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018
밤 10시를 훌쩍 넘긴 시각.
여느 때처럼 버스를 타고 퇴근하던 중이었다.
“할 걸 그랬나…….”
시간이 좀 지나고 흥분이 가라앉으니 스멀스멀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깝단 말이지.’
생각해보면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전생의 원수라지만… 딱히 지금 나한테 뭔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별 상관도 없는 놈 아닌가.
하나라도 더 많은 스킬을 해금해야 하는 상황에 괜한 자존심을 세웠다.
그래, 그까짓 원수가 이제 와서 무슨 대수라고. 눈 한 번만 딱 감으면 그만인데.
‘지금이라도 가서 다시 끼워달라고 하면…….’
……안 해주겠지.
나 같아도 안 해준다.
뭐가 아쉽다고 주제넘게 거절한 청소부를 다시 끼워주겠어.
‘모르겠다. 이미 지난 일, 더 생각해봤자 뭐…….’
[해금 조건 달성]
[타 부서와 공동 프로젝트 체결]
[습득 스킬 : 과몰입 - 잠금 해제되었습니다.]
……?
“뭐, 뭐야.”
뜬금없이 머릿속에 울린 음성에 나는 크게 당황했다.
혹시 환청이라도 들은 건가 싶어 다급하게 시스템 창을 확인했지만…….
[습득 스킬 : 과몰입]
잘못 들은 게 아니다.
분명하게 해금이 됐다.
‘이, 이게 왜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감도 못 잡고 있던 그때, 핸드폰 진동이 요란하게 울렸다.
김민주에게서 온 전화였다.
김민주 또한 작전 참가를 거절했다는 소식은 이미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솔직히 나로선 이해가 안 가긴 했다만 뭐, 개인적인 사정이 있겠거니 했는데…….
“서, 선생님… 죄송해요.”
축 처진 목소리.
다짜고짜 사과부터 뱉는 걸 보니 확실히 무슨 일이 생겨도 생긴 모양이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나는 일단 아무것도 모르는 척 담담하게 물었다.
“본부에서 청소 3팀에 필수 참가 명단이 내려왔어요.”
“필수 참가 명단?”
“네. 물론 저도 포함됐고요. 아무래도… 이번 작전 참가하셔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래서…….”
작게 탄식했다.
이제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다.
작전 필수 참가 명단.
토벌에 있어 꼭 필요한 인원이 있을 경우, 본부장 권한으로 내려오는 강제 작전 수행 명령.
그거 때문에 강제로 공동 프로젝트가 체결된 거구만.
“정말 죄송해요. 팀원분들 생각해서 총대 메고 거절하신 건데, 이렇게까지 나오면 저도 어쩔 수가…….”
“아니야. 신경 쓰지 마.”
잘됐지 뭐.
마침 후회하던 참이었거든.
그런데 팀원을 생각해서 거절했다는 건 뭔 소리지.
“아무튼, 날짜는?”
“네?”
“토벌 날짜 말이야.”
“차, 참가하시게요?”
“필참 명단 내려왔다면서. 상부의 명령인데 따라야지 별수 있어?”
김민주의 대답이 늦어졌다.
핸드폰 너머로 어렴풋이 들려오는 숨소리가 조금 떨리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미안해하는 듯했다.
“……5일 뒤 토요일이에요.”
“좀 빡세네……. 일단 알았어. 또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 주고.”
“네. 알았어요.”
통화를 종료하고 좌석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댔다.
동시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마음속으로 감사를 표하며 가만히 버스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그나저나…….’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필참 명단을 청소팀한테까지 내리는 경우도 있었나?’
그것도 굳이 청소 3팀이라고 콕 집어서?
그렇게까지 하면서 우리를 참가시킬 이유가 없는데. 청소팀이라면 꼭 우리 팀이 아니어도 충분할 테고.
턱을 쓰다듬으며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빠지길 잠시.
‘……하암.’
하품과 함께 머리 밖으로 날려버렸다.
모르겠다.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
작전 준비 때문에 정말이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5일이 지나고.
토벌 당일. 영등포 어딘가.
“무,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아요?”
우리가 막 던전 앞에 도착하자마자 문소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닌 게 아니라, 던전 앞은 대규모 토벌 소식을 듣고 취재를 나온 기자들과 구경을 나온 일반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토벌이면 온갖 언론에서 관심을 가지니까요. 협회가 그걸 원하기도 하고요. 일종의 마케팅이죠. 시민들의 관심이 올라가면 그만큼 후원이나 지원금도 여기저기서 들어올 거고요.”
“그럼 우리도 막 인터뷰하고 그러냐? 사진도 찍히고 기사도 나고?”
“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스킨이라도 좀 바르고 올 걸 그랬다.”
“……머리 감을걸.”
문소연을 포함한 팀원들은 주변의 시선을 크게 의식했다.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와 자꾸만 들이대는 마이크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관심. 이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조금은 위축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건 김민주 또한 마찬가지였다.
“명색이 리더라는 녀석이, 얼굴이 사색이 돼선… 왜, 긴장돼?”
“……당연하죠. 처음인걸요. 이런 거.”
“그래도 대범하게 행동해. 헌터가 긴장하면 시민들은 불안해한다.”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지만.
어째 김민주의 부담스러운 시선이 나를 향했다.
“선생님은 익숙하신가 봐요.”
“그런 셈이지. 그래도 오늘은 좀 많긴 하네.”
주변을 슥 둘러보며 대답했다.
본부에서 어지간히도 떠들고 다녔나 보다.
하긴, 대규모 토벌이 흔한 일도 아니고.
청소팀과의 공동 프로젝트라고 하면 모양새도 좋으니 이참에 지원금 좀 끌어모을 생각이겠지.
