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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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실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무거웠다.
서민철 본부장 또한 평소답지 않게 진지한 얼굴이었고, 덩달아 김민주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송혜연 보좌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점심 먹으러 가자고 재촉하는 바람에……. 제가 아니었으면 청소팀은 평소처럼 완벽하게 정리했을 겁니다.”
먼저 입을 연 건 김민주였다.
듣는 사람 귀까지 떨릴 정도의 목소리였다.
이윽고 본부장이 무어라 말을 꺼냈지만, 나에겐 들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내 머릿속엔 온통 다른 생각뿐이었으니까.
일반 시민 내 던전 청소팀에 대한 관심도 상승.
여기서 사고 책임을 청소팀으로 공표한다면 필연적으로 관심도는 오를 수밖에 없다.
뭐, 당연히 긍정적인 관심은 아니겠지만…….
“제 책임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두 사람의 대화를 자르듯 말했다.
“……뭐?”
“네, 네?!”
“제가 한 실수입니다. 그러니 전부 제 책임입니다.”
“서, 선생님 책임이라뇨?! 그게 무슨 말이에요!”
“조용히 해. 본부장님 앞이야.”
완강하게 말하자 김민주가 움찔했다.
당연히 이렇게 되면 인터넷이든 언론이든 한동안 물고 뜯기 바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애초에 바리케이드 설치는 법적으로 정해진 사항은 아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정부에서 ‘권고’하고 있는 것뿐이니까.
불행 중 다행으로 학생들의 부상도 아주 경미한 수준이고.
뭐, 어찌 됐든 사고 책임은 져야겠다만… 그 경중이 생각보다 크진 않다.
경험상 이 정도 사안은 한 달을 못 간다.
딱 한 달만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런 도박을 하지 않더라도 대중의 관심을 끌어낼 방법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쉽게도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공동 프로젝트 때도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찼다가 후회하지 않았던가.
그땐 운이 좋아 해금할 수 있었다고 쳐도, 이번에도 그런 요행을 바랄 순 없다.
기회가 오면 잡아야겠지.
“청소팀이 실수한 거라고?”
“아뇨. 청소팀이 아니라 제가 실수한 겁니다.”
“……허어.”
서민철 본부장의 미간이 찌그러졌다.
당연히 청소팀 전체의 탓으로 돌릴 수도 없다. 시민들에겐 한 달이면 잊혀진다고 해도, 본부는 그렇지 않으니까.
팀 전체의 책임이 되면 단체 징계를 피할 수 없다. 본부 내에서 청소팀의 입지가 무너지면 앞으로의 해금은 어려운 수준이 아니라 불가능해진다.
그러니 여기선 던전 청소팀 소속의 일개 청소부의 잘못으로 돌려야 한다.
“원래 청소가 완료된 던전에 바리케이드를 놓는 건 제 역할이었습니다. 그걸 깜빡하고 식사하러 갔습니다. 그러니까 순전히 제 책임입니다.”
“무슨 소리예요?! 선생님이 바리케이드 치는 거 제가 분명……!”
“김민주. 한 번만 더 목소리 키워라.”
곁눈으로 한 차례 김민주를 쏘아보았다.
그리곤 다시금 서민철 본부장을 향했다.
“아무튼, 내일 있을 입장 표명. 정확하게 ‘던전 청소팀, 김준우 청소부’의 관리 실수라고 말씀해주십시오. 아니면 제가 직접 나가도 좋고요.”
쐐기를 박아넣자 서민철 본부장은 오히려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러니까, 자네 혼자서 실수한… 거다?”
“네, 그렇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인가?”
“아무 생각 없습니다. 사실을 말씀드린 겁니다.”
“아무리 자네라도 징계를 피할 수는 없을 걸세.”
경고하는 건지, 아니면 위로하는 건지 모를 말이다.
나는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징계 한 번에 스킬 해금이면 싸게 먹힌 거다.
“……알았네. 입장 표명은 내일 아침 9시로 잡아 놓을 테니까, 직접 나가게.”
“네. 알겠습니다.”
“이야기 끝났으면 다 나가봐.”
내가 먼저 등을 돌렸다.
내 뒤를 따라 모두 본부장실을 나왔다.
