과 여인 그리고 과거의 향기 -- >
‘만약 강창현이 직접적인 비무가 아니라 그 부하에게 시킨다면 계획은 실행하지마라. 검선은 분명 강창현 이외에는 전부 이길 테니까. 초조해 하지 말고 기다려라. 검선과 강창현은 대결을 펼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때 양쪽 모두를 죽이려 하지 말고 검선을 우선순위로 암살해라. 그 것이 너희들이 태어난 이유이다.’
금단의 무공.
사파나 천마교에만 사악한 무공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본디 마성에 젖게 하는 무공은 애초에 목적이 그런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무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더 많이 익히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정공심법이라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이해도에 따라 그 방향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정파의 정수라 불리는 소림사의 백보신권을 쓰더라도 천만 명의 사람을 학살하면 마공인 것이다.
어쨌든,
수행원들의 목적은 하나였다.
몸속의 진기를 모두 폭발 시켜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는 무공이지만 본래의 힘보다 열 배, 스무 배는 더욱 강한 힘을 낼 수 있다.
왕효명은 이미 그들에 대한 언론 플레이 역시 전부 생각해 놓은 뒤였다.
무당산 한 가운데서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일은 벌어지고 있었다.
“그대에게 검을 청하고 싶소.”
“스스로에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창현의 물음에 검선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최근 큰 깨달음을 얻었고. 그대에게 미치지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구려.”
그 자신감은 무척이나 보기 좋았다.
이제는 대외적인 행사 장소가 되어버린 근정전 뜰에는 카메라까지 동원이 되어 있었다. 창현이 굳이 그들의 출입을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공항에서부터 열띤 취재 열기가 벌어졌지만 검선이 모조리 거부한 뒤 곧바로 경복궁으로 왔기에 그들 역시 금방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 언론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중국 언론은 물로 세계 각지의 언론이 경복궁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당파는 나에게 명분을 주었다. 알고있나?”
“……사질의 잘못을 부인 할 생각은 없소. 그의 잘못은 나의 잘못. 검선이기 전에 한 명의 무당파 도사로서 이 비무 결과에 대해 한혈문 문주께서 너그러히 그 잘못에 대한 결과로 받아들여주었으면 좋겠소.”
자신감이 넘쳤다.
비무에 지게 되면 암살 시도 사건에 대한 일을 아예 덮을 수 있는 말이었다. 창현은 피식 웃었다.
문파간의 대결.
즉 힘을 겨루는 자리이다.
“그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고. 받아들이는 입장이니 내가 제시를 하지. 직접 나서지는 않겠다. 그대가 매화일검과 오대 선사에게 천외천 고수라는 사실을 검증 받은 것처럼 무황 역시 나의 발표 말고 적당한 상대로 검증을 하려던 참이었거든. 그대와 우열을 가리게 된다면 확실하게 사람들이 내가 왜 무황을 천외천 고수라 칭하고 설난의 정보 시스템이 그의 랭킹을 올려놓았는지 정당성이 부여가 되겠지. 불만 없나?”
“……내가 원하는 것은 그대와의 비무.”
“검선 그대가 이기든 지든 나와의 비무는 분명 이뤄진다. 그대의 목숨으로 무당파는 암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니까. 오늘 비무가 끝이 나고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 뒤에 다시 공개 비무를 벌이도록 하지. 만족하나?”
“……좋소.”
검선은 검을 고쳐 잡았다.
무황이 나섰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풍기는 분위기도 비슷했다. 둘 다 나이가 상당히 많았고, 흰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긴 장검을 쓰는 것 역시 똑같았고, 즐겨 입는 옷이 도포라는 사실 역시 비슷했다. 단지 무황은 한복이었고 검선은 중국 전통 도사들이 입는 도포라는 점이었다.
“검선 조호운이오.”
“무황이라 불리는 김치우요.”
둘은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검을 늘어뜨린 채 대치하기 시작했다.
장내에는 쥐죽은 듯한 침묵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노인이 곧 하늘을 뒤집는 무력을 보여 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신이 쳐 놓은 방어막 안에서 두 사람의 대치 상태는 길어지고 있었다.
