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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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인데, 준우야.”
던전에 들어온 지 채 10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통로 청소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박 팀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십니까?”
“네가 저 헌터 분이랑 무슨 관계인지 내가 신경 쓸 건 아니긴 한데 말이다…….”
“그런데요.”
“저분이 대체 왜 여기 계시는 거냐?”
“…….”
나와 박 팀장의 고개가 동시에 뒤로 돌아갔다.
그곳엔 걸레를 들고 통로에 묻은 피와 씨름 중인 김민주가 있었다.
“제가 데려왔습니다.”
“그, 그거야 그렇겠지! 내가 데려온 건 아니니까!”
“뭐, 희장 씨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그래도 한 명 더 있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그렇지, 일반적으로. 근데 저분은…….”
박 팀장은 또다시 김민주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팍 죽이며 말했다.
“헌터시잖냐…….”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누가 뭐래도 청소팀은 협회 내 최하위 직군. 그리고 작전팀…… 그러니까 헌터는 협회에서 가장 중요한 인력이다.
따지자면 청소팀은 천민 혹은 노예.
그리고 헌터는 귀족.
박 팀장의 말은 결국, 저런 귀한 분이 왜 이런 누추한 곳에서 청소하고 있냐는 뜻이겠지.
그런데 뭐…… 나라고 좋아서 저 녀석을 데리고 왔겠는가.
‘하여간 고집은 진짜…….’
나도 모르게 거친 콧바람이 새어 나왔다.
고집에 못 이겨 조언해준 그 날.
김민주가 난데없이 내게 검술을 배우고 싶다는 개소리를 내뱉었다.
뭐, 당연히 칼같이 거절했지만…….
하지만 그날 이후, 김민주는 매일 나를 찾아왔다. 정말 매일 매일 찾아왔다.
우리 스케줄은 통제팀에서 알아 온 건지, 마지막 던전의 청소가 끝나면 어김없이 저 녀석이 던전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일주일을 꼬박!
참다못한 나는 어젯밤, 김민주에게 우리 일을 도와주면 생각해보겠다고 흘려 말했다.
이렇게까지 나오면 당연히 ‘아, 청소는 조금…….’ 하며 포기하고 돌아갈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게, 대체 어느 헌터가 이런 허드렛일을 하려 하겠는가.
아니, 그렇게까지 가지 않아도 어느 누가 휴가까지 받았는데 굳이 청소 일을 하겠는가.
……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그녀를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그녀는 정말 청소팀으로 출근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청소 일을 하고 있다.
현직 B급 헌터가, 청소팀에서, 던전 청소를 하고 있다고.
솔직히 겉으론 담담한 척했다만…….
‘뭐야, 진짜 오면 어떡하자는 거야. 아니 무슨 B급 헌터나 되는 녀석이 청소나 하고 있어. 쪽팔리지도 않나? 아니 그것보다, 이러다 진짜 매일 출근하는 거 아니야? 그럼 어떡하지? 젠장, 쟤 보기 껄끄럽다고. 하 어쩌다 이 지경이…….’
속은 그 누구보다 동요 중이다.
“선생님. 이거 안 지워지는데요.”
“어…… 어?”
그때, 김민주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그녀가 멋대로 붙였다.
아무래도 나를 쪽팔려 죽이려는 속셈이 분명하다.
“약품을 뿌려야지. 그걸 멍청하게 힘으로 닦고 있냐.”
“아…….”
다가가 그녀가 들고 있던 걸레를 뺏어 들었다.
“봐봐. 이건 사람 피고, 이건 몬스터 피야. 이렇게 두 개가 묻어 있는 건 같이 지우려고 하면 안 돼. 하나는 걸레로 닦고 하나는 불로 녹여서 지우는 거다.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이 눌어붙은 건 몬스터 살점인데, 이걸 약품으로 떼려고 하면 양이 너무 많이 드니까 단검으로 살살 긁어내. 떼어낸 부산물은 한곳에 잘 모으고. 아, 단검은 사용했으면 그때그때 닦아놔. 몬스터 피 때문에 부식될 수도 있으니까.”
“……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하기 싫어? 하긴, 헌터가 이런 일 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 그러니까 이쯤하고 그냥 돌아가는 게…….”
“아뇨. 그냥…… 청소도 꽤 심오하구나 해서요.”
“…….”
