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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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실.
1개월 감봉 처분에 충격을 받을 만도 했지만, 서민철은 생각보다 덤덤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당황스러워하는 건 이수용 쪽이었다.
“기, 김준우가 팀장으로 승진할 거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그거랑 맞춰서 청소과장도 생긴다는 것 같더라.”
“그, 그게 무슨… 없던 티오를 만들 수 있는 놈은 이두식 정도밖에는 없을 텐데요?”
“그놈이 한 거 맞아. 아무튼, 우리로선 골치 아파진 거지. 솔직히 청소과장 자리에 누가 올라가든, 실질적으로 청소팀을 이끄는 건 김준우가 될 게 뻔하니까. 뭐, 예외가 있다면 신설 팀이겠지. 그래서 말인데…….”
서민철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번 신설 팀. 청소 3팀을 베껴볼까 싶은데.”
“예?”
“신설 팀원을 우리 쪽 사람을 꽂자는 거야. 김준우랑 비슷한… 아니 더 능력 있는 놈으로다가.”
이수용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
“김준우의 대안… 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맞아. 1, 2년 청소팀에 있다가 작전팀장으로 올려준다고 하면 몇 명은 붙지 않겠냐.”
한 프랜차이즈가 유행하면 우후죽순으로 비슷한 것들이 생긴다고 했던가. 그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대놓고 청소 3팀을 따라 해서 청소팀의 영향력에 승차하겠다는 뜻.
아니 그보단… 김준우를 따라 하겠다는 쪽이 더 옳은 표현이었다.
“우리도 한번 타보자고. 청소 코인.”
서민철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이수용은 걱정부터 앞섰다.
“그… 저번에 청소팀은 이제 안 건드리실 거라고…….”
“능력 있는 사람들로 새 팀을 만들어주겠다는 건데, 이게 건드리는 거냐? 도와주는 거지.”
이수용이 위로 눈을 치켜떴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인 것 같았다.
“문제는 그런 것보다… 우리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 놈들이 있다는 거야.”
“……네?”
“듣자 하니 고은영 이사랑 송철식 이사도 이번 신설 팀에 자기들 쪽 사람을 꽂으려고 한다더라. 하여간 냄새 맡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히다니까. 어떻게든 빨대 한 번 꽂아보겠다고 벌써부터 민간 길드에 연락을 돌리고 있는 모양이야.”
“하하…….”
본인도 모르게 새어 나온 헛웃음.
이수용은 다시 생각해도 기가 찰 노릇이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무슨 일을 하는 팀인지도 몰랐던 놈들이다.
자기뿐인가. 서민철은 물론이고 본부 내에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팀이었다.
그런데 이젠 본부장에 이사들까지 두 팔 걷고 나서서 청소팀을 손에 넣으려 하고 있다니.
‘대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수용 팀장은 그렇게 되뇌었지만, 그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지원팀, 작전 2팀, 게다가 이젠 통제팀까지 붙으려고 눈치를 보고 있다.
이대로 두면 정말 본부 영향을 넘어서는 사단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김준우와 똑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청소팀이 만들어진다면…….
그리고 그 청소부가 우리 쪽 사람이 되어 준다면.
본부의 영향력을 되찾을 수도 있다.
되찾는 걸 넘어서, 김준우 팀의 영향력을 꺾을 수 있을 것이다.
부정할 수 없다.
이번 청소 6팀에 어디 쪽 사람이 들어가냐에 따라, 앞으로 본부의 주축이 달라진다.
“아무튼, 너는 경기도랑 충북 쪽 길드, 프리랜서 헌터들 중에 한 번 알아봐봐. 나는 나대로 한 번 찾아볼 테니까.”
“기준은 따로 있습니까? 뭐, 청소 경험이 있다거나…….”
“무슨 개소리야. 그딴 게 뭐가 중요해. 그냥 일단 랭크 높고 작전 경험 많은 놈으로 찾아.”
곧바로 이수용의 머릿속으로 몇 명인가가 스쳐 지나갔다.
“다른 건 필요 없고, 무조건 다른 놈들보다 빨리 찾기만 해. 후보는 최대한 많이 챙겨오고.”
“알겠습니다. ……저, 그런데.”
이수용이 곧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김준우은 어떡할까요. 그놈이라면 신설 팀에 무조건 관심을 가질 텐데요. 거물들이 움직이는 거 모르지도 않을 테고…. 그놈도 분명 움직이려고 할 겁니다.”
