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004
대한민국 이능차원관리 협회.
속칭, 협회에는 크게 네 개의 팀이 존재한다.
던전 출몰 현황을 감시하고, 던전의 정보를 수집하는 지휘통제팀.
헌터 개개인에게 알맞은 무기와 아이템을 제작하고, 헌터의 전반적인 활동을 서포트 해주는 헌터지원팀.
실질적으로 던전에 들어가 몬스터를 토벌하는 작전수행팀.
그리고…….
“희장아, 소독하고 있지?”
“하고 있긴 한데, 생각보다 통로가 넓습니다. 이거 약품 모자랄 것 같은데요.”
“넓게 넓게 뿌리면 충분할 거다. 상혁이는 보스방 위치 확인 좀 해줘. 소연이는 내부 가스 수치 잘 확인하고!”
“네. 알겠어요.”
“이번 보스는 꽤 크기가 있다니까 해체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서두르자고.”
무슨 업무를 하는지조차 몰랐던 던전청소팀.
일렬로 통로를 걸어가는 그들을, 맨 뒤에서 바라보며 든 생각은 딱 하나.
‘참 나, 뭐 이렇게 바쁜 척이야.’
그도 그럴 게. 앞에선 쉬지 않고 지시가 오고 갔지만, 맨 뒤에 있는 나에게는 잘 들리지도 않았다.
애초에 별로 듣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딴생각을 하며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던 그때.
“어, 어? 준우 씨! 어디 가?!”
박 팀장이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
“예?”
“여긴 동굴형 던전이잖나. 혼자 아무렇게나 다니면 큰일 나!”
“보스 방으로 가신다면서요.”
“내 말이! 그러니까 잘 따라오라고. 보스 방은 저쪽이니까.”
“무슨 소립니까. 보스 방은 이쪽인데.”
“……뭐?”
툭, 내뱉은 그 말에 팀원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
“저건 또 뭔 개소리야.”
“무시하고 저희 갈 길 가죠.
“저기…… 하기 싫으면 말로 해요.”
쏟아지는 비난.
“야, 통제팀에서 준 던전 지도다. 보스 방이 어디인지 네 눈깔로 직접 봐봐.”
아까부터 거친 언행을 쏟아내던 남자, 한상혁이 들고 있던 지도를 내게 건넸다.
여긴 동굴형 던전이다.
특징은 미로를 방불케 하는 복잡한 길과 수많은 방.
숙련된 헌터들조차 실수하면 그대로 길을 잃을 수 있는 곳이지만…….
그래 봤자 이미 토벌이 완료된 던전.
작전에 투입된 헌터들에 의해 이미 매핑(mapping)이 끝났다는 소리다.
그걸 바탕으로 통제팀에서 만든 지도라면 당연히 오류가 있을 리는…….
“지도가 잘못됐네. 아무튼, 이쪽 맞습니다.”
통제팀, 그렇게 안 봤는데 일을 뭐 이렇게 하냐.
“미치겠네. 팀장님! 이 새끼 약 처먹었어요?”
“자네…… 왜 그렇게 확신하는 건가?”
결국, 박 팀장까지 다가오며 물었다.
그의 얼굴에선 아까와 다른 진중함이 묻어났다.
“확신이고 뭐고, 이 던전 토벌한 게…….”
나는 말을 하다 말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됐다.
말해 뭐하겠는가. 믿지도 않을 텐데.
“이 던전 토벌한 게……?”
“아닙니다. 그냥 가던 대로 가세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팀원들은 끝까지 나를 노려보며 축축한 통로를 따라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고, 나 또한 다시 맨 뒤에서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박 팀장은 그런 내가 불안했던 건지, 선두가 아닌 내 옆에 달라붙은 채였다.
그렇게 묵묵히 던전 깊숙이 이동했다.
“그런데……. 아까 45분 남았니 어쩌고 한 건 뭔 말입니까?”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이 문득 떠올라 박 팀장에게 넌지시 물었다.
“던전이 닫히기까지 남은 시간일세. 들어본 적 있나?”
아, 그 이야기였군.
모든 던전은 토벌 후 자연히 소멸한다.
그 시간은 던전마다 미묘하게 차이가 있지만, 평균 토벌 직후 2시간.
물론 토벌이 끝나면 곧바로 던전을 나오는 헌터들에겐 있으나 마나 한 이야기다.
그러니 나처럼 아예 잊어버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겠다만…….
토벌이 끝난 후 던전에 진입하는 청소팀한테는 또 다른 얘기가 되는군.
“솔직히 이해가 안 가는 게, 어차피 사라질 던전인데 왜 굳이 청소팀까지 만들어서 청소를 하는 겁니까?”