김민주가 턱을 쓰다듬으며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 팀장이 만족스러운 듯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준우도 이제 청소부 다 됐어! 하하하!”
“뭐, 감…….”
나는 화들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세상에.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건가.
설마, 감사하다고 말하려던 거야?
어엿한 청소부가 된 게 감사하다고……?
세계 최초 SSS랭크 헌터였던 이 천하의 김준우가?
‘시발, 울고 싶다…….’
갑자기 솟구친 자괴감에 어깨가 축 늘어졌다.
터덜터덜 내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없다는 듯 곧바로 따가운 시선이 날아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문소연이 굉장히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무, 무슨 문제라도?”
“아무것도요.”
문소연은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선생님, 여긴 끝났어요. 이제 뭐 하면…….”
“아! 그럼 저랑 같이 저쪽으로 가요. 괜찮죠, 팀장님?”
김민주가 입을 열기 무섭게 그녀를 낚아채는 문소연.
김민주의 표정에서 당혹감이 묻어나왔다.
“어? 어어……. 그런데 저쪽엔 사체가 많을 텐데. 둘이서 힘들지 않겠어?”
“이럴 때 아니면 헌터님이랑 언제 일해 보겠어요. 헌터님도 괜찮죠?”
“……뭐, 네.”
김민주가 건조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문소연은 김민주를 데리고 통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야, 야.”
이내 멀어지는 둘을 바라보던 한상혁이 나를 툭툭 건드렸다.
“난 헌터님이 이긴다에 건다. 너는?”
“…….”
나도.
***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통로.
문소연은 자신의 돌발행동을 후회하는 중이었다.
일단 김민주를 데려오긴 했지만, 딱히 할 말이 있는 건 아니다.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그니까, 왜 안 하던 짓을 한 거야. 바보같이…….’
문소연이 스스로를 자책하며 한숨을 내쉬던 그때.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아요?”
김민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 네, 그럼요. 끄떡없어요.”
“아닌 것 같은데요.”
“……하하.”
김민주는 그녀를 위아래로 빠르게 훑었다.
너무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었다.
“사실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자긴 했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봐요.”
“아뇨. 딱히 무슨 일이라기보단…….”
문소연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캐물어서까지 듣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김민주 또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제 이야기 말고 헌터님 이야기해주세요. 저 사실 헌터랑 이렇게 대화하는 거 처음이거든요.”
“딱히 할 만한 얘기가…… 그냥 아버지 따라 헌터가 됐다는 것 정도밖엔…….”
“헐. 아버님도 헌터셨어요? 그럼 부녀가 같이 일하고 있는 거예요?”
“아뇨. 해고되셨어요. 어깨 부상으로.”
김민주는 하마터면 미래의 자신 또한 겪을 뻔한 그 이야기를 담담히 내뱉었다.
“상관한테 말했더니 꾀병 부리지 말고 일이나 하라고……. 같은 팀원들도 쉴 생각 하지 말라고 눈치 주고. 괜히 폐 끼치기 싫어서 참았던 게 병을 키운 거죠.”
“네?! 그, 그건 말도 안 돼요! 같이 일하는 동료잖아요! 어떻게 그런…….”
“아뇨.”
단호한 목소리.
덩달아 김민주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협회에 동료라는 건 없어요. 자기보다 낮은 계급과 높은 계급만 존재하죠. 저희 아버지는…… B급에서 올라가지 못했어요. 잘리는 그 순간까지.”
“그, 그런…….”
“솔직히 그래요. 만년 B급인 헌터를 누가 걱정해주겠어요. 사람으로만 봐줘도 다행이죠. 뭐 결국 아버지는 쓰다 버리는 도구 꼴이었지만…….”
이가 빠득 갈리는 소리가 났다.
문소연은 내심 뭐라도 하나 부러진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아무튼, 협회 자체가 그래요. 위계가 전부인 곳. 약자에겐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겐 한없이 약하죠. 하물며 같이 일하는 헌터들끼리도 그러는데…….”
청소팀에겐 오죽하겠어요, 김민주는 그 말을 차마 뱉을 수 없었다.
비하하려는 건 아니었지만 최소한 당사자에게 할 말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문소연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김민주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큼큼, 결국 김민주는 헛기침을 하며 다른 주제를 꺼냈다.
“소연 씨는 선생님한테 관심이 있는 거죠?”
“……그래 보여요?”