“……됐어. 그건 신경 쓰지 마. 그놈이 어떤 놈을 찾아오든 우리가 더 괜찮은 놈으로 찾아오면 그만이잖아. 그리고 뭐… 새파랗게 젊은 놈이 찾아봤자 뭐 얼마나 대단한 놈이겠냐. 해봤자 C, B급 프리랜서 몇 명이겠지.”
서민철이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들었다.
아내의 잔소리에 못 이겨 끊은 지도 무려 4년째였다.
4년을 어렵게 참아왔지만… 지금 본부 돌아가는 꼴을 보면 도저히 담배 없인 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인맥 싸움에선 우리가 질 수 없어.”
서민철은 그렇게 말하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
작전 2팀 사무실.
토벌 허가 전면 철회로 남는 게 시간이 되어버렸다.
때문에 농땡이나 피울 생각으로 김민주를 찾았다.
“…여기서 이러고 있으셔도 돼요?”
뭐, 찾는다고 해도 결국 앉아서 차 한 잔 마시는 게 전부지만.
“설마 승진 내정되어 있다고 땡땡이치시는 건 아니죠?”
“그 얘긴 하지도 마. 가뜩이나 그거 때문에 머리 아파 죽겠는데…….”
코로 길게 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하, 입사 두 달 만에 팀장이라니… 다른 놈들한테 미운털 단단히 박히겠구먼.”
“글쎄요. 전 충분히 합당한 처분이라고 봐요. 저 같은 사람도 팀장인데, 선생님이 일개 직원인 건 말이 안 되니까요.”
“그거야 네 생각이고. 조직이란 게 또 그렇지가 않잖아.”
나는 이내 소파 등받이에 몸을 푹 뉘었다.
“어쨌든 정산 시즌 여파로 작업도 없고 하니 쉴 수 있을 때 쉬어놔야지. 승진하면 눈코 뜰 새도 없을 테니까. 아, 혹시 내가 방해했냐?”
“아뇨. 그건 아닌데요…….”
김민주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아영 부실장님이 부탁하신 게 있잖아요?”
“아, 그거?”
나는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안 하려고.”
“……네, 네?”
“내가 무슨 안목이 있다고 사람을 꽂아, 꽂긴. 주변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땅한 사람도 없고.”
그리곤 고개를 뒤로 팍 젖혔다.
일주일간의 고생이 허사로 돌아가니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뭐, 엄밀히 말하면 아주 허사는 아니지.
덕분에 신설 팀도 만들어졌으니까.
무엇보다 신설 팀이 만들어지면 본부에서 어떻게든 인원을 구겨 넣으려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조건은 자동으로 달성될 테니, 내가 굳이 사서 고생을 할 필요는 없다.
이아영의 조건?
알 게 뭐야.
어쨌든 청소팀도 슬슬 안전 궤도에 올랐고, 아주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팀장도 곧 달게 될 테니 이제 맘 편히 청소에만 신경 쓰면…….
아, 아니.
맘 편히 해금에만 신경 쓰면 된다.
“뭐, 그러시다면 제가 더 할 말은 없죠.”
김민주가 싱긋 웃었다.
“그래도 뭐, 만약에 사람을 직접 뽑는다고 하면 어떤 기준으로 뽑으실 거예요?”
“흐음……. 고분고분하고 성격 좋은 녀석?”
“…으, 의외네요.”
…뭘 기대한 건가. 대체.
뭐, 누가 됐든 해금을 위한 장기 말로 쓸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 그러니 쓸데없이 자존심 세고 잘난 녀석은 방해만 되겠지.
“그럼 너는? 너라면 어떤 사람을 뽑을 거냐.”
“음, 저는…….”
김민주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고민하길 잠시.
“여자만 아니면 돼요.”
“…….”
해괴한 대답을 내놓았다.
이 무슨 시대착오적 발언이란 말인가.
그리고 너도 여자잖아.
무어라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눈만 뜨고 있던 그때.
똑똑―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실례하겠습니다.”
바짝 예의를 차리고 사무실로 들어온 이는.
‘……누구지?’
뭔가 낯이 익긴 한데.
“일전에 전화 드렸던 편창현 통제팀장입니다.”
“…아, 아! 예예, 기억납니다.”
그제야 기억 속의 얼굴과 매칭이 됐다.
누군가 했더니 그놈이었구먼.
편창현 통제팀장.
서민철 라인에 어중간하게 걸쳐 있던 놈.
그런데 뭐, 이번 징계위원회에서 단칼에 손절 당한 걸 보면… 이놈도 어지간히 불쌍한 녀석이다.
“통제팀장님께서 작전팀에는 왜……?”
김민주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자 편 팀장은 대답 대신 서류 뭉텅이를 꺼내 들었다.
