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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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탁―.
두 손을 털며 주변을 살폈다.
몬스터고 인간이고 모두 리타이어 상태.
아무래도 대충 마무리가 된 듯했다.
“그럼… 이제 남은 정산을 해볼까.”
“아, 아직도 뭐가 남았어요……?”
한유빈이 손바닥으로 눈을 가린 채 물었다.
거의 울기 직전 목소리였다.
대답 대신 클로이 지원실장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그녀 앞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주십쇼.”
“……예?”
“시간석 말입니다. 또 몰래 가져갈 생각 말고 이리 주시라고요”
“어, 어떻게… 아니, 것보다 또?”
“……아.”
젠장, 이놈의 입.
“크흠. 아무튼, 시간석만 넘겨주면 여기서 있었던 일은 모른 척해드리겠습니다. 뭐, 피차 좋을 거 없잖습니까? 배분만 제대로 하고 조용히 갈 길 갑시다.”
나는 제이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물론 그 파일인지 뭔지도 책임지고 폐기해드리겠습니다.”
“……끄으.”
“사람을 그렇게 못 믿어서 참… 거짓말 아닙니다.”
그는 이미 반쯤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지만, 어찌어찌 말뜻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이슨 팀장님.”
다시 묻자, 제이슨의 시선이 클로이에게 향했다.
“끄으윽…!”
“네, 네? 하지만…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으으, 끄으으!”
고개가 세차게 움직인다.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대강 알 것 같았다.
결국, 클로이는 주머니에서 시간석을 꺼내 들었다.
은은한 노란빛을 내뿜는 주먹만 한 돌멩이.
그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시간석을 넘겼다.
“그럼… 이제 여기선 아무 일도 없었던 겁니다.”
그 말을 남기고 곧바로 등을 돌렸다.
문소연과 한상혁, 한유빈이 말없이 뒤를 따랐다.
던전을 빠져나온 직후, 나는 참았던 한숨을 내뱉었다.
확실히 싸움은 나랑 맞지 않는다.
몬스터는 몰라도 같은 사람 간의 싸움은 그다지 뒷맛이 좋지 않단 말이지.
“그래서… 그 파일이란 게 대체 뭡니까? 뭐길래 일을 이렇게까지 키워요?”
아까부터 줄곧 죽을상을 하고 있는 한유빈을 향해 쏘아붙였다.
한유빈이 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미국 지부에 있었을 때 일이 좀 있었어요.”
“아, 친구분이 사고당했다던 그…?”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작전에서 충분히 지원 병력을 보낼 수 있는 여건이 됐다는 정황이 담겨 있는 파일이에요.”
“…….”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이야기였네.
그러니까 난 지금… 친구의 복수를 위한 증거물을 대신 폐기해주겠다고 약속한 건가?
‘……너무 쓰레긴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자 한유빈이 오히려 피식 웃는다.
그리곤 목에 걸린 펜던트를 벗어 열어젖혔다. 안엔 20대 여성의 사진과 마이크로 SD 칩이 들어있었다.
한유빈은 마이크로 칩을 내게 건넸다.
“괜찮은 겁니까?”
내가 묻자 한유빈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그거 그림의 떡이에요.”
“예?”
“그걸 왜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겠어요. 국 끓여 먹을 것도 아닌데. 한국 오자마자 언론사에도 연락해보고, 기자들한테도 부탁해봤는데… 다 잘 안 됐어요.”
대충 무슨 얘기인지 알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국제 협회 소속, 미국 지부의 비리가 담긴 파일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백악관의 비리를 한국 언론이 터트리는 꼴인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떠맡을 놈이 어디 있겠는가.
“국제 협회를 건드렸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소문도 있잖아요? 이해는 해요.”
“그런 소문도 있었죠.”
“국제 협회 지부 사이에선 꽤 유명한 괴담이니까요. 헌터들의 밸런스를 조절하는 팀이 있어서 국제 협회에 위협이 되는 이들을 미리 제거한다― 뭐, 그런 거죠.”
어디에나 괴담은 있기 마련이다.
국제 협회 지부는 그 크기나 하는 일이 많은 만큼 수많은 소문이 돈다.
뭐 그중 9할은 확인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뭐, 아무튼… 제이슨이 멍청했죠. 굳이 찾으러 안 와도 무용지물인 파일이었는데.”
그러곤 털어내듯 쿡쿡 웃는다.
“그럼, 이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네, 팀장님 마음대로 하세요. 전 이제 필요 없으니까,”
사실 이 파일에 담긴 게 뭔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딱히 관심 없다.
미국 지부의 비리든 뭐든, 내 알 바도 아니고.