“뭐, 누가 봐도.”
김민주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순수한 건지, 곧바로 낚아채는 그녀가 퍽 귀여웠다.
“그냥 뭐…… 책임감이 강하기도 하시고. 아, 첫날엔 아무것도 안 하고, 둘째 날엔 지각까지 하셨거든요? 그것도 한 시간씩이나! 그래서 조만간 관두겠구나 했는데…… 지금은 누구보다 열심히 하시더라구요.”
“그렇군요.”
문소연은 묻지도 않은 걸 재잘재잘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민주는 싫은 내색 없이 귀를 기울였다.
“또 던전이랑 몬스터에 대해서 엄청 빠삭하세요. 진짜 모르는 게 없다니까요? 통제팀에서 준 자료보다 더 정확하고…… 심지어 자료에도 없는 정보까지 알고 계세요. 진짜 대단하지 않아요?”
“역시…….”
“역시?”
“……아니에요.”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
그 남자, 단순한 청소부가 아니다.
김민주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눈썰미가 좋다고 한들, 시체에 난 칼자국 몇 개로 한 사람의 상태를 낱낱이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엄청난 실력과 경험을 가진 헌터가 아닌 이상.
게다가 던전과 몬스터에 대해 통제팀보다 빠삭하기까지 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놓칠 수 없지.’
김민주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아무튼, 걱정 마요. 전 딱히 선생님한테 호감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 그래요? 그럼 준우 씨를 왜 그렇게 매일 같이 찾아온 거예요?”
“……아까 제가 말했죠? 여기 모두가 약자에겐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겐 한없이 약하다고.”
“네…… 그러셨죠.”
“소연 씨, 저는요. 그게 정말 개 같아서 참을 수가 없어요.”
김민주는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채였다.
하지만 문소연의 눈에는 전혀 미소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저는 강자가 돼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선생님의 도움이 꼭 필요하고요. 뭐…… 그뿐이에요.”
말을 마치는 순간 김민주는 아차 싶었다.
만난 지 한 시간도 안 된 애한테 이런 말까지 하다니.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따윈 관심도 없을 텐데.
괜히 분위기만 무겁게 만든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미안해졌지만.
“어…… 그러니까 헌터님 말씀은…….”
“……?”
“어쨌든 전 여친은 아니라는 거네요?”
딱히 그럴 필요는 없었다.
***
각자 구역의 청소가 끝난 후, 보스 방으로 가기 위해 슬슬 합류하던 참이다.
“왜 꼭 그런 상사 있잖아요. 어떻게든 수작 한 번 부려보겠다고 질척대는 새끼들.”
“진짜로요! 저도 예전에…….”
저 멀리서 담소를 나누며 다가오는 문소연과 김민주의 모습이 보였다.
예상과 다르게 부쩍 친해진 느낌이다.
고작 30분 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자, 다들 아까 설명했다시피 여기 보스는 맹독 몬스터야. 알아서들 잘하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각별히 더 조심해. 그래도 뭐, 피부에 닿지만 않으면 괜찮으니까 너무 겁먹진 말고.”
이윽고 모든 팀원이 모이자 박 팀장은 마지막으로 주의 사항을 전달했다.
“예.”
“……아, 네!”
우리보다 한 박자 늦은 대답.
범인은 문소연이었다.
“왜 그래 소연아. 뭐 문제 있어?”
“아, 아뇨. 오늘따라 방호복이 좀 불편해서요.”
“이런, 오래돼서 그런가? 어디가 불편해?”
“팔이 잘 안 올라가긴 하는데…… 뭐, 작업하는 데 지장은 없을 것 같아요.”
문소연이 팔을 빙글 돌리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던 한상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방호복 슬슬 새것으로 바꿀 때 되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저번에 하나 찢어먹어서 이젠 여분도 없잖아요. 협회 가서 예산 좀 올려 달라고 해봐요. 이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나라고 안 해 봤겠냐. 돈이 없다는데 뭐 어쩌겠어.”
“하여간…… 일은 죽도록 시키면서 아끼기는 오지게 아껴요.”
정말 흔치 않게 그의 말에 동의했다.
내가 입고 있는 방호복이 그나마 새것이었음에도 군데군데 오염된 부분이 눈에 띄었으니까.
“일단은 있는 거로 버텨보자고. 자, 준비됐으면 들어가자.”
박 팀장은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서 보스 방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