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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상대가 흑막이었던 것에 관하여-48화 (48/70)

48화

* * *

뜻밖의 질문에 사탕을 우물거리다 끄덕였다.

“네, 오빠가 하나 있어요. 좀 걱정이 많은 오빠긴 하지만.”

“그렇습니까. 생각은 하는데 별로 걱정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집에 갈 때보다 지금이 더 안전해졌지 않습니까. 그리고 워낙 혼자서도 잘 해내는 녀석이라.”

“제가 본 아이 중에 가장 야무지고 예쁘게 생겼어요. 그러니 아이들이 따르는 거겠죠.”

곤도르가 또 픽 웃었다. 벌써 두 번. 처음 본 순간부터 어제까지의 웃음 횟수보다 지금이 더 많았다.

“예, 그건 맞습니다.”

“사실 곤도르 경께는 늘 미안해요. 하지만 제가 무사히 테니아가 되려면 정말 대단한 기사님들이 필요했거든요.”

“동생이 더 안전해졌으니 그걸로 됐습니다. 어차피 석 달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맙고요.”

리티아는 정면을 보며 입 안의 사탕을 굴렸다.

대화가 끝나니 남은 건 정적이었다.

“곤도르 경.”

“예.”

“이런 물음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는데 곤도르 경은 오브들을 어떻게 생각해요?”

리티아도 모르게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어쩌면 이 질문이 리티아 자신을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정말 의문이 있었다. 정말 다른 사람도 다 그들을 의심하고 안 좋게만 보고 그러나 싶어서.

“오브 말입니까?”

“네. 아, 다른 건, 다른 건 아니고 오늘 도와준 게 좀 놀랐거든요.”

“저도 그 부분은 놀랐습니다. 협정 중이긴 하지만 그 외의 일이었으니까요.”

“네, 근데 다들 오히려 의심해서 곤도르 경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어요.”

“고마운 건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존재가 누구든 뭐가 상관입니까.”

명료한 대답에 리티아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정말 곤도르다운 답 같았다.

“명쾌한 답이네요. 동료와 생각이 같아서 기쁘고요.”

그 말을 하는데 곤도르가 잠시 리티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왜요?”

“성기사에게 동료라고 하는 분은 공녀님이 처음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제가 테니아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석 달은 무조건 같이 있어야 하니까 동료 맞지 않나요?”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뭘 그리 재밌게 이야기를 나누십니까.”

뒤에서 익살스러운 음성이 들렸다.

“마르마티 경. 펠루가 경.”

리티아가 왔던 쪽에서 둘이 어슬렁거리며 걸어왔다.

“치사하게 둘이 놀고 계실 줄은 몰랐는데요.”

“휴식이라고 해주세요. 여태 아이들 숙소에 있었거든요. 지금들 오신 건가요?”

밤 시찰도 해야 해서 펠루가와 마르마티는 시찰 인원에 포함되어 저녁을 먹자마자 외부로 나갔었다. 이제야 돌아온 것 같았다.

“좀 전에 와서 이제 막 쉬려던 참입니다. 또 여기 계실 것 같다는 느낌이 왔죠, 촉이.”

건장한 기사 둘까지 오자 이제 정말 뒤뜰은 인원이 가득 찼다.

여기서 더 오고 싶어도 다른 사람은 다른 휴식처를 찾아야 할 정도였다.

“아이들은 괜찮습니까?”

“네, 모두 잠들었어요. 아깐 정말 아찔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간식을 달라고 보채더라고요.”

“아이들이란.”

펠루가가 아주 징글징글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세 분을 포함해서 경들은 다 대처를 잘하시더라고요.”

“기사 훈련을 하다 보면 별일을 다 겪으니까요. 신전 안에서 있을 때가 가장 평범하다 보시면 됩니다. 공녀님께서는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사실 좀 그래요. 미리 공부도 많이 했는데 돌발 상황은 그런 걸로는 배울 수가 없나 봐요.”

“전 그 정도면 공녀님이 충분히 대처를 잘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옆에서 마르마티가 칭찬하듯이 말했다.

넷은 오늘 일에 대해서도 말하고 칭찬을 주고받으며 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그사이 두 명의 기사가 쉬러 왔는지 왔다가 다시 돌아갔다.

“저희도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습니다. 공녀님을 더 붙잡고 있다가 레페 님께 혼나겠습니다.”

펠루가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더니 벌써 한 시간 정도가 지났는지 10시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났다.

“어차피 한 팀인데 괜찮지 않을까요.”

“테메스와 어울리고 있는 테니아 후보는 공녀님밖에 없습니다, 현재.”

“그래도 저녁 식사 때는 다 같이 있잖아요. 연회 때도 같이 잘 있던데요.”

그러자 펠루가와 마르마티가 서로를 쳐다보며 픽 웃었다.

“더 자세히 한번 봐보십쇼. 숙소까지 데려다드리겠습니다.”

“아, 어차피 바로 저기라 혼자 가도 되는데.”

“그게 저희 역할입니다.”

그렇게 말하니 리티아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리티아가 머무는 건물까지 셋이 데려다주는 걸 막지 못했다.

