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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본부, 본부장실.
“…….”
며칠간 지부장들을 만나느라 자리를 비웠던 서민철 본부장은 그간 밀린 결재 서류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며칠 전, 이사회에 올라온 안건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게다가 며칠간의 전국 투어 뺨치는 출장.
거기에 한술 더 떠선 복귀하자마자 청소팀이 미국 지부 비리를 터트렸다는, 웬 말 같지도 않은 보고를 들어야 했다.
심지어는 다음 분기에 외부 감사까지 잡혔단다.
당장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만 놓고 보면 서민철의 머리카락이 남아나지 않을 터였다.
그럼에도 서민철은 입가에 미묘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입을 열었다.
“김준우가 협회장 라인이 아니다?”
“예.”
앞에 선 이수용 팀장이 즉답했다.
그는 서민철이 복귀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본부장실을 찾았다.
서민철은 또 무슨 일을 저지른 건가 싶었지만, 그가 전해준 이야기는 너무나도 뜻밖의 소식이었다.
“너 그 말 책임질 수 있냐?”
서민철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수용이 가져온 서류를 책상 위에 턱, 올려놓았다.
“뭐야 이게.”
“인사기록표, 등본, 가족관계증명서, 졸업증명서, 기타 등등. 혹시 몰라서 길드 정보상한테 부탁을 좀 했습니다.”
서민철이 눈을 위로 치켜떴다.
생각 이상으로 이수용이 내민 자료는 확실했다.
무엇보다 길드 정보상을 통해 얻은 자료인 만큼 상당한 돈을 들였을 테지. 물론 불법에 가까운 방법이지만, 내용만큼은 확실할 거다.
“보시면 알겠지만, 너무 깨끗합니다. 출신, 학력, 가족 관계. 특별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협회장님이랑 접점이 있으려야 있을 수가 없습니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수용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건 심증이지만, 확실히 이상하긴 합니다. 김준우, 능력이 뛰어난 놈이라는 건 인정하는데, 협회장님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거라고 하기엔 협회장님이 너무 조용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그랬다.
비밀리에 진행한다고 해도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다. 상대는 무려 협회를 좌지우지하는 협회장이 아닌가.
이야기를 듣던 서민철이 등을 뒤로 푹 기댔다.
그간 대체 무슨 헛짓거리를 해왔던 걸까.
오해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일개 청소부에게 이렇게까지 놀아날 줄이야.
허무함과 자괴감이 스멀스멀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서민철은 이내 조금 생뚱맞은 이야기를 꺼냈다.
“한 달 전쯤에, 총회에서 무슨 얘기가 나왔는지 아냐?”
“네?”
“한국 협회, 국제 협회에 매각하는 게 어떻겠냐더라.”
“…….”
이수용의 뇌가 순간 멈췄다.
그리곤 뒤늦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매, 매각이요?! 국제협회랑 인수합병 된다는 말입니까?”
“뭐, 독립 협회 중에선 우리가 제일 크기도 하고, 또 헌터 수준도 좋으니까 해볼 만하지 않겠냐더라. 아무튼, 그거 때문에 좀 바빴어. 전국 임원들 만나서 동의서 받아내느라.”
“이거…… 정말 성사되면 진짜 엄청난 거 아닙니까?”
“그렇지. 임원들은 어차피 퇴직 앞둔 놈들이 대부분인데, 한몫 두둑이 챙겨서 나갈 수도 있고. 뭐, 운 좋으면 국제 협회 소속으로 남을 수도 있고.”
국제 협회와 인수합병이라니. 이건 헌터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없을 좋은 기회였다. 손 안 대고 국제 헌터가 되는 셈이니까.
그건 비단 헌터뿐만 아니라, 서민철을 포함한 임원들 또한 마찬가지일 거다.
그럼에도 서민철의 표정은 심란했다.
“문제는 협회장, 이 꼰대 새끼가 이두식 이사한테 전권을 넘기고 잠수를 탔다는 거야. 결국, 최종 사인은 이두식이 해야 한다는 소린데…….”
“쯧, 해줄 리가 없죠. 그 인간이.”
안 봐도 뻔하다.
본부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놈인데, 협회가 다른 놈 손에 넘어가는 걸 원할 리가 없지.
“그래서 이두식은 일단 재끼고 국제 협회랑 딜을 하고 있었어. 국제 협회랑 협의해놓으면 이두식 이사를 압박할 수 있을 테니까. 뭐, 듣자 하니 최근까지 잘 진행되고 있던 모양이야. 김준우, 그 새끼가 미국 지부를 건드리기 전까지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이수용의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국제 협회는 이번 일 터지고 연락조차 잘 안 되는 모양이더군. 덕분에 이사들 뿔이 단단히 났어. 어떻게 온 기회인데, 청소부 한 명 때문에 전부 나가리 되게 생겼으니.”
