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 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 (43/154)


#43 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
202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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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소리도 내지 않고 그냥 둥글게 모았다가 살짝 벌어지게, 입 모양만 빚어내는 것뿐인데 이렇게 귓가가 간지러울 건 뭔지.

헤르한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반가운 마음을 감추기 위해 애써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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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리엘라. 마침 할 말이 있었는데 잘 왔군. 잠시 여기에 앉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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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제는 굳이 두 번 명령하지 않아도 가장 가까운 자리에 와서 앉는 리엘라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헤르한은 문득 깨달았다.
아시온의 말대로, 이제부터 제법 ‘난데없고’, ‘당황스러울’ 소식을 리엘라에게 전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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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부담스러워할 텐데. 어쩌면 아예 싫다고 거절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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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하실 말씀이 무엇인가요?”

리엘라가 재촉까지 하는데도 헤르한의 입술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욕심도 많다며 수십 명의 원로가 혀를 내두르고 나갔을 정도로 당당하고 뻔뻔하던 자신이 어쩌다가 이 작은 여자 앞에서 망설이는 신세가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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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 너를 리오타 왕국 대사로 임명할까 하는데. 물론 내가 하는 것은 아니고 리오타 왕국 왕실이 하는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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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왕국 대사……요?”

리엘라는 역시나 눈을 휘둥그레 떴다.

헤르한은 차분히 상황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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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인 직위다. 실제로 너에게 업무를 주진 않을 거야. 다만 누구든 널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의 지위와 권력은 생기겠지. 또 리오타 왕국의 파견직이니 이곳의 정세나 파벌로부터 자유로울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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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호수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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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궁을 공관으로 쓸 예정이야. 아, 물론 겉으로 보이기만 그렇고, 네가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내부를 개조할 생각이고…….”

헤르한은 이것저것 많은 단서들을 붙였다.

혹시나 리엘라가 손사래를 치며 도망이라도 갈까 봐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게, 또 최대한 다정하게. 단호한 말로 대신들을 제압하던 것과는 영 딴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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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그렇게 헤르한의 설명을 끝까지 다 듣고 나서야 리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하고 자그맣게 달싹이는 입술이 헤르한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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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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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리엘라가 건넨 대답은 저쪽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아시온마저 놀랄 정도로 간단명료했다.

이렇게 쉽게? 이렇게 순순히?

모처럼 헤르한과 아시온이 똑같은 표정으로 눈을 깜박거렸다. 반면 리엘라는 반듯이 앉은 자세에 흐트러짐 하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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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준비해야 할 것은 없나요? 아무리 업무를 맡진 않더라도 기본적인 공부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책이라도 골라주시면 읽어둘게요. 아, 제스 경께 부탁해볼까요?”

오히려 다소 적극적이기까지 한 모습에 헤르한은 잠시 얼이 빠졌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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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내거나 싫어할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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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은 나지만 싫지는 않아요. 폐하의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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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너의 뜻인 것도 아니지. 리엘라. 네가 원하는 것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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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당연히 원하는 게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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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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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글쎄요. 더 출세하는 거?”

헤르한은 정말 뭐라도 다 해줄 작정으로 물은 말이었는데, 리엘라는 장난스럽게 왕국의 인장이 찍힌 봉투를 흔들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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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조금 신나요. 저, 의외로 권력욕 있는 타입이었나 봐요.”

리엘라가 빙긋 웃었다.

그건 예상도 못 한 해맑음이라서 헤르한은 리엘라를 따라 실소를 터트려버리고 말았다.

*

그날 오후, 소식을 접한 제스는 급하게 호수궁으로 향했다.

설마설마하며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선 제스는 부산스러운 실내 풍경이 황당해서 할 말을 잃었다.

일꾼들이 정신없이 오가며 짐을 나르고 실내 치장을 하는 동안, 리엘라는 제일 안쪽 침실 안에서 짐을 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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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는 겁니까? 제 말 알아들었다면서요?”

