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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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팀, 헌터관리실.
이아영은 결과가 꽤나 궁금했던 건지, 면접이 끝나자마자 나를 찾았다.
“……뭐, 그렇게 해서 실무 과제로 대체됐습니다. 아마 다음 주중으로 진행될 것 같더군요.”
대충 경황을 설명해주자 이아영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당신 후보인데 너무 날 세운 거 아니에요? 자존심이 강한 분이라면서요. 저 같으면 그냥 안 나오고 말 것 같은데?”
“뭐,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 정도 사람이었던 겁니다.”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내가 그 녀석의 기분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으니까.
“생각보다 엄청 엄격하시네요?”
“그래야 합니다. 뭐, 애초에 면접에서 죽을 쒔으니 합격할 확률은 거의 없겠지만.”
“에이, 벌써부터 그러면 어떡해요. 그래도 신태환만 꺾으면 어떻게든 채용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힘 써볼게요.”
“채용된다고 해도 그 이후가 걱정입니다. 다른 녀석들보다야 낫다지만 여전히 자존심이 너무 강해요. 이대로 합격하면 같은 팀원들만 고생할 겁니다.”
비단 한유빈 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따지자면 더 최악은 다른 후보들이다.
특히나 신태환, 그 새끼가 채용되면 정말로 답이 없다.
“흐음…….”
그때, 이아영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흘겼다.
“뭡니까?”
“아녜요. 그냥 당신답구나 싶어서요.”
어째 미소 짓는 이아영.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여자다.
아무튼, 실무 과제로 대체된 건 나로서도 예상 밖이었다.
되도록 그 자리에서 모두 떨어트리고 싶었지만…….
‘뭐, 다른 놈들 입장에선 무조건 자기 후보를 붙이고 싶을 테니까 당연한 건가.’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
어떻게 해서라도 실무 과제에서 모조리 떨어트려야 한다.
“어쨌든 무슨 뜻인지 알았어요. 헌터고 나발이고, 청소팀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죠?”
“뭐… 굳이 따지자면.”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
“일단 그쪽은 우리한테 맡기시고… 당신은 따로 할 일이 있어요.”
이아영은 구석에서 무언가를 한참 뒤적거리더니, 이내 서류 뭉텅이를 책상에 쾅 내려놓았다.
“이게 뭡니까?”
“그동안 협회에서 나왔던 실무 과제들이에요. 참고가 될까 해서요.”
“제가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닌데, 이런 게 왜 필요합니까?”
“당신이 만들어야 하니까요.”
내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마 각 팀의 팀장들과 인사 담당자, 본부장이 모여서 과제 가이드라인을 만들 거예요. 모든 팀이 참여하니까 각 팀의 역할을 모두 시험하게 되겠죠.”
“…그렇겠죠.”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청소팀 과제를 당신보다 더 잘 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만들어 봐요.”
“……인사팀이나 임원들이나 절대 허가 안 내줄 것 같은데요.”
“그건 뭐…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이아영이 내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설마 이두식 이사님한테 부탁하려는 건 아니겠…….”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어쨌든 당신은 청소팀 과제나 생각해봐요. 인사팀에는 제가 잘 얘기해놓을 테니까.”
제 발 저리는 건지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진다.
또다시 이두식 이사와 관련되는 건 떨떠름하기 그지없지만…….
“뭐, 알겠습니다.”
지금 상황으로선 사실상 기회다.
어차피 다들 토벌에 있어선 날고 긴다 하는 놈들이니 작전이나 기획 쪽으론 변별력이 없다. 차이가 난다고 하면 당연 청소팀 쪽.
그렇다면 아무도 통과 못 할 과제를 내서 모조리 떨어트리면 그만이다.
클클.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는군.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노파심에 하는 소리지만… 한유빈 씨에게 조금 유리하게 만든다고 해도 뭐라 그럴 사람 없어요. 알죠?”
“…? 걱정 마세요. 그럴 생각 없으니까.”
“정말로요. 정말 뭐라 그럴 사람 없어요.”
아니, 무슨 임원 딸이라는 사람이 대놓고 부정 채용을 권고하고 있는 건가.
어이가 없어서 원.
“그나저나… 새삼 신기하네요.”
그때, 서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이아영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뭐가요.”
