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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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연락도 안 받고 어디 있었어요! 제가 얼마나 찾았는데!”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저 멀리서 나를 발견한 이아영이 후다닥 달려왔다.
“감사팀장이랑 있었습니다. 연락받을 상황도 아니었고요.”
“아 씨… 결국 당신한테도 갔네요. 무슨 얘기 했어요? 설마 책임지겠다고 한 건 아니죠?”
“걱정 마십쇼. 이래 봬도 꽤 이기적인 놈이라. 다른 팀 상황은 어떻습니까?”
이아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지 않아요. 아니… 최악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낫겠네요. 그나마 다행인 건 잘릴 정도는 아니라는 거?”
“듣던 중 나쁜 소식이군요. 잘릴 정도가 아니라는 건, 자르지 않는 선에서 두고두고 괴롭히겠다는 뜻이니까.”
이아영의 미간이 확 좁혀졌다.
“아마 이번이 끝이 아닐 겁니다. 틈만 나면 들이닥쳐서 피를 말리겠죠.”
“대체 왜……. 뭣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뻔하잖습니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나 때문에 동료가 괴로워하는 걸 견디지 못하고 제 발로 나가길 바라는 거죠.”
“……방법이 없는 건가요.”
“제가 나가면 됩니다.”
“아, 진짜!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와요?!”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는 이아영.
아니, 방법이 없냐고 하길래 알려준 건데 왜 성질인가.
“그냥 서로 원만하게 끝낼 방법이요!”
“없습니다. 최소한 제 선에서는”
이아영이 머리를 헝클었다.
“저나 민주 씨는 그나마 괜찮아요. 솔직히 여기 나가서 길드로 가도 그만이고, 길드가 아니어도 받아주는데 많아요. 그런데…….”
그녀의 목소리가 콱 잠겼다.
“청소팀은 협회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하잖아요.”
기어이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 성격에 차라리 해고된다면 중지를 바짝 치켜들고 웃으며 걸어 나갈 거다.
하지만 동료들에게 문제가 생긴 이상, 이아영은 그럴 수 없다. 더 소극적이게 되고, 더 약해지고, 더 위축될 것이다.
지금처럼.
‘꼴값은 유전인가?’
가만히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처럼 당사자의 주변을 건드리는 건, 내가 전생에서 수도 없이 쓴 방법이다.
단순히 당사자를 내치는 것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으니까. 본보기로도 좋고, 주변에 경각심을 심어주기에도 좋거든.
그런데.
‘막상 내가 당하니까 기분이 참… 뭣 같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들이 와 있었지만, 일단은 전부 무시하고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이사님. 김준우입니다.”
「왜 이렇게 연락을 안 받나! 그보다 아무래도 서민철 귀에 들어간 모양이야! 지금 본부가 난리도 아니라고! 일단은 내가 어떻게든 손을 써볼 테니까…….」
“아뇨. 내버려두셔도 됩니다. 더 이상 이사님이 개입하면 인수결의서 받아보시기도 전에 날아가실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그냥 이대로 당하고 있겠다고?」
“이사님.”
나는 사뭇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칼을 쥐여 드리면, 휘두르실 수 있겠습니까?”
「…….」
핸드폰 너머로 침묵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당연하다마다.」
확신에 찬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곧바로 이아영을 바라보자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간 건지 어렴풋이 눈치챈 듯, 어느샌가 눈에 생기가 돌아와 있었다.
그 모습에 피식 미소가 나왔다.
“이아영 씨. 혹시 지금부터 시간 좀 되십니까?”
“……네, 네? 그건 왜요?”
“어디 좀 같이 가줬으면 해서.”
눈썹이 물결친다.
마치 ‘지금 이 상황에?’라고 묻는 표정이다.
“감사팀도 물러갔고… 시간이야 있긴 한데요.”
“그럼 일단 옷부터 좀 차려입으시죠.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렇게 말하며 먼저 자리를 떴다.
***
서울에서 차를 타고 두 시간 반.
강원도 산길의 하늘은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굳이 이아영을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는 딱 하나였다.
내가 아직 차가 없었으니까.
“아, 진짜 불편해 죽겠네!”
짜증에 찬 목소리가 운전석에서 들려왔다.
이아영은 원피스가 운전에 영 거슬리는지 자꾸만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러게 왜 그런 옷을 입었습니까.”
“차려입으라면서요! 이런 첩첩산중으로 올 줄 알았으면 안 입었지!”
운전하느라 예민해진 모양인지 버럭 소리친다.
“그런데 대체 어딜 가는 거예요? 말이라도 해주면 안 되나?”
“모르는 게 낫습니다. 슬슬 도착했군요. 여기서부턴 걸어가죠.”
차가 멈추자 나는 준비해둔 쇼핑백을 챙겼다. 그러자 이아영이 슬쩍 물었다.
“그건?”
