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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전화 바꿨습니다.”
편 팀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전화를 건네받았다. 그리곤 능숙한 영어로 통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예예. 안녕하십니까.”
“아뇨. 본부장님은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예, 제가 전임자긴 한데…….”
“글쎄요. 저희 쪽 일정을 조정하는 분이 따로 계셔서 제가 독단으로 판단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번호를 알려드릴 테니 그분한테 한 번 연락해보시겠습니까.”
이윽고 통화를 마친 편 팀장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뭡니까?”
“왜 갑자기 미국 지부에서…….”
팀장들이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마치 부모님이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을 때와 같은 반응이었다.
“다른 게 아니라… 이번 루프 던전, 서울 본부와 합동 작전으로 진행하고 싶은데, 참가 가능한 작전팀 있냐고 물으시네요.”
“……?”
“……뭐, 뭐요?”
“마침 이야기가 마무리돼서 다행입니다. 다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니… 작전 2팀을 참가시키겠습니다.”
그 순간, 팀장들의 표정이 잿빛이 되었다.
이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 어…….”
“그…….”
“음? 왜들 그러십니까? 미국 지부가 낀다니까 갑자기 일정이 마음에 드십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제야 팀장들은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다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자, 모두를 대표해 이수용 팀장이 나섰다.
“당연히 약속대로 작전 2팀이 참가해야겠죠. 그런데 그… 어려운 던전이니만큼 작전 기획을 맡아줄 총 책임자가 따로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생각해보니 그렇군요.”
편 팀장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졌다.
의도야 뻔했다.
이대로는 정말 2팀으로 홀랑 넘어갈 것 같으니, 어떻게든 총 책임자라도 맡아서 발이라도 담가보려는 심산.
“알겠습니다. 그럼 작전 총 책임자는 김준우 팀장님으로 하겠습니다.”
물론 어림도 없었다.
편 팀장이 바라보자 김민주는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럼… 대충 얘기 끝난 것 같으니까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망부석이 된 팀장들을 뒤로하고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
“이제 어떻게 합니까?”
작전 1팀 사무실.
보좌관, 류승민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수용 팀장은 대답 대신 손톱을 물어뜯었다.
작전팀장들에게 보이콧을 선언하자고 선동한 건 다름 아닌 그였다.
원래 계획은 루프 던전 보이콧을 이용해 주도권을 찾으려던 건데…… 난데없이 미국 지부에서 합동 작전 제안이라니.
이렇게 나오면 곤란해지는 건 자신들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벌써부터 다른 작전팀장들의 원성이 쏟아지고 있는 중이었다.
“시발,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냐고.”
이수용 팀장이 학을 뗐다.
보이콧 얘기를 꺼냈을 땐 다들 좋다고 박수 치더니, 수틀리니까 바로 물고 뜯고 지랄들을 하고 있다.
“이해는 됩니다. 루프 던전이잖아요. 던전 수익은 그렇다 쳐도 떨어지는 아이템도 장난 없잖습니까.”
“누가 몰라? 그렇다고 이제 와서 참가시켜 달라고 할 수도 없잖아. 아오, 시발 진짜……!”
되는 새끼들은 뭘 해도 된다더니.
이수용 팀장의 숨이 점차 거칠어졌다.
“그나저나 본부장님은 이런 중요한 시기에 어디 계시는 겁니까. 본부장님이 계셨으면 이렇게까진 안 됐을 텐데요.”
“듣자 하니 지방 돌아다니면서 지부장들이랑 이사들 만나고 있다더라.”
류승민 보좌관의 눈썹이 물결을 쳤다.
“……갑자기 왜요?”
“나야 모르지. 이번 총회 끝나자마자 지방 내려간 거 보면 뭔 이야기가 나온 것 같긴 한데…….”
이수용이 작게 기지개를 켜며 말을 이었다.
“뭐, 김준우는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팀장을 달지, 청소팀은 계속 치고 올라오지. 그나마 유일한 견제 수단이던 청소 6팀은 죽 쒀서 개 줬지. 똥줄 타니까 구조요청이라도 하고 싶나 보지.”
이수용은 알게 뭐냐는 듯한 말투였다.
실제로 요즘 라인을 잘못 탄 건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더는 생각하기 싫다는 듯 이수용은 고개를 털었다.
“아무튼, 이번 합동 작전 거나하게 사고나 터졌으면 좋겠네, 시발.”