“무슨 짓이에요?”
아니나 다를까, 기다렸다는 듯이 김민주가 쏘아붙였다.
“아, 뭐… 나도 바리케이드 친 줄 알았는데, 깜빡했나 보다. 어쩌겠냐. 내 실수인데”
“무슨 소리예요! 제가 선생님 바리케이드 설치하는 거 봤다고요. 심지어 저희보고 설치하는 동안 기다려달라고 하셨잖아요!”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디서 귀찮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선생님이 청소팀 생각하는 건 알겠는데, 이건 진짜 아니에요. 왜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뒤집어쓰려는 건데요!”
“참 나…….”
김민주의 목소리가 흔치 않게 격양되고 있었다.
내 속을 알 리야 있겠냐만… 그럼에도 퍽 답답했다.
에휴,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둘러대는 것도 일이네 진짜.
“맞아. 바리케이드 설치했어.”
“그러니까요! 분명 다른 사람이 치운 걸 테니까, 그 사람만 찾으면…….”
“어떻게 찾을 건데?”
“…….”
꾹 다문 입.
김민주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내일 입장 표명 때, 사실 누군가 고의로 바리케이드를 치운 것 같습니다~ 떠들어 놓고, 결국 못 찾으면? 책임 전가한다고 사태만 더 커지는 거야. 최악의 경우엔 작전팀, 청소팀 둘 다 징계를 받을 수도 있고.”
비장하게 둘러댔지만, 실상은 제발 좀 내버려두라는 소리다.
오히려 찾으면 나만 더 곤란해진다고.
“그럴 바엔 그냥 신입이 실수했다고 하고 끝내는 게 낫지. 어차피 신입한테는 큰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해봤자 모양만 잡을 테니까.”
“선생님이 징계를 받잖아요. 아무 잘못도 없으면서…….”
“딱히 상관없어.”
징계 한두 번 받아본 것도 아니고.
현역 때 협회장한테 대머리라고 놀렸다가 잘릴 뻔한 거에 비하면 뭐.
김민주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했다.
나는 곧바로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어, 어디 가세요?”
“입장 표명 때 입을 양복 사러.”
방호복 입고 갈 순 없으니까.
***
늦은 시각, 작전 2팀 사무실.
“이건 아니야.”
책상에 앉아 있던 김민주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선생님은 지금, 혹시나 일이 커져 청소팀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책임을 혼자 뒤집어쓰려 하고 있고.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선생님의 성격이라면 오히려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상하잖아.’
그래, 누군가 바리케이드를 일부러든 실수로든 치웠다고 치자.
그런데 어쩌다 한 번 바리케이드가 없던 그 타이밍에, 게다가 던전 소멸까지 채 30분도 남지 않은 그 시각에 딱 맞춰서, 하필 학생들이 기어들어 갔다고?
확실하다.
이건 누군가 의도한 것이다.
누군가가 청소팀에 문제가 터지면 선생님이 책임을 끌어안으리라는 걸 알고 움직인 것이다.
‘이대로라면 선생님은…….’
쿵, 김민주가 책상을 내리쳤다.
스스로가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선생님을 방해하는 놈들은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게 뭔가.
도움이 되긴커녕 두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지 않은가.
“저…… 팀장님.”
그때, 작전 2팀 소속의 최종훈 헌터가 김민주의 눈치를 보던 끝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솔직히 저희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멀쩡히 범인이 따로 있는데 김준우 청소부님 혼자 뒤집어쓰는 건…….”
최종훈을 따라 몇 명의 팀원들이 거들었다.
이미 소문은 협회 내에 쫙 퍼진 상황이었다.
“이거… 저희가 도와드려야 되지 않을까요?”
“찬성입니다. 이전에 도움도 받았는데 모른 척하는 건 도리가 아니죠.”
“저도 동감입니다.”
열댓 명 팀원들의 표정이 하나 같이 진지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민주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작전 나간 인원… 몇 명이야?”
“서초 3명, 강남 4명. 총 7명입니다.”
“모두 복귀시켜. 이 시간 이후로 남아 있는 작전 스케줄 올스탑 걸고.”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목소리.
“지금부터 팀 내 모든 인원 동원해서…… 우리가 진범을 잡는다.”