“라면입니다.”
“……? 라면은 왜요?”
“빈손으로 가긴 좀 그래서.”
“아니… 어디 가는지는 모르겠는데, 선물로 라면은 좀 그렇지 않나요?”
대답 대신 그저 미소를 지었다.
“따라나 오시죠. 발 조심하시고.”
도로에서 벗어나 길이 있는 듯 없는 듯한 산속을 걷기 시작했다.
30분쯤 지났을까, 이윽고 완전히 어둠이 찾아오기 직전.
저 멀리 불이 켜진 오두막이 나타났다.
그 앞에 도착한 우리는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묵묵부답.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려던 그때.
쾅―!
“꺄, 꺄아악!!”
문이 부서져라 열리며 웬 노인이 달려들었다. 그리곤 다짜고짜 내 목에 무기부터 가져다 댔다.
“……너 뭐야.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안녕하십니까.”
담담하게 인사를 건넸지만, 노인의 눈빛은 실로 살벌했다.
그 모습에 다른 것보다 반가움이 앞섰다.
‘노인네 여전하네.’
“처음 뵙겠습니다. 서울 본부 소속 김준우 팀장입니다. 협회장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혀, 협…!”
이아영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곤 나와 노인을 한 번씩 번갈아 봤다.
박인범 협회장.
50년 전, 던전이 처음으로 출현하기 시작하던 그 시절.
협회고 길드고 아무것도 없던 그때, 5명의 동료와 함께 전설을 써 내려간 장본인.
이후 혈혈단신으로 지금의 협회를 만든 자.
이능차원관리 협회의 우두머리.
이 머리 벗겨진 노인네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르겠는데, 죽고 싶지 않으면 썩 돌아가. 어디 가서 입도 뻥끗하지 말고.”
박인범 협회장은 내 반응이 재미가 없는지 김이 팍 샌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나는 거기서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라면 사 왔습니다.”
“……뭐?”
“매운맛입니다.”
“…….”
이아영은 얼이 나간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대체 뭔 개소리냐는 듯한 표정.
“……오래 걸리냐?”
“30분이면 됩니다.”
“들어와.”
오두막의 문이 활짝 열렸다.
협회장은 우리를 거실로 안내한 뒤, 라면을 받아들곤 주방으로 향했다.
“제가 끓이겠습니다.”
“됐어. 남이 끓여주는 거 먹을 바엔 부숴 먹고 말지.”
예의상 해본 말이었다.
전생에서도 라면은 꼭 직접 끓여 먹곤 했으니까.
그렇게 협회장이 주방으로 들어서자, 바짝 굳어 있던 이아영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다, 당신 뭐예요?! 협회장 라인 아니라면서! 여긴 대체 어떻게 알았어요!”
“그리 오두방정 떨 일입니까.”
“당연하죠! 이사회에서도 협회장님 위치를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요! 심지어 이사인 아빠도 모르는데!”
이아영이 목소리를 낮춰 따졌다.
이걸 어떻게 대답해줘야 하나 싶던 그때.
탁―.
라면을 끓여온 협회장이 식탁 위에 냄비를 올렸다.
그리곤 앓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털썩 앉았다.
“들어.”
“잘 먹겠습니다.”
“……자, 잘 먹겠습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식사 시간.
다들 아무 말 없이 면을 호록거리고 있던 그때, 협회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50년 전에 말이야. 동료들이랑 목숨 걸고 토벌 다닐 땐 한 달 내내 이것만 먹은 것 같아. 여기 온 이후론 사 먹으려면 읍내까지 가야 하는데… 다리가 이러니.”
50년 전의 어느 던전, 대부분의 동료를 잃었던 토벌에서 왼쪽 다리를 크게 다쳤다고 했다.
걷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그런데 대체 어떻게 알았냐?”
협회장이 나를 흘기며 물었다.
“이두식 이사님이 귀띔해주셨습니다. 라면을 좋아하신다고…….”
“아니. 내가 여기 있는 거.”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노인네의 눈빛이라곤 믿기지 않는 카리스마였다.
“말씀드릴 순 있는데… 믿지 않으실 겁니다.”
“너 말고 또 아는 놈은.”
“없습니다.”
이내 그는 코로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너 뭐 하는 놈이야.”
“서울 본부 소속 청소 3팀장, 김준우입니다.”
“청소…?”
“예.”
“허, 시발!”
진심으로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하긴, 청소부한테 위치를 들키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테니.
“옆에는?”
“지, 지원실에 이아영 부실장입니다.”
“이아영이면… 이두식이 딸내미?”
“네, 네.”
이아영이 바짝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서 나한테 할 말이 뭐야.”
협회장은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나와 눈은 맞췄다.
“이사회에서 국제 협회와 인수합병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근데.”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은 없었다.
알게 뭐냐는 듯한 말투였다.
“막아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왜?”
