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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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보스 방.
토벌이 끝난 직후, 던전이 보라색 빛으로 휘감기고 있던 그때.
콰직―.
파견팀 전원이 무전기를 박살 냈다.
“……뭡니까?”
이상한 낌새에 한유빈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후우, 제이슨은 이제야 후련하다는 듯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파일.”
“……뭐?”
“작전 파일 말이야. 네가 들고 튄 거. 그거 어디 있나?”
한유빈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애써 침착을 유지했다.
“…무슨 작전 파일?”
“시간도 없는데 두 번 묻게 하고 있어, 시발.”
“그러니까 대체 뭔 개소리냐고. 알아듣게 말해.”
제이슨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기대도 안 했어.”
빠르게 단념했다.
그녀가 모르쇠로 나오리라는 건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애초에 순순히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파일을 받을 생각 따윈 없었다.
왜 굳이 던전까지 끌어들였겠는가.
파일이고 나발이고…… 그냥 죽여 버리면 그만인데.
“잡아.”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파견팀이 한유빈을 향해 달려들었다.
“너희들, 진짜 처돌았구나?”
[고유 스킬 : 하이패닉 버서커]
뻐억―!
한 방에 턱이 돌아간 파견팀 헌터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한유빈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기세에 파견팀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이슨은 고개를 저었다.
“허세는 시발. 오래 쓰지도 못하는 스킬, 방금 전투 지원하느라 이미 한계잖아.”
“…….”
한유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버서커 클래스의 고유 스킬은 짧은 순간 어마어마한 힘을 얻는 만큼, 빠르게 체력을 갉아먹는다.
‘시발…….’
아니나 다를까, 머지않아 붉은 기운이 점점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제이슨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시간 없어. 본부팀 놈들 오기 전에 끝내.”
파견팀 전원이 다시 한번 움직였다.
다른 스킬을 발동할 체력도 남아 있지 않았기에, 한유빈은 무기력하게 제압당했다.
“야, 야. 한유빈!! 뭐해 병신아!”
“유빈 씨!!”
한상혁과 문소연이 소리치자, 그들에게도 가차 없이 주먹이 날아들었다.
“이놈들은 어떡할까요?”
“뭘 어떡해, 다 없애.”
생각하기도 귀찮다는 투.
한유빈은 코웃음을 쳤다.
“……진짜 단단히 미쳤네. 작전 중에 아군을 공격한다고? 아무리 국제 협회 소속이라고 해도 이게 커버가 될 거 같아?”
“내가 죽였는지 아니면 전투 중에 사망했는지 알 게 뭐야. 죽은 놈은 말을 못 하는데.”
그리고 제이슨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청소부 몇 명 죽는다고 해서 협회가 신경이나 쓸 것 같나?”
“…….”
한유빈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을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제이슨은 이내 들고 있던 단검으로 그녀를 향해 단번에 내리꽂았다.
서걱―.
땅바닥에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어?”
공허하게 울리는 목소리와 갈 곳을 잃은 눈동자.
바닥에 떨어진 것은, 다름 아닌 제이슨의 손이었다.
“지랄들을 하고 앉았네.”
그때, 어떤 남성이 빗자루에 묻은 피를 툭툭 털며 입을 열었다.
“어디서 다 된 작전에 똥을 뿌리려고.”
[레플리카 - 고유 스킬 : 천수관음(千手觀音)]
“버러지 새끼들이.”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엔 줄곧 있는 둥 없는 둥 따라다니던 청소부가 서 있었다.
***
부리나케 달려온 두 번째 보스 방.
“끄, 끄아아아악!!!”
제이슨은 휑한 팔뚝을 붙잡곤 바닥에 나뒹굴었다.
“뭐, 뭐야!”
“빗자루……?”
“지금 빗자루로 손목을 자른 거야?!”
동시에 그곳에 있던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주, 준우 씨?!”
“김준우, 너…….”
문소연과 한상혁도 적잖이 충격인 듯했다.
[제한 시간 초과]
[레플리카 효과가 종료되었습니다.]