이사회의 분노는 자연스레 서민철에게로 향했다.
본부 소속 직원을 관리하지 못한 건 결국 서민철의 책임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만약 이 건이 엎어지게 되면 서민철의 미래는 딱 두 가지였다.
이름뿐인 본부장으로 남아, 본부의 총알받이가 되거나.
아니면 울릉도 지부로 날아가거나.
-그 청소부 새끼 어떻게 처리 못 하면 진짜로 그렇게 될지도 몰라.
어젯밤, 송철식 이사는 현 상황을 전해주며 그렇게 못을 박았다.
서민철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이수용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협회장님도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으면 진행을 했겠냐?”
“그…… 제가 잘 몰라서 그런데, 협회장님 몰래 협회를 매각하는 게 가능한 겁니까?”
“가능해. 전권을 가진 이두식이 최종 결의에 사인만 하면. 뭐, 그 전에 퇴출당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럼 꼭 이두식 이사가 아니라도, 협회장님이 다시 복귀하면 언제든 엎어질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참 나, 너 그 인간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
서민철의 물음에 이수용의 대답이 뚝 멈췄다.
그리곤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 나뿐만 아니라 임원들도 몰라. 이번에 출장 갔다 오면서 슬쩍 물어봤는데, 진짜 아는 놈이 한 명도 없어. 3년 동안 속세와 연이란 연은 모조리 끊은 인간이 이제 와서 왜 복귀를 하겠냐.”
“에이 설마 한 명도 모르려고요. 심복이라도 몰래 심어놨겠죠.”
“그래,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 그래서 더욱 김준우가 협회장 라인이라고 확신한 거고. 시기도 그렇고, 이래저래 정황이 맞아떨어졌으니까.”
서민철이 책상에 두 팔을 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젠 아니라는 걸 알았지.”
그의 입가에서 미소가 번졌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칼이 들어왔다.
자, 그럼 이 칼을 이제 어떻게 써야 할까.
서민철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어설프게 휘둘렀다간 도리어 베인다.
확실하게 그 새끼의 맥을 끊을 방법.
“……수용아.”
생각을 마친 서민철이 지그시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네?”
“뭐, 건덕지 잡을 거 없냐?”
“김준우요? 글쎄요. 워낙 철두철미한 놈이라. 무엇보다 최근 실적도 너무 좋아서 건드릴 게 딱히…….”
“아니, 그 새끼 말고.”
서민철의 눈이 이수용을 향했다.
“그 주변 말이야.”
“뭐…….”
이수용은 머리를 긁적이길 한 차례.
“없겠습니까?”
씨익, 미소를 지었다.
서민철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어 송철식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짧은 신호음.
「뭐야.」
곧이어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전화 너머에서 들려왔다.
“이사님. 혹시 다음 분기에 잡혀 있던 감사, 조금 앞당겨주실 수 있겠습니까.”
「왜 갑자기.」
“방법이 생긴 것 같습니다.”
정적이 이어졌다.
그것도 잠시, 송철식 이사는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확실한 거냐.」
“예. 다만, 이쪽을 처리한다고 해도 이두식 이사가 문제입니다. 요즘 자꾸 김준우를 감싸고도는 게 영 불안합니다.”
「아, 그건 걱정 마. 어차피 그 인간 지금 하루살이 목숨이라 인수합병 결의 전까진 꼼짝도 못 해. 뭐, 이후로도 무사할지는 모르겠군. 우리 나름 준비하고 있는 것도 있으니.」
전화기 너머로 끌끌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서민철은 웃을 수 없었다.
지금 송철식은, 협회장의 전권을 가진 이두식 이사의 퇴출을 예고한 거나 다름없었으니.
‘젠장, 생각보다 일이 너무 커지는데.’
서민철은 침을 꿀꺽 삼켰다.
「민철아. 나뿐만 아니라 이사회 통째로 너만 믿고 있다. 알지?」
“……그럼요.”
「그래. 밀어줄 수 있는 건 다 해줄 테니까, 어디 한 번 해봐. 이번 일만 잘 끝나면 이사회 의자 하나 비워 놓을 테니.」
서민철은 불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전화를 끊었다.
***
꿀맛 같은 휴가가 끝나고, 청소팀이 다시 업무에 투입된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그린 등급, 건물형 던전.
나를 포함한 청소 3팀은 여느 때와 같이 청소 직업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아, 이거 좀 늦어질 것 같은데?”
해체 작업 중이던 한상혁이 허리를 펴며 말했다.
보스 방에 약품을 뿌리고 있던 문소연도 바로 맞장구쳤다.
“그러게요. 건물형 던전이라서 작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면적도 넓고…….”
“우리 다음 작업 어디지?”
“삼성동에 네이비 동굴형 던전이에요.”