“협회장님이 세운 협회 아닙니까. 제삼자 손에 넘어가는 건…….”
“흥. 날 찾아온 놈이라 뭐라도 좀 아는 놈인 줄 알았는데.”
협회장이 코웃음을 쳤다.
“난 이제 협회가 똥통으로 가든 말든 상관없어.”
“…….”
“50년 전에 말이다. 내가 한창 활동할 때는, 작전팀이고 뭐고 그딴 건 없었어. 체계? 정보? 그딴 게 어디 있어. 일단 던전 들어가서 살면 다행이고 죽으면 끝이었지.”
전생에서 협회장과 술을 마실 때마다 들었던 이야기다.
횟수로 따지면 이번이 121번째.
이야기의 결말은 결국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토벌할 수 있도록 기반을 잡은 게 지금의 협회가 됐다.’ 이었다.
“그렇게 고생 고생을 해서 만들어 놨더니, 이젠 배들이 불렀지. 자리싸움에 돈 싸움에 씨벌. 기도 안 차.”
협회장이 쓰게 웃었다.
“아무튼, 난 이제 니들끼리 뭔 짓을 하든 관심 없으니까, 할 얘기 끝났으면 이제 가봐.”
앉은 채로 손사래를 쳤다.
물론 순순히 따를 내가 아니다.
“그럼 협회장 자리를 넘기시죠?”
“……?”
그 한 마디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지금 뭐라 그랬냐?”
“관심도 없으시다면서 협회장 자리는 왜 고수하고 계신 겁니까. 그냥 적절한 사람한테 넘기고 노후 편하게 보내시면 될 텐데. 자리 욕심은 나고, 일은 하기 싫고. 뭐 그런 겁니까?”
“주, 준우 씨……? 혹시 돌았어요…?”
이아영이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딱히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
“니가 미쳤구나? 청소부라고 앞뒤 가릴 것 없다, 이거야?”
“미친 건 제가 아니라 협회겠죠. 협회의 1순위가 뭡니까. 시민의 안전 그리고 토벌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협회를 보십시오. 시민을 위해 묵묵히 일하고 있는 놈들은 눈엣가시가 되고, 수단 방법 없이 줄타기 하고 있는 놈들은 실세가 되고 있습니다. 이 꼴을 보시고도 제가 미쳤다는 말이 나오십니까?”
살다 살다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이야.
그래도 뭐… 협회장을 설득하려면 마음에 없는 말이라도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협회장님이 정녕 바라는 게 이런 거라면, 알겠습니다. 더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다시 찾아오지도 않겠습니다. 그런데 아니잖습니까. 굳이 그 무거운 왕관을 아직까지 쓰고 계신 이유가 뭡니까. 나중에라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 아닙니까?”
“…….”
“그런데 이제 와서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그만하시죠. 정말 협회에 관심이 없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복귀하셔서 협회장 퇴임 절차 진행하시던가요.”
준비했던 말을 모두 쏟아내자, 잠자코 듣고 있던 협회장은 이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에 서렸던 독기가 빠져나갔다.
남은 건 그저 노쇠하고 무기력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난 이제 늙고 지쳤어.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인데, 이사회는 호시탐탐 내 자리를 넘보고 있고. 거기에 껴서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믿을 만한 놈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협회장의 말에 나는 미소를 숨겼다.
한평생 던전에서 살아온 그는, 조직과는 맞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 때문에 대부분 결정에 있어 주변의 입김을 따르려 했고, 그렇기에 항상 믿을 만한 놈을 옆에 두고 조언을 받아왔다.
회귀 전에는 그게 나였고.
덕분에 내 입맛대로 협회를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었지만… 그것도 다 옛날얘기지.
“믿을 만한 분이 왜 없습니까.”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 뭐, 너라고 하려고? 깡은 인정하는데…….”
“저 말고요, 이두식 이사 말입니다.”
말을 하기 무섭게 이아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오히려 협회장은 담담한 반응이었다.
“이두식 이사 편에 서신다면 협회는 다시 협회장님 손에 들어올 겁니다. 애초에 협회장님도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서 전권을 넘기신 거 아닙니까?”
“…아직도 지가 고등학생인 줄 아는 철없는 놈이야. 이사회가 가만히 두지 않을 거란 말이지.”
“그건 걱정 마십시오. 손만 보태주시면 이두식 이사가 알아서 해줄 테니.”
이두식이 힘을 갖게 되면 바로 추진할 안건이 있지 않은가.
‘본부 개혁…….’
조금만 밀어준다면 협회장이 원하는 걸 모두 이뤄줄 것이다.
“박인범 협회장님. 이두식 이사의 손을 잡으십시오. 그게 협회를 제자리로 돌리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과거, 이두식 이사를 쳐내라고 입김을 넣었던 내가, 이젠 그에게 손을 건네라고 하고 있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