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68 회: 전쟁과 여인 그리고 과거의 향기 -- >
무인은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창현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윤미와 설난에게 말했다.
“가지.”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 여유로운 걸음걸이였다.
무당산은 제법 운치가 있었고, 관광객이라도 되는 것처럼 창현은 익숙한 무당산의 풍경을 천천히 눈에 담고 있었다.
“검선이 살아 있을 때는 꽤 자주 왔었어.”
설난이야 그 시절을 창현과 함께 보냈고, 윤미 역시 혈마라 불리던 창현이 후손의 몸에 빙의해 두 개의 영혼이 창현을 주축으로 융합이 되었다는 것을 알기에 그 말에 크게 위화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좋은 할배였어.”
설난의 말에 창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득히도 먼 시절, 중원에 더 이상 적수가 없었고 배교는 가장 강한 문파이자 가장 강한 권력이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서 있던 것이 창현이었고, 창현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절대자였다.
절대자가 되니 무척이나 외로웠다.
세상만사를 꿰뚫어 본다는 것은 무척이나 좋을 것 같지만 다가오는 지독한 고독감은 창현이 아직 인간이기에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잠시나마 씻게 해주었던 것이 검선과 독왕이었다.
“그와 무를 논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어. 신선이 되기를 갈망했지만 끝내 등선을 하지 못했지.”
검선은 늙어서 죽었다.
창현은 그 사실이 안타까웠다.
검선 역시 초고수의 반열에 든 무인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 정도까지 경지가 오른다면 오로지 혼자서 깨달음을 얻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선 역시 창현과의 만남과 무를 논하는 여러 가지 말들을 통해 제법 많은 깨달음을 얻어갔다.
단지 등선을 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말코 도사들은 그를 생각해서라도 잘해주고 싶었는데.”
창현은 입맛을 다셨다.
정문이 보였다.
아직도 검선의 모습이 이곳에 남아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은 창현은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는 도사들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전부 죽이지는 않지. 검선을 생각해서라도. 하지만 본좌를 능멸한 죗값은 철저히 치러야지.”
고오오오오오-!
콰콰콰콰콰콰-!
주변에서 터지는 강렬한 기운에 기세 좋게 나오던 무당파 도사들이 흠칫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곧 땅이 갈라지기 시작하면서 도괴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인한 눈을 번뜩 거리며 도사들을 보며 키키킥, 웃은 이후 음산한 목소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피다! 피! 피! 말코들의 피!”
그 목소리가 지독히도 기괴하여 어떤 도사는 도호까지 외고 있었다.
창현은 서서히 무당파 전체를 혈마지기를 뿌려 나갔다.
“그래도 본산에 있기는 있군.”
가장 은밀한 곳에 있었지만 왕효명의 기는 어렵지 않게 창현은 찾을 수 있었다.
“죽이지는 않으마. 정리해.”
창현의 간단한 말에 설난과 윤미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눈으로 쫓을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푹-!
차가운 칼날이 단전에 박히는 것을 느끼며 도사 한 명이 쓰러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지도 모른 채 무표정한 윤미의 얼굴을 보고 있던 도사들이 그제야 제각기 병장기를 뽑고 있었다.
“본 산을 더럽히는 놈들을 쓸어버리자.”
중년의 도사의 말에 남은 도사들이 흉흉한 눈빛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단지 그 것뿐이었다.
챙-!
설난의 손에서 생긴 수 십 개의 얼음덩어리들이 도사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고, 윤미는 다시 한 번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도사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있었다.
창현은 도괴를 한 손으로 가볍게 움켜 쥔 채 이미 정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넓은 공간이 보이고 높은 전각들이 무당파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무의 각이 없어졌나보군.”
검선을 기리기 위하여 창현이 무당산에 만든 건물이었다.
하지만 배교의 수장이 무당파 한복판에 건물을 세웠다는 것 자체를 무당파는 수치스럽게 여겼다.
그와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무당파 역대 최고의 고수를 지금까지도 배척하고 숨기고 있으니 당연했다.
창현이 중원을 호령할 당시에는 그가 두려워 감히 어떻게 할 바를 몰랐지만, 창현이 실종 된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자 건물은 이미 헐어버린 뒤였다.
‘무당산의 정기에 그대의 숨결이 닿았으면 좋겠군. 내가 죽고 나를 생각해서라도 부디 무당파의 잘못을 세 번까지만은 눈을 감아주게.’
끝내 등선을 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유언을 남겼던 검선의 마지막 모습을 창현은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그래서 창현은 낮게 중얼 거렸다.
“대를 끊지는 않지. 그대를 생각해서라도. 그리고 그대와 비슷한 정신을 갖고 있는 놈이 하나 있으니 무당파 명맥을 잇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혹여 모르지. 검선이라 불리는 자네와 똑같은 별호를 가진 그 자가 무당산의 정기를 다시 되살릴지.”
이미 초고수 반열에 든 지금의 검선이라면 아직 살 날이 무척이나 많이 남았다.
창현은 그 사실을 생각하면서 몇, 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단전을 파괴할 생각이었다.
백지부터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것이, 도사의 본분을 져버리고 탐욕과 권력을 탐하는 녀석들을 정리 해주는 것이 검선을 생각하는 것이고, 무당산의 정기를 다시 되찾게끔 도움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뒤에서 쓰러지고 있는 수 십의 도사들에게 창현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직 진짜 고수들은 나오지도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볍게 한 걸음을 내딛었지만, 이미 수 십 미터를 걷고 있었다.
창현이 발휘할 수 있는 경공의 최고 경지였다.