“하하하! 모르는 소리.”
비꼴 생각으로 던진 질문이었지만, 박 팀장은 그저 내 관심이 반가운 건지 호쾌하게 웃었다.
“던전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휴식기에 들어가는 걸세. 여기에 다시 몬스터가 자리 잡을 때까지 말이지.”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럼 이해가 빠르겠군. 만약 다시 던전이 열렸는데, 그 안에 이전 몬스터 사체랑 이것저것이 쌓여 있으면 어떻겠는가.”
“……딱히 상관없을 것 같은데요.”
박 팀장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헌터들이 길을 찾기도 힘들고, 몬스터 사체는 부패하면서 아주 치명적인 가스를 방출하기 때문에 그대로 뒀다간 위험할 수 있어. 무엇보다 던전에 뭐가 남아 있는지 모르면 헌터들의 행동에도 제약이 생기겠지. 그건 곧 토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소리고.”
“……아, 예.”
“뭐, 굳이 말하자면 우린 헌터들이 마음 놓고 토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는 걸세.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 우리가 없으면 헌터들도 없는 셈이니까. 하하하!”
개소리.
마음속으로 콧방귀를 뀌며 한쪽 귀로 흘렸다.
“아무튼, 우리 주 업무는 몬스터의 사체 처리. 던전에 남아 있는 부산물들을 청소하고 헌터들의 정보가 남지 않게 수습하는 걸세. 뭐…… 혹여나 남아 있을 헌터를 구출하는 것도 업무에 포함되긴 하지. 여태껏 그런 일은 없었지만.”
당연하겠지.
청소부가 헌터를 구출한다니, 내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다.
‘그래도 뭐…….’
아주 놀고먹는 건 아니었군.
“다 왔군. 지도에 따르면 저 방이야.”
통로 끝에 위치한 커다란 입구 하나.
앞서 걸어가던 팀원들은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들어섰다.
“어, 뭐야.”
곧바로 한상혁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박 팀장도 뒤따라 방으로 들어가자, 그 또한 한상혁과 같은 반응을 내비쳤다.
그 방에는 몬스터 사체는커녕, 몬스터 머리카락 하나 없이 깔끔했으니까.
“그러니까 말했잖습니까. 여기가 아니라고.”
“뭐야, 정말이잖아.”
“대체 어떻게……?”
한상혁을 포함해 팀원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오늘은 종 쳤다 생각하고 나가기나…….”
“어떻게 합니까, 팀장님.”
“리미트까지 몇 분 남았지?”
“22분이요.”
“22분이라…….”
갑자기 무거워진 분위기.
그들의 목소리가 오히려 침착해졌다.
“……뭐, 뭡니까?”
내가 물었지만, 팀장은 생각에 빠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자네들은?”
“저도 뭐.”
“까이는 것보다야.”
“그럼 만장일치인 것 같은데 바로 돌아가죠.”
팀 내 유일한 여성 인원, 문소연이 제멋대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 상황에서, 이번엔 나 혼자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잠깐, 잠깐만! 뭐가 충분하다는 겁니까?”
“뭐긴. 일해야지.”
“22분 남았다면서요. 그 사이에 던전이 닫히면 어떡하시려고?”
“한 번 닫힌 던전이 재출현하기까지 빠르면 일주일. 늦으면…….”
1년.
“그동안 갇혀 있는 거지, 뭐.”
박 팀장이 껄껄 웃었다.
한 마디로 죽는다는 소리였다.
“제정신들이 아니네. 이깟 청소 일에 목숨을 건다고?”
“뭘 새삼스레. 원래 그런 일인걸.”
“꼬우면 먼저 나가든지. 기대도 안 했으니까.”
“됐어요. 우리끼리 가요. 던전도 처음인 거 같은데 뭐.”
“…….”
한상혁과 임희장이 차례로 혀를 차며 쏘아붙였다.
문소연 또한 말은 안 했지만, 그들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은 살면서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하하…….’
던전 짬밥 먹은 지도 15년이다.
그동안 토벌에 실패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결과가 세계 최초 SSS랭크 달성이었고, 세계 랭킹 1위 달성이었다.
그 누구도 내 던전 커리어에는 토를 달 수 없었다.
그런 내가…….
던전에서 무시를 당한다고?
천하의 김준우가, 던전에서?
“이 방 안쪽에 작은 통로가 하나 있습니다.”
“저 새끼 저거, 또 시작…….”
“아가리 닥치고 들어.”
정색하고 쏘아붙인 한 마디에 한상혁의 눈이 커다래졌다.
