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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49화 (49/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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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이능차원관리협회 행정본부.

“그래서….”

이아영과 함께 건물 복도를 가로지르던 중,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사님이 저한테 무슨 볼일이랍니까?”

“저도 몰라요. 남자들끼리 할 얘기라고 저한텐 말도 안 해줘요. 하여간, 언제 적 사람인지…….”

이아영은 영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물론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니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으니까.

그때, 이아영이 걸음을 늦추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번 일은 좀 의외였어요. 그렇게 무력으로 나서는 성격은 아니었잖아요.”

“필요했습니다.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그러다 당신까지 위험했으면 어쩌려구?”

“살아 있잖습니까. 그럼 된 거 아닙니까.”

“허…….”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는다.

나는 슬쩍 흘기며 물었다.

“마음에 안 드는 겁니까? 무력을 쓴 게.”

“그런 말은 안 했는데요. 의외였다고 했지. 뭐, 솔직히 그런 상황에서 어떤 미친놈이 국제 협회 지부랑 맞붙으려고 하겠어요. 후환이 무서워서라도 피하고 말지.”

“그랬으면 한두 명쯤은 죽었을 겁니다.”

“알아요. 그래서 한 말이에요.”

무슨 말인가 싶어 한쪽 눈썹을 올리자, 이아영이 걸음을 멈추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앞뒤 안 가리고 나서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에요?”

피식 미소를 짓는다.

“아무튼, 둘이 잘 이야기해봐요. 나중에 저한테도 좀 들려주시고요. 궁금하니까.”

어느덧 도착한 집무실 앞.

그녀가 대신 노크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덜컥―.

안으로 들어가자, 책상에 앉아 있던 이두식 이사가 몸을 일으켰다.

“어서 오게. 편하게 앉아.”

접견용 소파를 향해 손짓했다.

집무실 크기도 그렇고, 소파 크기도 그렇고 과연 직책에 어울리는 스케일이다.

“사무실 한번 오라고 한 지가 언젠데, 결국 내가 먼저 부르게 되는구먼.”

“죄송합니다. 워낙 일이 바빴던 터라.”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왕이면 끝까지 오지 않았으면 하는 게 본심이지만 굳이 밝힐 건 없겠지.

“하하하! 많이 바빴던 모양이더군. 음료수라도 마시겠나? 마땅한 건 없는데…….”

“아,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뭐.”

이두식이 이내 맞은편에 앉으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분위기가 사뭇 무거워지며 그의 얼굴에도 살짝 그늘이 졌다.

“일이 생각보다 컸어.”

미소를 띠고 있지만, 목소리에서 무게감이 느껴졌다.

“국제 협회에서 압박이라도 들어왔습니까?”

“아직은.”

“아직이라면…….”

“앞으로 그렇게 나올 수도 있다는 소리야. 이사회에선 국제 협회와 척을 지기 전에 자네를 어떻게든 쳐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고……. 뭐, 일단은 어떻게든 막긴 했지만 말이야.”

“감사합니다.”

“감사는 아직 일러. 분명 또 얘기가 나올 거거든. 뭐, 사실 대외적으로 보면 그게 맞긴 해.”

이두식이 답답한 듯 넥타이를 조금 풀었다.

“사실 이사회에서 한 달 전부터 추진하던 안건이 하나 있는데…… 그게 국제 협회랑 관련이 있어. 이사회 전체가 매달려서 국제 협회랑 딜 하는 상황에서 자네가 역린을 건드려버렸지.”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겠군요.”

“그 정도겠나. 아주 갈아 마실 기세지.”

물론 모르는 건 아니다.

이번 일은 명백히 미국 지부의 잘못이었고, 거기에 대응한 것뿐이지만…… 그거야 법적 사정이고. 조직 간의 관계라는 게 또 그렇지가 않으니.

“나도 자네랑 상황은 비슷해. 이번 일로 자네 커버 쳐주다가 이사회에서 완전히 눈 밖에 났거든. 가뜩이나 난 추진하고 있던 안건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또 개혁이니 뭐니 해서 다들 안 좋게 보고 있던 마당에 잘 됐다 싶겠지. 아, 혹시 이 얘기 한 적 있나?”

“얘기하신 적은 없지만, 어렴풋이 알고는 있습니다.”