“엥? 삼성동이면 지금 가도 늦잖아? 김 팀장! 어떻게 할 거야! 이대로면 작업 밀려!”
“……기다려봐.”
해체한 몬스터 조각을 정리하고 있던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하여간 말하는 말본새하고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지만 잠시 망설여졌다.
그런 일도 있고 했는데 또 너무 굴리는 게 아닌가, 약간 신경이 쓰였다.
물론 그 걱정도 잠시뿐이었다.
「네, 팀장님」
“한유빈 씨. 지금 저희 쪽 작업이 지체되고 있어서 그런데, 혹시 삼성동에…….”
「작업이요?」
“네. 가능하시겠습니까?”
「알겠어요. 대충 마무리하고 금방 갈게요.」
“…….”
뭐지?
「혹시 더 시킬 거 있어요?」
“……아뇨.”
「그럼 먼저 끊을게요. 이따 끝나면 지원이나 와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는 다시 한번 핸드폰을 확인했다.
“번호는 맞는데…….”
왜 이렇게 고분고분해졌지?
미국 다녀오더니 머리에 구멍이라도 났나?
어리둥절하게 꺼진 핸드폰을 보고 있자, 한상혁이 입을 열었다.
“신경 쓰지 마. 쟤 휴가 갔다 온 후로 좀 이상해졌어. 툭하면 네 얘기만 한다니까? 돌아버리겠다니까 진짜.”
“……내 얘기를 왜 해.”
“나야 모르지! 어제도 휴가 잘 갔다 왔다고 전화를 할까, 문자를 할까, 혼자 존나 구시렁대고! 뭔 선물은 또 그렇게 사 왔는지. 내 건 하나도 없으면서.”
결과적으로 나한텐 선물은커녕 전화도 문자도 안 왔다.
“……유빈 언니랑 서열 정리를 할 필요가 있겠네요.”
쟨 또 왜 난데없이 맞짱 예고를 하는 건데.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일을 그만두어야지 원…….’
일이 고되긴 한 모양인지, 멀쩡했던 놈들이 점점 맛탱이가 가고 있다.
고개를 가로젓길 한 차례, 신경 끄고 작업이나 하려던 그때였다.
이아영에게서 문자가 날아들었다.
「긴급뉴스! 최근에 이사회에서 국제 협회랑 인수합병 준비 중이었다는 거 알아요? 저도 방금 얼핏 들은 건데, 이번 일로 차질이 생겨서 이사회에서 서민철 본부장한테 어떻게든 해결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는 모양이에요.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요!」
‘인수합병?’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튀는 기분이었다.
그래, 딱 이맘때다.
영리 목적의 기업이 아니기에, 돈벌이가 아쉬웠던 이사회가 협회장이 잠수를 탄 틈에 협회를 홀랑 넘겨버리려고 했던 게.
-이사회에서 안건이 하나 나왔는데, 그게 국제 협회랑 관련이 있어.
‘추진하고 있는 안건이란 게 이거였군.’
나는 쓰게 웃었다.
회귀 전, 당시 전권을 가지고 있던 이두식 이사가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고, 결국 인수는 결렬.
그때는 나 또한 인수합병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손 안 대고 국제 헌터가 될 수 있다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래서 그걸 독단으로 막은 이두식이 좋게 보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고.
결국, 완전히 눈 밖에 난 이두식은 몇 년 후에 추진한 본부 개편에서 던전 매매 비리 건을 뒤집어쓰고 이사회에 퇴출당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민철이 올라갔지.
똑같이 흘러가는군.
이두식 이사의 수명이 그때보다 훨씬 빨리 닳았다는 것만 빼면.
‘이래서 협회장을 복귀시켜달라고 한 모양이구만.’
이대로라면 자기 선에서 매각을 막을 수 없을 테니, 협회장이 직접 나서줬으면 하는 거겠지.
뭐, 그렇다면 이두식이 더는 나를 감싸고 돌 수 없다는 말도 썩 틀린 건 아니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인수합병 결의서를 구경해보기도 전에 사정없이 물어뜯길 테니.
물론 지금 단계에서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없다. 전과 달리 난 일개 청소부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윗분들 일은 윗분들이 알아서 하도록 놔두는 게 상책이다.
그렇게 작업을 마무리하고, 던전을 나왔을 때였다.
“청소 3팀에 김준우 팀장 맞습니까?”
기다렸다는 듯,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말끔한 정장 차림, 무표정한 얼굴.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 인상이었다.
“예…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최준혁 감사팀장입니다.”
미간이 확 좁혀졌다.
감사?
분명 다음 분기라고 했는데?
“일정이 좀 당겨졌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말입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전혀 답을 주지 못하는 대답.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은 그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제야 이놈이 누군지 떠올랐다.
“아무튼,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
불길하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