곧 흰 수염을 휘날리는 네 명의 노인을 창현은 볼 수 있었다.
“그대들인가?”
“원시천존은 어찌하여 이런 괴물을 세상에 내렸나.”
혀를 차는 늙은 도사를 보며 창현은 씨익 웃었다.
“계집의 가랑이나 탐하는 도사보다는 내가 훨씬 나은 것 같은데? 아직도 분 냄새가 진동을 하는군. 늙은 도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향이라 생각하는데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
창현의 말에 말을 했던 도사의 눈가가 미미하게 떨렸다.
“그대의 손에는 피 냄새가 진동을 하는군. 그것도 아주 어린 아이들의 피 냄새. 하아! 검선의 무당이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썩었는가!”
그들에게는 지금의 검선을 지칭하는 것 같았겠지만 창현은 자신의 친우였던 그 노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무공 좀 한다고 장로들조차 알아보지 못했던 놈이 결국 외세에 무당파를 팔아 먹었군!”
창현은 네 도사 모두 썩을대로 썩었다는 것을 단 번에 알아보고 있었다.
길게 말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설사 필요성을 느꼈다 하더라도 이런 도사들과 창현은 굳이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붉은 혈마지기가 도괴를 통해 한줄기로 변하여 쏟아져 나갔다.
마치 광선처럼 직선으로 나갔음에도 도사는 제대로 대체조차 하지 못했다.
피슉-!
서걱-!
“!!!”
한 팔이 그대로 잘려나갔음에도 아무런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 도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곧 피분수가 터져 나오고 엄청난 고통에 팔이 그대로 썰린 도사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썩은 뿌리는 잘라내야 하는 법이지.”
창현은 말과 함께 다시 한 번 도괴를 휘둘렀다.
천외천!
그 이름을 너무나 얕보았던 도사들은 자신들 네 명이면 창현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더구나 그들은 개개인이 도윤이문공을 극성까지 익혔기 때문에 내심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수 십 갈래로 쏟아지는 혈마지기로부터 도망조차 치지 못하고 있었다.
서걱-!
서걱-!
서걱-!
썩은 뿌리는 잘라내야 한다는 창현 스스로의 말처럼 창현은 자비를 베풀 대상과 자비를 베풀지 않을 대상을 확실히 정하고 있었다.
네 도사의 널브러진 시체를 뒤로하고 여전히 여유롭게 창현은 걷기 시작했다.
도사들의 기운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윤미와 설난이 무당산을 완벽히 장악하고 도망조차 치지 못하게끔 확실하게 제압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애초에 두 여자를 믿었기에 단 세 명이서 구파일방 중 수뇌라 불리는 무당파를 찾은 것이었다.
왕효명의 거처는 무당파 건물 중 가장 높고 화려한 전각이었다.
콰아아앙-!
창현의 단순한 기파에 전간의 앞면이 통째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먼지가 가라앉으면서 왕효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깡마른 체구와 퀭한 눈이었지만 그 눈 사이로 섬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네가 강창현인가 보군.”
“의외이긴 의외야. 난 사실 무당파에 전부 끌어 모았을 줄 알았거든.”
“후후, 바보나 하는 짓이지. 이미 난 너의 힘을 알고 있었다. 실비아까지 그렇게 만든 인간이 무당파 쯤이야! 하지만 네가 없는 한혈문은 어떨까?”
창현이 여전히 여유롭게 웃자 왕효명은 얼굴을 찌푸렸다.
“무황이라고 불리는 작자…….”
“요새는 예전이 아니지. 첨단 기계가 발달한 시대이잖아. 구파일방의 시대는 오늘 막을 내릴거야. 그리고 오대가문을 중심으로 중국은 개편이 되겠지.”
“!!!”
“A급과 S급 괴물을 막아낼 수 있는 문파는 없어. 구파일방중에는. 설사 막아낸다 하더라도 한혈문의 정예와 오대 가문의 정예에게 쓸리겠지.”
창현은 피식 웃었다.
“네가 수 십 년간 이뤄 놓은 것이 단 하루 만에 무너지는 것을 믿기 힘들겠지만…… 욕심을 너무 부렸어. 거기까지 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텐데.”
왕효명은 자신의 휴대폰을 서둘러 확인하고 있었다.
도사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창현은 약간 낯선 느낌이었지만, 아마 지금쯤 실시간으로 오대 가문이 중국의 정부를 장악하고, 인민들을 다독이고 있다는 소식은 언론을 통해 충분히 퍼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왕효명의 얼굴이 그 짐작을 사실로 만들었다.
“그 놈들이…….”
“무당산의 정기는 오늘부터 다시 회복 되기 시작할거다. 그리고 암적인 존재는 사라져야지. 반항을해도 좋아.”
이미 소용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는 왕효명은 그저 몸을 가늘게 떨 뿐이었다.
“나 역시 문파를 사랑했다.”
“개소리는 거기까지. 너는 너의 탐욕과 권력을 사랑했지 무당파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내 친구가 묻힌 곳을 더럽힌 죄는 크지만 그를 생각해서라도 고통스럽게 죽이지는 않지.”
창현은 말과 함께 돌아섰다.
하지만 왕효명을 향해 한줄기 빛이 뿜어져 나갔다.
서걱-!
그의 목이 앞면이 날아가버린 전각에 데구르르 구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랜만에 찾아뵙네요.
여러가지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과
일신상의 일로 인하여
딜레이가 되네요.
분량 자체가 많이 안 남았으니
완결까지 가끔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진행되고 있는 이 세계의 수호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