‘늦지는 않았나 보네.’
빗자루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파견팀을 살폈다.
상황을 보자.
작전 자체는 전생 때와 다를 것 없이 진행됐다.
남은 변수는 그래 봤자 파견팀이 몰래 시간석을 빼돌리려는 것뿐.
지금처럼 아군을 공격하는 일은 전생에서도 없었던 상황이다.
예상치 못한 변수라…….
나는 슬쩍 한유빈을 흘겼다.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이유야 뻔하네, 뭐.’
꼴을 보아하니 이미 몇 대 얻어터진 모양이다.
어째 불안 불안하더라니.
설마 공식 작전에서 이런 개수작을 벌일 줄이야.
나는 숨을 팍 내쉬며 제이슨 앞으로 다가갔다.
“두 분 사이가 안 좋은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작전 중에 아군을 공격하는 건 대체 무슨 경웁니까?”
“너, 너 이 새끼……!”
“그래서 우발적인 겁니까, 아니면 계획된 겁니까?”
“……!”
내가 묻자 제이슨의 눈이 떨려왔다.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후자가 맞는 모양이다.
“일단 자세한 건 나가서 얘기하죠. 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셔야 할 겁…….”
[고유 스킬 : 세틀라이트 스피어]
파앙―!
돌연 푸른빛의 거대한 레이저가 나를 향해 발사됐다.
어마어마한 위력을 뽐내는 ‘메카닉 클래스’의 고유 스킬.
급히 허리를 틀어 피하지 않았으면 큰 부상을 당했을 거다.
“사람이 말을 하고 있는데 매너 없게…….”
스킬이 날아든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뭐, 급한 거 보니까 여기서부턴 계획에 없었나 보네.”
파견팀의 얼굴에 긴장감과 당혹감이 드러났다. 그런 와중에도 공격 태세를 놓지 않고 있다.
그 어중간한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 이제 어떻게 합니까?”
“뭘 어떻게 해! 그래 봤자 청소부들이잖아!! 그냥 다 죽여!!”
“하, 하지만 숫자가 생각보다 너무 많은…….”
“어차피 두세 명 죽어봤자 신경도 안 써!”
[습득 스킬 : 마나 불릿]
[습득 스킬 : 콜링 스펠]
[습득 스킬 : 헬 파이어]
담담하게 듣고 있자니, 곧바로 마법사 클래스의 스킬들이 날아들었다.
“에휴.”
[스킬 발동]
[습득 스킬 : 업화]
검은 화염이 피어오르며 벽을 만들었다.
퍼버버벙―!
스킬들은 그 벽을 뚫지 못한 채 죄다 터져나갔다.
“뭐… 동의합니다. 동양에 있는 작은 독립 협회 소속 청소부 몇 명 죽었다고 국제 협회가 눈이나 깜빡하겠습니까.”
저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뭔 목적인지는 몰라도 꽤나 공들인 계획 같은데, 웬 청소부 한 명 때문에 죄다 그르치게 생겼으니.
[시전자를 향한 공격 감지]
[현 시간부로 전투태세에 돌입합니다]
“근데 왜 그걸 내 작전에서 하려는 겁니까, 시발놈들아.”
하지만 그건 너네들 사정이고.
속에서 열불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 새끼들은 전생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왜 자꾸 내 앞길을 막는 건가.
그래도 최대한 좋게좋게 끝내려고 했는데… 이렇게 나오면 나로서도 도리가 없다.
“두 발로 걸어 나가진 못할 거야. 각오들 하고 덤벼.”
나는 이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스킬 발동]
[습득 스킬 : 하이퍼 부스트]
[전투 중 시전자의 이동속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타앗―.
자세를 낮춰 두 다리에 힘을 싣길 한 차례.
파견팀을 향해 도약했다.
***
김준우가 파견팀과 격돌한 그 순간이었다.
“유, 유빈 씨!”
“야! 한유빈! 뭐 하고 있어!”
문소연과 한상혁이 목소리를 키웠다.
