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 * *
“…….”
칼리프가 말없이 손에 쥔 목걸이를 쳐다봤다.
리티아는 그런 그를 의문스러운 눈으로 봤다.
“왜요. 방금 사용해 봤는데 크게 이상한 건 모르겠던데. 아, 성력을 흡수하는 것 같긴 하지만…….”
“이걸 사용했어?”
“네, 어떻게 쓰는지 몰라서 한번 해보려고요.”
잘못한 건가? 하지만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으니 어떤 잘못을 했는지 알 리가 없다. 적어도 리티아는 레페 신관의 설명을 듣고 만지기만 했으니 잘못한 것도 없었다.
하지만 칼리프의 얼굴이 너무 딱딱하게 굳어 리티아는 저도 모르게 칼리프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뺨에 손을 대자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을 하던 칼리프의 얼굴이 순식간에 풀렸다.
목걸이를 한 번 더 만지작거린 칼리프가 책상에 다시 내려놓으며 나직한 한숨을 쉬었다.
“성력을 안정시켜 주는 도구가 아니야.”
“아니라고요? 그러면요?”
레페 신관이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널…….”
칼리프가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닫았다.
“왜요? 말해도 돼요.”
칼리프가 리티아를 빤히 쳐다보다 뺨을 두 손으로 천천히 감쌌다. 마치 귀한 것을 만지듯 엄지 끝으로만 리티아의 뺨을 쓸었다.
“아니야. 네가 하고 싶은 건 다 하는 게 맞지.”
“……네? 그게 무슨……. 설명을 해줘야 알죠.”
“네 성력의 크기를 확인하는 도구야.”
“안정시키는 도구가 아니라요?”
칼리프가 끄덕였다. 표정은 많이 풀린 상태지만 여전히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근데 이걸 왜…….”
레페 신관은 안정시키는 도구라고 거짓말을 시키고 자신에게 줬을까.
리티아는 레페 신관의 말을 믿어야 할지, 칼리프의 말을 믿어야 할지 잠시 혼란이 왔다.
방금 스스로 도구가 성력을 흡수했던 걸 확인하면서 의아해했기에 무의식적으로 칼리프의 말이 맞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렇다면 레페 신관이 속인 이유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테니아의 걸맞는 성력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럼 왜 굳이 거짓으로 말한단 말이가.
우선 저한테 빌려준다는 명목으로 주긴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줬는지 안 줬는지는 알 수 없다. 만약 리티아에게만 준 것이라면 그것도 그것대로 이상했다.
후보는 다섯 명이고 그 안에서 아테스 신이 내려다보고 또 한 번 신탁을 내린다고 들었다. 그래서 봉사도 하고 온갖 세상의 이로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인데 왜 신관이 개입을 한다는 말인가.
“…….”
무엇보다 이 도구를 칼리프가 먼저 알아챘다는 점도 의문이었다.
리티아는 칼리프에게서 한 걸음 뒤로 주춤 물러났다.
“리티아.”
“당신은 이걸 어떻게 알았어요?”
“예전에 본 적이 있어.”
“예전에요?”
“응,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야. 정말 그건 안정화시키는 도구가 아니야. 확실해.”
리티아는 다시 목걸이를 손에 쥐었다.
슬며시 성력을 꺼내자 희미하게 또 도구가 흡수했다.
결국 리티아가 다시 내려놓았다. 한참 혼자서 생각을 정리한 리티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왜 레페 신관이 제게 거짓말을 했을까요? 왜 이걸 주고요.”
“어떤 이유에서든 널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지.”
“……완전한 신탁이 아직 내려오지도 않았는데도요?”
“그래.”
“레페 신관은 그저 고위 신관일 뿐인데, 왜 이런 일을.”
“대신관 칼라테스가 시킨 거겠지.”
“성하께서요?”
리티아는 자신에게 관대하고 온화했던 대신관을 떠올렸다.
마치 아끼는 조카를 보듯 리티아를 걱정하고 또 아꼈더랬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그렇게 느낄 정도로 대신관은 리티아를 챙겼었다.
실제로 총애를 받는다는 말까지 돌 정도로 대신관이 리티아를 특별히 생각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결정은 아테스 신이 하는 건데 대체 왜…….”
“…….”
칼리프한테 답을 원한 게 아니라 자조적인 물음이었다.
대체 왜? 만약 리티아가 유력한 후보라고 생각했는데 로아 캐번디시가 테니아가 된다면? 이건 다 물거품이 아닌가.
리티아의 생각이 깊어질수록 리티아의 고개가 아래로 향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데 대체 왜 속인 거지. 이런 도구도 충분히 필요하다면 흔쾌히 가지고 있을 텐데 속였다는 그 상황 자체가 궁금한 거다.
“……찝찝한데.”
그럼 내일 이걸 계속 착용하고 있어야 하나. 괜히 주시를 한다고 하니 감시당하는 기분이라 썩 좋지가 않다.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리티아의 뺨으로 다시 손이 닿았다. 리티아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뭘 해줄까.”
“……뭘 해줘요?”
“네가 원하면 뭐든.”
칼리프가 그렇게 말해주는데 든든한 안정감을 느꼈다.
“……모르겠어요. 왜 이런 걸 속였는지 좀 알아봐야겠어요.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봉사를 다닐 때부터 늘 의문을 달고 살아선지 영 찝찝함이 떨어지지 않았다.
