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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54화 (54/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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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 사서함으로…….]

핸드폰에선 벌써 몇 번째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

한유빈은 심각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어제 오후, 갑자기 감사팀이 들이닥치고부터 김준우가 연락이 안 된다.

평소에도 업무 외 연락을 하는 인간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먼저 거는 연락을 안 받지는 않았다.

한유빈은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저… 팀장님.”

그때 청소 6팀원, 양재원이 조심스레 불렀다.

청소 6팀이 만들어질 때 통제팀에서 인사이동 한 놈이었다.

“이제 신경 끄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뭘?”

“김 팀장 말입니다. 팀원들을 위해서라도 이제 더 이상 그 사람이랑 엮이지 않는 게…….”

양재원은 눈을 피하며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뭘 말하고 싶은 건지는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한유빈의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감사 때문에?”

“감사뿐만이겠습니까. 앞으론 온갖 것들을 다 걸고넘어질 텐데요.”

“솔직히 모르겠는데. 그게 그렇게 무서워?”

“팀장님. 저희 대부분이 통제팀에 작전팀 출신들입니다. 청소팀 입지가 올라가는 거 보고 넘어온 놈들인데… 이러다간 옛날 청소팀으로 돌아가는 것도 한순간이지 않겠습니까.”

한유빈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저건 그냥 달면 먹고 쓰면 뱉겠다는 말밖엔 안 됐으니.

하지만 한유빈이 더욱 실망한 건, 그런 입장이 비단 양재원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사람 피 말리게 하는 것도 한두 번이죠. 이대론 끝도 없습니다.”

“작전 2팀 얘기 못 들으셨습니까? 김준우랑 제일 가까운 팀이었다는 이유로 아주 개판이 났답니다.”

“솔직히 우리한테까지 번지기 전에 발 빼고 싶습니다.”

양재원을 따라 팀원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다른 팀도 아닌, 본인의 팀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는 사실에 한유빈은 자기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윽고 팀원들을 한 명씩 훑어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청소팀 입지는 너희가 올렸냐?”

“…….”

“남이 차려준 식탁에 숟가락만 올릴 땐 마냥 좋다고 있다가, 이제 와서 식탁 엎어질 것 같으니 내빼자고?”

입을 닫은 팀원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물론 쉽게 물러설 생각은 없어 보였다.

“팀장님.”

다시금 양재원이 입을 열었다.

“이기적이라고 하셔도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던전도 아니고 회사입니다. 저희부터 살고 봐야죠.”

“…….”

“그리고 설령 우리가 끝까지 김 팀장과 간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어떨 거 같습니까.”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꾹 들어갔다.

“알았어. 엮이고 싶지 않으면 그렇게 해. 근데…… 난 아니야.”

애초에 그럴 성격이었으면 미국 지부에서 그리 나오지도 않았을 거다.

“이제 와서 좀 어려워졌다고 등 돌리라고? 자존심이 있지, 그렇게는 못 해.”

“티, 팀장님!”

“걱정 마. 우리 팀에 무슨 일 생기면 내가 다 책임질 거니까. 너희들한테는 불똥 안 튀게 할게.”

청소 6팀원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한 달간 그녀를 봐왔지만, 저렇게까지 단호하게 말한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

출근 후, 다른 것에 신경 쓸 틈도 없이 작업이 몰아쳤다.

한상혁과 문소연은 일부러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대해주는 건지, 아니면 이놈들도 그냥 잘 모르는 건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무엇보다 괜히 이런저런 소리 듣기 싫어서 다른 놈들의 연락도 받지 않고 있으니, 어제 그렇게 폭풍이 몰아쳤음에도 나야 지금 본부 상황이 어떤지 알 턱이 없었다.

그런데 볼일이 있어 본부에 직접 와보니, 생각보다 분위기가 더 심상치 않았다.

“제정신인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 난리가 났는데, 본부에 기어들어 온다고?”

“쯧, 미친놈이랑은 상종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너네 팀도 털렸냐?”

“어. 저번에 작전 지원 한 번 나가줬다고.”

차라리 저렇게 대놓고 씹는 놈들은 그나마 보기가 편하다.