“지원을 요청해야 해요! 이러다가 준우 씨 죽는다고요!”
“아니면 너라도 가서 돕던가!! 지금 저 새끼, 너 때문에 싸우고 있는 거 안 보여?!”
한유빈은 대답 대신 입술을 깨물었다.
본인도 그러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무전기는 이미 다 박살이 났고, 자신은 한계였으니.
‘그렇다고 진짜 나 때문에 저렇게까지…….’
어떻게든 해야 한다, 오로지 그 생각만 떠올리던 그때.
“걱정 마세요. 제가 무전을 했으니 곧 지원이 올 겁니다.”
뒤에서 한 여성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 클로이…?”
“쉿.”
뒤를 돌아보니 파견팀 지원실장이었다.
보아하니 김준우를 몰래 따라온 모양이었다.
“모쪼록 저 사람이 그때까지만 버텨주길 바라봐야죠.”
한유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숨을 죽인 채, 김준우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래, 자신을 압도하기까지 한 남자가 아니던가.
쉽게 당할 사람은 아니다, 한유빈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왜 피하기만 하는 거야…….’
그럼에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호기롭던 태도와 다르게 그는 보스 방을 빠르게 누비며 스킬을 피하기만 할 뿐, 별다른 공격은 하지 않았다.
설마 그땐 내 착각이었나, 그런 의심이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리고 그 순간.
[고유 스킬 : 섀도우 라이트닝]
쾅!!
김준우의 방향을 예측한 공격이 날아들었다.
“티, 팀장님!!”
한유빈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팀장…!”
“아,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좀 하십쇼.”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는지, 김준우는 먼지 속에서 몸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
“메카닉, 마법사, 네크로맨서…… 사제도 몇 명 있고.”
고개를 뚜둑거리며 중얼거렸다.
“B급 12명에 C급 5명, D급 2명… 다들 경험도 좀 있고 스킬 연계도 꽤 좋은 조합인데, 어째 죄다 원거리 포지션이네.”
“……!”
“……!”
파견팀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정예팀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핵심이 빠진 거 같은데. 예산이 좀 모자랐나 봅니다?”
“시발, 청소부 주제에 뭘 안다고 나불대!”
“스킬 몇 개 피했다고 진심으로 이길 줄 아는 건…….”
“닥치고 들어. 선배로서 조언해주는 거니까.”
한유빈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 인간, 지금 뭘 하는 건가?
“아무튼, 그렇게 원거리 포지션으로만 배치하는 건 자살행위입니다. 그저 그런 근접 포지션 한 명만 있어도 뒤지게 얻어맞기 딱 좋으니까요.”
그의 시선이 한유빈에게로 향했다.
“예를 들면 버서커 클래스 같은 거.”
동시에 한유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저 인간…….
시간을 끌면 다시 내가 싸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
“풉!”
그때, 파견팀의 누군가가 웃음을 터트렸다.
“풉, 푸하하하!”
“당신 설마 한을 기다리는 거야?”
“광폭화 계열 스킬은 한 번 소모하면 족히 몇 시간은 있어야 하는데?”
“역시 청소부는 청소부였네. 괜히 쫄았잖아.”
파견팀 또한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웃음꽃을 피웠다.
“그럼, 그럼~. 저 녀석이 회복하려면 최소 몇 시간은 걸리지.”
김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습득 스킬 : 레플리카]
[타인의 고유 스킬을 1분간 복제합니다]
“내 스킬 쿨타임은 10분이지만.”
[레플리카 - 고유 스킬 : 하이패닉 버서커]
구구구구―.
공간이 흔들릴 정도로 거세게 뿜어져 나오는 붉은 기류.
‘내, 내 스킬?!’
한유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덩달아 파견팀의 낯빛에도 다시 그늘이 드리웠다.
“거, 걱정 마! 파고들지만 못 하게 하면―.”
뻐억―
파견팀의 누군가가 말하는 동시에 턱이 돌아갔다.
모두가 얼어붙었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퍽, 빠악―.
뻑―.