“안 하고 있는 게 나아.”
“혹시 뭘 더 알고 있어서 그래요?”
이걸 보자마자 칼리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었다. 과거에 본 적이 있어서, 단순히 이 도구를 알고 있다고 짓는 표정이 아니었다.
칼리프가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널 감시한다는데 좋을 수가 없지.”
그런가. 리티아가 끄덕였다.
“그럼 안 하고 있는 게 낫겠어요. 내일 가져가는 걸 깜박했다고 해야겠네요.”
리티아는 제 손을 뻗어 칼리프의 손을 잡았다. 칼리프는 순순히 제가 하는 대로 뭐든 받아주고 있었다. 오늘 만나려고 한 이유는 우선 이게 아니었다.
“균열에서요.”
“응.”
“내가 위험해 보여도 직접 나서지 말아주세요, 날 구해준 건 무엇으로 갚지 못할 정도로 고맙고, 날 위해 나선 거라는 것도 잘 알아요. 근데 자꾸 그걸 갖고 이용하려고 하니까. 내일이 아니더라도요.”
“…….”
“칼리프도 곤란해지긴 싫잖아요. 나 때문에 괜한 소문이라도 돌면.”
“나는 상관없어.”
“…….”
“하지만 너는 그러면 안되니까.”
칼리프가 픽 웃으며 다시 뺨을 쓸었다. 리티아는 괜히 더욱 미안해져 입을 다물었다.
“내가 좀 더 신경 쓸게.”
“……고마워요.”
매번 뭐든 말할 때마다 뽀뽀라도 달고 응해주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제 말대로 해주겠다고 하니 도리어 허전해진 건 리티아였다.
리티아가 잠시 머뭇거리는데 칼리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음, 아니에요.”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리티아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정말 아니에요.”
정말 이상하다. 테오스가 테오스를 의심하고 오브의 말을 믿다니. 하지만 마음이 그렇게 향하고 있었다. 리티아는 칼리프에게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말했다.
“내일 어디로 가요?”
“따라가지 말까?”
“……아뇨, 굳이 그렇게까지는…….”
“그럼 널 따라가야지.”
뭔가 질문이 한 바퀴 돈 듯한 느낌에 리티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 그래도 갑자기 로아 캐번디시가 거기까지 자신을 감시하려고 쫓아오진 않을 테니 같이 가는 건 문제없겠지. 리티아가 정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미 오브가 나뉘어서 합류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고.
어쨌든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리티아를 감시하는 사람이 둘이다. 우선 지내면서 이 찝찝함에서 벗어날 방법부터 찾아야겠다.
* * *
이튿날.
평소보다 느긋하게 나와 일행 모두 마을로 향했다.
이쪽에 도착하고서도 마을 쪽으로는 전혀 오지 않아 마을의 모습조차 어떤지 몰랐는데 마을 입구에서부터 꽃다발 뭉치가 일행을 반겨주고 있었다.
아주 작은 행사라고 들었는데 마치 축제장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안쪽에서는 뿔피리 연주하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오늘 하루는 정말 푹 쉰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신관 하나가 꽤 즐거운 듯이 말했다.
마을 입구를 지나서면서부터는 자연스럽게 멤버들이 갈라졌다.
대부분 후보와 테메스가 붙는 쪽으로 덩어리지어 흩어졌다.
리티아는 아무 생각 없이 테메스를 따르다가 뒤에 로아 캐번디시가 같은 방향으로 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겹지도 않나.”
리티아가 혼자 중얼거렸다.
“예, 공녀님? 뭐라고 하셨는지 제가 잘 못 들었습니다.”
마르마티가 리티아에게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아뇨,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로아 캐번디시라는 분 말입니다.”
그런데 마르마티가 먼저 로아 이름을 꺼냈다.
“네?”
“언제 어디서고 공녀님만 빤히 쳐다보네요. 저쪽 후보도 그렇고 테메스도 그렇고 대체 왜 이렇게 우리 공녀님을 좋아하는 걸까요. 우리 공녀님인데.”
마르마티가 잔뜩 빈정거렸다.
리티아가 픽 웃었다.
“제가 어지간히 싫어서 그런가 봐요.”
“아무튼 피곤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네요. 그 시간에 역량이나 키우지. 아, 공녀님은 뭘 좋아하십니까? 이런 구경은 많이 안 해보셨죠?”
리티아가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보며 끄덕였다.
“네, 그런데 전부터 이런 거 많이 보고 싶긴 했어요.”
하다못해 예전에는 창문까지 가는 것조차도 힘들어서 창문을 보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일 때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공녀의 신분이라 이런 걸 즐기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무렴 좋았다.
무엇보다 자유로운 이 상황이 좋았다. 일행들을 위해 마을 사람들이 준비했다고 해도 우선 그들이 바라는 건 축복이라, 가자마자 축복을 받기 위해 줄을 서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말 그대로 자신들이 준비한 걸 즐겨달라는 뜻처럼 보이니 좋을 수밖에.
일부러 오늘은 할당된 제복도 입지 않고 가벼운 차림을 했더니 시선이 쏠리지도 않았다.
“잠시만요!”
바글바글한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 바쁘게 지나가면서 리티아를 퍽 치고 지나가려는 순간, 단단한 몸체가 리티아를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