“네!”
“CCTV, 목격자 수색, 블랙박스…. 방법이란 방법은 모조리 동원하고. 내일 아침까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찾아야 해. 시민들 사이에서 던전 청소부라는 단어가 퍼지면 다 끝이라고 생각하고.”
김민주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점점 힘을 되찾는 목소리에 팀원들 또한 격양되었다.
“설령 할당량을 못 채우는 한이 있더라도 진행할 거야. 혹시 이의 있는 사람 있으면 미리 말해줘.”
“에이, 어차피 내놓은 팀인 거 다 아는데요?”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게 없는 팀인데, 그까짓 실적!”
“이의 없습니다.”
김민주는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 말이 맞았다.
어째 죄다 맛이 간 놈들뿐이다.
“그럼, 작전 2팀… 전원 출동해.”
이윽고 작전 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
“혜연 씨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그냥 운이 나빴다고 생각해.”
지원팀, 헌터관리실.
송혜연은 늦은 시간까지 퇴근하지 않은 채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이아영 부실장은 그런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하아…….”
그럼에도 송혜연의 기분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보좌관 일을 시작한 지 불과 3일 만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재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하지 말 걸 그랬나, 송혜연은 다시 한번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기로 했어? 누가 실수한 거래?”
이아영 부실장이 넌지시 묻자 송혜연은 대답을 머뭇거렸다.
“……김준우 청소부요. 내일 직접 입장 표명한대요.”
“그래? 그건 또 의외네. 협회장 라인도 실수를 하는구나.”
“……그건 아니에요. 김준우 청소부가 본인 책임이라고는 했는데… 그 사람이 실수한 게 아니래요.”
“음…?”
송혜연의 앞뒤가 맞지 않는 말에 이아영 부실장의 눈썹이 꿈틀했다.
“김민주 팀장님이 바리케이드 치는 걸 직접 봤대요. 김준우 씨도 사실은 그렇다고 했고요. 그런데 괜히 범인 찾으려다 작전팀, 청소팀 둘 다 곤란해질 거라고…….”
“그러니까 지금…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혼자 책임을 뒤집어썼다는 소리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게 무슨… 이런 똥통 같은 곳에 그런 사람이 있다고?”
“아니 뭐, 아닐 수도 있고요…….”
괜히 말끝을 흐렸다.
덩달아 송혜연의 시선이 자꾸만 바닥으로 향했다.
물론 김민주 팀장이 바리케이드 치는 걸 직접 봤다는 게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협회장 라인을 어떻게든 붙잡아 두려고 애쓰는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3일간 옆에서 일해 본 결과, 그녀는 절대 그런 일로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까 김준우 청소부의 잘못이 아닌 건 확실하다.
다만 이걸 인정해버리면…….
“그러고 보니, 저번에 어디 사는 누가 조금이라도 청소팀에 문제 생기면 김준우가 제일 먼저 내뺄 거라 그랬던 것 같은데…….”
“……그, 그건!”
아니나 다를까, 이아영 부실장의 비수가 날아와 꽂혔다.
“호언장담하면서 내기까지 걸었던 거로 아는데……?”
“그, 그건… 높은 사람들은 대체로 다들 그러니까… 그냥 그 사람도 그럴 것 같아서…….”
송혜연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웠던 건지, 이아영 부실장은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어쨌든 김준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
“그럴지도… 모르죠.”
여전히 솔직하지 못한 태도에 이아영 부실장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까지 나오면 어떤 사람인지 더 궁금해지네.’
만약 송혜연 보좌관이 한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그건 이아영 부실장에게 있어서도 기회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 고이다 못해 썩어버린 조직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참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게 없었지만… 그렇다고 일개 지원팀 직원이 협회를 뒤집어엎을 수도 없는 노릇.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때문에 송혜연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사퇴 날짜도 정해둔 뒤였다.
그런데 절을 뒤집어엎을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자신은 생각만 하던 그것을 정말로 해줄 수 있는 미친놈이 있다면?
‘역시 꼭 한 번 만나봐야겠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아영은 송혜연을 향해 넌지시 입을 열었다.
“혜연 씨. 다른 팀원들한테는 비밀로 하고…….”
“네?”
“우리가 좀 도와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