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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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 팀장이 청소팀 견학을 마치고 밤늦게 사무실로 복귀하자마자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 청소부 놈이 출근한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오늘.
마침 인터셉트가 한 건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정황상 그놈이 확실했음에도 증거가 없던 탓에 요 며칠간 이가 바득바득 갈렸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감히 청소부 주제에 작전팀을 상대로 이빨을 세우다니.
대가를 톡톡히 치러줄 생각으로 이수용 팀장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본부장님! 확실합니다. 그 새끼예요. 그 새끼가 출근하니까 인터셉트가 안 일어난…….”
「수용아.」
“예!”
서민철 본부장이 말을 끊었음에도 힘차게 대답했다.
「청소팀, 예산 주자.」
“……예?”
그리고 날아든 예상치 못한 답변.
이수용 팀장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확실한 정황도 있겠다, 그 새끼 잡아서 징계 때려야죠! 설마 눈감아주실 생각이십니까?!”
「방금 말이다. 익명으로 이능운용부에 지원금이 입금됐다. 그것도 청소팀 앞으로.」
“……지원금요?”
「2,000만 원. 큰 금액은 아닌데… 이번 인터셉트 당한 던전의 추산 이익도 그쯤 된다더라.」
“그, 그럼 더 확실한 거 아닙니까? 인터셉트가 일어나자마자 청소팀 앞으로 같은 금액이 입금된 거잖습니까. 이건 누가 봐도 범인이 정해져 있잖아요!”
이수용 팀장의 목소리가 점점 격양됐다.
청소팀에 대한 예산 확대 기각.
그 직후에 발생한 인터셉트. 그리고 같은 금액이 청소팀 앞으로 입금.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는 명백한 상황이지 않은가.
「범인이 확실해져서 더 문제야. 던전을 인터셉트 하는 청소부… 넌 이게 말이 된다고 보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반대로 생각해봐. 너 같으면 던전을 인터셉트 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청소팀에 남아 있겠냐고.」
“…….”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덕분에 이수용 팀장은 쉽사리 대답을 뱉지 못했다.
「나 같으면 절대 안 남아 있어. 당연하잖아? 올라갈 힘이 있으면서, 누가 그런 더러운 일을 하려고 하겠냐.」
“화, 확실히 그렇기는 한데…….”
「능력뿐만이 아니야. 내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어. 중간 직급 다 쌩까고 본부장부터 찾아오는 것도 그렇고, 청소부 신분으로 협회 사정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도 그렇고…. 게다가 대놓고 자기가 범인이라는 걸 알려주려는 듯한 이 행동……. 확실하다 수용아.」
서민철 본부장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지금 청소팀에 있으면 안 될 사람이 있는 거야.」
“그, 그럼 대체 그 청소부 놈은…?”
「전에도 말했듯이 협회 내부 사람이겠지. 다만… 상당히 거물 라인인 것 같다.」
그 말에 이수용 팀장의 심장이 철렁했다.
“……설마 협회장님 라인은 아니겠죠?”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 내가 본부장 달 때도 달갑게 보진 않으셨으니까. 그때 협회장님이 꼬투리 하나라도 걸리면 바로 모가지라고 경고까지 했잖냐.」
‘어쩐지…….’
이수용 팀장은 그제야 오늘 있었던 일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같은 팀원들도 그놈이 범인인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대놓고 감싸주지 않았던가. 심지어 인사이동까지 내걸었는데 말이지.
‘이미 그놈이 협회장 라인인 걸 알고 있었다는 건가…….’
젠장,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이렇게까지 대놓고 나오면 의심해봤어야 했는데.
이수용 팀장의 표정이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이거 아무래도 경고하는 게 아닐까 싶다. 지켜보고 있으니까 목 잘리고 싶지 않으면 일 똑바로 하라고. 너도 알겠지만, 내 모가지 떨어지면 너도 어떻게 될지 장담 못 한다.」
잠자코 듣기만 하는 중이었지만, 이미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수용 팀장은 고개를 떨어트리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수용아, 이거…… 우리 아무래도 잘못 건든 것 같다.」
***
다행히 인터셉트 건에 대해선 흐지부지 넘어간 모양이었다.