“청소팀 채용에 이 정도로 열을 올리는 건 처음 있는 일이거든요. 그것도 임원들까지 끼어서는……. 참 나, 이런 날이 올 줄이야.”
혀를 내두르는 이아영.
뭐, 이제 협회에 들어온 지 몇 년 안 된 이아영도 저 정도인데, 나는 오죽하겠는가.
“아무튼 이번 채용, 그 사람들이 고생해주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그 사람들이라뇨?”
“누구겠어요.”
뭘 알면서 물어보냐는 말투.
“나중에 감사 인사나 해둬요.”
끝까지 영문 모를 소리나 하고 있다.
***
한상혁의 자취방.
한유빈은 벌써 몇 시간째 소파에 얼굴을 푹 파묻은 채로 나자빠져 있는 중이었다.
“끄으으…….”
그것도 연신 알 수 없는 울음소리를 내면서.
- 준비는 하기 싫고, 면접은 잘 보고 싶고. 그래놓고 또 자존심은 상해요?
- 내가 추천해줬으니 응당 붙겠거니 하는 마음이시면 그냥 나오지 마시고.
면접을 보고 온 지도 이틀이 지났건만, 아직까지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면전에서 그런 굴욕을 당한 건 태어난 이후 처음이었다.
심지어 차별이 심하기로 소문난 미국 지부에서도 그런 모욕은 당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국내 협회에서, 그것도 청소팀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이야.
‘참 나, 자긴 뭐가 그리 잘났다고…….’
사실상 지금 한유빈에겐 실무 과제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그런 것보다, 그냥 그 자식한테 한 방 먹이고 싶은 마음뿐이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무시했던 걸 사과받고 싶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그 자식 말 대로 청소팀에 대해선 아는 것도 없고, 이대로 실무 과제를 치른다 한들 그 자식한테 또다시 굴욕이나 당할 게 뻔했다.
‘빌어먹을 놈…….’
한유빈은 이내 몸에 힘을 빼며 축 늘어졌다.
그래.
하지 말자.
실무 과제고 뭐고 그냥 나가지 말자.
합격? 알게 뭔가.
애초에 정말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다. 일은 해야겠고, 마음에 드는 건 없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찔러 본 것뿐.
물론 그 결과는 전혀 가볍지 않았지만…….
“끄으으으으!!”
“아 씨, 개 같은 소리 좀 그만 내! 옆집에 다 들린다고!”
참다못한 한상혁이 덩달아 몸서리를 쳤다.
“……닥쳐. 니가 뭘 안다고.”
“그러게 만만히 보고 지원할 때부터 알아봤다. 게다가 김준우가 직접 면접 봤다면서? 그럼 면전에서 욕 안 처먹은 걸 다행이라 생각해라.”
“같은 팀이라고 편들어주는 거냐?”
“편들어주는 게 아니라 원래 그런 놈이야. 청소팀 관련된 일에는 눈깔 뒤집히는 놈.”
참 나, 한유빈이 헛웃음을 뱉었다.
“내가 볼 땐 누나는 이미 눈 밖에 났어. 합격은 기대 안 하는 게 좋을걸?”
“흥, 합격시켜준 대도 이젠 내가 싫어.”
“으휴, 저 쓸데없는 자존심……. 그래서 실무 과제는 어떡할 거야.”
“……몰라. 이젠 관심 없어.”
한상혁은 기다렸던 대답에 내심 안도했다.
그동안 친누나랑 같은 직장에 다닐 걸 생각하니 밤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저 미친년이랑 같이 출근을 하느니 차라리 때려치우고 말지.
그래도 뭐… 김준우가 눈치 있게 잘 내쳐줬다.
그 성격에 굴욕을 당하고도 다시 제 발로 찾아갈 리는 없으니까.
자식, 역시 눈치 하나는 좋다니까.
“야 근데 청소팀은 둘째 치고 니 방이라도 좀 치우면 안 되냐? 전에 한 번 들어갔다가 영영 못 나오는 줄 알았잖아. 미궁인 줄 알고.”
“닥치고 밥이나 줘. 배고파.”
“내가 니 식모냐?”
한유빈은 대답이 없었다.
저 빌어먹을 식충… 한상혁은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때.
띵동―
현관 벨이 울렸다.
