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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26화 (26/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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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스럽기 그지없는 만남이었다.

나야 이아영 실장을 알고 있다지만, 그녀는 날 알 리가 없다.

이아영을 처음 만나게 되는 건, 내가 팀장을 달게 된 직후. 그러니까 아직 5년이나 뒤의 일이다.

전생에선 그전까지 얼굴 한 번 마주친 적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난데없이 먼저 나를 찾아온다고? 대체 왜?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예? 아, 아뇨.”

나는 황급히 눈에 힘을 풀었다.

“안 해줄 거예요?”

“…예?”

“악수요. 안 해줄 거냐고요. 슬슬 힘든데.”

그제야 이아영이 내민 손을 발견했다.

나는 뒤늦게 악수를 받으며 다시 한번 그녀를 바라봤다.

전생에서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젊은 모습. 그럼에도 내가 알고 있는 이아영의 얼굴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다만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내 보좌관이었던 시절보다 뭔가…….

사람 같다고 해야 하나.

‘아… 혹시 그 일이 있기 전인가?’

뜨문뜨문한 기억 속에서 시간대를 짜맞춰 보기 시작했다.

“김준우 청소부님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번 입장 표명, 꽤 인상적이었어요.”

“…….”

너무 집중한 탓에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때문에 찾아온 정적.

“좋은 뜻이에요.”

“……아, 예. 뭐… 감사합니다.”

“…….”

또 정적.

분위기가 어색하기 짝이 없네.

결국, 이아영이 옅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듣던 것만큼 막 카리스마가 있진 않네요?”

“필요합니까?”

“뭐, 지금부터 할 얘기에선 좀 필요하죠.”

이아영은 내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지원팀 부실장님이 저한텐 어떤 볼일이신지…?”

“음, 단도직입적으로…….”

나를 지그시 살피길 한 차례.

“당신, 어디까지 가고 싶어요?”

“…예?”

“지금 위치에서 어디까지 가고 싶냐고요. 청소 팀장? 이능운용부장? 아니면 더 위?”

저의를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요.”

“만약 더 위로 가겠다고 하면 저희가 좀 도와줄까 해서요. 가령 서민철 본부장을 밀어내고, 본부장이 되겠다거나…….”

이아영이 떠보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동시에 내 눈이 동그래졌고, 김민주는 나보다 더 동그래졌다.

“갑자기 그게 무슨…….”

“별 뜻은 없고…….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거죠. 개인적으로 본부 뒤집어지는 꼬라지를 보고 싶기도 하고.”

이아영이 다리를 꼬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좀 질리던 참이었거든요. 위계니, 질서니. 물론 필요한 거긴 한데 딱히 내 취향은 아니기도 하고. 그거 알아요? 당신이 들어올 때만 해도 청소팀은 구내식당 이용 못 했던 거?”

당연히 알고 있다.

전생에서는 내가 죽던 그 날까지 계속 그래왔으니.

“지원팀도 조금 낫다 뿐이지 사정은 비슷해요. 김민주 팀장님은 알 거예요. 어디서는 우리를 따까리라고 하더라고?”

“아, 아… 네…….”

김민주가 말끝을 흐렸다.

이것 또한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이수용 팀장이 지원팀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었으니까.

“재밌는 건, 본부에서는 그게 당연한 거였어요. 아무도 딴죽을 건 사람이 없어서 뒤로는 씹어도 앞에선 입도 뻥긋 못했죠. 근데 웬 위아래 없는 놈이 갑자기 나타나선 청소부 신분으로 깽판을 치고 있으니…… 관심 안 가고 배겨요?”

이아영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동시에 나는 한숨을 팍 내쉬었다.

“그러니까 지금… 지원팀이 도와줄 테니 저보고 본부를 먹으라는 겁니까?”

“딱히 그런 건 아니에요. 당신은 그냥 하던 대로만 해도 돼요. 다만 이왕 하는 거 좀 크게 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게 그 소리 같은데.”

“뭐, 그렇게 받아들이시면 어쩔 수 없고.”

당당하기 그지없는 대답.

아주 한마디를 지지 않는다.

“앞으로의 당신 계획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청소팀 하나랑, 내놓은 작전팀 하나로는 힘들지 않겠어요? 쓸 수 있는 패가 많으면 그쪽 입장에서도 좋은 거 아닌가. 지원팀까지 붙으면 조금 더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맞는 말이었지만 나는 일단 대답을 아꼈다.