벌써 이틀이 더 지났는데도 별다른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뭐, 나야 다행이다만…….’
남은 건 입금한 지원금이 언제쯤 편성이 되냐는 것뿐이다.
생각보다 늦어지는 게 내심 불안했지만, 설마하니 대놓고 꿀꺽하진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의 마지막 작업을 끝내고 막 던전 밖으로 나오던 참이었다.
“저건 또 뭐야…….”
던전 앞에 놓인 엄청난 양의 상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던전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없던 것들이다.
“팀장님, 여기로 뭐 배달시키셨어요?”
“…아니?”
모두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이다.
또 뭔가 본보기가 들어온 건가 싶었지만 다행히도 그런 건 아닌 듯했다.
“뭐, 뭐야. 이거 방호복인데?”
궁금증을 참지 못한 한상혁이 상자를 바로 뜯어본 것이다.
“약품도 있어요. 1년은 넘게 쓰겠는데요?”
“정화통에 장갑… 뭐가 엄청 많네. 본부에서 지원해준 건가?”
“에이, 설마요.”
각자 하나씩 상자를 뜯어보던 와중에, 나는 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종이 한 장을 집어 들었다. 협회에서 내려온 공문이다.
보아하니 드디어 지원금이 편성된 모양이었다.
내용은 뭐, 안 봐도 뻔했다.
익명의 지원자가 보낸 물건이다, 대충 그렇게 쓰여 있겠지.
그나저나 2,000만 원어치치곤 꽤 물건이 많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대충 공문을 훑어보던 순간.
‘……뭐야.’
내가 0을 잘못 셌나 싶어, 손가락을 들고 천천히 숫자를 짚어갔다.
‘일, 십, 백, 천, 만…… 이런 미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추가 예산 편성액.
200,000,000원.
내가 입금한 지원금에서 무려 10배나 뛴 금액.
“대, 대체 왜……?”
말을 더듬을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이건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돈이란 말인가.
“혼자 뭐라는 거야 줘봐, 나도 보게.”
그 순간, 한상혁이 들고 있던 공문을 낚아챘다. 동시에 공문에 빼곡히 적힌 글자들을 소리 내어 읽었다.
“협회 내부에서 다시 한번 면밀히 검토해본 결과, 예산 부족에 의한 장비 노후가 이번 사고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이능차원 협회 서울 본부는 약소하게나마 예산을 추가 지급하기로 결정하였고…….”
“뭐?!”
“추가 예산이요…?”
박 팀장과 문소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하지만 아직 밑에 몇 줄이 더 남아 있는지, 한상혁은 계속해서 그것을 읽어나갔다.
“또한, 문소연 님의 사고에 큰 유감과 사과를 표하며, 소정의 위로금을 전하려 합니다. 물론 이것으로 귀하가 겪은 상처를 위로할 순 없겠지만…….”
그러다 마지막 문장에 다다라선 동공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 산재 배상 지급액…….”
100,000,000원.
여기도 1억이었다.
그 액수에 문소연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연신 내저었다. 이내 눈물까지 그렁그렁해지기 시작했다.
그 눈은 곧 나에게로 향했다.
“이, 이거 설마 준우 씨가…?”
“……아닌데요.”
내가 대답하자 한상혁의 시선 또한 나에게로 쏠렸다.
“야, 너 대체 무슨 짓을…….”
“나 아니라니까.”
어리둥절한 건 나 또한 매한가지였기에, 억울한 마음으로 분을 토하던 그때.
“이야, 협회가 입장을 바꾸다니, 오래 일하고 볼 일이구먼!”
박 팀장이 내 어깨에 손을 턱 올리며 말했다.
“티, 팀장님! 팀장님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미 본부에서 내려진 결정이 바뀔 리가 없잖아요! 그것도 이런 금액…!”
“뭘 바뀔 리가 없어, 이놈아. 공문에도 쓰여 있잖냐. 다시 판단했다고.”