“……너 택배시켰냐?”
“아니.”
“올 사람도 없는데.”
한상혁은 의아한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나타난 건.
“어, 집에 계셨네요? 전화 안 받으시길래 일단 와 봤어요.”
“실례하겠습니다.”
문소연과 김민주였다.
“이번 과제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좀 있어서……. 불쑥 찾아와서 미안해요.”
“들어가도 돼요?”
“……?”
한상혁은 눈앞에 놓인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뭔가.
이 사람들이 우리 집엔 왜 온 것인가.
“그… 과제라면 전화로 얘기하셔도 될 텐데……. 두 사람이 여기까진 어쩐 일로?”
문소연이 쿡 웃음을 흘렸다.
“민주 언니랑 얘기를 해봤는데, 아무래도 직접 만나서 얘기를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편이 유빈 씨한테도 도움이 될 것 같고요.”
“……저, 저요?”
본인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한유빈은 화들짝 놀라며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저를 도와주신다고요? 그, 그게 무슨…….”
“당연히 이번 실무 과제죠! 혼자 준비하시려면 어렵잖아요?”
“아, 아니 저는…….”
“그래서 전문가도 데려왔어요!”
한유빈이 어물거리는 틈을 타, 또 다른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청소 3팀의 박 팀장 그리고 통제팀의 편 팀장. 마지막으로 이아영 부실장까지 고개를 빼꼼 들이밀곤 손을 흔들었다.
“…….”
“…….”
덕분에 한상혁과 한유빈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좁고 지저분한 자취방.
그곳에 난데없이 본부 내 모든 팀의 실세가 들이닥쳤다.
남매가 쌍으로 무어라 반응도 못 하고 벙쩌 있자니, 편 팀장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유빈 씨는 이번 채용에 무조건 붙으셔야 합니다.”
“이건 유빈 씨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저희를 위해서이기도 해요!”
“선생님을 위해서이기도 하고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뿐.
“뭐, 걱정 꽉 붙들어 매세요. 저희가 청소팀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하하하!”
마지막으로 박 팀장이 호쾌한 웃음을 흘리자, 그제야 한유빈의 정신이 어렴풋이 돌아왔다.
그러니까 지금, 자신의 실무 과제를 도와주기 위해 이 많은 인원이 찾아온 거라는 건데…….
고작 청소팀 지원자 한 명을 도와주려고 협회 팀장급들이 죄다 찾아온다고? 한국 협회에선 그게 보통인가?
아니,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 죄송한데…….”
한유빈은 이내 문 앞의 손님들을 향해 작게 입을 열었다.
“저 이번 실무 과제 안 나갈 건데요.”
“…….”
이번에 얼어붙은 건 문밖의 손님들이었다.
***
“으으으…….”
스탠드 불빛이 퍼지고 있는 책상.
새벽이 다 돼서야 나는 겨우 기지개를 켰다.
드디어 완성했다.
내 청소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궁극의 과제.
10위권 길드 출신? 부 길드장? 국제 협회 헌터? 까라 그래.
이건 아무도 통과 못 한다. 클클클.
홀로 자축을 하고 있던 그때, 뜬금없이 전화가 울렸다.
이아영 부실장이었다.
“이 새벽에 또 무슨……?”
「과제는 어떻게 됐어요?」
“…방금 막 완성했습니다.”
「보여줄 수 있어요?」
「…? 아뇨. 그건 부정이잖습니까.」
“생각보다 고지식하네요.”
대체 날 그동안 어떻게 생각했길래, 자꾸 저 소리인가.
「농담이에요, 농담! 그냥 어떻게 되고 있나 안부차 전화했어요.」
“예. 근데 어디시길래 이렇게 시끄럽습니까?”
「아, 지금 다들 모여 있거든요.」
「준우야! 고생했다!」
「수고했어요, 준우 씨.」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박 팀장과 문소연의 목소리.
……나 빼고 회식이라도 하나.
「아무튼, 수고하셨어요. 초고는 인사팀으로 보내 놓으시면 되고, 과제 날까지는 조금 쉬세요. 나머진 이제 저희한테 맡겨주시고요.」
“맡기다뇨. 또 무슨 이상한 짓을 꾸미고 있는…….”
뚝―.
상당히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핸드폰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