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룻밤 상대가 흑막이었던 것에 관하여-32화 (32/70)

32화

* * *

부드럽게 쓸며 말하는데 그 부탁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아까부터 계속 리티아의 눈과 입술을 번갈아 쳐다봤으니까.

리티아는 바로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 달싹거렸다.

아무리 몸을 맞댔었다고 한들 그 이후로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하지만 또 손을 건드렸듯 언제고 괴롭힐 게 분명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디테일하게 약속을 해놓는 거였는데.

“…….”

하나, 둘, 셋……!

속으로 숫자를 셋까지 센 리티아가 발꿈치를 들고 그대로 칼리프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댔다. 도장을 찍듯 꾹 찍고 내려와 순식간에 달아오른 얼굴로 그를 올려다봤다.

“이, 이제 됐죠. 동행 중에 절대 나 아는 척하면 안 돼요. 아니면 사람을 바꾸든가. 아니면 그냥…….”

맨정신에 남자의 입술에 입술을 맞대기란 여간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얼굴이 화끈거려 더 마주 보지 못하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데 순식간에 그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읍-”

다시 한번 부드럽고 뜨거운 입술이 닿았다. 아플 정도로 입술을 깨물고 순식간에 그의 혀가 안으로 파고들었다.

놀라 밀치는 손에 물 흐르듯이 깍지를 끼웠다.

절로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그의 커다란 손이 목덜미를 단단히 받쳤다. 긴장을 풀라 다독이듯 주무르니 입이 벌어지는 건 본능과도 가까웠다.

“흣.”

“더 내밀어 봐.”

탁한 음성에 몸이 찌르르 울렸다. 치열을 매끄럽게 훑고 지나가 여린 점막을 곤혹스럽게 건드렸다.

“흐, 잠깐. 아니, 이렇게까진.”

가까스로 밀어내자 칼리프가 아쉬운 듯 입술을 떼며 리티아의 도톰한 입술부터 관자놀이까지 쪽쪽 입을 맞췄다. 더없는 친밀한 행동에 당황스러운 건 리티아였다.

이건 정말 죽고 못 살 연인들이나 할 법한……. 물론 그와 계속 만나겠다고 한 건 리티아였지만 이건 더 깊은, 오랜 애정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리티아가 멈추라며 그의 뺨을 잡았다.

“그, 그만해요.”

“응.”

그렇게 말하는데 그는 평소보다 입꼬리가 올라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왜 이런 위험한 짓을 계속하고 싶으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된 대답은 몇 번이고 물어도 듣기 힘들 것 같으니.

“들킬 일 없을 거야.”

“……장담할 수 있어요? 안 그럼 진짜 화낼 거예요.”

“정말이야. 아깐 그렇게 놀랄 줄 몰랐어.”

아예 모른 체 하면 서운해할 것 같았다고, 그래서 최소한으로 한 거라고 손등에 입을 맞추며 변명을 하는데 그렇게까지 하니 리티아도 할 말이 없어졌다.

행동을 멈춘 그의 얼굴을 보는데 순간 보라색의 안광이 스쳤다.

리티아가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다시 쳐다봤는데 원래 보던 검은 눈동자만 그녀를 오롯이 보고 있었다.

“……칼리프는 그거 없네요.”

방금 스친 보랏빛 때문인지 아까 오브들이 일제히 끼고 있었던 귀걸이가 생각났다. 귓불에 딱 달라붙어 있던.

“뭐가?”

“다 보라색 귀걸이를 하고 있던데. 상징 같은 건가요?”

“아, 간단한 제어장치?”

“제어요?”

“가끔 제힘을 믿고 우쭐대는 놈들이 있어서. 잠식되면 곤란하거든.”

“잠식이 돼요?”

칼리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력은 쓰면 쓸수록 바닥이 드러나 한계가 있는 힘이라면, 어둠의 힘은 끌어내면 끌어낼수록 몸에 부담으로 온다고 했다.

성격만 다를 뿐 비슷하다고 생각한 리티아는 꽤 놀란 얼굴을 했다.

“성력에 대해서도 잘 알아요?”

“그냥 조금.”

“또 부탁할 거 없어?”

“……왜요?”

싱긋 웃으며 물어보는데 어지간히 수상했다.

“그럼 또 입 맞춰줄까 싶어서.”

그 말에 리티아가 그를 한 번 더 밀어냈다.

“안 해요, 없어요. 약속 안 지키면 그냥 어디론가 숨어버릴 거예요.”

“그럼 안 되지.”

“……그런데 정말 우리들하고 동행을 한단 이야기가 맞아요?”

“하나도 안 들었구나.”

“……아깐 칼리프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기억이 안 나요.”

칼리프가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 본 다섯 명만 동행하게 될 거야.”

“……역시 다른 사람하고 대체하는 건.”

“안 들키게 약속할게.”

결국 부탁은 들어줘도 그 부탁은 못 들어준다는 뜻이다.

아니, 뭐 그래.

하지만 이번에도 아쉬운 건 리티아였다.

“꼭 약속 지켜요. 알은체하면…….”

칼리프가 불시에 리티아의 뺨에 짧게 입을 맞췄다.

리티아가 눈을 흘겼다.

“사람들 있는 데선 안 한다고 약속할게, 그럼 된 거지?”

“……좋아요. 근데 이미 테니아 분들하고 다른 성기사들 모두 외부에 나갔다고 했는데.”