뻐억―.
이후로는 처참한 광경만이 이어졌다.
[습득 스킬 : 원 카운터]
[약점 공격 시, 대미지 3,000% 증가]
뚜둑, 뻐억―.
한 방에 한 놈씩.
맨주먹으로 가격하는 것임에도 둔탁한 쇳소리가 울렸다.
[습득 패시브 : 과다출혈]
[체력이 소모될수록 모든 스텟이 대폭 증가합니다.]
[레플리카 - 하이패닉 버서커로 인한 체력 소모가 스텟 버프로 변환됩니다.]
뻐억, 뻑―.
[습득 스킬 : 폴리모프]
[최근 처치한 몬스터로 폴리모프 합니다.]
[최근 처치 몬스터 - 퍼시픽 골렘]
쿵―!
콰과광―.
몇 개의 스킬이 겹쳐진 건지, 김준우의 움직임은 가히 예측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한유빈은 그 일방적인 폭행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말도 안 돼…….’
아무리 강력한 고유 스킬을 복제한다고 해도 해당 클래스와 스킬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쉽사리 운용할 수 없다.
그런데도 저 남자는 스킬 운용부터 연계, 응용까지 모든 게 완벽하다.
어쩌면 전 세계 버서커 클래스 1위인 자신보다 더.
무엇보다 스킬 쿨타임을 기다리는 동안 상대의 클래스와 포지션을 전부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완벽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그것도 19명의 공격을 모두 피하면서.
대체 어떻게 돼먹은 판단력인가.
‘여태까지 봤던 것도 과소평가였다는 거야……?’
완벽에 가까운 기획력.
청소부 신분으로 본부를 장악한 리더십.
압도적인 힘.
그 순간, 한유빈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만약 그때 작전 지휘를 맡은 게 자신이 아니라 저 사람이었다면.
만약 그때 미국 지부에서 저 사람이 권력을 잡고 있었다면.
만약 그날, 그 순간, 저 사람이 있었다면…….
니콜은 살 수 있었을까?
“후우…….”
때마침, 김준우가 숨을 몰아쉬는 소리에 문득 정신이 들었다.
“끄으으…!”
“으어어…….”
주변을 둘러보니 상황은 이미 종료된 후였다.
김준우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천천히 제이슨에게 다가갔다.
“힉! 히이익…!”
귀신이라도 본 듯 땅바닥을 기어 도망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김준우는 바닥에 버려져 있던 빗자루를 다시 집어 들었다.
“자, 잠깐! 잠깐!!”
다급하게 손을 들어 올리는 제이슨.
“나, 날 죽이려고? 청소부가 미국 지부 통제팀장을 죽이겠다고?! 그러면 국제 협회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내가 죽였는지, 작전 중에 사망했는지 알 게 뭡니까?”
김준우의 서슬 퍼런 시선이 제이슨을 관통했다.
“죽으면 말을 못 하시는데.”
그렇게 빗자루를 높이 들어 올린 순간.
“자, 잠깐만요!”
이번엔 한유빈이 소리쳤다.
“뭡니까? 또.”
“이제 그만 해요. 더 이상 하면 팀장님도 위험해요. 아시잖아요. 저 인간 국제 협회 소속인 거…….”
김준우가 움직임을 멈췄다.
“이제 그만하고 빨리 나가기나…….”
뚝―.
“끄아아아악!!!”
한유빈의 말을 끊고 소름 끼치는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준우가 제이슨의 다리를 발로 밟아 부러뜨린 것이다.
“뭐, 뭐 하는 거예요! 더 이상은 안 된다고요!! 그 사람은 국제 협회……!”
“그런데요?”
“………네?”
“국제 협회가 뭐 어쨌다는 겁니까.”
김준우는 그렇게 말하며 반대쪽 다리에 발을 올려놓았다.
“본보기를 보여줄 거면 말입니다. 두 번 다시 기어오를 생각조차 못 하게 확실히 해야 합니다. 그게 누군지는 상관없죠.”
“자, 잠…!”
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