제스는 팔짱을 끼고서 전투적으로 리엘라에게 다가갔다.

나름대로는 사납게 인상도 써가면서 겁을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리엘라는 제스가 다가온 것을 한번 흘긋 보고는 다시 자기 할 일에 집중하기만 했다.

대체 뭐 하는 여자야, 이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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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갖고 놀았습니까? 폐하께 더 다가가지 않기로 해놓고선, 호수궁이니 왕국 대사니, 그 말도 안 되는 폐하의 계획에 동참하겠다고요? 무슨 속셈입니까? 아. 막상 한 자리 차지하게 되니 마음이 변하셨나? 기왕 이렇게 된 김에 폐하 곁에서 한몫 두둑이 챙겨보자, 뭐 그런 거예요?”

제스의 날카로운 말에 리엘라가 고개를 들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 얼굴로 자신을 빤히 보는 그녀의 시선에 제스는 왠지 모르게 살짝 주눅이 들었다.

분명, 몇 시간 전에 연구실에 찾아왔을 때만 해도 리엘라는 꽤 위태로워 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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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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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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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손 남으시면 거기 짐 좀 이쪽으로 옮겨주실래요?”

그런데 이젠 위태롭긴커녕 뻔뻔할 정도로 씩씩한 것이었다.

제스는 팔짱을 풀지 않고서, 리엘라가 옮겨달라던 짐을 얄밉게 발끝으로 톡 쳐냈다.

그러자 리엘라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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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 어쩔 겁니까!”

제 발 저린 제스가 소리를 버럭 지르는데도 리엘라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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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알아들었다고 했지, 폐하와 멀어지겠다고 하진 않았어요.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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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자 하니 이거 한번 제대로 싸워보자는 듯한 말이라 제스가 이를 악문 순간 리엘라는 자기 말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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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폐하께서 제게 물으시더라고요. 제가 원하는 게 뭐냐고. 저도 당연히 원하는 게 있다고 대답했고요.”

그래. 있으시겠지. 바라는 게 있으니 내 경고도 못 들은 체하고 계속 폐하의 옆에서 이러고 있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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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폐하의 평화를 바라요.”

어디 한번 그 잘난 속내를 들어나 보자 하고 턱을 오만하게 내밀던 제스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그대로 멈춰서 입을 벌렸다.

제스가 그렇게 얼이 빠져 있는 동안에도 리엘라의 의젓한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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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폐하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시면 좋겠어요. 제가 곁에 있어야 폐하의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렇게 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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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봐요. 리엘라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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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도요. 저도 그 옆에서 행복하고 싶어요.”

뭐야, 그러니까 이 여자는. 폐하가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기어이 그 곁에서 자기 욕심을 다 채우겠다는 건가.

제스가 리엘라를 빤히 보는데도 리엘라는 이제 그런 시선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했다.

이 여자를 이렇게 용감하게 만든 건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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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처럼 그렇게 쉬운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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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 것 알아요. 아시온 대장님과 제스 경도 같은 길을 가고 계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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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릅니다. 나는 분명히 말렸습니다. 나중에 딴말하지 마십시오. 나 귀찮게 하지도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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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늘 말꼬리를 흐리고 위축되어 있더니, 어째서 오늘은 이렇게 야무진 것인지.

제스는 그런 리엘라를 조금 흘겨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대신 그는 아까 리엘라가 옮겨달라고 했던, 그래서 자신이 반대 방향으로 툭 차버렸던 그 상자를 들어서 리엘라의 앞쪽에 옮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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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폐하 앞에서 먼저 무너지면 안 됩니다. 절대로요. 끝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센 척하세요. 아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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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제스 경께서 하실 말씀은 아니지 않나요? 바로 얼마 전에 저랑 폐하께 술주정까지 하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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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니까요. 내 꼴 안 나려면 잘하라고요!”

여러모로 민망한 것을 떨쳐내려고 제스는 또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에 리엘라가 마침내 씨익 웃었다.

어쩐지 앞으로 제스와 자주 싸우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오늘은, 자신의 승리였다.

