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 * *
리티아의 뒤통수와 등이 차례대로 침대에 맞닿았다.
제 위를 느릿하게 올라타는 칼리프의 목에 리티아가 팔을 천천히 휘감았다. 귓가에 맞닿는 그의 입술에서 기분 좋은 웃음이 울렸다.
“리티아.”
“…….”
쪽, 볼과 콧등에 짧게 입을 맞춘 뒤 부드러운 입술 위에 그의 숨결이 내려앉았다. 쪽, 쪽 부딪히는 입맞춤에 비스듬히 맞물리는 입술 사이로 뜨거운 혀가 내리눌리며 질척한 소리가 났다. 귓불을 만지작거리는 손길에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혀를 부드럽게 감아 빨아올리고 툭툭, 점막을 유린할 때마다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뜨겁다. 뺨과 목덜미를 쓰다듬는 손마저 열기를 부추겼다.
“……흐.”
서로의 체향이 어지러울 정도로 뒤섞이며 목덜미가 뜨끈해졌다. 커다란 손이 리티아의 허리를 뭉근하게 문지르며 칼리프의 다리가 리티아의 다리 사이를 벌리듯 파고들었다.
쪽, 쪽. 금방 열에 들뜬 리티아의 몸에 쉴 새 없이 그의 입술이 맞닿았다. 젖은 혀가 질척하게 궤적을 그리며 새하얀 살결을 탐했다.
“으응, 흐.”
“리티아.”
리티아가 왼쪽 어깨의 열기를 점점 강하게 느끼며 몸을 비틀었다. 동시에 벗은 칼리프의 어깨 위에 리티아와 똑같은 문양이 어둡게 드러났다.
열기가 강해질수록 온몸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지는 느낌이었다. 잠깐 스치는 살갗에도 열이 맞물렸다. 온몸에 뜨겁게 닿는 혀가 마치 화인처럼 감각을 남긴다.
“아……!”
봉긋 오른 정점이 삼켜지며 리티아가 치켜올린 허리를 바르르 떨었다. 감각 하나하나가 생생해서 마치 그에게 온몸이 삼켜지는 기분이었다.
리티아가 쾌락으로 몸을 비틀며 칼리프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헤집었다. 더, 더, 아니, 안 돼, 아니, 더. 두 가지 혼돈이 금세 쾌락에 잠식당했다.
커다란 손이 천천히 허리를 타고 내려와 뭉근하게 문지르며 허벅지를 벌려 들었다. 쪽, 쪽, 쪽, 쪽 궤적을 남기며 아래로 내려오는 뜨거운 입맞춤에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 때 열기를 담은 혀가 은밀한 곳에 닿았다.
“아, 으……. 아, 칼리프!”
리티아의 허리가 다시금 튕겨 올랐다. 시트를 미는 발끝에 잔뜩 힘이 실렸다. 혀가 더 깊게, 더 안으로 내리눌렀다.
정점 가까이 찍기 시작한 쾌락에 리티아의 눈가에 눈물이 주륵 흘렀다. 머릿속이 진창으로 처박혀 오로지 그가 주는 감각에만 온 신경이 몰려들었다.
칼리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리티아의 뺨에 칼리프가 진득하게 입술을 붙였다.
“리티아.”
“으응. 아, 칼리프. 흐.”
그것도 잠시였다. 뭉근하게 차오르기 시작한 압박감에 리티아가 입술을 깨물며 신음했다. 그마저도 차라리 제 입술을 깨물라며 칼리프의 입술에 삼켜졌다. 그 순간 리티아의 안에 그가 가득 들어찼다.
“아, 아!”
리티아의 몸이 나부끼듯 흔들렸다. 흐트러진 은발, 잔뜩 젖어 흐무러진 푸른 눈, 할딱이는 입술.
칼리프는 빠짐없이 사랑스러운 리티아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리티아, 리티아.”
숨결처럼 닿는 이름이 몽롱하다. 리티아는 고통과 지독한 쾌감 그 어디에서 나부끼며 칼리프의 목에 다시 팔을 감았다.
아아,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느낌에도 리티아는 그를 끌어안는 걸 멈출 수 없었다. 그 순간 눈앞이 새카맣게 점멸했다.
* * *
끝날 것 같지 않던 밤, 은밀한 행위는 동이 어슴푸레하게 타오르며 잦아들었다.
천천히 리티아가 축 몸을 늘어뜨렸다. 끊임없이 쪽, 쪽, 쪽, 쪽 연신 내려앉는 입맞춤에 리티아가 자잘하게 튀었다.
“……그만, 해요.”
반쯤 쉰 목소리로 리티아가 몸을 힘겹게 굴려 엎드렸다.
그런 리티아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어깨에 입술이 또 닿았다.
리티아가 보란 듯이 한숨을 쉬자 칼리프가 나직하게 웃었다.
“알았어, 정말 그만할게.”
“내가 할 말도 있다고 했는데…….”
리티아가 입을 삐죽였다.
먼저 시작한 건 분명 리티아였지만 행위에는 적당히가 없었다. 리티아가 허락한 기쁨이라도 만끽하는 것처럼 그렇게 몰아붙였다.
같은 시간을 함께했는데 한 명은 초췌하게 침대에 눌어붙었고 한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지만. 어깨가 아직도 열기로 얼얼했다.
리티아가 목이 마르다 웅얼거리자 칼리프가 마시기 쉽게 물 잔을 대주었다.
“이상한 소문을 들었어요.”
칼리프가 리티아의 부드러운 은발을 만지작거렸다.