“그건 다른 놈들을 보낼 거야. 어차피 탐지 정도만 필요하다고 했거든.”

“아…….”

그러다 보니 또 의문이 생겼다.

“……원래 협조를 부탁하면 이렇게 쉽게 들어주나요?”

아무리 일주일 내내 아니 그것도 넘게 회의를 했다고 해도 워낙 사이가 안 좋아서 이런 식으로 해결이 될지는 몰랐다.

더구나 이들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으니 자신들의 땅만 관리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드문 일이라고 해도.

“그건 아니지만 필요한 걸 내줄 경우에는 우리 쪽에서도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지.”

“뭘 내줬는데요?”

“비밀.”

“……뭐야.”

싱겁게. 리티아가 괜히 입을 삐죽였다.

하지만 정말 이번에는 말해줄 생각이 없는지 리티아가 재차 물어봤지만 그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럼 연회에도 올 거예요?”

“협정을 공표하는 자리기는 해.”

“그럼 온다는 말이네요.”

“그렇게 아쉬워하면 더 가고 싶잖아.”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요.”

여전히 반쯤 껴안은 상태라 그의 웃음소리에 울림이 그대로 전해졌다. 몇 번이나 밀어냈으나 어느새 다시 안겨 있어 포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도 대화가 끊기고 나니 어색함이 감돌았다.

방금까지 키스를 나누고 몸을 맞댄 상태라 주변보다 훨씬 온도가 높은 탓도 있었다.

아까부터 뭉근하게 허리를 문질러 오는데 위험했다. 결국 리티아가 헛기침을 하며 그를 또 한 번 밀어냈다.

“이제 가요, 정말 들킬지도 모르겠어요.”

“오기 전까지는 있어도 돼?”

“…….”

“아니면 저번처럼 네가 좋아하는 곳으로 데려다줄까.”

뭘 해도 함께 더 있겠단 뜻이 단단해서 리티아가 결국 어이없어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그거잖아요.”

“난 네가 그렇게 웃는 게 좋아.”

“…….”

“많이 웃으면 더 좋을 텐데.”

뜻 모를 말을 하며 리티아의 하얀 목선 위에 칼리프가 짧게 입을 맞췄다.

칼리프의 커다란 몸을 지탱하려다 보니 자꾸 뒤로 한 걸음씩 뒷걸음쳐졌다.

목선을 따라 내려온 입술이 쇄골 근처를 깊게 눌렀다.

“칼리프, 잠깐만.”

“조금만 더 이따 가도 돼?”

“……들켜요.”

“안 들켜, 걱정 마.”

“…….”

황당했으나 입을 먼저 맞춘 건 저였으니 할 말이 없었다.

새기듯 쇄골과 목덜미에서 귓불 또 귓가에 연신 입을 맞추던 칼리프가 기어코 침대까지 다다랐다.

리티아의 무릎이 침대 모서리에 탁 걸려 뒤로 넘어졌다. 리티아의 불안한 시선이 문으로 향하는 순간 칼리프가 그녀의 입술을 파고들었다.

열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몸은 정신마저 흐트러뜨렸다.

와중에도 어깨가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하는데 그 고통 때문인지 더 빠르게 열이 오르는 느낌이었다.

리티아가 숨을 헐떡일쯤에야 그가 팔로 상체를 지탱하며 몸을 반쯤 일으켰다.

칼리프의 눈에 반쯤 흐트러져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리티아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그려 넣은 것 같은 눈매가 더욱 짙어졌다.

칼리프가 리티아의 드레스 가슴 앞을 가린 귀여운 리본을 살짝 끌어당겼다. 실내복이라 그런지 쉽게 풀어졌다.

“아…….”

칼리프가 고개를 내려 정점을 가볍게 핥자 대번에 리타아가 앓는 소리를 냈다. 하얀 손끝이 칼리프를 미약하게 밀어냈다. 칼리프가 작게 웃었다.

“끝까지 안 해.”

칼리프의 다른 손이 리티아의 다리를 따라 올라가 천천히 사이를 파고들었다.

“흐, 으. 아, 칼리프, 응, 잠깐.”

리티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천 사이를 내리누르는 느낌이 선명했다. 그날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술에 취해서였을까. 순식간에 온몸이 뜨겁고 간지러웠다.

“리티아.”

쇄골을 길게 혀를 내어 핥고 그 위에 다시 진득하게 입을 맞췄다.

리티아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며 그에게 경고했다.

“……으응. 아, 흔적 남기지 말아요.”

“응.”

그랬더니 오히려 입맞춤을 하던 곳을 핥기만 하는데 그게 더 간지러웠다.

칼리프는 리티아를 샅샅이 핥아 먹을 작정인지 한참을 물고 빠는 데만 심취했다. 두 번의 짧은 쾌락이 오가고 반쯤 늘어진 리티아의 입술에 칼리프가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예쁘다.”

“…….”

리티아가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부끄러움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드러난 건 가슴 조금뿐, 옷은 입은 그대로인데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흐물거리는 느낌이었다. 얇은 옷 위에 입을 맞추며 천천히 내려간 칼리프가 드레스 안으로 고개를 집어넣었다.

리티아가 다급히 손을 내려 막았지만 칼리프가 조금 더 빨랐다.

“아, 잠……읏, 깐!”

리티아는 허리를 휘며 새어 나오는 신음을 막기 위해 얼른 내렸던 두 손을 올려 제 입을 틀어막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