단지, 내 관심은…… 어쨌든 이게 미국 지부에 엿을 먹일 수 있는 물건이라는 것뿐이다.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형님?! 와, 진짜 오랜만입니다! 뭐하고 지내셨어요!」
여전히 소란스러운 목소리.
다름 아닌 중심일보 사회부 기자, 구상찬이다.
“그냥 그렇지 뭐. 넌 잘 지냈냐?”
「저도 그래요. 기삿거리가 없어서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뭐, 딱히 사고도 안 일어나고. 하핫!」
“굶진 않아도 되겠네. 내가 재밌는 거 하나 찾았거든.”
「……예?」
“근데 이게 잘못 먹었다간 크게 체할 수도 있어. 어떻게, 네가 해볼래?”
쿵, 소리가 들려왔다.
「시벌! 당연하죠!! 지금 만날까요?! 형님 지금 어디세요!」
……미친놈.
생각은 하고 대답하는 걸까?
대충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한 뒤 전화를 끊었다.
“티, 팀장님…? 왜…….”
“예전에 미국 지부한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적이 있는데, 아직도 비만 오면 머리가 얼얼합니다.”
나는 칩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당한 건 갚아줘야죠.”
전생의 복수다.
나는 한쪽 입꼬리를 쓱 올리며 한유빈을 슬쩍 흘겼다.
복잡한 표정.
슬픈 건지, 기쁜 건지 모를 얼굴이었다.
나는 이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분 말입니다.”
“…네?”
“한 번 찾아뵙고 오십쇼. 박 과장님한테 말해 놓을 테니까. 듣자 하니 장례식에도 참석 못 했다면서요.”
“…….”
어찌 됐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남은 건 당사자들이 각자 알아서 해야겠지.
***
파일 하나에서 시작된 파문은 일파만파 커졌다.
이전, 한유빈이 맡았던 작전이 재조명되면서 다시금 수사에 들어간 것이다.
그 결과, 제이슨 통제팀장은 작전 비리 및 던전 수익금 횡령으로 지부에서 대차게 잘려 나갔고, 동시에 작전 중 내분 혐의로 실형 판결을 받았다.
파견팀에 소속되어 있던 19명 또한 같은 혐의로 전원 헌터 자격이 정지됐다.
또한, 각국의 정부는 해당 사건의 심각성을 느끼고, 자국 헌터 협회를 대상으로 국정감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모든 게 국제 협회 측에서 어떠한 입장을 표명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구상찬 기자 덕이 컸다.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하지 말라고 하고, 다른 언론사도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지.
결국, 개인계정으로 기사를 쓰고, 개인 영상 채널에 업로드하고, 발로 뛰며 보도해줄 곳을 찾았다고 하니……. 뭐, 공론화를 거의 혼자 성공시킨 셈이었다.
-또??
-또 청소팀???
-미국 지부 비리를 한국 청소팀이 터트렸다고??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
-ㅅㅂ 이 미치광이 팀은 업무가 대체 뭐야?
-이것이 K-청소팀이다.
-요즘엔 청소팀이 또 뭔 지랄했는지 보는 재미로 산다.
-ㄹㅇㅋㅋ 너무 기다려지잖아.
-근데 미국 지부는 국제 협회 아님?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내가 미국 지부면 저런 미친놈들은 절대 안 건드림ㅋㅋㅋㅋㅋㅋ
덕분에 인터넷은 벌써 며칠째 청소팀에 관한 얘기뿐이다.
인터넷뿐이랴.
[국내 지부, 너도나도 청소팀 키우기에 혈안.]
[평균 연봉 6천만 원의 떠오르는 유망 직종, 던전 청소부!]
[2, 30대 직업 선호도. 1위 공무원, 2위가 던전 청소부?]
[대표적인 3D 직업 중 하나였던 던전 청소부, 유망직종이 된 이유는?]
나라 꼴이 희한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러한 변화가 순수하게 기뻤다.
[해금 조건 달성]
[던전 청소부 평균 연봉 6천만 원 이상]
[습득 스킬 : 극초식 - 어검술]
[던전 청소팀 입사 경쟁 10:1 이상]
[습득 스킬 : 이계 소환]
[던전 청소부, 20대 층 해당 직업 선호도 5위 달성]
[습득 스킬 : 형상 - 우리엘]
[검사 클래스에 도달했습니다]
[소환사 클래스에 도달했습니다]
[사제 클래스에 도달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것도 잠시, 시스템 창을 닫으며 문 앞에 섰다.
똑똑―.
이능차원관리 협회, 서울 본부.
헌터지원팀, 중증 부상 관리 병동 302호.
“오셨어요?”
병실에 들어서자 김민주가 나를 반겼다.
작전팀장이 병원 신세라니, 절로 한숨이 나오는 광경이었다.
“몸은 좀 어때?”