궁금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는 뜻과 같았다.
“화 안 나요?”
“넌 아니라는 거 알잖아.”
“……나만 아는 것 같으니까 그렇죠.”
“다른 건 별로 상관없어.”
“……괴물 취급 해도요?”
“응, 네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까.”
어쩜 이렇게 태연할 수 있지. 속이 타는 건 오히려 리티아 자신인 것 같았다. 자신이 칼리프였다면 아까 지트에게 그랬듯 무슨 짓이든 벌였을 것 같은데.
“이상해.”
왜 이 남자는 믿어주는 사람이 자신 하나로 족하다고 하는 건지. 괜히 속이 상해 베개를 끌어안고 얼굴을 묻었다.
“얼굴 보여줘.”
“……별로 안 내켜요.”
“보여줘, 응?”
“…….”
리티아가 슬쩍 다시 고개를 들었다. 칼리프가 웃으며 모로 누운 채로 리티아의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리티아의 체향을 삼킬 것처럼 그가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나한테 중요한 건 네 존재뿐이야.”
“…….”
“네가 날 다시 버리지만 않으면 돼.”
다시……?
“다시라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그의 의문스러운 말에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건 처음인 것 같다. 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다시라는 건 이미 한 번 행위가 있었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니까.
“…….”
“칼리프, 그게 무슨 뜻이에요? 가끔, 가끔 나는 칼리프가 하는 말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어요.”
첫눈에 반했다고 하기엔 좀 더 맹목적인 뭔가가 있었다.
하지만 칼리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한 말을 리티아가 들었다는 걸 알면서도, 몇 번이고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해도 칼리프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네가 스스로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그 말 한마디를 남긴 채.
* * *
일상으로 복귀한 건 그날 저녁이었다.
덕분에 리티아는 처음 사고를 치던 날의 아찔함을 또 한 번 느껴야 했다.
다행히 리티아가 방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리티아가 원래 방에 있었다고 여기고 있었다. 최면이라기엔 너무나 자연스럽고 정교해서 리티아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리티아는 돌아와서도 칼리프가 한 말을 곱씹었다. 몇 번이고 다시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써봐도 실패로 돌아갔다.
“아가씨, 이것 좀 보세요.”
에밀리아가 수줍게 뭔가를 내밀었다.
“응?”
에밀리아가 내민 건 새하얀 손수건 두 장이었다.
“손수건?”
“제가 틈틈이 자수한 거예요. 아가씨 다시 떠나실 때 드리려고…….”
리티아가 손수건을 받아 들었다. 끄트머리에 귀여운 검은 고양이가 자수로 놓아져 있었다. 끝에는 파란색 나비가 함께 있었는데 리티아가 지어준 이름 때문에 해놓은 것 같았다.
리티아의 얼굴이 금방 환해졌다.
“뭐야, 너무 귀여운데.”
“마음에 드세요?”
“응, 너무. 언제 이런 걸 했어?”
“돌아오시고 나서도 제대로 못 쉬신 것 같아서 웃으셨으면 해서 조금씩 하기 시작했는데 금방 끝났어요.”
“고마워. 정말 마음에 들어. 이렇게 귀여운 건 정말 처음이야.”
“좋아하셔서 다행이에요. 요즘 계속 생각에 잠겨 계신 것 같아 걱정했거든요.”
“……미안. 요즘 이상하게 생각이 잦네.”
“아니에요! 제게 미안해하지 마세요. 그저 아가씨께 고민을 덜어드릴 수 없어서 그래요.”
리티아가 웃으며 고양이 자수를 매만졌다.
“이것 때문에 고민이 다 날아간 것 같은데?”
에밀리아가 배시시 웃었다.
정말 그랬다. 이 작은 게 뭐라고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아무래도 오브에 관한 소문은 잦아들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괜찮겠지. 그들은 강하니까.
부디 지금보다 더 서로의 존재가 나빠지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며칠 후.
다시 테니아 활동 복귀가 가시화되었다.
제국 전체적으로 토벌이 이뤄지면서 아테온은 점점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날 이후 지트의 상태가 궁금해 알아봤는데 연회장에서 크게 다쳐 바깥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말만 들었다. 그래도 죽지 않아 다행이었다.
리티아는 테메스들과 함께 거의 매일 대신전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었다.
회의는 매일 열렸고 신전의 테니아와 사제와 성기사들도 대거 토벌에 투입되면서 신전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인원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테니아의 할 일을 후보들이 잠시 대행하게 된 것이다.
“어? 예쁜 언니다.”
“에나?”
그런데 뜻밖의 손님이 있었다.
곤도르의 동생인 에나가 대신전에 찾아온 것이다.
고맙다는 인사 이후 여전히 데면데면하던 아이였는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리티아에게 먼저 아는 척을 했다.
“오빠 보러 온 거니?”
“아니요. 오빠는 저 온 거 모르는데요.”
여전히 또랑또랑하게 말을 하는 에나의 모습에 리티아가 작게 웃었다. 알고 보니 에나는 리티아가 보내주었던 의사와 함께 대신전을 찾은 것이었다. 아침에 약간 발작 증상을 일으켜 왔는데 다행히 도착하기도 전에 상태가 좋아졌다고 했다.
그래서 확인만 하고 돌아가려고 하다 이리로 온 모양이었다.
“아마 곧 오실 것 같은데. 여기서 기다릴래?”
그러자 에나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리티아의 옆에 다가섰다.
“요즘은 왜 거기 안 와요?”
에나가 새침하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