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
017
작전 세미나실.
이번 토벌 브리핑을 듣기 위해 참석한 헌터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사이…….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내 말이. 청소팀이 무슨 토벌을 하겠다고 여길 와. 해도 해도 너무하네, 진짜.”
“쯧, 예산도 뺏겨, 직장도 뺏겨. 이젠 일까지 뺏기게 생겼네.”
“어쩌겠냐. 라인 못 탄 게 죄지.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청소팀이나 갈걸. 에휴, 운 좋은 새끼들.”
“야, 야. 듣겠다. 조용히 말해.”
어중간하게 끼어있는 던전 청소팀.
항상 기세등등하던 한상혁도 지금만큼은 기가 팍 죽어 있다.
문소연은 반쯤 넋이 나갔고, 박 팀장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다리 좀 그만 떠세요.”
“아…… 그, 그래. 미안타.”
다들 초긴장 상태.
하긴, 호랑이 소굴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겠지. 아무리 요즘 청소팀의 위세가 좋아졌다고는 해도, 작전팀은 작전팀이니까.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청소부 신분으로는 말 한마디 섞을 수조차 없었던 그들과 한자리에 있으니, 눈치가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뭐, 그래봤자 C, B급 놈들투성이구먼…….’
세미나실을 슥 훑어보던 중,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곤 김민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여기 있는 애들, 작전 1팀이 아닌데? 다중 구역 던전이면 1팀 배정이잖아.”
10년 전, 이 토벌에 참여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사실 참여했다기보단… 애초에 내가 토벌대 리더였지.
당시에 내가 작전 1팀이었으니, 당연히 이번에도 작전 1팀이 맡을 줄 알았는데.
“맞아요. 원래는 우리 팀 작전이긴 했는데, 듣자 하니 이수용 팀장님이 2팀에 통째로 프로젝트를 넘겼다나 봐요.”
“……프로젝트를 넘겨? 대체 왜? 최소 두 달은 준비했을 텐데.”
“글쎄요. 팀장들끼리 무슨 말이 오간 것 같긴 한데…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살다 살다 별……. 쯧, 1팀 애들만 불쌍하게 됐네.”
“안 그래도 반발이 꽤나 심했는데, 위에서 결정 난 사항이니 별수 없죠. 운이 좋게도 저는 끼워 팔기로 참가하게 됐고요.”
“운……?”
참 나, 쓸데없는 겸손 떨긴.
이런 대규모 토벌에 리더를 맡게 됐다는 건 운의 문제가 아니다.
토벌대 리더라는 건, 팀장급들을 제외하고 현장에서 토벌대 전체를 지휘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자.
현재 팀원 중 가장 뛰어난 헌터라는 방증이다.
‘뭐… 잘하고 있나 보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무튼, 죄송해요. 선생님을 작전팀이랑 엮이게 하고 싶진 않았는데 팀장님이 하도 닦달을 해서.”
“……됐어. 우리 데리고 뭐 하려는 건지나 들어보려고 온 거니까.”
겉으론 아닌 척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과몰입 - 해금 조건 : 타 부서와 공동 프로젝트 체결]
이렇게 단번에 기회가 올 줄이야.
클클클.
“어, 언니. 그래서 저희는 무슨 일을 하는 거예요? 설마 진짜로 토벌에 참여하는 건 아니죠?”
“저도 모르겠어요. 팀장님이 일단 데려오라고만 하셔서. 아마 브리핑 때 설명해주시겠죠. 아, 저기 오시네요.”
김민주의 시선이 세미나실 앞에 놓인 단상으로 옮겨갔다.
때마침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서류를 들고 등장했다.
“아아.”
중저음의 목소리와 함께 손가락으로 마이크를 건드리길 두어 차례.
“안녕하십니까. 이번 영등포 다중 구역 던전 토벌의 작전 기획을 맡은 작전 2팀장, 임동빈입니다.”
남자의 정체를 확인하자 나도 모르게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며 눈에 핏줄이 섰다.
‘저, 저 새끼는…….’
꽈악 쥐어지는 주먹. 몸이 부들거릴 정도였다.
“준우 씨…?”
“선생님?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팀원들의 주의를 끈 것 같아 애써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분노는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는 놈이다.
아는 걸 넘어서, 잊을 수가 없다.
신입 시절, 내 실적을 몇 개나 가로챈 놈을 어떻게 잊겠는가.