“어깨 좀 펴. 고작 사람들 몇 명 모였다고 이렇게 긴장하면 토벌 때는 어떻게 하려고.”
“괜찮아요. 전 실전에 강한 타입이라서요.”
“그래, 어련하시겠어. 뭐,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던전 들어가는 순간부터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토벌에만 집중해. 우리한테는 신경 끄고.”
내 당부에 김민주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무전기는 켜주세요.”
“왜. 설마 도와달라고 할 건 아니지?”
“…….”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어째 웃질 못한다.
기억 속의 김민주와 너무 상반된 모습이라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지어졌다.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이대론 다 죽겠다 싶으면 그때 얘기해.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네.”
당연히 해본 소리였다.
이런 대규모 작전에서 청소부의 도움을 받는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물론 김민주 또한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않았다.
그래도 긴장은 조금 풀렸는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모든 참가 인원들이 던전 앞으로 모여들었다.
어림잡아도 60명은 족히 되는 인원이 작전에 앞서 분주하게 최종 점검을 하는 중이었다.
“자! 우리도 점검 한 번씩 하자. 약품이랑 장비 다 제대로 있지?”
작전팀에 질 수 없다는 듯, 박 팀장이 입을 열었다.
“과산화수소, 묽은 염산, 식염수. 각각 10L씩 다 있어요.”
“진공 압축기랑 EVA 필름 압축팩. 레벨 C 방호복 인당 세 벌씩. 고글도 있고, 정화통도 확인했습니다.”
“식량이랑 물도 잘 있습니다!”
한상혁이 마지막으로 대답했다.
“좋아! 힘든 작업이겠지만 다들 평소처럼만 하면 문제없을 거야. 기합 빡세게 넣고 가자고.”
박 팀장의 우렁찬 목소리에 주의가 끌린 듯, 헌터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느껴졌다.
개중에는 일부러 들리도록 비웃는 이들도 있었다.
뭐… 청소팀 주제에 꼴값을 떤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아이고, 드디어 오셨네. 오늘 잘 부탁한다. 김민주 리더님.”
“……잘 부탁드려요.”
그때, 임동빈 팀장이 토벌대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스레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인사를 받은 김민주 또한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저분도 참가하는 거였어요? 민주 언니가 리더라고 해서 참가 안 하는 줄 알았는데.”
문소연은 어리둥절한 건지, 목소리를 낮춰 나에게 속삭였다.
“뭐, 자주 있는 일은 아닙니다. 팀장이 직접 참가하는 토벌이라면 보통은 팀장이 리더를 겸임하니까요. 그런데 무조건 그런 것만은 아니고, 자질이 충분한 헌터가 있을 경우 다른 이를 리더로 선임하기도 하죠.”
“그게 민주 언니라는 거죠?”
“……그렇게 되겠죠.”
물론 김민주가 리더 자질이 있다는 건 인정한다만… 사실 임동빈 팀장이 리더를 맡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저 새끼, 현장 지휘를 할 줄 모르거든.
작전 기획만 하던 놈이라, 리더 경험이 없는 탓에 토벌에선 항상 얹혀가는 놈이었으니까.
뭐, 팀장 딱지 달고서는 항상 토벌 완료 직전에 리더를 위임받아서 실적만 가로채는 일이 비일비재했지.
쯧, 하여튼 개양아치 새끼라니까.
“첫 리더 자리라고 너무 긴장하지 말고. 나도 있잖아! 조금이라도 문제 생기면 나한테 다 맡기면 돼.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떨떠름한 대답.
김민주의 반응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임동빈 팀장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그는 작게 혀를 찬 뒤, 이내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청소팀 분들도 잘 부탁드립니다.”
“……예.”
“미리 말씀드리지만, 청소가 지체되면 안 됩니다. 가스가 방출되기 시작하면 토벌에 영향을 미치게…….”
“알아서 잘하겠습니다.”
임동빈 팀장의 표정이 결국 싸늘해졌다.
나를 노려보는 눈빛에서 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주변 시선을 의식한 건지 곧바로 표정을 바꿨다.
“……자자, 다들 모인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정리 한 번 하자고. 김민주 리더님?”
임동빈 팀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김민주를 떠밀었다.
김민주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들 숙지하셨겠지만, 한 번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바짝 힘이 들어간 목소리.
“토벌은 A, B, C 세 팀으로 나눠 진행합니다. A팀이 첫 번째 구역을 토벌하면 다음 구역은 B팀이 토벌을 진행하고, 그다음엔 C팀. 이 사이클을 토벌이 모두 완료될 때까지 반복해주시면 됩니다.”
“넵!”
조금 놀랐다.
방금까지 바짝 긴장해있던 녀석이 맞나 싶을 정도로 꽤나 당당한 기세였다.
“아시다시피 이번 작전은 청소팀과 공동으로 진행합니다. 워낙 베테랑들이시니 저희가 신경 쓸 부분은 없을 겁니다. 그래도 만약에, 정말 만약에 혹시 모를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청소팀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
쟤 지금 뭐라 그런 거야?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 올랐다.
혼란에 빠진 분위기.
보다 못한 임동빈 팀장이 급하게 수습을 위해 나섰다.
“하, 하하! 김민주 리더님이 긴장하셨네. 작전팀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한 거지?”
“……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임동빈 팀장은 답답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고, 그냥 바로 진행이나 하라는 듯한 제스처를 보냈다.
“아무튼, 다들 마지막으로 작전 내용 한 번씩 검토해보시고…….”
김민주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던전 입구로 다가갔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검은색의 날카로운 검을 꺼내 들었다.
전생에서도 그녀와 단짝이었던 흑랑지도(黑浪之刀).
“준비되셨으면, 작전 시작합니다.”
검을 쥔 그녀가 작전 개시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