*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선대 황후의 사망 이후, 10년이 넘게 방치되어 있던 호수궁은 리엘라의 적극적인 주도에 따라 다시 빛나는 모습을 되찾아갔다.

일꾼들과 함께 청소를 끝낸 뒤, 매일 오후 리엘라가 향하는 곳은 황실 서고 또는 제스의 연구실이었다.

거기서 리엘라는 뒤늦은 공부에 삼매경이었다. 정치와 외교, 귀족의 예법까지 두루 건들며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덕에, 귀찮아진 쪽은 제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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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뭐 개인 교사입니까? 정말 귀찮아 죽겠습니다. 저는 제 연구만 하기에도 바빠요. 리엘라 양 때문에 아직 약 성분 조사도 다 못 끝냈다고요!”

한껏 성질이 난 제스의 토로에 헤르한은 아주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서 헤르한이 바라보고 있는 건 이 순간에도 자기가 온 줄 모르고 저 안쪽에서 책에 코를 박고 있는 리엘라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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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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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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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심심했었나? 저렇게 열심히 할 줄 알았으면 진작 뭐라도 맡길 것을 그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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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말문이 막힌 제스가 아무 대꾸도 못 하고 기막혀하는 사이, 헤르한은 리엘라의 앞까지 다가가 인기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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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

리엘라는 화들짝 놀라며 책을 덮었다.

아, 폐하, 오셨어요, 하고 반갑게 자신을 맞이하는 그 모습이 헤르한의 눈에는 더 사랑스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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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하면 보좌관을 하나 붙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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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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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젠 명색이 왕국 대사니까 보좌관이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공부도 그자에게서 배우면 되고. 제스보다 더 친절하고 똑똑한 자로 구해주지.”

그 말을 들은 제스가 뒤에서 홀로 격분했으나 헤르한과 리엘라는 신경 쓰지 않았다.

리엘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방긋 웃으며 크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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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그 밝은 대답이 헤르한에겐 또 뜻밖의 기쁨으로 다가왔다. 꼭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는 것처럼.

자신이 한 말에 리엘라가 이렇게 단박에, 또 맑고 씩씩하게 대답한 적이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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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좋다니 나도 기분 좋군. 그런데 요즘 왜 이렇게 내 말을 잘 듣지? 불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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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게’. 

그 말에 리엘라는 미소 짓는 척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잠시 숨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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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센 척하세요. 아셨습니까?’

 
제스의 당부가 떠올랐다.

그 말을 곱씹고 또 곱씹은 뒤, 리엘라는 다시 고개를 들어 활짝 웃었다.

헤르한은 환한 리엘라의 모습이 참 예뻐서 리엘라를 따라 따스하게 웃었다.

리엘라의 간절한 바람대로, 평화롭게.

***

그 무렵 리오타 왕국.

집무실 문이 벌컥 열리자, 늙은 국왕이 깜짝 놀라 들고 있던 만년필을 떨어트렸다.

떨어진 만년필의 펜촉에서 잉크가 지저분하게 튀었다. 덕분에 서류를 망쳐버린 국왕 타란 2세는 낭패 어린 시선으로 혀를 끌끌 찼다.

그런 그의 앞으로 왕녀 그레타가 야생마처럼 돌격했다. 이 왕궁을 통틀어 저렇게 멋대로 행동하는 건 오로지 그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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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제발 좀 점잖게 행동할 수는……. 그레, 그레타!”

그레타는 부왕의 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방금까지 그가 검토하던 서신을 빼앗아 들었다. 빳빳한 종이에 도금 장식이 번쩍번쩍한 서신은 엘슈바이크 제국의 황제 헤르한이 보내온 것이었다.

위에서 아래로 빠르게 서신을 훑어 내려가던 그레타의 눈은 점점 사납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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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뭐가 어쩌고 어째?”

서신을 전부 다 읽은 뒤에 그레타가 제일 먼저 보인 반응은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터트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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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전하는 정말 자존심도 없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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