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010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가장 일반적인 차원형 던전.
지구상의 공간이 아닌 어딘지 모를 이질적인 곳이지만, 함정도 없고 길도 복잡하지 않아 사상자가 가장 적은 던전.
보스 방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그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소연아? 왜 그래, 소연아!”
박 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보스 몬스터, 맥시멈 슬라임을 해체하던 도중 갑자기 문소연이 쓰러졌다.
처음엔 과로라고 생각했다. 최근에도 꽤나 피곤해했던 기억이 있으니까.
하지만 상태를 확인하자,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뻣뻣해지는 팔다리, 파랗게 변색된 입술. 호흡곤란.
이건 분명히…….
“……슬라임을 만졌어. 중독됐다.”
“뭐?! 방호복도 제대로 입고 있는데 그럴 리가!”
한상혁은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물론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문소연을 똑바로 눕히자, 방호복 옆구리 쪽이 찢어져 있는 걸 바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이, 일단 당장 밖으로 데리고 나가! 나가서 지원팀 호출하고! 준우야! 헌터님이랑 같이 소연이 좀 옮겨줘! 빨리!”
“야, 김준우! 뭐 하고 있어 새끼야! 움직여!!”
한상혁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선생님?”
미안하지만 지금 바로 데리고 나간다 한들 늦는다.
맥시멈 슬라임의 독은 치명적이다. 그것도 직접 피부에 닿은 거라면 골든타임은 고작 5분 내외.
물론 지원팀에 해독제가 있긴 하지만 지원팀이 5분 만에 오는 것도, 그렇다고 우리가 5분 만에 지원팀까지 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순간이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살릴 수 있는 확률은…….
방법이 없다, 그렇게 고개를 가로젓던 순간이었다.
문소연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 내 머릿속에는.
‘……최후의 수단.’
왜인지 내가 늘 입에 달고 살았던 도마뱀 이야기가 떠올랐다.
꼬리 자르기.
자신의 몸을 해하는,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손해가 막심한 수단.
하지만 목숨을 건지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수단.
……쯧, 답지 않게.
“김민주.”
“네, 네?”
“검 꺼내.”
김민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벤토리에서 검을 빼 들었다. 물론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어렵지 않아. 그냥 한 번 슥 베는 거야. 할 수 있지?”
“……서, 설마 소연 씨를?”
“아니. 나를.”
김민주의 눈이 동그래졌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표정.
그녀는 검을 거두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 뭘 하시려고요!”
“저 새끼 뭐라는 거야!!”
“준우야! 너 대체 왜 그래!”
동시에 여기저기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답답한 놈들,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용히들 하시고. 시간 없으니까 빨리.”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알았어요.”
이내 김민주는 잡다한 생각을 그만둔 듯, 자세를 잡았다.
올곧은 눈빛으로 검을 꾹 움켜쥐길 잠시.
“발무.”
[습득 스킬 : 발무]
[스킬 발동]
잠깐, 스킬까지 쓰라곤 안 했…….
촤악―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고통이 배에 새겨졌다.
폭포수처럼 솟구쳐 나온 피가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시전자를 향한 공격 감지]
[현 시간부로 전투태세에 돌입합니다]
[스킬 발동]
[습득 스킬 : 하이퍼 부스트]
전신이 불타는 듯한 느낌이었다.
전투 중에만 발동할 수 있는 이동 스킬.
청소 일 하면서는 절대 쓸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연 씨를 데리고 지원팀으로 가겠습니다. 거기서 뵙죠.”
“무, 무슨 소리야? 여기서 거기까지 택시 타고 가도 30분은 족히……!”
파앙―
박 팀장의 목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만이 귓속을 때려 박기 시작했다.
***
“빨리 오셔서 살았어요.”
협회 지원팀 부설, 의료 센터 응급실.
치료를 마친 의료진이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다행히 의식도 바로 찾으셨고…… 경과 좀 보다가 돌아가셔도 될 것 같네요.
“가, 감사합니다!”
박 팀장이 아들뻘 되는 의료진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아, 그리고 저쪽 분은…….”
“김준우입니다.”
“네. 김준우 씨는 가실 때 원무과에서 들리세요. 봉합 비용.”
의사가 붕대 범벅인 내 배를 슥 가리켰다.
참 나, 이걸 돈을 받네. 그거 몇 바늘 꿰매는 데 얼마나 든다고…….
이내 의사가 자리를 뜨자,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침대로 다가갔다.
죽다 살아난 문소연이 머쓱하게 미소를 지었다.
“야, 너 진짜 사람 걱정하게 할래?!”
“이놈아! 다친 사람한테 그게 무슨 말이야.”
“괜찮아요, 소연 씨?”
“그럼요. 끄떡없어요.”
문소연은 히히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과는 관계없이, 한상혁은 복장이 터질 노릇이었다.
“하아, 시발. 팔 좀 몇 번 뒤척였다고 어떻게 방호복이 찢어지냐.”
“어허, 병원에서 욕하는 거 아니야.”
“욕 안 나오게 생겼습니까? 아니, 솔직히 반년이 넘게 방호복 하나 안 바꿔주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잖아요! 참 나, 헌터 새끼들은 뭐 말만 하면 장비 싹 다 새거로 바꿔준다는데! 우린 이게 대체 뭡니까?”
“야, 야 이놈아…….”
“아, 제가 뭐 틀린 말……!”
박 팀장의 신호에 한상혁은 그제야 입을 닫았다. 그리곤 뒤늦게 김민주의 눈치를 살폈다.
“아, 아니 뭐…… 그렇다고 헌터가 잘못했다는 건 아니고…….”
“괜찮아요.”
김민주는 한상혁을 바라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분위기가 한순간에 싸늘해졌다.