옳다구나 덥석 물기엔 걸리는 점이 있었던 까닭이었다.

내가 침묵을 유지하자, 김민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마음은 감사한대, 아무리 부실장님이어도 독단으로 결정해도 되는 일인가요?”

“네, 뭐. 그 정도는 돼요. 애초에 지원팀 내에서도 당신들 팬 많아요.”

“그, 그럼 혹시 지원 가능한 범위가…….”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뭐든지요. 장비 제작, 집중 케어, 기타 등등. 아, 근데 이건 청소팀보단 작전팀에서 더 혹할 조건인가?”

이아영의 목소리는 누구보다 당당했다.

뭐, 실장이나 팀장도 아닌 그녀가 이토록 자신감을 비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저 녀석 아버지가 협회 임원이거든.

‘이두식 이사… 꽤 거물이었지.’

협회를 주무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권력자 중 한 명.

협회장을 제외하면 그의 선택에 토를 달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뭐, 아쉽게도 오래가진 않았지만.

앞으로 5년 안에 이두식은 이사회에서 해임당한다.

뭐, 사유야 온갖 것들이 붙었지만… 가장 큰 계기는 서울 본부 개혁을 추진하다가 다른 분들의 눈 밖에 났다는 것.

그리고 그분들 중 한 명, 어느 잘나가는 헌터분께서 협회장과 이사회에 바람을 넣었다지.

결국, 이두식은 이것저것 온갖 꼬투리를 잡혀 해임당하고, 그에게 협력했던 직원들이 크고 작은 본보기를 당했다.

그 대표 인물이 바로 이아영 실장.

아빠 빽이었는지 아니면 실력이었는지 모르지만, 꽤나 어린 나이에 실장을 달고 나름 협회에서 힘 좀 쓰는 녀석이었는데…….

이두식이 그렇게 되고 나서 그녀는 지원팀에서도 힘을 잃고 어느 잘나가는 헌터분의 보좌관이 됐다.

이아영이 기계처럼 변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나쁘게 보면 그 자신감 넘치던 사람이 순응해버린 거고, 좋게 보면…….

‘……덕분에 내 보좌관이 됐다는 거?’

아무튼, 보아하니 아직까진 해임당하지 않은 것 같고… 이아영이 내민 조건도 이두식의 계획 일부인 게 틀림없다.

그러니까 여기에 협력했다간…….

‘청소팀이고 작전팀이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

재볼 가치도 없다.

“도와주신다는 마음은 고마운데, 거절하겠습니다.”

“……네?”

진심으로 당황스럽다는 반응.

“이해할 수가 없네요. 뭐 조건을 내건 것도 아니고, 그냥 하던 대로만 하라는 건데…….”

“네 하던 대로는 할 건데, 도움은 받기 싫다는 겁니다.”

“……자신감인가요? 아니면 제가 마음에 안 드시는 건가?”

“둘 다 아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부를 뒤집는다거나, 누구를 밀어내고 본부장이 된 다거나… 애초에 난 그런 거창한 목적이 아니라서.”

“하, 참…….”

이아영이 기가 찬 듯 실소를 뱉었다.

“알아들으셨으리라 믿고… 그럼 전 오후 작업 하러 가야 해서 이만.”

매몰차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으로선 청소팀에 그 어떤 흠집도 내선 안 되니까.

나는 그렇게 먼저 사무실을 나섰다.

***

“……뭐예요, 저 사람?”

이아영 부실장은 한참이나 사무실 문에 시선이 고정된 채였다.

그러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김민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무 조건 없이 도와주겠다는데 그걸 거절해? 와, 이거 되게 쪽팔리네? 저 지금 얼굴 빨갛지 않아요?”

“원래 저런 분이에요.”

하지만 김민주는 놀랄 것 없다는 반응이었다.

“애초에 선생님이 관심 없을 만한 얘기였어요. 저였으면 음… 본부장이 되라는 것보다는 차라리 청소팀을 지원해준다는 조건을 걸었을 거예요.”

“……진짜 당신들, 보면 볼수록 더 제정신이 아니야.”

이아영은 고개를 내저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얼굴엔 미소를 띤 채였다.