내가 불편한 건, 모른 척해야 할지 아는 척해야 할지 몰라 어설프게 눈치를 살피는 놈들이었다.

작전 2팀원들이 그랬다.

“아… 오, 오셨습니까?”

“그, 그럼 저흰 토벌이 있어서 이만…….”

“아 저도 통제팀에 볼일이 있어서, 하하.”

작전 2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팀원들은 귀신이라도 본 듯 황급히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엮이고 싶진 않은데 도움받은 건 있으니 어정쩡하게 행동하는 모양새였다.

뭐, 이해한다.

사실 저게 당연한 반응이지.

누구 때문에 개판이 됐는데 아직도 붙어먹으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한 놈이다.

“자냐?”

“아… 오셨어요?”

책상에 엎드려 있던 김민주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굉장히 피곤한 표정이었다. 보아하니 어제 잠도 제대로 못 잔 듯했다.

“감사팀은?”

“오전에 왔다가 갔어요.”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화났냐?”

“조금요.”

“나 때문에?”

그녀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나쁜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왜 선생님한테 화를 내요. 선생님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글쎄.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걸.”

텅 비어 버린 사무실을 슥 훑었다.

“그래서 화가 나는 거예요.”

김민주가 쓰게 웃었다.

“선생님이 총대 메고 우리 챙겨줄 때는 본부 실세니 뭐니 하면서 졸졸 따라다니기 바빴으면서, 위에서 압박 들어오자마자 피해 다니는 건 대체…….”

뭐라는 건가.

누가 누굴 챙겨줬다고?

얘도 참 어지간히 하네.

“뭐, 너무 그러지 마라. 그게 당연한 거야. 당장 내가 힘들어 죽겠는데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겠냐.”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좀 더 처신을 잘했으면 이렇게까진 안 됐을 거예요.”

참 나. 나는 실소를 뱉었다.

이 녀석은 다 좋은데, 너무 감성적이라니까.

“헛소리할 시간 있으면 잠이나 더 자. 아니면 이거나 읽어보던가.”

“…이건?”

“내년도까지 출현하는 옐로우 등급 이상 던전 정보랑 작전 기획 요약한 거다. 뭐, 이제 내가 안 도와줘도 알아서 잘하겠지만… 선물이라고 생각해.”

눈을 끔뻑거린다.

그러다가 자리를 박차며 벌떡 일어났다.

“서, 선생님……?”

“그리고 청소 3팀이 다시 편성될 거야. 뭐, 그건 박 과장님이 알아서 해줄 테니까 넌 그렇게만 알고 있어.”

“자, 잠깐만요! 선생님 설마…!”

“이제 본부의 주축이 바뀔 거야.”

나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앞으로 내부적으로 좀 흉흉해질 텐데… 괜히 누구 도와준답시고 끼려고 하지 말고, 네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해.”

“…….”

황망한 표정.

내 말을 들은 건지 만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핸드폰은 폼이에요?!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이아영 부실장이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등장할 때마다 참 시끄러운 사람이다.

“뭡니까?”

“이사회가 소집됐어요!”

“…그걸 왜 저한테 말합니까?”

어깨를 으쓱이자 이아영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협회장 해임 안건이 상정됐대요.”

“……?”

협회장 해임 안건?

‘아… 설마?’

그런 건가.

그렇게 나가겠다는 건가.

협회장을 해임하고 이두식 이사의 임기를 강제로 끝내버리겠다?

아무리 봐도 서민철 아이디어는 아닌데.

뒤에 있는 송철식 이사가 낸 계획이겠네.

의외로 준비성이 철저한 놈이라 이미 투표도 과반을 확보했을 거고…….

“어, 어떻게 하죠? 이대로 협회장님이 해임되면…….”

“뭐, 늦지 않길 바라봐야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시계를 확인했다.

***

급히 소집된 이사회.

세미나실을 가득 채운 임원들과 사외이사는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그곳엔 서민철도 참석해 있었다.

“그래서 이번 이사회에선 협회장 해임 안건과 그에 따른 이두식 이사의 퇴임 안건을 상정하겠습니다.”