“그래.”

그는 팔짱을 끼곤 코로 숨을 길게 내뿜었다.

“아무튼, 그런 실정이야. 나는 나대로 입장이 난처해졌고, 자네도 앞으로 골치 좀 썩을 거야. 다음 분기에 감사 일정 잡힌 거 들었나?”

“네 들었습니다. 뭐, 문제 될 건 없을 겁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문제가 되는 게 감사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연 공감의 의미였다.

회귀 전에서도 감사로 없는 문제를 만들어 보낸 놈들이 수두룩하다. 지금이라고 뭐 다를까.

다만 그땐 내가 보내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보내질 입장이라는 차이일 뿐.

“그동안은 몸집을 키우는 데 집중했지만 이젠 그것만으론 부족해. 나도 그렇고 자네도 그렇고. 이제는 살아남을 궁리를 해야 해.”

이두식이 이윽고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 나를 좀 도와줄 수 있겠나?”

속으로 피식 웃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있던 이야기 나오는 건가. 이왕이면 좀 더 숨기고 있으면 좋을 텐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두식 이사는 계속 이야기를 진행했다.

“협조해 준다면 자네 협회 생활, 내가 보장해 줌세. 혹시 본부장 자리에 관심 있나?”

“하하. 전 팀장으로도 과분합니다.”

이두식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자네라고 해도 쉽게 생각할 게 아니네. 말했듯이, 자네는 지금 적이 많아. 이번 일로 그 적이 본부 내에만 있을 거란 보장도 없어졌고. 혼자 감당할 순 없을 게야.”

“그래 봤자 일개 청소부입니다. 고작 저 한 명 때문에 그 잘나신 윗분들이 힘 뺄 것 같진 않은데요.”

“하하하! 무슨 소린가.”

미소를 머금고 말을 잇는다.

“일개 청소부 한 명 내치는데, 무슨 힘이 그렇게 들겠어.”

순간 내 눈썹이 꿈틀했다.

“…협박입니까?”

“설마. 진심으로 걱정돼서 하는 소리야. 솔직히 말하면 나도 더 이상 움직이기 어려워. 명분도 없이 계속 자네를 감싸고돌다간 언제 모가지가 날아가도 이상할 게 없거든.”

그는 후,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니 아까 말했던 이사회 안건 최종 결의까지는 최대한 몸을 사리는 게 좋을 거야. 모두 일개 청소부인 자네를 노리고 있으니까.”

“…….”

그동안 알게 모르게 날 도와준 건 분명 고마운 일이다.

아마 그 도움이 없었으면 일개 청소부인 내가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겠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나를 도와줬으니, 이젠 성의를 보여달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일견 협박처럼 보여도 이 정도면 신사적인 축에 속한다. 상대보다 우위에 서면 더없이 추악해진 건 한계가 없으니까.

나는 미소를 지었다.

“무슨 부탁인지 먼저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어려운 거 아니야. 그냥 협회장님한테 가서 복귀해달라고 설득만 해주면 돼.”

“……?”

“알다시피 3년째 종적을 감추고 계시잖나. 이사회에서도 위치를 아는 이가 없고. 하지만 자네라면 알고 있겠지? 그러니 한 번 만나 뵙고 설득을 좀 해주게.”

그걸 왜 나에게 부탁하는 거지?

당혹감에 초점이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다.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입을 열었다.

“그, 그걸 왜 저한테……?”

“음? 그럼 협회장님 전속한테 부탁하지, 누구한테 하겠나.”

“……?”

아.

이마를 턱 짚었다.

소문이 돌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설마 진짜로 믿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아, 아니 잠깐.

‘그래서 이수용이랑 서민철 태도가 고분고분했던 건가.’

정말로 내가 협회장 라인인 줄 알고?

아니 무슨 일개 청소부를 협회장이랑 엮는 거야. 상상력이 풍부하다 못해 망상을 펼치고 있네.

깊게 한숨을 내뱉으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어쩌다 그런 소문이 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협회장님이랑 아무 관련도 없습니다.”

“……뭐?!”

그의 엉덩이가 펄쩍 뛴다.

“저, 정말인가? 정말 아무 관련이 없다고…?”

이두식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실망하신 모양이군요.”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좀 놀랐네. 그래……. 그렇다면 더 이상 부탁할 수가 없겠군.”