“선생님도 부실장님 마음은 이해하셨을 거예요. 표현이 조금 딱딱하셔서 그렇지.”

“팀장님이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네요.”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어쩔 수 없잖아요. 제발 도와주게 해 달라고 비는 것도 좀 웃기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줘야지 뭐.”

김민주가 싱긋 웃었다.

“가끔 놀러 오세요. 선생님도 저 도와주시러 자주 오시거든요.”

“와… 그 말 되게 질투 나는 거 알아요? 작전팀은 껴주면서 지원팀은 안 껴준다는 거잖아.”

이아영은 과장되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곤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튼, 혹시 나중에라도 우리 도움 필요하다고 오면 그땐 쉽게 안 들어줄 거예요.”

“그렇게 전해둘게요.”

“그리고 뭐…… 가끔 놀러 올게요.”

이아영은 그 말을 던지곤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나는 늦지 않게 다음 던전 앞에 도착했다.

청소팀원들과 같이 점심을 먹지 않고, 김민주의 사무실로 피신했던 이유는 딱 하나.

어제 있었던 입장 표명에 대해 잔소리가 너무 심했거든.

그렇게 혼자 뒤집어쓰면 우리는 편할 줄 알았냐.

너무하다.

서운하다.

앞으로 안 그러기로 약속해라.

기타 등등…….

아무래도 당분간 쉬지 않을 예정인 것 같았기에, 틈만 나면 그들을 피해 도망 다니기 바빴다.

“어, 준우 씨가 먼저 오셨네요?”

“이야, 저기 새로 생긴 중국집 괜찮더라. 다음엔 다 같이 가자고.”

때마침 문소연과 박 팀장도 던전 앞으로 도착했다.

“자, 그럼 바로 작업 들어갈까?”

“……한상혁이 아직 안 왔는데요.”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점심 먹으러 어디까지 갔답니까.”

“음? 말 안 했나? 상혁이 오늘 반차야.”

“갑자기요? 몸이라도 안 좋답니까?”

“아니 아니, 누나가 오랜만에 한국에 왔대서 마중 나간더라고.”

“누나요?”

“그래. 그 친구 누나가 국제 협회 소속 헌터야. 뭐, 일이 좀 있어서 입국했다는데… 자세한 건 상혁이도 모른다네?”

“…….”

나는 꽤 흥미로운 사실에 고개를 끄덕였다.

국제 협회 소속 헌터라니.

보통 재능으론 어림도 없을 텐데.

누나는 국제 헌터, 동생은 청소부라…….

한상혁 그 새끼도 이래저래 고민이 많겠군.

“사실 상혁이 유일한 가족이 누나 한 명이거든.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며칠 쉬다 오라고 했어. 일주일 정도는 우리끼리 해야 할 거야.”

“…그렇군요.”

남 가정사야 내 알 바는 아니고.

‘3명이서 작업이라…….’

일주일간 막차 타긴 글렀네.

“자자, 빨리 작업하고 조금 쉬자고. 다들 장비 점검 한 번씩…….”

“안녕하십니까!”

그때였다.

박 팀장의 말을 끊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저만치에서 말끔한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다가와, 우리에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

물론 그 남자를 아는 사람은 우리 중엔 없었다.

“아, 중심일보 구상찬 기자입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남자가 자기소개를 했음에도 역시 다들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치다.

기자라니. 기자가 여긴 왜?

다짜고짜 잘 부탁한다는 건 또 뭔 소린가.

“엑? 서, 설마 연락 못 받으셨습니까?”

“…? 저흰 아무것도 들은 게 없는데.”

“저, 정말요?! 크, 큰일 났네. 이거 어떡하냐…….”

남자가 진심으로 당황하며 연신 머리를 긁적였다.

“아, 이거 다시 연락을 드려봐야 되나… 허가받느라 엄청 힘들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그러곤 설명을 해줄 생각도 없이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결국, 보다 못해 내가 먼저 물었다.

“그래서, 대체 무슨 볼일이십니까. 허가는 또 무슨 말이고요.”

“아, 아…! 그게 사실 오늘부터 청소 3팀 여러분들을 취재하기로 약속을 잡아놨거든요.”

“……예?”

“본부 측에서 겨우 허가를 내줘서, 당연히 여러분들하고도 말씀이 된 줄 알았는데…….”

……취재?

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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