뭐, 다들 현역 헌터의 신경을 건드렸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표정을 보아하니 저 녀석, 지금 그냥 딴생각하고 있다.
“아무튼, 이번 기회에 푹 좀 쉬어. 산재 처리는 내가 올려놓을 테니까.”
“……해줄까요? 산재.”
“당연하지! 엄연히 일하다 다친 건데! 넌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어, 준우 씨? 어디 가요?”
문소연이 박 팀장의 말을 자르고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바람 쐬러요.”
대충 대답하고 병실을 나섰다.
오가는 의료진으로 꽤나 분주한 복도.
그곳을 가로지르는 내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는데?’
이내 참았던 미소를 터트렸다.
이건 기회다.
해금을 위한 절호의 기회.
[업화 - 해금 조건 : 던전 청소팀 예산 확대]
예산 부족에 의한 장비 노후.
청소팀의 안전은 언젠간 깨져도 깨졌을 금 간 접시였다.
결국, 팀원이 다친 이상 예산 확대를 건의하기에는 딱 좋은 타이밍이다.
이번 사고를 걸고넘어지면 이미지를 생각해서라도 지원이 들어올 수밖에 없겠지.
‘클클클…….’
이걸로 벌써 스킬 두 개.
이대로라면 청소팀과 작별할 날도 머지않았다.
***
“뭐야 저 새끼…….”
한상혁은 쿵, 소리를 내며 닫힌 문짝을 고깝게 쳐다봤다.
“표정이 엄청 굳어 있으시던데, 문제라도 있는 걸까요.”
“당연히 화가 많이 났겠지.”
“아, 역시 제가 너무 민폐를 끼쳐서…….”
“그게 아니야. 자네가 다쳤잖나.”
문소연의 자책에 박 팀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녀석, 보기엔 나쁜 놈 같아도 동료를 끔찍하게 아끼는 녀석이거든. 암, 딱 보면 알지.”
확신에 찬 박 팀장의 표정.
김민주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동료를 끔찍하게 아낀다라…….’
역시, 저 사람이라면 분명…….
김민주는 그렇게 되뇌며 굳게 닫힌 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나저나 저 새끼, 진짜 보면 볼수록 미스터리 하지 않습니까? 대단한 놈이라고 해야 할지, 미친놈이라고 해야 할지.”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문소연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아, 넌 기억이 안 나지. 저 새끼가 너 구했어. 그것도 스킬을 써서!”
“주, 준우 씨가요?”
“그래! 참 나, 내가 청소일 오래 한 건 아니지만 스킬을 쓰는 청소부는 처음…….”
“준우 씨가 절 구한 거예요?! 어떡해, 그것도 모르고… 고맙다는 말도 안 했는데…….”
한상혁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스킬 어쩌고부터는 아예 머릿속에 입력이 안 된 모양이었다.
“저, 그래서 말인데…… 김민주 헌터님.”
그러던 와중, 박 팀장이 슬쩍 김민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네?”
“준우 녀석,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좋은 사람인 것 같긴 한데, 얼굴은 제 취향이…….”
“아, 아뇨. 그게 아니고. 헌터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말입니다.”
“……아.”
김민주의 얼굴이 살짝 상기됐다.
하지만 곧바로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이었다.
“헌터라…….”
“저 녀석, 솔직히 여기 있기 아까운 녀석입니다. 헌터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던전이나 몬스터 정보는 물론이고 공략법도 웬만한 헌터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작전팀으로 옮겨줄 수 있냐, 그 말씀이신가요.”
“네. 힘들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김민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 팀장이 말하지 않더라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모습만 봐도, 김준우의 팀 변경은 가능성이 있는 수준 정도가 아니었다.
“확실히 웬만한 헌터들보다 경험이나 실력 면에서 뛰어나요. 그건 제가 보장할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무, 문제가 있습니까?”
“네. 선생님이 청소팀에 있다는 게 문젭니다.”
김민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상혁이 벌떡 일어났다.
“아니 헌터님, 거 말씀이 되게 거슬리시네? 뭐 청소팀에 있으면 올라가지도 못한다는 겁니까?”
“그게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죠.”
“……뭐요?”
“선생님의 본 실력은 저로서도 가늠이 안 돼요. B급 나부랭이인 저보다 훨씬 낫겠죠. 아마 선생님의 힘은, 선생님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도 선생님은 작전팀이 아닌 청소팀을 선택하셨어요. 그게 무슨 소리 같나요.”
“본인이 이 일을 원해서… 하고 있는 거다?”
“네. 그것 외에는 생각할 수가 없어요.”
김민주는 팀원들을 한 명씩 둘러보았다.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사실에, 모두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대체 그 누가 청소 일을 원해서 하겠는가.
까놓고 말해 지나가는 백수한테 물어봐도 거절할 일이다.
하물며 김준우는 당장이라도 헌터가 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놈이 아닌가.
그런 놈이 원해서 청소팀에 남아 있는 거라니.
팀원들은 충격과 감동,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어중간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선생님은 엄청난 실력이 있지만, 협회나 헌터들의 위계에 끼어들기 싫은 거예요. 아니면 동료애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곳보다는 청소팀이 더 마음에 든 걸 수도 있고요.”
“그런 거라면… 섣불리 추천할 수가 없겠군요.”
“네. 작전팀에 오면 분명히 상위권 헌터가 되겠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이상, 강요할 순 없겠죠. 어쩌면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실례일 수도 있고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이 얘기는 준우한테 비밀로 해야겠습니다.”
“네.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숙연해진 분위기.
그 속에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한상혁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 문득 든 생각인데 말입니다. 준우 그 새끼가 동료를 끔찍이 생각하는 놈이라면……. 지금 설마 협회에 따지러 간 건 아니겠…죠……?”
모두의 눈이 번쩍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