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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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 앞 사거리.
좁은 골목에 있는 낡은 국밥집은 협회장의 단골 가게였다.
“빌어먹을 또 여기군.”
“음? 여기 와봤었나?”
“……아뇨. 처음입니다.”
여길 와봤냐니.
회귀 전에도 1년 중 300일 정도는 왔었는데 말이지.
이젠 국밥 냄새만 맡아도 올라올 지경이었지만,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게로 들어섰다.
구석 테이블에 앉아 있던 협회장이 손을 흔들었다.
“메뉴는 내가 대충 알아서 시켰다. 불만 없지?”
“언제는 제가 정하게 해주셨습니까?”
이두식 이사가 너스레를 떨었다.
“자네는 여기 처음 와보지? 여기 돼지국밥이 아주 괜찮아.”
“하하… 기대되네요.”
나는 쓰게 웃었다.
우리가 앉자마자 곧바로 밑반찬이 나왔고, 협회장이 젓가락 들 때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특별히 절 부르신 이유라도 있습니까?”
“네겐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 싶어서 말이지.”
협회장 대신 이두식 이사가 대답했다.
“이미 기사로 봐서 알겠지만 송철식 이사부터 해서 서민철, 이수용 등을 포함한 일파가 서로를 물어뜯고 있어.”
“물리기 전에 물겠다는 심보 같더군요.”
“그래. 솔직히 협회장님이 복귀하고 기획본부를 만든다고 해도 이미 등 돌린 임원들을 상대하긴 벅차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스스로 자멸해줄 줄이야.”
이두식 이사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너, 설마 여기까지 예상한 거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단호하게 대답했지만, 전혀 믿지 않는 표정이다. 솔직히 좀 억울하다.
“송철식 이사는 이번 일로 이사회에서 해임됐어. 서민철은 아마 울릉도로 날아갈 것 같고, 이수용은 어떻게 할지 아직 고민 중이야.”
작게 신음을 내뱉었다.
정말로 본부가 뒤집히긴 했군.
“마지막으로 추진하고 있던 인수합병은 백지화됐어.”
“그거야 안 봐도 뻔하죠. 국제 협회에선 아무 얘기 없었습니까?”
“딱히. 뭐, 처음부터 중요하게 생각 안 한 걸 수도 있고.”
이두식 이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에 나는 작게 실소를 뱉었다.
“아무튼, 여러모로 바쁘시겠습니다.”
“말도 마라. 요 며칠 마누라 얼굴도 못 봤어.”
“할 일이 없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하여간, 말하는 것하고는.”
이두식 이사는 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곤 말을 이었다.
“뭐, 네 말도 맞다. 일주일 전만 해도 바람 앞 촛불 신세였는데 일 많다고 징징거릴 건 아니지. 아무튼, 이번에 네게 크게 빚을 졌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받겠습니다.”
이두식이 호탕하게 웃었다.
때맞춰 국밥 세 그릇이 나왔다.
“그래서……. 네가 말한 대로 복귀도 했고 본부개혁도 추진했다.”
각자 양념을 맞추고 있던 그때, 이번엔 박인범 협회장이 입을 열었다.
“이제 내가 앞으로 뭘 하면 되나.”
“하하, 그걸 저한테 물으시는 겁니까?”
“전부 자네가 짠 판이잖나. 자네한테 안 물어보면 누구한테 물어보겠어?”
흠, 옅게 숨을 쉬었다.
“당분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 게 아니라?”
“가끔은 바람에 맡기는 것도 방법이죠. 급하게 나가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자세하게 말해봐.”
협회장은 한 숟갈도 뜨지 않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이번에 기획본부가 생기면서 작전 재정관리를 비롯해서 작전본부의 행정처리를 도맡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것만으로도 이미 작전본부를 견제할 수단이 생긴 겁니다. 거기에 송철식 이사를 비롯한 작전본부에 굵직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사들이 대거 잘려 나갔으니, 작전본부 소속의 모두가 바짝 긴장하고 있겠죠.”
잠시 숨을 골랐다.
이두식 이사까지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욕심을 부리면 다음에는 임원들이 아니라 헌터들과 싸워야 할 겁니다. 물론 지금 본부 소속 헌터들 중에서도 연봉 대비 실력이 뒤떨어지는 놈들이 몇몇 있긴 하지만… 그건 차차 해결할 문제고. 어쨌든 헌터는 협회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지 않습니까. 그들과 척을 지는 건 여러모로 피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니까, 우린 일을 하는 것일 뿐이고 적을 만드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라는 소리지?”
“정확합니다.”
그나저나, 내가 왜 조언해주고 있는 거지.
어차피 나랑 상관도 없는데.
“알았네. 공적인 조언은 거기까지 하고, 이제 사적인 조언을 좀 해보게.”
“……사적인 조언이요?”
“자네가 원하는 걸 말해보라는 소리야.”
“아…….”