“미국 지부가 꼈는데 사고가 날 리 없죠. 그리고 뭐, 일 터지면 본부도 골치 아파지지 않겠습니까.”
“나도 알아 새끼야. 해본 소리야.”
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
“뭐야. 토벌 이제 끝났습니까?”
미청소 던전.
약속대로 한유빈을 지원해주기 위해 들어서자, 청소 6팀원 전원이 상당히 지친 모습으로 맞이했다.
“아니, 전직 국제 헌터라는 사람이 블루 등급 토벌하는데 이렇게 힘들어합니까?”
“……어이가 없어서, 진짜.”
한유빈이 기가 찬 듯 코웃음을 쳤다.
“도와주기라도 하고 그런 말 하시죠? 일은 우리가 다 하는데, 와서 고작 한다는 소리가 참…….”
“그러게 누가 고유 스킬 쓰지 말랍니까? 본인이 굳이 안 쓰고 토벌한 걸 왜 저한테 화풀이입니까.”
“하, 진짜…… 엥?”
갑자기 한유빈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어떻게…….”
“어떻게 알았냐고요? 뻔하잖습니까. 당신 클래스가 광전사인데, 고유 스킬을 썼으면 몬스터 사체가 이렇게 멀쩡할 리가 없죠.”
놀랄 것도 많다.
“아니… 사체가 엉망이 되면 청소가 힘드니까…….”
“그건 시험 때나 얘기고, 실전에서는 토벌이 무조건 우선입니다.”
참 나, 전직 국제 헌터에게 이런 걸 일일이 설명해줘야 한다는 게 유머네.
“물론 조절할 여건이 된다면야 상관없지만, 그래도 효율을 따져야죠. 청소 때문에 토벌이 힘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어쨌거나 협회 1순위는 던전 토벌인데.”
“뭐야… 당신 청소팀 편 아니었어요?”
“편? 참 나.”
어처구니없는 물음에 실소가 새어 나왔다.
“일에 네 편 내 편이 어디 있습니까. 피차 뺑이 치는 입장인데.”
“…….”
어째 의외라는 얼굴이다.
그런 거 따질 여유가 있는 걸 보니, 아직 몸이 덜 힘든 모양이네.
“아직 식사 안 하셨죠?”
“……네, 네.”
“그럼 식사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요 앞에 청소 작업 하나만 하고 가십쇼. 여긴 제가 청소하겠습니다.”
“…….”
방금 입 모양으로 욕한 거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미심쩍은 표정으로 걸레를 집어 들던 찰나 핸드폰이 울렸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갑자기 들려오는 외국어.
“……누구시라고요?”
집중해서 듣자니 작업하면서 받을 전화가 아니었다.
하필 이 타이밍에…….
“아, 잠시만요.”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막 떠나려는 한유빈을 불러 세웠다.
“저 급한 전화가 와서 나가봐야겠습니다. 여기 청소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번엔 확실하게 욕이 날아들었다.
거참 성질머리하고는.
“예, 이제 통화 가능합니다.”
애써 무시한 채 던전을 빠져나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미국 지부에서 무슨 볼일이시라고요?”
「이번에 서울에서 루프 던전이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루프 던전은 북미권에서는 잘 출현하지 않는 던전이라, 경험을 쌓기가 매우 힘들죠. 그래서 합동 작전을 제안 드리고 싶은데, 책임자와 얘기해보라고 이 번호를 주시더군요.」
발신자는 국제 협회 미국 지부 소속의 통제팀장이었다.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침착하게 그가 한 말을 곱씹었다.
「여보세요. 듣고 계십니까?」
“아, 예. 듣고 있습니다. 하, 루프 던전 말씀이시죠…….”
머릿속 기억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루프 던전.
보스 몬스터를 특정 조건에 맞춰 토벌하지 않으면 토벌 전 시간대로 되돌아가는 특수 던전.
기억상으로는 분명 이맘때 신림동에서 루프 던전이 열렸다.
「아시다시피 상당히 고난도의 던전인데, 아무래도 지금 한국 협회 수준으로는 조금 어렵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경험을 쌓고 당신들은 도움을 받고. 서로 윈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흐음…….”
틀린 말은 아니다.
루프 횟수는 무한.
한 마디로 같은 시간대 안에서 토벌 조건을 달성할 때까지 무한히 토벌을 진행해야 한다는 소리다.