장대현 의장이 입을 열었다.

“박인범 협회장은 현재 36개월 이상 직무를 이어가지 않고 있으며, 그 기간 동안 내부적으로 연락을 취할 방법조차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는 읽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따라서 이사회는 박인범 협회장은 앞으로도 직무를 수행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으며, 이에 따라 박인범 협회 해임 찬반 투표를 진행하겠습니다. 앞줄부터 한 분씩 나와서 기표함에 넣어주십시오.”

별다른 이의 제기 없이 시작된 투표.

이두식 이사는 주변 눈치를 슥 살폈다.

아무리 협회장이 오래 자리를 비웠다고 해도, 그를 지지하는 이사들은 분명히 남아 있다. 개중엔 협회 초창기부터 협회장과 함께해온 이들도 있고.

그런 이들이 협회장의 해임에 찬성할 리가 없었다. 애초에 그가 해임된다고 해도, 본인들에겐 아무런 이득도 없을 테니까.

혹시 몰라, 이두식은 해임 안건이 상정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런데, 대부분 연락을 피하거나 겨우 연락이 됐다고 해도 이사회 얘기만 나오면 말을 돌렸다.

그쯤 되니 이두식 이사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송철식, 그 자식이 뭔 짓을 했구먼…….’

회유했든, 협박했든 말이지.

이렇게 된 이상 투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으니까.

협회장이 해임되면 이두식도 더는 이사회에 남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차기 협회장은 아마도 송철식이 될 확률이 높겠지.

‘주축이 바뀌겠군.’

이두식이 쓰게 웃었다.

투표는 10분도 채 안 되어 종료되었다.

그렇게 곧바로 투표 집계가 진행되고 있던 그때였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두식 이사님.”

귀를 의심하는 인사가 들려왔다.

이두식이 고개를 돌려보니 서민철이었다.

“……그래. 자네도 수고 많았네.”

“너무 낙심하지 마십쇼. 이사회에서 나가신다고 해도 협회에는 남아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하… 하하하!”

당돌한 새끼. 벌써부터 내 위로 올라갔다는 건가.

이두식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서민철이, 자네 혹시… 오징어 좋아하나?”

“예?”

“내가 아는 가게 중에 오징어로 유명한 집이 있는데… 내 조만간 예약 잡아 놓겠네.”

서민철의 미간이 좁혀졌다.

뜬금없이 오징어 맛집이라니. 어디 우리가 같이 식사를 할 만한 사이였던가.

갑자기 단상이 부산스러워졌다.

집계가 나온 모양이었다.

“그럼 투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이내 장대현 의장이 마이크를 들었다.

“찬성 32표, 반대…….”

“잠시만.”

그때 이두식 이사가 난데없이 손을 들었다.

“……예?”

“질문이 하나 있는데, 발언해도 되겠습니까.”

장대현 의장은 당황한 듯한 표정이었다.

“예, 예. 하십시오.”

“만약 박인범 협회장이 앞으로 직무를 수행할 의지가 있다는 게 증명되면 어떻게 됩니까?”

세미나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물론 대부분이 비웃음 소리였다.

“뭐, 규정상 그렇게 되면 해임은 불가능하겠지만… 너무 늦지 않았습니까. 이미 투표 집계도 끝났는데.”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연락도 안 되는 사람이 무슨 수로 그걸 증명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괜히 쓸데없는 소리로 시간 끌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나갈 때 되니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건가?”

“클클클.”

여기저기서 야유가 쏟아졌지만, 이두식 이사는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리고 그때.

벌컥―.

굳게 닫혀 있던 세미나실 문이 요란스럽게 열렸다.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세미나실로 들어온 불청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연락이 된 거야?! 대체 누가 부른 거야!!”

“너냐? 이두식, 네가 불렀어?!”

모든 임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세미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점점 과열되어 가던 그때였다.

“조용.”

간담이 서늘해지는 불청객의 목소리가 세미나실에 낮게 깔렸다.

“다들 오래간만이네, 그래.”

3년 넘게 연락이 두절 됐던 박인범 협회장이, 지금 막 협회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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