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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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 구역 던전.
기본적으로는 그린 등급의 동굴형 던전으로 분류되는 곳이다.
던전 자체는 그리 위험도가 높지 않다.
다만 다중 구역이라는 특수한 구조와 토벌이 완료될 때까지 나갈 수 없는 조건 때문에 높은 주의를 필요로 한다.
“솔직히 들어오기 전까지는 조금 겁났는데…….”
첫 번째 구역의 보스, ‘펜타그램 발록’을 처리하던 중, 문소연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어째 생각보다 평화롭네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토벌이 시작된 지도 2시간이 흘렀다.
처음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다들 바짝 긴장한 상태였지만, 막상 작업을 시작하니 평소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사실에 안심하는 듯했다.
“아무리 대규모 작전이라고 해봤자 저흰 청소 역할이니까요. 아마 끝날 때까지 토벌대랑 만날 일도 없을 겁니다.”
“에휴, 토벌하는 거 구경 좀 해보고 싶었는데. 이래선 공동 프로젝트를 하는 의미가 없잖아.”
“이놈아, 네가 헌터냐? 우리야, 우리 일만 잘하면 되는 거야.”
박 팀장이 한상혁을 다그쳤다.
그의 말이 맞았다.
물론 지금쯤 최전선에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겠다만…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가.
청소팀이 청소만 잘하면 그만이지.
“자! 해체 끝났으면 이제 약품 처리하자.”
박 팀장은 이내 조각조각이 난 몬스터 앞에서 몸을 쭉 일으켜 세웠다.
“토벌이 끝날 때까지 몬스터 한 마리도 부패하면 안 된다. 약품 처리한 다음에는 잊지 말고 비닐 씌워서 진공포장 꼭 해두고!”
“귀에 딱지 앉겠습니다~.”
“이번엔 좀 참아라. 우리만 일하는 거 아니잖냐. 우리가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진짜 큰일 날 수도 있어. 그러니까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박 팀장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했다.
이곳에선 해체한 몬스터를 밖으로 들고 나갈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다.
그러니 사체가 부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몬스터를 해체 후 약품에 담갔다가 비닐 팩에 씌워 진공포장을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덕분에 작업이 훨씬 더 번거로워지긴 했다만……. 번거롭다 뿐이지, 그 이상 어려울 건 없었다.
“근데 밥은 언제 먹나?”
“이놈아, 들어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밥 타령이냐?”
“간식이라도 먹고 할까요?”
“어? 간식이 있어?”
“혹시나 해서 집에서 초코바 몇 개 가져왔어요. 자, 준우 씨도 하나 먹어요.”
“아, 전 딸기 맛으로.”
슬슬 긴장도 풀린 건지 분위기도 한층 가벼워지던 참이었다.
잡담이 계속해서 오갔지만, 그런 와중에도 작업에 실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문제 될 게 없다.
그냥 평소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었고, 나 또한 이견이 없었다.
그렇게 작전이 시작된 지 5시간째.
다들 조금 지친 기색이지만 아직까진 괜찮았다.
8시간째.
문소연이 슬슬 피로감을 느끼는 듯했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10시간째.
해체 작업 도중, 한상혁이 졸다가 손을 다쳤다. 아쉽게도 큰 상처는 아니었다.
15시간째.
이전에 작업한 구역에서 작은 이슈가 발생했다. 몬스터를 진공 포장해놓은 비닐이 터진 것이다.
그걸 재처리하느라 작업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고, 토벌 진행 현황과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전 18시간째.
「아아, 청소팀, 청소팀. 지금 던전 내 가스 수치가 올라가고 있으니 확인 바랍니다.」
결국, 문제가 터져버렸다.
“죄, 죄송합니다. 현재 구역이 많이 밀려 있어서요.”
「밀렸다고요? 지금 몇 번 구역입니까?」
헌터의 물음에 박 팀장은 손가락으로 빠르게 숫자를 셌다.
“지금이… 5번 구역입니다.”