“각설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에 신설되는 청소 6팀, 잡으셔야 합니다.”
“…예?”
단호한 목소리.
하지만 정작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는 알아먹질 못했다.
“서민철 본부장은 물론이고 고은영 이사, 송철식 이사 등등… 다들 신설 팀에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듣자 하니 벌써부터 자기 쪽 사람들로 꽂아 넣으려고 혈안이 돼 있다더군요.”
“자, 잠깐만요. 뜬금없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도움을 드리려는 겁니다.”
“그니까 갑자기 왜…….”
“…더 이상 그쪽 놈들이랑 상종을 못 하겠어서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미간을 찌푸리는 편 팀장.
눈에 독기가 아주 그득그득했다.
쯧, 이번에 뒤통수 맞은 충격이 생각보다 컸나 보군.
“아무튼 아실지 모르겠는데, 현재 본부 내에선 청소팀에 대한 관심이 엄청납니다. 견제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고, 옆에 붙고 싶어도 명분이 없는 팀. 그 어떤 팀보다 우선적으로 손에 넣어야 하는 정도가 되었어요. 그런 입지란 말입니다, 지금 청소팀은.”
“그래서… 이번 신설되는 청소팀을 먹으려고 서로 쌈박질을 하고 있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아마 김준우 청소부님처럼 작전 기획에, 현장 지휘까지 가능한 사람을 꽂으려는 거겠죠.”
“참 나, 그런 사람이 있으면 청소팀이 아니라 작전팀에 넣을 것이지…….”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청소팀이 무슨 킹X맨이야 뭐야.
그리고 큰 착각들 하고 계신다.
내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어이가 없네. 어떤 놈이 감히 내 흉내를 내겠다는 건가.
나와 비슷한 놈을 찾아서 우리 팀을 베낄 게 아니라, 날 어떻게든 잡아서 본인들 편으로 세울 생각을 했어야지.
“그러니까 김준우 청소부님도 준비하셔야 합니다.”
편 팀장은 이내 들고 있던 서류 뭉텅이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요즘 랭크 추세가 괜찮은 헌터들 리스트입니다. 유명 길드 소속도 있고, 전직 작전팀장도 있습니다. 한 번 쓱 보시고 괜찮다 싶은 사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저희 쪽 예산으로 어떻게든 스카우트를 해보겠습니다.”
“지금 전개가 너무 빨라서 좀 헷갈리는데… 이 중에서 제 사람으로 꽂을 만한 놈을 고르라는 겁니까?”
고개를 끄덕인다.
하, 참 나.
초면에 이런 것까지 준비해서 찾아오다니.
아예 이쪽으로 붙으려고 작정을 했구만?
‘그나저나 놈들도 놈들이네. 할 일이 그렇게들 없나. 뭔 청소팀 하나를 두고 이런 짓까지…….’
나는 그렇게 구시렁댔지만, 그럼에도 예의상 편 팀장이 준비한 리스트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말대로 하나 같이 쟁쟁한 헌터들이었다. 개중에는 지금 김민주와 견줄 만한 녀석도 있었다.
뭐, 물론.
“네. 잘 봤습니다.”
관심 밖이다.
지들끼리 처먹든 말든 알 게 뭔가.
높으신 분들 자리싸움엔 끼고 싶지도 않고.
“……이거 상당히 중요한 사안입니다. 팀장 승진이 내정되어 있으시잖습니까. 자칫하다간 팀장을 달고도 청소 6팀에 먹힐지도 모릅니다!”
“글쎄요. 전 잘 모르겠는데.”
“예, 예?”
“그렇잖습니까. 청소팀이 언제부터 그렇게 영향력 있는 팀이었다고 이렇게 신경을 쓴답니까?”
편 팀장은 순간 움찔했다.
“그, 그래도 운용할 수 있는 팀이 많아지잖습니까.”
“이미 충분합니다.”
“여, 영향력이 더 커질 겁니다!”
“별로 끌리진 않는군요.”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편 팀장도 슬슬 짜증이 나는 모양이었다.
“아, 김준우 청소부님이 직접 개입한 팀이라면 다른 청소팀원들도 좋아하겠죠!”
“참 나, 그거야말로 저랑 아무 상관이 없는…….”
어?
잠깐.
[레플리카 - 해금 조건 : 던전 청소팀 직업 만족도 30% 이상]
[현재 18%]
“그건 조금… 솔깃하군요.”
나는 턱을 어루만지며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어렴풋한 시선이 느껴져 옆을 돌아보니… 어째선지 김민주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