* * *

리티아는 씻고 방에 들어와서도 자정이 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까 일에 의문이 안 풀려선지 아니면 피로가 덜 쌓인 건지는 모르겠다. 이 방은 특히나 읽을 책도 없고 정말 딱 침대와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방이라 더욱 심심하고 적적했다.

“아까 대화가 너무 재밌었나.”

세 명의 테메스와 대화를 나누는 건 정말 즐거웠다.

봉사를 하는 중에도 틈틈이 대화를 나눴는데 한 공간에서 그렇게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눈 건 처음이었다.

거기다 오늘은 늘 과묵하던 곤도르도 꽤 이야기를 많이 했고. 아까도 말했다시피 정말 동료가 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는. 이제 와 제가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의 자존심도 상하는 그런.

아까 타냐 하디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신전에 온 건 분명한데 그 외에 오브는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오늘 볼 거라고 말을 해서인지 꼭 약속해 놓고 약속 장소에 안 나간 것 같은 그런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시간도, 장소도 정하지 않았는데. 정말 이상한 노릇이었다.

솔직히 이따금 그가 하는 말 중에 의문이 드는 말들이 있는데 이를테면 ‘이제는 네가 웃었으면 좋겠다’고 한다거나 ‘이제는 버리면 안 된다’는 둥, 가끔 한숨을 쉬듯이 그렇게 말할 때가 있었다.

단순히 약속을 어기지 말라는 말과는 또 달라서. 그래서 자꾸 궁금해지니까 이렇게 기다리는 거다. 정말 그가 보고 싶어 기다리는 게 아니라.

“…….”

결국 리티아는 침대에 앉아 잠이 안 오는 걸 내내 버티다 일어서 창문의 고리를 살며시 열어두었다.

방은 좁은데 창문은 문의 반만큼 커서 바깥의 달빛이 그대로 들어왔다. 이쪽이 동쪽이라고 했는데 아침에는 커튼을 치지 않으면 눈이 아플 정도로 눈부실 게 분명했다.

워낙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그라지만 괜히 만나자고 했는데 문을 닫아놔서 헛걸음하게 할까 봐. 그리고 오늘 일에 관해 물어볼까 해서. 열어두는 것뿐이었다.

리티아는 그렇게 창문 걸쇠를 풀어놓고 환기가 될 정도로 살짝만 열어둔 뒤 반쯤 커튼을 치고, 다시 침대로 와 누웠다.

여전히 잠이 오지 않는 정신을 붙들고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간신히 선잠이 들다시피 잠들었는데 머리카락을 만지는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리티아는 그게 기분이 좋아 몸을 더욱 웅크렸다.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기척이 들리면 일어날 만도 한데 이상하게 그 손길에 더더욱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득해지는 잠결 속에서 리티아가 간신이 정신을 끌어올렸다.

계속해서 감기는 눈에 리티아가 옆으로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그냥 더 자.”

가뜩이나 눈을 뜨기 버거운데 상대는 더 자라 토닥인다.

리티아는 반대편으로 누워 또 금방 잠자리에 들려다 다시 간신히 눈을 떴다.

“……칼리프?”

“왜 깨. 자라고 했는데.”

가물가물한 눈으로 눈을 뜨자 어둠 속에서 칼리프의 얼굴이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창문이 워낙 커 달빛이 가득 들어온 탓이다. 등불이 따로 없었다.

칼리프가 리티아의 잠이 덕지덕지 묻은 눈가를 가볍게 문질렀다.

“더 자.”

“……깼어요. 언제 왔어요?”

그가 올 거라고 생각으로는 이미 예상을 했던 터라 그런지 전혀 놀랍지 않았다.

아니, 이제는 칼리프의 기상천외한 등장 방법이 벌써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좀 전에.”

“멋대로 들어오고.”

칼리프가 나직하게 웃는다.

“창문, 열어놓는 거 봤는데.”

그 말에 리티아가 확 잠이 깼다.

“내가 언제요?”

“아니면 말고.”

벌써 자정이 훌쩍 넘은 것 같은데. 대체 언제 봤지. 일부러 떠보는 거라 생각하고 리티아가 눈을 깜박였다.

리티아의 침대 왼쪽에 앉아 있던 칼리프가 반대편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림자처럼 가려지며 그가 위에서 리티아를 바라보는 모양새가 됐다.

“그래도 기다렸지?”

코앞까지 얼굴을 내린 그가 예의 그 여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어쩌면 정말 기분이 좋아서 짓는 미소 같기도 했다.

“아니……거든요. 그냥 오늘 신전에서 볼 수 있을 거라기에 생각은 한 번쯤 했었어요.”

“그래?”

“네.”

“흐음.”

하지만 전혀 믿어주는 눈치가 아니다.

칼리프가 얼굴을 조금 더 내렸다.

무척이나 가깝다고 느낀 리티아가 눈을 감았다.

한참 뒤 다시 눈을 뜨니 살짝 비틀어진 각도에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그는 한참이나 리티아를 바라보기만 했다.

“……뭐예요.”

“…….”

솔직히 그가 입을 맞출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틀린 것 같아 순간 부끄러움인지 수치심이 뭔지 하는 감정이 리티아 머리 전체를 지배했다.

너무나 가까워 고개를 돌려도 다 피할 수도 없었다. 간신히 옆으로 고개를 트는데, 그의 입술이 천천히 뺨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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