「5번? 우린 지금 10번 구역을 토벌했는데? 다섯 구역이나 밀렸다고요?」
“죄송합니다. 한 시간만 쉬고 최대한 빨리 진행해보겠습니다.”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립니까. 한 시간이나 쉬면 지금 밀린 몬스터는 어떻게 할 겁니까? 지금도 계속 수치가 올라가는데 그걸 그냥 내버려두시겠다고?」
헌터의 목소리가 주제도 모르고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쪽 작업 진행이 밀리면 그쪽에서 조절하면 될 거 아닌가.
나는 보다 못해 무전기를 뺏어 입을 열었다.
“다들 지금 너무 지쳐있습니다. 더 이상 진행하는 건 무리니까, 김민주 리더한테 토벌 일시 중단 요청해주십시오.”
나 또한 도를 넘은 피곤함에 굉장히 짜증이 난 상태였다.
빨리 끝내지 못할 거면, 하다못해 조금이라도 쉬고 싶었지만…….
「……그건 안 됩니다. 예정 시간에 늦어집니다.」
얼탱이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지금 이대로 진행하겠다는 겁니까? 이쪽은 더는 계속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그건 청소팀의 문제 아닙니까? 어떻게든 알아서 하셔야죠.」
순간 욕이 튀어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그래, 지금은 작전 중이다.
작전 중에 화를 내는 건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다.
그렇게 다독이며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럼 최소한 지금 로테이션이 아닌 헌터들이라도 보내주십쇼. 지금 저희 상태로는 계속 밀리기만 할 겁니다.”
「……안 됩니다.」
“야 이 개새끼야. 당장 팀장 바꿔.”
프로는 개뿔 시발.
신경을 건드리다 못해 터트려버리네?
「…….」
하지만 무전기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더 이상의 무전은 없었다.
덕분에 머리에 점점 피가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작전에 투입되는 인원과 팀을 편성하는 것은 작전기획자인 팀장의 역할이다.
작전팀은 60명 편성에 세 팀으로 나눈 로테이션 배치. 하지만 총원이 고작 4명뿐인 우리는 무려 단일팀으로 편성됐다.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가 쌓이고 작업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토벌 중단도 안 하고, 도와주지도 않겠다?
이거 시발. 아무리 봐도 일부러 그러는 거지?
‘피곤해 뒤지겠는데 움직이게 만드네…….’
자꾸만 감기는 눈을 억지로 치켜뜨며 안쪽 구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
방금 토벌이 끝난 10번 구역.
비번인 B와 C팀이 그곳에 모여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그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자, 임동빈 팀장이 나를 발견하곤 곧바로 튀어나왔다.
“거참, 뭐 하자는 겁니까! 알아서 잘한다면서? 지금 가스 차는 거 안 보여요?!”
화가 잔뜩 난 목소리.
다짜고짜 목에 핏대를 세우며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길 찾아올 시간 있으면 작업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거 엄연히 농땡이 피우는 겁니다. 근무 태만이라고요!”
“…김민주 리더 어디 있습니까?”
아쉽게도 그에겐 볼 일이 없었다.
가볍게 무시하며 물었지만, 임동빈 또한 대답해줄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건 알아서 뭐 하시게. 참 나… 지금 청소팀 이러는 거 적반하장이라고 생각 안 해요? 내가 토벌에 영향 안 끼치게 해달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곤란하지!”
“쉬지도 못하고 18시간을 일했는데 당연한 거 아닌가? 우리가 기계입니까? 더 이상은 우리도 한계니까…….”
“그럼 뭐, 더 이상은 못 하겠다, 그 소리야?”
순간 임동빈 팀장의 눈빛이 바뀌었다.
“시발, 진짜 큰일 났네. 청소팀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작전 다 망치게 생겼잖아.”
그리곤 주위 헌터들이 듣길 바라는 건지, 임동빈 팀장은 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헌터들의 시선이 나에게 쏟아졌다.