국밥을 휘적거리던 끝에 입을 열었다.
“뭐, 딱히 제가 원하는 건 없고… 청소팀 연봉이나 좀 올려주시죠.”
“……하!”
“놀라실 거 없습니다. 원체 저런 놈입니다.”
이두식 이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 확실히 재밌는 놈이긴 해.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복귀할 걸 그랬어.”
협회장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지만…….
“그래서 말인데, 자네… 혹시 본부장 해볼 생각 없나?”
“거절하겠습니다.”
“…….”
듣자마자 단호히 대답한 탓인지 두 남자 모두 순간 표정이 굳었다.
“…어째서? 내 여태 본 놈들 중 본부장 자리에 자네만큼 어울리는 놈이 없는데.”
뭐,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안주머니에서 준비해둔 사직서를 꺼내 내밀었다.
“이런 자리에서 예의가 아닌 줄은 알지만, 찾아뵐 시간이 마땅치 않아서 말입니다.”
“…….”
사직서를 받아든 협회장의 표정이 퍽 진지해졌고, 이두식 이사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진심인가?”
“일전에 말씀드렸잖습니까.”
“혹시 뭐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 건가? 내 적극적으로 반영해줄 수 있네만?”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대체 왜?”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개인적인 목표가 있어서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곤 국밥을 한 숟갈 입에 넣었다.
인수합병도 물 건너간 지금, 국제 협회와는 완전히 척을 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상황에서 협회에 남아 있어봤자 몇 년이 지나도 국제 협회엔 얼씬도 못 하겠지.
다행히 스킬 해금도 적당히 됐겠다, 마지막으로 청소팀 연봉 인상까지 약속받았으니, 이젠 본격적으로 국제 협회에 입성할 준비를 해야겠지.
“그래, 정말 아깝긴 하지만… 뭐,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협회장은 단념한 듯 봉투를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럼 남은 한 달 동안이라도 잘 부탁하네.”
“네, 알겠습…… 예?”
“사표 내면 당장 그만둘 수 있을 줄 알았나? 그거 근로기준법 위반이야.”
협회장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당황하고 있는 틈을 타 악수를 건넸다.
“아무튼, 한 달 임시지만 잘할 거라 믿네. 김준우 작전본부장.”
이런 염병할…….
***
늦은 점심을 먹고 복귀하자, 사무실은 한바탕 난리가 난 뒤였다.
“팀장님, 퇴사한다는 거 진짜예요?!”
“아니죠, 준우 씨? 설마 진짜 퇴사할 거 아니죠?!”
“야! 너 아무리 독고다이라고 해도 말도 안 하고 이러기냐?!”
문소연과 한상혁은 물론이고, 언제 소식을 전해 들은 건지 한유빈까지 와선 득달같이 잔소리를 쏟아냈다.
“설마 우리 때문에 책임지고 사퇴한다, 뭐 그런 거면…….”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마십쇼.”
단호하게 말했지만, 한유빈의 표정은 꽤나 복잡했다.
그러고 있자니, 이번엔 한상혁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홀랑 나가버리면 우린 어떻게 하라고.”
“뭘 어떻게 해. 내가 뭐 보모야?”
“협회 최고 실세가 나가버리면 본부 놈들이 우리를 가만히 두겠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왜.”
“그런 게 있어…….”
씁쓸하게 대답했다.
덕분에 사무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팍 가라앉았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초상이라도 난 줄 알겠네.
“……퇴사일이 정확히 언제예요.”
그때, 한유빈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한 달 뒤입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정리는 하고 나갈 수 있어서.”
“뭐, 빨아먹을 수 있는 건 다 빨아먹고 나가야죠.”
그렇게 말하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강제로 맡았는데 뭐라도 얻는 게 있어야 하잖아.
***
프랑스, 파리.
국제 헌터 협회 산하 기구, ‘퍼펙트 밸런스 코퍼레이션(Perfect Balance Corporation)’
통칭, PB 코퍼레이션.
늦은 밤이었음에도 그곳 회의실에는 불이 환하게 들어와 있었다.
PB 코퍼레이션의 부서별 팀장들이 모두 모인 자리인 만큼, 굉장히 무거운 분위기가 내려앉은 채였다.
커다란 화이트보드 앞에 모인 직원들은 언뜻 보기엔 평범한 회사원들이었지만,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기구이기에 이들의 존재를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국제 협회 사무총장을 제외한다면 각 지부의 최고 책임자 정도였으니.
“그래서…….”
그때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중년 남성― 헌터 밸런스 조정팀의 마르크 팀장이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시간석 회수도 실패, 인수합병도 불발이 났다?”
“그렇습니다.”
화이트보드 앞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던 젊은 여성― 뱅크 아이템 관리팀장, 클로이가 대답했다.
그녀의 공식적인 소속은 미국 지부였지만, 동시에 PB 코퍼레이션 소속이기도 했다.
