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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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 버스.
운 좋게도 난 자리에 재빨리 엉덩이를 붙였다.
여기저기서 어렴풋한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침마다 이 짓을 한 지도 벌써 일주일째다.
스킬만 되찾으면 당장에 때려치울 생각으로 출근을 이어간 게, 무려 일주일이나 된 것이다.
그동안 내가 청소한 던전만 해도 25개.
해체한 몬스터는 30마리.
사용한 약품은 10L짜리 통을 6번이나 갈았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해금한 스킬은 무려.
1개.
꽤나 생뚱맞은 조건으로 해금된 이동계열 스킬, 하이퍼 부스트.
[전투 중 시전자의 이동 속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토벌에서는 꽤나 높은 효율을 자랑하는 스킬이지만……, 그것도 공격 스킬과 연계할 때나 이야기지, 딸랑 이거 하나 가지고 뭘 하라고.
게다가 전투 중에만 활성화되는 조건 때문에 청소 일에 써먹을 수도 없고.
‘하, 망할…….’
그래. 이것도 나름 스킬은 스킬이니까……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
다만 현재로선 다른 스킬은 도저히 해금할 엄두가 안 난다.
상식적으로 평균 연봉 6천을 찍으라든가, 직업 선호도 1위를 달성하라든가,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애초에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빌어먹을, 답이 없다 이건.’
버스 안에서 내 한숨 소리가 30초 간격으로 울려 퍼졌다.
물론 개중에도 그나마 쉬운 조건은 있었다.
[원 카운터 - 해금 조건 : 협회 내 던전 청소팀에 대한 관심도 상승]
[업화 - 해금 조건 : 던전 청소팀 예산 확대]
……같은 것들.
다른 것들과 다르게 꽤나 추상적인 조건.
구체적인 수치가 정해져 있지 않으니 지금 상황에서는 가장 노려볼 만한 것들이다.
특히 협회 내 관심도 상승.
내가 알고 있는 향후 10년간의 정보를 토대로 토벌에 협력한다면 협회의 관심도야 단번에 오르지 않겠는가.
내 팀이었던 놈들을 만난다면 한번 말이라도 걸어볼까.
‘……헌터가 만 명이 넘는데 우연히 잘도 만나겠다.’
에휴, 나는 고개를 떨어트렸다.
이러다간 평생 청소일이나 해야 할 판이다.
나는 무거운 얼굴로 창밖을 응시했다.
동시에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시발.”
정류장을 이미 한참 전에 지나쳤다.
***
사당 근처, 오래된 상가 건물.
“뭐야. 왜 두 명밖에 없어. 나머진 지각인가?”
먼저 도착해 있던 건 한상혁과 문소연, 둘 뿐이었다.
“팀장님이 너냐? 약품 모자랄 것 같다고 사러 가셨어.”
“희장 씨는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며칠 쉰대요.”
한상혁과 문소연이 번갈아 대답했다.
“10분이나 지났는데 뭔 약품을 지금 사러 가셨대.”
“그러게. 10분이나 지났는데 넌 왜 이제야 기어 나오냐?”
“정류장을 지나쳤거든.”
한상혁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농담인 줄 아나 보다.
한상혁의 태도는 첫날에 비하면 거의 천사 수준이 됐다.
여전히 날카롭긴 해도 욕은 안 하는 걸 보면 뭐…….
내가 일주일 동안 때려치우지 않은 게 정말 예상 밖이었던 모양이다.
“커피 사놨어. 마시면서 기다리든가.”
“뭘 기다리고 있어. 우리끼리 먼저 들어가 있으면 되지.”
한상혁이 바닥에 놓인 비닐봉지를 가리켰지만, 나는 가뿐히 무시하며 던전 입구로 향했다.
그러자 한상혁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안 끝났거든.”
“뭐가?”
“토벌 말이야. 아직 진행 중이라고.”
“……허, 참 나.”
헛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여긴 내가 토벌했던 던전은 아니다.
자세한 정보는 모르지만…… 그래 봤자 중간 난이도의 ‘블루 등급’ 던전이 아닌가.
게다가 위험 요소도 적은 건물형 던전.
백번 양보해도 토벌 예정 시간을 어길 만한 곳이 결코 아닌데, 뭘 이렇게 쩔쩔매는 건가.
“에휴…….”
그렇다고 들어가서 같이 토벌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뭐 어쩌겠는가. 기다려야지.
