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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11화 (11/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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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찍한 사무실.

책상 앞에 앉은 남자는 상당히 고까운 표정이었다.

딱 봐도 내 방문이 꽤나 불쾌한 듯했지만……, 나 또한 선택지가 없었다.

경영부 직원들한테는 백날 얘기해봤자 위에서 결재가 안 떨어진다는 말이나 할 거고, 그렇다고 청소부 신분으로 깽판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뭐, 다른 걸 다 떠나서 이게 가장 빠른 방법이기도 하고.’

희끄무레한 머리의 남자를 슬쩍 흘겼다.

그리곤 이내 책상 위에 놓인 명패로 시선을 옮겼다.

명패에 적힌 그 남자의 이름은 서민철.

직책은 무려, 이능차원관리 협회 서울 본부장.

한 마디로 내가 소속된 서울 본부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인간.

‘흐음, 서민철이라…….’

내 기억으로는 이맘때쯤 새로 부임한 놈이다.

저놈이 본부장 자리를 꿰차자마자 저쪽 라인 놈들이 줄줄이 낙하산을 탔었지 아마.

그만큼 ‘서민철 라인’이 협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가히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당연히 지금 내 신분으로는 쳐다도 못 볼 위치지만…….

승부를 볼 거면 머리부터 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침묵을 지키던 서민철 본부장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청소팀의 예산을 늘려 달라?”

“예.”

“그런 이야기라면 경영부를 찾아가셨어야지.”

대꾸하는 것조차 귀찮다는 투였다.

“어느 헌터가 토벌에서 잡몹들을 일일이 상대하겠습니까. 보스만 잡으면 끝인데.”

“……아, 너 헌터였어?”

“아뇨. 청소부인데요.”

“…….”

서민철 본부장의 눈빛이 짧은 순간 몇 번이나 바뀌었다.

“그러면 지금, 청소부가 예산 올려달라고 본부장을 직접 찾아온 거네?”

“정확하십니다.”

“팀장도 아닌 일반 사원이?”

“예.”

“……그래 뭐, 멋모르고 덤빌 나이긴 하지. 이해해.”

본부장은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다.

대놓고 무시하는 행동이지만, 젊어 보인다는 말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청소팀이 돈 쓸데가 어디 있다고? 지출이 많은 것도 아니잖아.”

“그 얼마 없는 지출보다 예산이 적으니까 올려 달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 하하! 이런 당돌한 새끼를 봤나.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이게 지금 어디서…….”

“사고가 났습니다.”

나는 최대한 무거운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었다. 물론 진지한 표정도 잊지 않았다.

“방호복이 꽤나 오래됐는데도 새로 살 예산이 없더군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일을 하다가 방호복이 찢어졌고, 결국 팀원 중 한 명이 몬스터 독에 노출됐습니다.”

“……난 그런 보고 못 받았는데?”

“뭐, 방금 일어난 일이니까요.”

서민철 본부장은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주춤했다.

당연히 믿는 눈치는 아니지만, 어차피 조금 있으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될 일이다.

“청소팀에 돈 아끼고 싶은 거, 솔직히 이해는 합니다. 그래도 최소한 사고는 안 나게 해야죠. 방호복 살 돈도 안 준다는 건 솔직히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유감스러운 일이긴 한데, 본부도 돈이 없어. 우리라고 안 주고 싶겠냐? 그래도 그거 최대한 골고루 편성한 거야. 청소팀이라고 덜 준 게 아니라.”

“돈이 없다고요?”

“그래, 인마. ……하긴, 네가 협회 사정에 대해 뭘 알겠냐. 보니까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의 말에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돈이 없다, 그 말에 딴죽을 걸 수 있는 직원은 없다.

협회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게 진짜인지 거짓인지도 알 수가 없으니까.

“아닐 텐데요.”

하지만 그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지.

“……뭐?”

“이번 연도 예산, 어마어마하게 땅기셨잖습니까. 올해 이능운용부에 떨어진 예산만 해도 몇백억이고, 그중 70%가 작전팀에 편성됐을 텐데요.”

갑자기 서민철 본부장의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네, 네가 그걸 어떻게……?”

“본부장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어차피 그거 다 못 쓴다는 거. 무엇보다 올해 ‘레드 등급’ 던전은 한 개도 없었고 말이죠. 뭐, 연말에 기념 토벌이니, 연합 레이드니 하면서 남은 예산 어떻게든 없애려고 할 거 뻔히 아는데…… 그럴 바엔 정말 필요한 곳에 조금 더 얹어달라는 겁니다.”

“……!”

“어떻습니까.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닌 것 같은데.”

경직된 표정.

서민철 본부장은 나를 매섭게 노려보던 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뭐 하는 놈이야.”

“말씀드렸잖습니까. 청소부라고.”

그와 반대로 나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건 청소팀만의 일도 아닙니다. 본부장님 입지도 생각하셔야죠. 부임하신 지, 3개월……?”

“……2개월이다.”

“네, 2개월. 어렵게 올라간 자리인데 오래오래 하셔야죠. 가뜩이나 대우 안 좋기로 소문난 팀인데, 방호복 살 예산도 없어서 사고가 났다는 걸 시민들이 알면 본부도 꽤나 곤란해지지 않겠습니까?”

“너 지금 나 협박하냐?”

“그럴 리가요.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나를 어떻게든 꿰뚫어 보려는 눈빛.

본부장의 얼굴은 처음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와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서민철 본부장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먹혔다.

“그래서, 얼마를 올려 줬으면 좋겠는데.”

“내키시는 대로.”

10원이 됐든, 100원이 됐든 올라가기만 하면 나야 그만이니까.