“참 나,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근무 태만, 지시 불이행, 토벌 중 작전 포기.”
“……?”
“당신들, 토벌해본 적이 없어서 감이 잘 안 잡히나 본데… 이거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야. 지금 청소팀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내가 반드시 엄중하게 물을 거야. 설마 이걸 부당하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눈을 부라리며 다짜고짜 경고를 던지는 임동빈 팀장.
나는 결국 참다못해 실소를 뱉었다.
“……웃어?”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왜 굳이 필참 명단까지 써가면서 우리를 참가시키려는 건가 했더니…….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데려온 거구만.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징계를 먹인다라… 하여간 이런 쪽으론 비상한 새끼라니까.’
하긴, 작전팀이 언제까지 청소팀 눈치 보고 다닐 수는 없을 노릇이고. 이런 식으로 징계라도 좀 먹여서 기세를 꺾고 싶었던 거 같은데…….
팀장이 할 만한 짓은 아니지, 아무리 봐도.
“……이봐. 당신 지금 믿는 구석 있다고 막 나가려는 것 같은데. 작전 포기야, 작전 포기. 이건 협회장님이 와도 커버 못 친다고. 알아들어?”
“알았어요. 그래, 뭐… 우리 팀이 작전 포기했다고 치고. 이제 어떻게 하시려고? 가스 차고 있는데 계속 토벌 진행할 겁니까?”
임동빈이 들고 있던 무전기의 채널을 조정했다.
아아, 발신을 확인하길 한 차례.
“임동빈 팀장이다. 지금 바쁘냐?”
「팀장님? 지금 좀… 야! 고개 숙여! …바쁘긴 한데요!」
수신자는 다름 아닌 김민주였다.
“문제가 생겼어. 청소팀이 작전 포기했다.”
「……네?」
“처리 못 한 시체만 5구야. 이대로는 토벌하기 전에 모조리 질식사할 거다. 이제부턴 내가 직접 지휘할 테니까, 리더 자리 나한테 넘겨.”
「그, 그게 무슨…?」
“리더 자리 넘기라고! 햇병아리 새끼가 어떻게 할 상황 아니니까!”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세상에, 누가 누구더러 햇병아리라는 건가.
그나저나, 이런 상황에도 어떻게든 실적은 뺏어 먹으려고 하는군.
이걸 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양아치 새끼.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네.”
“뭐? 너 지금 뭐라고……?”
“야, 김민주.”
「선생님? 팀장님 말 진짜예요? 청소팀이 작전 포기했다는 거?!」
전투 중이라 그런 건지 꽤나 격양된 목소리였다.
“너 혹시… 지금 도저히 안 되겠다, 이대론 다 죽겠다 싶지 않아?”
「……네?」
잠깐 대답이 끊겼다.
그사이, 기다리다 못한 임동빈 팀장이 먼저 선수를 쳤다.
“아, 답답하게 하네, 머저리 같은 년이. 빨리 지휘권 넘긴다고 말하라고. 뭐 이리 시간을 끌어! 이년은 리더 한 번 시켜줬다고 진짜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아네?”
「……알았어요. 넘길게요.」
그제야 임동빈 팀장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도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김준우 청소부님한테요.」
“진작 그럴 것이…… 잠깐, 뭐?!”
「현 토벌대 리더, 김민주는 지금 시간부로 청소 3팀 김준우 청소부에게 지휘권을 인계합니다.」
콰직.
반대쪽 무전기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야! 야, 김민주……!”
임동빈 팀장은 무전기에 얼굴을 박고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다.
물론 대답이 돌아올 리는 없었다.
“뭐… 다들 들었지?”
나는 대기하고 있던 헌터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들 역시 임동빈 팀장과 똑같은 표정이다.
지금 무슨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하지만 이제부턴 알아서 눈치껏 행동해야 할 거다.
“지금부터 이 작전, 내가 지휘한다.”
간만에 현역 때 기분 좀 낼 거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