1층 편의점에서 사 온 음료 세트를 침대 옆에 내려놓았다.
“많이 괜찮아졌어요. 수술 경과도 좋고요.”
“참 나, 그러게 왜 무리를 해. 토벌 너만 하는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선생님 도움을 받을 순 없잖아요.”
씨익 웃는다.
아니, 이렇게 다치는 게 더 귀찮거든?
“그래서… 청문회는 어떻게 됐어요?”
자리에 앉기 무섭게 김민주가 물었다.
자기 몸 관리나 신경 쓰지 뭘 그리 걱정하는 게 많은지 모르겠다.
“잘 처리될 거 같아. 내가 공격한 것도 정당방위로 인정됐고. 내분 유발자잖냐. 때에 따라선 사살도 가능한데 뭐 이 정도야…….”
“다행이네요.”
김민주가 가슴을 쓸어내린다.
뭐… 이미 제압을 한 뒤에 다리를 부러뜨려버린 건 과잉 대응이라는 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어째선지 결과적으론 조용히 넘어갔다.
아무래도 윗선에서 손을 쓴 것 같은데, 나한테 얘기도 없이 처리한 거로 봐선 이아영 쪽 라인이 분명했다.
“아무튼, 이번엔 국제 협회조차 빼도 박도 못하게 됐어. 오늘 아침에 기자회견 열어서 서울 본부에 공식적으로 사과하더라.”
덩달아 청소팀에 대한 보상도 언급했다.
1년 동안 예산 지원과 필요할 때 언제든 인력을 파견해줄 것을 약속했고, 각자에게 꽤나 짭짤한 보상금이 전달됐다.
내부적으로는 청소 3팀 전원에게 휴가를 내렸다. 그래서 당분간의 토벌 일정도 모두 스탑.
이건 편 팀장과 박 과장, 콜라보의 결과물이었다.
이렇듯, 작전에 참가하지 않은 인원들도 모두 발 벗고 나서서 수습을 도와주는 중이었다.
“뭐, 마음은 고마운데 이미 일은 터졌으니… 우리만 나가리네.”
“그러게요. 최대한 문제 안 생기게 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네요.”
“쯧, 어쩔 수 없지. 예상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중요한 건 이다음이 문제였으니까.
처음으로 맡은 작전부터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다른 작전팀장들은 이때다 싶어 물어뜯으려 들 것이다.
뭐… 짐을 미리 싸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유빈 씨는요?”
김민주가 슬쩍 물었다.
“알면서 물어. 휴가 갔잖아.”
“그건 알죠. 딱히 별말 없었나 해서요.”
흠.
“고맙대.”
던전 앞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경쟁자가 늘었네요.”
“……?”
뭐라는 거야, 이건 또.
“그래도 휴가 보내준 건 좀 의외네요. 솔직히 바로 다음 작업시킬 줄 알았는데.”
“아껴 써야지. 능력 있는 녀석이니까. 걔 없으면 일은 누가 하냐.”
“……네. 그렇죠.”
어째 미묘한 표정이다.
내가 뭐 잘못 말한 거라도 있나?
“뭐,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 품속에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김민주의 무릎 위에 툭 내려놓았다.
“…뭐, 뭐예요?”
“설마 그 몸으로 일할 생각은 아니지?”
서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민주는 이내 눈이 동그래졌다.
“자, 잠깐만요 선생님…! 이, 이 정도 부상 별거 아니에요! 일하는 데 지장 없는…….”
“뭐라는 거야. 조용히 하고 서류나 확인해봐.”
김민주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서류 봉투를 열었다.
……근데 이 장면 어째 낮이 익은데.
“이, 이거…?”
“산재 영수증이야. 조만간 월급 계좌로 들어갈 거니까 액수나 확인해 둬.”
“…….”
“그리고… 작전팀에는 병가 처리해뒀으니까, 괜히 일하겠다고 나서지 말고 니 몸이나 신경 써. 시간 나면 랭크 심사도 신청해두고.”
아무 말 않고 고개만 끄덕인다.
“그리고 낫자마자 바로 복귀해. 팀장 없으면 일은 누가 할래?”
“……그럴게요.”
어째 말하고 나니 머쓱하다.
왜 하필 쓸데없이 회귀 전 기억이 떠올라 가지고…….
죄책감 때문에 이러는 것 같잖아.
어색한 분위기 속, 때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이아영에게서 온 전화였다.
“예.”
“아뇨, 지금 병원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바로 가죠.”
쯧, 혀를 차며 전화를 끊었다.
동시에 깊은 한숨을 쏟아내니, 김민주가 걱정스레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별건 아니고… 이두식 이사가 좀 보잔다.”
짜증스레 머리를 긁적였다.
올 게 온 건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