박 팀장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러니까 우린 그냥 그런 줄 알고 있으면 되는 거야. 누가 뭔 짓을 했느니… 우린 그런 거 모르는 거다.”
박 팀장은 말없이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한상혁은 아직도 묻고 싶은 게 많이 남아 있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옅은 한숨과 함께 입을 닫았다.
“그나저나 이거 다 사무실로 옮겨야 하는데……. 에잇, 놈들도 참. 이왕 주는 거 사무실에다가 갖다 놓지!”
“우리도 사무실이 있습니까?”
“당연히 있지. 쓸 일이 없어서 문제지만.”
박 팀장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가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고 있자, 김민주가 입을 열었다.
“위치가 어디예요?”
“예, 예?”
“선생님이랑 제가 가져다 놓을게요. 다른 분들은 퇴근하세요.”
“에이, 그래도 둘이서만 옮기는 건 아니죠. 저희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뇨. 저희 둘이 할게요. 괜찮죠, 선생님?”
“……안 괜찮다고 하면 안 해도 되냐?”
김민주가 대답 대신 씨익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나는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리고 그때.
[해금 조건 달성]
[던전 청소팀 예산 확대]
[습득 스킬 : 업화 - 잠금 해제되었습니다]
머릿속에서 음성이 울려 퍼졌다.
***
“선생님이죠?”
마지막 상자를 들고 어둑한 거리를 걸어가던 중.
문소연이 뜬금없는 말을 꺼내 들었다.
“뭐가?”
“요 이틀간 일어났던 인터셉트요. 선생님이 한 거잖아요.”
미간이 꿈틀거렸다.
앞서가던 걸음을 멈춘 채 뒤로 돌아 김민주를 바라봤다.
“그렇다고 하면, 뭐 어쩌려고?”
“무서운 표정 짓지 마세요. 제가 설마 가산점 받으려고 선생님을 찌르겠어요?”
“그럼 굳이 말을 꺼낸 이유가 뭔데.”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날카로워졌다.
“이번 배상금이랑 예산, 선생님이 인터셉트로 번 돈을 지원한 거죠?”
“……알고 있었냐?”
“저뿐만 아니라 팀원들도 다 알고 있을 거예요. 선생님이 곤란해지실까 봐 말을 아끼고는 있지만… 뭐, 모를 수가 없죠.”
적잖은 충격이었다.
이미 다 들켰다니. 나름 철두철미했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엄청 고마워하고 있어요.”
“그렇겠지. 갑자기 2억 원이 생겼는데 누가 안 고마워하겠냐.”
“아뇨. 돈을 떠나서요.”
김민주가 싱긋거렸다.
“그래도 이번엔 운이 좋았어요.”
“그래, 운이 좋았지. 다들 기억이 오락가락해서 안 들켰으니.”
“낭중지추라는 말, 혹시 아세요?”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뜻이야 알고 있다만, 웬 뜬금없는 이야기인가 싶었다.
“선생님의 능력은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수준이에요. 이번에는 어떻게 넘어갔다고 해도 다음에는 분명히 협회 눈에 띌 거예요.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청소팀에 남아 있는 건 힘들겠죠.”
“……그래?”
순간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혹시 위에 잘 얘기해서 작전팀으로 보내주겠다는 뜻인가?
그런 거면 빨리 말하지!
“하지만 선생님은 청소팀에 계속 있고 싶으시잖아요. 절대 작전팀으론 가고 싶지 않잖아요.”
“……어?”
“저도 도와드리고 싶어요. 선생님이 천년만년 청소팀에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얘, 얘가 지금 뭐라는 건가.
눈 하나 꿈쩍 안 하고 저주를 쏟아붓는 이 녀석의 말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왔다.
“물론 저 같은 B급 나부랭이가 도움이 될 리는 없겠지만 제가 A랭크가 되면… 아니, 더 강해지게 되면 그땐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러니까…….”
“…….”
“지금은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이거…….
나 엿 먹이는 거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