나조차 전생에선 이 루프 던전을 토벌하기 위해 100회가량 같은 던전을 반복했다.
이게 얼마나 지옥 같은 짓인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지.
그러니 저쪽에서 먼저 합동 작전을 제안해준 건 우리 입장에선 꽤나 고마운 일이다.
……라고 생각했던 회귀 전 내가 병신이었다.
‘이 새끼들은 여전히 양아치네.’
그렇다.
회귀 전에도 루프 던전 출현을 앞두고 미국 지부에서 똑같은 연락을 받았었다.
그리고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경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참가한 미국 지부는 루프 던전에서만 나오는 아이템, ‘시간석’을 본부 몰래 빼돌려 미국으로 돌아갔다.
협회의 입지를 다지는 데 있어 너무나 중요한 아이템이었기에 당연히 본부는 발칵 뒤집혔다. 당시 나도 협회장에게 엄청 깨졌었지.
미국 지부에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했지만… 국제 협회가 독립 협회의 말을 들어줄 리 만무했다.
작전 기획도, 총괄도 전부 서울 본부가 맡았지만 결국 우리가 얻은 거라곤 쪼개고 쪼갠 몇 푼짜리 수익금뿐.
‘시발. 생각하니까 또 빡치네.’
어찌 됐든… 몰라서 속았지 이미 속셈을 다 알고 있는 이상, 이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이번 작전은 저희 쪽 힘만으로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
갑자기 핸드폰 너머가 소란스러워진다.
「무, 물론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당황스러우실 겁니다. 보답이라고 하긴 뭐합니다만, 저희 쪽에서 이번 작전에 들어가는 예산을 지원할 생각입니다.」
“……?”
「원하신다면 개인 계좌로도 입금해드릴 수 있는데…….」
돈을 준다고?
전생에선 이런 조건은 없었는데.
게다가 개인 계좌라니.
대놓고 한 주머니 찔러 주겠다는 거잖아.
참 나, 청소부한테 로비하는 꼴이라니.
그까짓 돈 몇 푼에 그 개 같은 일을 또 당하라고. 어림도 없지.
“예상 금액이 얼마나…….”
「백만 달러.」
“…….”
10억?
자, 잠깐! 생각보다 괜찮잖아.
시발, 이걸 잡아 말아?
“후우……. 죄송합니다. 역시 힘들 것 같네요.”
순간 흔들렸지만, 거절했다.
스킬 해금만 아니었으면 꽤나 혹할 돈이다.
하지만 저걸 받아버리면 현재 상황에서는 협회를 떠날 각오를 해야 한다.
「자, 잠깐만요! 얼마를 원하십니까?!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이것 참.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순간, 통화 중에 문자가 도착했다.
김민주한테서 온 연락이다.
- 선생님, 통화 중이셔서 문자로 남겨요. 다른 게 아니라 다음 주 루프 던전 말인데요. 다른 작전팀장들이 보이콧을 해서 저희 팀만 참가하게 됐어요. 총 책임자는 선생님으로 정해졌고요. 그래도 다행히 미국 지부에서 합동 작전 요청이 와서 어떻게든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문자 보시면 연락 한 번…….
너무 장문이었기에 빠르게 눈을 굴려 핵심만 읽었다.
‘아오 시발…….’
곧바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팀장들의 보이콧에 작전 2팀의 단독 참가 그리고 내게 위임된 총 책임자 자리.
대체 정기회의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젠장, 이렇게 되면 마냥 거절할 수가 없는데.
‘쯧, 어쩔 수 없나.’
“알겠습니다. 합동 작전으로 진행하도록 하죠.”
「받아 들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루프 던전이라 청소팀과 같이 작전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예산 때문에 청소팀까지는 파견하기가…….」
“걱정 마세요. 마침 딱 맞는 팀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빠른 시일 내에 뵙겠습니다. 아,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김입니다. 준우 김.”
통화를 종료하고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곧바로 수첩을 펼쳐 청소팀 일정을 확인했다.
‘다음 주 청소팀 작업을 조금 미뤄두고… 나랑 6팀이 참가하면 얼추…….’
잠깐.
문득 불길한 기운이 스쳤다.
생각해보니 미국 지부면 한유빈의 전 직장이지 않은가.
이거…… 한유빈을 참가시켜도 되나?
“…….”
그래, 나름 국제 협회 지부인데 설마 일 좀 있었다고 해코지라도 하겠는가.
괜찮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