카메라는 연신 돌아가고 있었고, 사람들 역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묘한 긴장감이 여전히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를 막아내고 있었다.
‘허허…… 사질의 생각은 너무나도 빗나가고 있구나.’
무황의 기세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렬했다.
오로지 창현 한 명만의 힘으로 한혈문이 여기까지 왔다고 믿고 있는 사질 왕효명의 생각이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검선은 느꼈다. 그가 도사의 본분을 지키지 않고 속세를 추구하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 역시 무당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 되었다 믿는 검선이었다.
그조차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었지만.
“…….”
마치 무당산이 눈앞에 옮겨 온 것처럼 거대한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은 무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비아나 창현만큼은 아니었지만, 도무지 빈틈이 없어 보였다.
우웅-!
검이 울었다.
검선이 몸을 움찔 떨었다.
이토록 맑은 검명은 그 역시 처음 들어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을 무황은 놓치지 않고 있었다.
“타앗-!”
오랜만에 치밀어 오르는 호승심에 무황은 기합까지 질러가며 검선에게 쇄도 하고 있었다. 어깨를 노리고 찔러 들어가는 검은 마치 섬광처럼 눈부셨고 빨랐다.
창-!
그 찰나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찔러 들어간 무황과 또 그 것을 가볍게 막아내고 있는 검선은 대단했다.
이내,
챙-! 챙-! 챙-!
두 사람의 검이 만나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수십 합을 나누고 있었다. 일반인들은 눈으로 쫓지 못했고, 카메라 역시 그 공간만을 비추고 있을 뿐,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나중에 현대 과학 기술을 이용해 영상을 활용을 하겠지만.
“차앗!”
새하얀 백색의 기운이 검에 서리면서 무황이 크게 빙그르르 돌았다. 회전 자체를 상당히 많이 이용하는 무황의 무공 특성이었다. 원심력을 이용하여 굳게 디딘 발을 뻗었을 때 뿜어져 나오는 하체와 허리의 힘은 검의 내력에 그대로 흘렀고, 검신을 타고 흐르는 그 내력은 무황의 중심에서부터 뻗어져 나갔다.
“핫!”
검선 역시 만만치 않았다.
본디 오행을 중시하고 흐름을 중시하는 무당파의 무공이다.
맞서 싸우는 것보다는 흘리는 것이 더 많은 무공답게 검선은 맞부디치는 것 같았지만 무황의 검을 제법 잘 흘려 내고 있었다.
‘이 초식은 안된다!’
하지만 다시 한 번 회전을 한 뒤 쏟아져 나오는 빛의 향연에 검선은 섣불리 흘리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그 파도에 쓸려 내려 갈 것이라 직감했다.
“타아앗!”
그의 입에서도 기합이 흘러 나왔다.
쾅-! 콰아아앙-!
폭음이 들려오면서 방어막이 연신 두들겨 맞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느새 허공으로 떠올라 공중에서 교전을 나누고 있었다. 마치 발 밑에 땅이 있는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콰아아앙-!
검선의 검에서 쏟아진 강기의 향연에 무황이 뒷걸음질 치면서 간신히 막아내고 있었다.
‘주군처럼 끝을 모르는 내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천외천 경지에 이르렀지만 하단전만을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 마음의 밭으로 가는 길을 어렴풋이 보았다고는 하지만…… 공간 지배력은 현저히 나에게 미치지 못한다.’
초식의 운용, 한 번에 뿜어져 나오는 강기의 힘 자체는 검선이 앞섰다. 공격을 흘리는 수비 초식들이 그랬고, 터져 나오는 강기의 강도가 강했다.
하지만 그건 결국에는 끝이 있는 힘이었다.
‘마치 바다를 상대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검선은 얼굴을 찌푸렸다.
분명히 앞서고 있건만 무황은 여전히 지친 기색이 없었다. 내력이 슬슬 소진 될 시간이 지났건만 여전히 자신의 강기에 맞서는 강기는 조금은 힘에 붙이지만 끊임 없이 파도처럼 터져 나오고 있었다.
검선은 무황이 뒤로 물러 났을 때를 이용해 검을 띄웠다.