미국 지부에서 이를 아는 사람은 최소한 그녀의 주변엔 없었다. 전 통제팀장이었던 제이슨을 포함해서.
“그러니까 합동 작전 때 어떻게든 회수했어야지. 대체 왜 실패한 거야?”
“본부팀 중 한 명이 눈치챈 것 같았습니다. 섣불리 움직이다간 들킬 우려가 있었기에, 포기해야 했습니다.”
사무실 전체가 술렁였다.
“눈치를 챘다니, 우리 정체를? 아니면 시간석을 노리고 있다는 걸?”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눈치챈 놈은 누군데.”
“서울 본부 소속의 청소부입니다.”
여기저기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내 지금껏 살면서 들었던 말 중에 제일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군.”
“청소부가 우리 업무를 망쳤다니, 참 나.”
원탁에 앉은 이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때 마르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인수합병은 왜 불발 난 거야. 듣자 하니 거의 합의 직전이라고 했는데? 그리고 인수합병은 한국 협회 쪽에서 먼저 제안한 거라면서.”
“한국 협회장이 복귀하는 바람에 반대 세력이 위로 올라섰다고 하더군.”
비쩍 마른 남성― 국제 토벌권 회수팀의 케인 팀장이 대신 대답했다.
독립협회 인수 및 토벌권 회수 건은 그의 담당이었던 까닭이었다.
“…이 타이밍에 갑자기?”
“보고에 따르면 그 세력을 부추긴 것도 그 청소부라고 하더군.”
표정들이 모두 진지해졌다.
마냥 비웃어댈 만한 사항이 아니라는 걸 그제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PB 코퍼레이션.
사무총장이 전 세계의 모든 협회와 토벌권 그리고 모든 헌터들을 국제 협회의 통제하에 두기 위해 만들어진 비공식 산하 기구.
이들의 주 업무는 부서별로 국제 협회에 위협이 될 만한 요소 제거, 뱅크 아이템 회수, 독립협회 흡수 등으로 다양했다.
지금 이들이 논의하는 안건은 단연 뱅크 아이템 회수 건이었다.
그 시작은 한국과의 합동 작전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본래 임무는 시간석 회수였지만, 결과적으론 김준우의 견제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
협회 간 양도 및 거래가 불가능한 아이템이었기에 이미 한국 협회로 흘러 들어간 시간석을 다시 가져오기 위해선, 한국 협회를 통째로 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한국 협회에서 먼저 인수합병 제의가 왔을 땐 기회가 왔구나 싶었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며 조심스레 합병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국 협회 측에서 먼저 거절 연락이 온 건 그들로선 매우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건으로 한국 협회의 세력이 개편되면서 그 청소부가 작전본부장에 임명됐다고 합니다.”
“청소부가 작전본부장으로 올라갔다라… 그자에 대한 정보는?”
“마땅히 알려진 게 없습니다. 학력, 출신, 경력 모두 평범합니다. 다만 한 가지 특이 사항이 있습니다.”
“특이 사항?”
“네. 그 청소부,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전투력을 갖고 있습니다. 웬만한 헌터보다 압도적인 실력입니다. 직접 목격한 바로는 결코 한두 번 경험해본 실력이 아닙니다.”
마르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웬만한 헌터보다 강한 청소부?
무슨 말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헌터 랭크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나?”
“확인해본 바론 없습니다.”
“그러니까… 등록도 안 된 이능력자가 청소부로 활동하고 있다?”
“네.”
“이레귤러란 소리네?”
마르크의 얼굴에 살기가 드리웠다.
국제 협회에 위협이 될 만한 인물 및 이레귤러를 처리하는 게 바로 그의 업무였으니.
그리고 그때.
팔짱을 낀 채 잠자코 브리핑을 듣던 중년 여성이 흠, 하고 기척을 냈다.
PB 코퍼레이션의 대표이사, 에마였다.
그녀는 품격이 느껴지는 우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레귤러가 시간석까지 꿀꺽했다……. 이거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가요.”
클로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애써 긴장을 지우곤 입을 열었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해보려 합니다. 어차피 합법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루트가 막힌 이상,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선은 넘었으니까요.”
클로이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일단 다시 한번 접촉해보겠습니다.”
“계획은 있나요.”
“예.”
클로이는 잠시 말을 끊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차원석을 쓸 생각입니다.”
차원석이라는 말에 에마 대표의 눈썹이 물결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요. 사무총장님한텐 내가 보고할 테니까.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에마 대표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다.
그녀가 나간 뒤, 마르크 팀장이 한숨을 팍 내쉬었다. 동시에 시선이 바닥에 널브러진 무언가로 향했다.
“하여간 이 새끼 한 명 때문에 얼마나 손해를 본 건지, 쯧… 나 먼저 갈 테니까 퇴근하는 김에 이것도 좀 처리해.”
“네.
마르크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무언가를 발로 툭툭 쳤다.
다름 아닌 숨이 끊어진 제이슨 전 통제팀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