나뿐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모두 준비해놓은 프로젝트에 숟가락만 올리는 짓도 수없이 봤다.
‘쯧, 왜 프로젝트가 2팀한테 넘어간 건지도 대충 이해가 가네.’
요즘 1팀 분위기도 뒤숭숭하겠다, 틈을 노려서 뺏어온 게 분명하다.
“김민주, 너 혹시 저 팀장이랑 아는 사이냐?”
“아뇨. 가끔 마주치면 인사는 해도, 대화를 나눠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애초에 다른 팀과 교류가 많은 것도 아니고요.”
“혹시라도 친해지려고 하지 마. 저놈이랑은 엮여서 좋을 거 없으니까.”
“……네?”
영문을 몰라 김민주가 되물었지만, 굳이 사정을 설명하진 않았다.
그냥 저 새끼를 피하면 충분하다. 괜히 엮였다간 성장에 방해만 될 테니까.
“이번 작전의 토벌 예상 시간은 24시간. 다들 아시다시피, 던전에 한 번 들어가면 모든 구역이 토벌될 때까지 나올 수 없으니 이점 염두에 두시고요. 혹시 작전 참가를 원치 않으시면 오늘 안까지 말씀해주십시오.”
임동빈 팀장의 브리핑이 시작되자 헌터들의 눈이 사뭇 진지해졌다.
“아무래도 토벌 시간이 24시간이나 되다 보니 그사이에 이미 토벌한 몬스터는 부패가 시작될 겁니다. 가스가 방출되기 시작하면 토벌에도 지장이 생기겠죠. 그 부분은 여기 계신 청소 3팀 분들이 맡아주실 겁니다.”
그리고 공개된 청소팀의 임무.
당연히 헌터들과 함께 직접 토벌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비웃을 만한 작전이다.
토벌과 청소가 동시에 진행된다?
이건 그냥 2팀의 헌터들이 무능해서 빠른 시간 안에 토벌이 불가능하다는 소리밖에 안 된다.
‘나 때는 6시간이면 떡을 쳤는데.’
당연히 청소팀과 공동 작전 같은 건 생각조차 안 해봤고, 실제로 그럴 필요도 없었다.
“어떠신가요. 청소팀 분들, 할 수 있으시겠죠?”
“아, 뭐…….”
박 팀장이 대답 전에 우리 눈치부터 살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다들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청소팀에겐 작전팀과 교류를 맺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토벌 이후에 한꺼번에 작업하는 것보다 실시간으로 작업하는 게 효율도 좋다.
그리고 나에게도 절호의 해금 기회다.
이번이 아니면 언제 다른 팀과 연합으로 작전을 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청소팀이.
“죄송합니다.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저 양아치 새끼 목구멍에 실적 꽂아주느니 안 하고 말지.
***
브리핑이 끝난 후.
모두가 돌아가고 텅 비어 버린 세미나실.
김준우 또한 먼저 자리를 떴지만, 청소팀은 아직 그곳에 남아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왜 거절한 걸까요.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은데…….”
문소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성과급도 준대서 덥석 물려고 했더만. 설마 쫄았나?”
“에이… 준우 씨가 던전을 무서워한다고요?”
“아냐, 아냐. 그 새끼 내가 확실히 봤는데 손을 계속 덜덜 떨더라고. 쫄아서 그런 게 아니면 뭐겠냐.”
한상혁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그 말을 귀담아듣는 이는 없었다.
한편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김민주가 박 팀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무래도 우리가 걱정되는 모양입니다.”
“저도 동감이에요.”
김민주와 박 팀장이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브리핑 때는 간략하게만 설명해서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사실 엄청나게 위험한 작전이에요. 24시간 동안 논스톱으로 진행되는 토벌에 합류하는 거니까요. 저도 솔직히 말리고 싶었어요.”
“그래요. 이번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 녀석은 알고 있었겠죠. 준우 성격에 그걸 모른 척할 리도 없고…. 아무래도 우리가 멋모르고 수락해 버릴까 봐 자기 선에서 선을 그은 것 같군요.”
박 팀장이 진지한 얼굴로 거들었다.
문소연과 한상혁은 괜히 머쓱해진 기분이었다.
어디까지 사람 좋은 녀석인 건가.
“……참 나, 그러면 그렇다고 말이라도 해주던가. 꼭 사람 오해하게 만든다니까.”
“그래도 준우 씨답네요.”