“그럼 대충 얘기 끝난 것 같으니, 전 이만…….”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서민철 본부장이 손을 들어 나를 멈춰 세웠다.

“혹시 너, 김민주 헌터랑 아는 사이냐?”

“……그건 왜 물어보시죠.”

“안다는 뜻이네.”

서민철 본부장은 이내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질문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녀석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오는 거지?

이번 일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건가?

“예산 확대는 검토해보고 내일 중으로 연락 주겠다. 그만 가봐.”

“……예.”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

청소부?

지랄하고 있네.

서민철 본부장은 사무실 문이 닫히자마자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사내 회선으로 전화를 걸었다.

「예, 본부장님.」

이윽고 전화기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수용아. 방금 청소부 한 명이 사무실에 왔다 갔는데…… 저번에 네가 말한 그 새끼인 것 같다. 김민주가 검술 배운다던 그 새끼.”

「예?! 이런 미친! 어디 청소부 주제에 본부장님을 찾아…….」

“아니야. 그 새끼 청소부 아니야.”

「……예? 그럼 뭡니까?」

“몰라. 그런데 절대 그냥 청소부는 아니야. 우리 쪽 정보도 다 알고 있는 걸 보면 협회랑 관련 있는 놈인 것 같기도 하고. 방금 나한테 청소팀 예산 확대를 건의했는데…… 아무리 봐도 그게 진짜 목적은 아닌 것 같아.”

짧은 정적.

「……어쨌든 지금은 청소팀 소속이라는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그게 왜?”

「마침 잘 됐습니다. 안 그래도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본보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이대로 계속 기어오르게 둘 순 없으니…….」

“본보기?”

「윗사람에게 고개 숙이는 법을 알려줘야죠.」

***

이른 아침.

출근하자마자 박 팀장이 위에서 내려온 공문을 우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어째 표정이 무척이나 어두웠다.

다 함께 공문을 살펴보던 팀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 징계……?”

“시발, 배상을 해줘도 모자랄 판에 징계라고?!”

문소연이 징계를 받은 것이다.

“헌터님! 이게 말이 됩니까?! 솔직히 이건 아니잖아요!”

“……저도 당황스럽네요.”

한상혁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김민주 또한 납득이 가지 않긴 매한가지인 듯했다.

징계 사유는 다름 아닌, 겸업 금지 조항 위반.

‘겸업에 의한 피로감 누적이 사고의 원인’이라며 산재 신청도, 배상도 모두 기각.

그렇다.

문소연은 협회 몰래 야간 아르바이트를 해온 것이다.

눈치를 보아하니 박 팀장과 한상혁은 알고 있었던 것 같고.

그렇게 피곤해하던 게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뭐, 그건 둘째 치고라도……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공고 가장 밑줄에 딸려온 몇 줄.

‘해당 사고는 개인 부주의로 인한 것.’

즉, 장비가 노후했다는 근거가 없으므로 예산 확대 또한 기각.

“하, 시발 진짜…….”

공문을 당장이라도 찢어 삼킬 듯한 기세로 종이를 움켜쥐었다.

간만에 진심으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덕분에 문소연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저… 준우 씨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전 진짜 괜찮아요!”

“……예?”

“징계라고 해봤자 경고일 뿐이고…… 사실 산재는 기대도 안 했거든요.”

“…….”

얘는 또 뭐라는 건가.

“야 그래도 다시 봤다, 새끼야. 설마 우리 때문에 총대 메고 본부장까지 만날 줄이야. 미친놈인 줄은 알고 있었는데, 진짜 또라이였네.”

“그래 준우야. 이렇게까지 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해. 결과는 이래도 너무 마음에 담지 마라.”

“선생님…….”

갑자기 나를 위로하는 팀원들.

단체로 뭘 잘못 먹었나 싶었다.

상당히 어리둥절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뭐, 그건 그렇고…….’

이건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까지 할 일이 아니다.

큰돈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배상 소송을 한 것도 아닌데 굳이 겸업까지 걸고넘어지면서 기각시킬 이유가 없다.

어차피 남을 돈, 조금 얹어달라고 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온다는 건…….

‘아무리 봐도 의도적이야.’

하지만 왜?

이렇게 강압적으로 나올 만큼 우리를 고깝게 볼 이유가 있나?

“설마 저 때문은 아니겠죠……?”

그때, 김민주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야. 네가 왜.”

“사실 저번에 휴가 쓸 때, 팀장님한테 청소팀 이야기를 했거든요. 워낙 위계를 중시하는 새끼라 당연히 안 좋게 볼 거 같긴 했는데… 혹시 그거 때문에 괜히 본보기로…….”

“잠깐, 너희 팀장 이름이 뭐야.”

“작전 1팀에 이수용 팀장이에요. 혹시 아는 사람이세요?”

“……하, 하하.”

그래, 어쩐지 시발.

어떻게 된 건지 이제 알겠네.

이수용.

서민철 본부장 라인의 대표적인 인물.

낙하산으로 팀장을 달았지. 그것도 최정예인 작전 1팀장을.

내가 그놈을 잊을 리가 없지. 당시의 나도 그 새끼 팀이었으니까.

실력도 없는 주제에 완장질이나 하던 놈.

‘그래서 김민주를 아냐고 물어봤던 거구만.’

확실하다. 그 새끼가 서민철 본부장과 작당한 거다. 괜히 기어오르는 것 같으니까 본보기를 보여준다는 생각이겠지.

‘이런 버러지 같은 새끼들이…….’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덩달아 손에 있던 서류가 완전히 구겨졌다.

그래…… 이게 대답이라 이거지?

이딴 식으로 나오면 나도 다 생각이 있다.

이 방법만큼은 쓰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지.

‘………포기해야지, 뭐.’

별수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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