이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바뀌었다.

“혹시 지금 한 얘기, 나 외에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나?”

“아뇨. 지금 처음 얘기한 겁니다. 해명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 내버려둬.”

이두식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다른 놈이 알게 되면 골치 아파질 것 같으니.”

이후, 이두식은 혼자 생각할 게 있는지 곧바로 나를 내보냈다.

***

통제팀, 작전 회의실.

“그렇게 해서 다음 작전도 김준우 팀장에게 맡기려고 하는데, 이의 있으신 분 있습니까?”

편창현 팀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적이 흘렀다.

“없습니다.”

모두를 대신해 대답한 사람은 작전 5팀장이었다.

이전처럼 불만을 드러내는 이는 없었다.

불만은커녕 다들 안도하는 중이었다.

토벌 중 내분. 미국 지부 비리. 국제 협회와의 충돌.

게다가 확실하진 않지만, 이번 사건 자체가 한유빈에게 보복하기 위해 계획된 일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만약 이번 작전에 멋모르고 꼈다면, 책임을 모조리 떠맡을 뻔했다는 사실에 오싹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럼 이번 주 회의는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아무도 딴죽을 거는 이가 없으니 회의 또한 금방 끝나버렸다.

팀장들은 하나 같이 죽을상을 한 채로 회의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모두가 빠져나간 빈 회의실.

“에휴…….”

편 팀장의 한숨 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회의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황동휘 대리가 물었다.

“또 왜 그러십니까. 일도 잘 마무리됐는데.”

“앞으로가 걱정이다. 앞으로가.”

황동휘 대리는 그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다.

“무슨 일 있습니까?”

“듣자 하니 이번 일 때문에 이사회가 발칵 뒤집혔단다. 덕분에 김준우 팀장은 이사회에 단단히 찍힌 모양이고.”

“에이, 난 또 뭐라고… 일하다 보면 누구랑 척 지는 게 하루 이틀입니까? 김 팀장 문제는 김 팀장이 알아서 해결하겠죠.”

“야, 이 생각 없는 놈아. 김준우가 찍혔는데 우리라고 무사하겠냐? 아니, 우리뿐만이겠어. 작전 2팀에 지원팀에, 재수 없으면 그놈들 싹 다 줄줄이 엮일 수도 있어.”

황동휘 대리는 그제야 웃음기를 지웠다.

“아, 아하하…….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 팀장이잖습니까. 협회장 끈을 쥐고 있는데 설마 뭔 일이야 나겠습니까?”

“그래…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편창현이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진짜로 끈을 쥐고 있다면 말이지…….”

“……예?”

“하아. 이거 어디 가서 절대 얘기하지 마라.”

편창현은 주변을 살피곤 목소리를 최대한 죽인 채 말을 이었다.

“이번 채용 심사 때, 고은영 이사랑 송철식 이사와 이야기를 좀 나눈 적이 있는데……. 김준우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대.”

“…….”

잠깐의 침묵.

황동휘 대리는 뒤늦게 그 말을 이해하곤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에이, 난 또 뭐라고. 그냥 그 두 분이 모르고 있는 거겠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고은영이랑 송철식이다. 이두식 다음으로 협회에서 힘 좀 쓴다는 사람들인데 이름도 못 들어본 게 말이 돼? 김준우가 그 정도 위치면 임원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졌을 텐데?”

“직속이겠죠. 협회장님과 직접적인 친분이 있다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렇다기엔 인사 기록에 협회장님이랑 접점이 있을 만한 게 아무것도 없어. 청소팀에 들어오기 전까지 헌터로 활동한 기록도 없고.”

끝내 황동휘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편창현은 잠시 망설이던 끝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건 그냥 내 생각인데. 김준우, 그 사람…….”

그 순간 편 팀장은 헉, 소리와 함께 숨이 거꾸로 넘어갔다.

대체 언제 들어온 건지, 바로 앞에 이수용 팀장이 서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수용은 오히려 그의 반응이 의아한 듯했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아,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하…….”

편창현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그, 왜…….”

“파일을 두고 가서요.”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탁자에 올려진 파일을 챙겨선 별말 없이 회의실을 나섰다.

‘시발, 설마 들은 건 아니겠지…….’

편창현의 얼굴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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