문소연이 싱긋 웃었다.
“그래도… 꼭 참가하고 싶으신 분들이 있다면 제가 팀장님한테 말해볼게요.”
“됐어요, 됐어. 그 새끼가 기껏 우리 생각해서 총대 매줬는데 막무가내로 나갈 순 없지.”
“그렇죠? 뭐, 꼭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구요.”
“하하하! 그래, 준우 마음 모르는 거 아니니까. 아쉽기는 해도 어쩔 수 없지. 우리 팀은 이번 작전 불참이다!”
박 팀장이 결론을 지었다.
당연하겠다만, 이견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니라도 파이팅이에요.”
문소연이 김민주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하지만 김민주는 대답을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다 이내.
“저도 빠질까 봐요.”
자신도 작전에서 빠진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네?! 그건 안 되죠! 이런 큰 작전의 리더시잖아요!”
“그, 그러니까 말입니다! 우리가 빠져서 그러는 거라면 다시 생각을…….”
“아뇨. 딱히 휩쓸리는 건 아니에요. 사실 저도 좀 탐탁지 않았어요. 잘할 자신도 없고, 아직 때도 아닌 것 같고. 무엇보다 선생님이 그놈이랑은 엮여서 좋을 거 없다고 하셨거든요.”
과분하리만큼 큰 기회인 건 틀림없었다.
아무렴, 이런 대규모 토벌대의 리더 자리가 아닌가.
하지만 자신이 없는 것도 사실이고, 무엇보다 김준우가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다.
김민주 입장에선 당연히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뭐, 이럴 때일수록 선생님 말을 들어야지 누구 말을 듣겠어요.”
***
작전 2팀 사무실. 모두가 퇴근한 시각.
임동빈 팀장은 혼자 남아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선배님!”
때마침 찾아온 반갑지 않은 손님.
다름 아닌, 이수용 팀장이었다.
“좆 되셨다면서요?”
이수용 팀장은 매우 들떠 있는 표정이었다.
덕분에 임동빈 팀장의 심기가 더욱 불편해졌다.
“…시비 걸 거면 꺼져라.”
“내가 뭐랬습니까. 어쭙잖게 건드릴 상대가 아니랬잖아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 벌써 다 눈치 깐 겁니다.”
임동빈 팀장의 한숨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이런 중대 프로젝트에 청소팀을 끌어들인 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이수용 팀장에게 내건 조건.
청소팀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선 반드시 이번 토벌에 참여시켜야 했다.
그런데…….
“성과급까지 걸었는데 이제 와서 발을 뺀다고? 진짜 눈치챈 건가?”
“심지어 김민주까지 빠졌다면서요. 그럼 뭐 말 다 한 거지. 작전 2팀, 김민주 없이 이번 작전 가능합니까?”
“……우리를 뭐로 보고.”
무리수까지 둬가면서 뺏어온 프로젝트다. 공치게 되면 그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뒤집어써야 한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해야 했다.
하지만 현재 작전 2팀의 수준으로는…….
“……민간 길드에 협력 요청하면 돼.”
“걔네 스카우트할 돈은 있습니까?”
“이번 분기 예산 좀 남았잖아.”
“모자랄걸요? 내가 최근에 2억 원이나 써버렸거든.”
“아니, 시발…….”
임동빈 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최근에 청소팀한테 작전팀의 예산이 빠져나갔다는 건 이미 보고 받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그 정도는 딱히 영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렇게 될 걸 예상하고…….’
임 팀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대체 얼마나 치밀한 놈인 건가.
괜히 거물 라인이라고 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 봤자, 작전 경험도 없는 애송이 새끼가…….”
임 팀장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수용 팀장은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것을 애써 참으며 입을 열었다.
“차라리 운이 좋은 걸 수도 있습니다.”
“뭐?”
“넘어진 김에 쉬어가랬다고, 괜히 무리해서 끌어들였다가 된통 당하지 마시고 다른 방법을 알아보시는 게……. 됐다, 선배님이 알아서 잘하시겠지. 어쨌든 이제 난 모르는 일입니다~.”
“야!”
임 팀장이 사무실을 나가려던 이수용 팀장을 불러 세웠다.
“왜요. 설마 이제 와서 도로 가져가라는 건 아니죠?”
“나도 본부장 라인 한 번 빌리자.”
임동빈 팀장의 눈빛이 한층 날카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