늦는다고 해도 5분, 10분일 테고.
……라고 생각한 게 실수였다.
10분.
20분.
그리고 30분이 지났다.
‘어떤 버러지 같은 새끼들이 예정 시간에서 30분이나 쳐 늦는 거지?’
머리에 뿔이 나기 직전이다.
아무리 덜떨어진 놈들이라고 해도 블루 등급 토벌을 나설 정도면 그래도 C급은 될 텐데?
하, 내가 현역 때 같았으면 진짜…….
“어, 나온다.”
“……!”
때마침 토벌이 끝난 모양이다.
한상혁이 먼저 그들을 발견하곤 입을 열었고, 나 또한 곧바로 던전 입구로 고개를 돌려 그들을 확인했다.
당연히 시선이 고울 리는 없었다.
어떤 햇병아리들인지 얼굴이나 보자는 심산이었으니.
‘쯧, 딱 봐도 죄다 D급들이구만.’
아니나 다를까, 토벌을 마치고 기어 나오는 그놈들은 내 기억 속에도 없는 헌터들이었다.
고작 블루 등급 던전 하나 토벌하고 만신창이가 돼서는…….
에휴, 말세다. 말세야.
그렇게 눈을 부라리며 한 명 한 명을 훑어보던 중이었다.
이윽고 내 시선은 마지막으로 던전을 빠져나온 한 여성에게 멈췄다.
‘어, 어, 잠깐…… 저 녀석?’
동시에 눈이 크게 벌어졌다.
익숙한 얼굴이다.
검은색 긴 생머리. 배우라고 해도 믿을 만한 새하얀 피부, 던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린 외모.
확실하다. 그 녀석이다.
한때 내 팀에 소속되어 있던 헌터이자, 내 직속 부하.
김민주.
“……?”
그 순간, 김민주가 내 시선을 알아차린 듯 고개를 돌렸다.
“저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아닙니다.”
김민주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물었지만, 나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하곤 등을 돌렸다.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본심은 그렇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그녀의 등장에 본능적으로 눈살이 확 찌푸려졌으니까.
‘빌어먹을, 하필 만나도 저 자식을 만나냐.’
내 팀 소속의 헌터를 우연히라도 만난다면 말을 걸어보겠다고 했었던가.
미안하지만 저 여자는 예외다.
저 녀석이 날 알든 모르든, 저 녀석한테만큼은 부탁하고 싶지 않다. 아니, 엮이고 싶지도 않다.
주제도 모르고 나한테 저주를 퍼부은 재수 없는 년.
이유도 없이 나를 싫어하던 싸가지.
부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은퇴를 제안했을 때, 상관도 못 알아보고 쌍욕을 지껄이지 않았던가.
쯧, 성격 더럽고 자존심만 세 가지고는.
‘다 지 생각해서 한 말인 줄도 모르고.’
불현듯 스쳐 가는 예전 기억에 벌레라도 씹은 듯 고개를 내젓던 그때.
“준우 씨?”
문소연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예?”
“저 헌터 분, 아는 사람이에요?”
“아뇨.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것치곤 엄청 빤히 쳐다보시던데요?”
“그냥…… 제가 아는 사람이랑 좀 닮아서.”
“……그렇구나. 표정이 너무 험악해지셔서 전 여자 친구분인 줄 알았어요.”
“…….”
“미, 미안해요. 농담이었어요.”
문소연이 진심으로 당황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내가 진심으로 살기 어린 눈빛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에휴, 됐다. 신경 써봤자 나만 손해지.’
어찌 됐든 지금 나랑은 아무 관계도 아니고. 괜히 더 생각해봤자 나만 화병 걸린다.
아무튼, 두 번 다시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다 모였네? 어떻게, 토벌은 끝났나?”
박 팀장은 작전팀이 모두 사라진 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곤 곧바로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뭐야. 분위기 왜 이래? 뭔 일 있었어?”
“……아뇨. 아무 일도 아닙니다.”
“지랄, 아무 일도 아니긴! 방금 저 새끼, 전 여자 친구 만났…….”
“닥쳐. 뒤지기 싫으면.”
곧바로 다물어지는 입.
“뭐해요. 빨리 일이나 합시다.”
어딘가 어색해진 분위기 속, 나는 앞장서서 던전으로 들어갔다.
***
블루 등급의 건물형 던전.
건물 하나가 통째로 던전화 되어, 겉에서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특징이라면 특징인 곳.