승부수였다.
‘어검술! 하지만 공간 지배력이 약하기에 오히려 기회이다.’
어검술이라는 것 자체가 허례허식에 비롯해 만들어진 정파 특유의 허세 무공이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깨달은 무황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검선은 검이 떠나는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주변의 기운이 온통 무황이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움직일 수 없었다.
내력을 끌어 올려 밖으로 분출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곧 검선의 눈에 경악이 깃들었다.
어검술은 빛의 속도로 날아가 상대방의 명줄을 끊는 궁극기나 마찬가지이만,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무황을 향해 천천히 날아가고 있었다. 자신과 검이 이어지는 내력의 끈을 공간 자체가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황은 검보다 더욱 빠르게 자신에게 쇄도하고 있었다.
“이, 이런!”
순식간에 주변을 지배하고 내력들이 마치 무황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고수들끼리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 지배력의 위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타아아앗!”
어검술은 이미 끊어져 버렸고, 빙그르르 돌며 무지막지하게 쏟아지고 있는 검강의 향연을 검선은 보법과 호신강기, 그리고 자신의 권강으로 밖에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 한계가 있었다.
점점 끝으로 몰리는 검선은 표정은 일그러졌고, 그의 옷은 처음과 다르게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다.
노인답지 않은 팽팽한 피부에 칼날이 스치면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주변에 눈부신 섬광이 터졌다.
“…….”
“…….”
사람들은 한참이나 지난 이후에야 시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만큼 강한 빛이었다.
“……허!”
검선의 입에서 짧은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와!”
한국인들을 중심으로, 한국 언론의 기자들까지 모두 감탄에 빠진 얼굴에 이어 순식간에 자부심에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반면 중국의 몇 몇 언론은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이 정도면 승부가 난 것 같구려.”
“……허! 큰 깨달음을 얻어 육신의 한계를 벗어났건만.”
창현이 나섰다.
“내가 아는 검선에 비해 적어도 다섯 수는 뒤지는군.”
그런 선조인 검선조차 창현에게 늘 가르침을 청했다고 한다. 조호운은 자신이 얼마나 헛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인지 깨닫고 있었다.
“약속대로 나와의 비무는 유효하다.”
그 말은 곧 검선이 모든 책임을 지고 죽는다는 의미였다.
창현은 빙그레 웃었다.
그의 생각은 무엇일까? 검선이 책임을 지고 비무에 패해 죽거나 무공을 잃는다면 무당파를 칠 명분이 한혈문에게는 없다. 그런데도 창현은 그저 웃고 있었다.
“문주와의 비무는 없던 것으로 하는 것이 좋겠소. 무황과의 대결만으로도 너무나 큰 은혜라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어쨌든 난 무당파의 가장 큰 어른이오. 사문의 잘못은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책임을 지도록하겠소. 설사 그 것이 나의 목숨을 취하는 일이라 하더라도말이오.”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목소리는 컸다.
무당파에서 따라 온 왕효명의 직속 제자들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좌를 암살하려 한 것은 분명히 큰 잘못이지. 하지만 그대는 진정한 무인. 그대와 같은 진정한 무인을 내 손으로 목숨을 거두는 것은 크게 이로운 일이 아니야. 그대가 가장 어른이고 책임을 지겠다고 했으니 무당파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책임을 묻지.”
“……사문에 누가 된다면 차라리 내 목숨을 거두시오.”
창현은 남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검선이 무당파 내에서 영향력은 크지만 크게 일 자체에는 간섭하지 않는 것 같은데…… 맞나?”
남자들은 불안했다.
창현은 다시 검선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대의 사질이 직접 와서 사과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도록 하지. 그대의 사질에게 모욕을 주려는 것은 아니다. 공식적으로 방문을 해서 암살 사건에 대한 일을 마무리 하자는 것이다. 그대의 목숨을 거두는 것보다 그 것이 훨씬 낫지.”
시선은 다시 남자들에게 돌아갔다.
창현의 표정은 마치 다 알고 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문파의 최고 어른이자 최고의 고수를 지키며 동시에 양 문파의 갈등을 해결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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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