“여기서 보스방까지의 거리는 약 500m. 저 통로를 통해서 최단 루트로 간다면 8분. 뛰어가면 5분 안에도 가능할 겁니다.”
“……으, 응?”
“보스방으로 갈 거 아닙니까? 단, 이번엔 제가 앞장섭니다. 불만 있으면 먼저 나가셔도 좋고.”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난 먼저 등을 돌렸다.
***
미로 같은 통로를 전력으로 질주했다.
지도 따윈 볼 필요도 없었다.
토벌했던 던전이라 이미 개구멍 하나까지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으니까.
그러니 내 뒤를 바짝 따라오는 그들의 표정은 안 봐도 뻔했다.
동시에 다들 속으로 한마디씩 하고 있겠지.
‘저 새끼 대체 뭐야?’라고.
어느덧 다시 도착한 보스방.
그곳엔 아니나 다를까, 거대한 몬스터가 끈적끈적한 녹색 피를 쏟은 채 죽어 있었다.
폭스트롯 센티피드.
무려 10m가 넘는 크기를 자랑하는 보스 몬스터였다.
방 상태를 보아하니 전투의 양상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상당히 치열한 전투.
20인 팀이라고 가정한다면 사상자가 최소 5~6명은 나왔을 법했다.
‘그래도 용케 급소는 알아냈네.’
폭스트롯 센티피드의 급소는 저 거대한 턱 바로 위의 움푹 들어간 미간.
그곳에 정확히 검을 꽂아 넣은 흔적이 보였다.
“몬스터 보는 거 처음이죠?”
“……뭐요?”
“멍하니 있길래. 괜찮으니까 못 만지겠으면 나와요. 해체는 우리한테 맡기고.”
죽어 있는 그 녀석을 가만히 관찰하고 있자, 이번엔 임희장이 끼어들었다.
딱딱한 말투였지만, 한상혁만큼의 적대감은 없어 보였다.
“어이가 없네.”
툭, 나는 임희장이 들고 있던 굵직한 단검을 뺏어 들었다.
“가, 갑자기 뭡니까.”
“분해한다면서요. 뭣도 모르고 칼부터 들이대다간 손목이 먼저 나갈 겁니다.”
나는 센티피드의 사체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동시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센티피드의 갑피 사이로 칼을 꽂아 넣었다.
“지금 보는 것처럼 3번, 6번, 12번 갑피 사이에만 칼이 들어갑니다. 머리랑 꼬리는 칼이 절대 안 들어가니까 괜히 힘쓰지 마시고. 보아하니 아직 신경이 살아 있는 것 같은데, 아마 칼질할 때 꿈틀꿈틀할 겁니다. 공격하진 않으니까 무시하세요.”
“…….”
“뭐합니까? 구경만 할 거예요?”
팀원들은 가만히 서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다그치고 나서야 각자 칼을 꺼내 들고 옆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쑤셔 넣기만 하면 잘리겠습니까? 비스듬히 넣어서 위로 쑥 올려야지!”
“…….”
“꼬리는 만지지 마. 그 독에 죽어 나간 헌터가 한두 명이 아니니까.”
“…….”
“그리고 피에 독은 없는데 접착성이 엄청나게 강하니까 괜히 밟지 마시고. 한 번 밟으면 영영 못 움직이는 수가 있습니다.”
보스방에선 서걱거리는 칼 소리와 내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내 옆에서 한상혁과 박 팀장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팀장님. 아까 저 새끼한테 통제팀 파일 슬쩍 보여줬죠?”
“아니.”
“아, 거짓말 말고요. 쌩초보가 저런 걸 알 리가 없잖습니까. 아까 보스방 찾을 때도 그렇고. 신입 기 살려주려고 파일 보여준 거 아니에요?”
“보여주고 자시고……. 애초에 통제팀 파일엔 없어. 저런 정보.”
정적.
이어 몇 명이 나를 힐긋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럼…… 저 새끼는 저런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난들 아나.”
굳이 그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대답하기도, 설명하기도 귀찮았기에 그저 묵묵하게 센티피드를 해체할 뿐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렇게 작업에 열중하면서도 나는 전혀 의문을 품지 않았다.
왜 갑자기 내가 끼어들어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왜 몬스터 사체를 분해하고, 주변에 튄 피를 닦고 있는 건지.
그러니까, 내가 왜 청소를 하고 있는 건지.
그런 의식조차 못 했다.
[습득 패시브 : 결벽증]
[패시브 발동]
너무 열중한 나머지, 머릿속에 울리는 그 음성을 완전히 흘려 들어버린 채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