지어진 지 30년밖에 안 된 건물일 텐데도 그 안은 마치 1000년은 족히 된 듯한 모습이었다.
“준우 씨, 여기도 미리 공부해왔어요?”
건물 안을 살펴보던 중 문소연이 물었다.
일주일간, 던전과 몬스터에 대해 지나치게 잘 알고 있는 내게 너무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나는 ‘미리 공부했다’로 의심을 일축했지만, 사실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거짓말이다.
그래도 반응을 보아하니 어떻게든 먹힌 모양이다.
“아뇨. 여긴 잘 모릅니다. 보스가 인간형 몬스터라는 것만 빼면.”
뭐, 내가 토벌한 던전이 아니니까.
“자자! 다들 알겠지만, 건물형 던전이라 부산물들이 눈에 잘 안 띌 거야. 구석구석 잘 찾아서 청소해야 해. 특히 계단 밑에는 피가 워낙 잘 고이니까 신경 써주고.”
“예~.”
“뭐, 다행히 건물이 좁으니까 나눠서 작업해도 될 것 같네. 준우야, 너는 나랑 같이 보스방으로 가자.”
“……네.”
나와 박 팀장은 곧바로 계단으로 올라가 3층으로 향했다.
좁고 어두운 복도.
그 끝에 있는 방으로 들어서자 꽤나 협소한 공간이 드러났다.
중앙에 반쯤 잘린 채로 죽어 있는 보스가 보인다.
인간형 몬스터, ‘베가’
“어이구…… 인간형은 이게 싫어. 꼭 사람 시체 같다니까.”
“네, 뭐.”
박 팀장은 꽤나 거북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딱히 별다른 감상 없이 사체를 한 차례 살폈다.
여성의 모습을 한 몬스터. 크기는 고작 160cm.
뭐, 이 정도면…….
“해체 안 하고 그냥 들고 나가도 될 것 같은데요.”
“그래, 그게 좋겠다.”
박 팀장은 내심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내 곧바로 움직였고.
“음? 왜 그래?”
“……아뇨. 아무것도.”
잠시 자리에 서서 생각에 빠져 있다가, 한 박자 늦게 사체로 다가갔다.
뭔가 이상했다.
내 기억으로 ‘베가’는 위험한 몬스터가 아니다.
빠른 움직임만 주의하고, 공격 타이밍만 적절하게 잡는다면 공략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김민주가 이걸 상대로 고전했다고?’
10년 전, 김민주의 헌터 랭크는 B급.
어감이 그래서 그렇지, 사실 B급만 돼도 우습게 볼 수 없는 랭크다.
특히 검을 다루는 고유 스킬은 당시의 나도 꽤나 높이 샀던 기억이 있다.
부상 때문에 은퇴만 안 했다면 S랭크는 충분히 도달할 포텐셜.
그래, 사람은 빌어먹을지언정 능력은 있었다.
아무튼, 이런 블루 등급 던전의 보스한테 쩔쩔맬 수준은 결코 아니긴 한데…….
“이놈아, 왜 자꾸 멍 때려. 설마 나보고 혼자 들라는 건 아니지?”
“아…… 잠깐 딴생각을 좀.”
박 팀장은 자꾸만 움직임이 멈추는 내가 답답했는지, 한 번 더 나를 재촉했다.
그래. 포텐셜이고 나발이고 그게 나랑 뭔 상관인가. 어차피 두 번 다신 안 볼 건데.
그렇게 머릿속을 정리하며 베가를 둘러업은 그때.
사체 곳곳에 난 칼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미간이 확 좁혀졌다.
‘잠깐. 그 녀석, 설마……?’
원치 않게 무언가를 깨달았다.
“야, 준우 이놈아! 왜 자꾸 내 쪽으로 기우냐?! 너 지금 안 들고 있지?!”
“아…….”
헐레벌떡 몬스터를 받쳐 들었다.
이후로는 굳이 그녀를 신경 쓰지 않으려 애쓰지 않아도 됐다.
애초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마침 오늘은 ‘운 나쁜 날’이었고, 마침 다량 개체 던전이 두 개나 잡혀버려 정말이지 미친 듯 바빴으니까.
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새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이미 아침에 있었던 일은 새까맣게 잊어버린 뒤였다.
그저 피곤한 마음에 서둘러 집에 돌아갈 생각만…….
“시발, 막차 끊겼네.”
끝까지 재수가 없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