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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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역 인근, 건물.
아레스 길드 사무실.
“청소부가 작전본부장으로 임명됐다고?”
우락부락한 몸을 가진 남자가 걸걸한 목소리를 냈다.
메카닉 클래스의 차석현.
국내 1위 길드, ‘아레스’ 길드의 우두머리이자 공식 국내 랭킹 2위의 인물이었다.
“그렇다니까? 별일이 다 있지, 정말.”
차석현의 오랜 친구이자 국내 5위 길드 ‘아프로디테’의 길드장, 유지우가 대답했다.
국내 저격수 클래스 1위.
국내 랭킹 9위로, 그녀 또한 차석현에 못지않은 실력의 헌터였다.
이처럼 ‘협회 게이트’를 비롯한 한국 협회의 격변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동종 업계에서도 빠르게 퍼져가는 중이었다.
“크하하하! 확실히 격변은 격변이네. 그 꼰대 소굴이 그렇게 바뀔 줄이야!”
“웃을 일이야?”
유지우가 심드렁하게 말을 이었다.
“청소부가 지휘권을 잡았다고 다들 축제 분위기야. 지금 움직이면 협회를 먹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고.”
“뭔 소리야, 그건 또?”
“뭐긴 뭐야. 통제팀 출신도, 헌터 출신도 아니고 청소부잖아. 그런 사람이 작전본부장으로 올라갔으니 협회가 휘청거릴 거라고 보는 거지.”
“흠… 이상하네.”
차석현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저었다.
“뭐가?”
“그 본부장 말이야, 내가 볼 땐 잡아먹으면 먹었지, 절대 잡아먹힐 놈은 아닌 것 같거든.”
근거도 없는 말.
차석현은 이처럼 자신의 판단을 거의 직감에 맡기는 편이었다.
중요한 건, 그의 직감은 항상 맞아떨어졌다는 거다.
때문에 유지우 또한 흥미롭다는 듯 관심을 가졌다.
“흐음,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긴 하네.”
“뭐, 조만간 만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지.”
차석현이 미소를 지었다.
김준우 이야기는 길드에서뿐만 아니라, 무소속의 프리랜서 헌터들 사이에서도 이슈였다.
이태원 소재의 작은 바.
그 어두컴컴한 곳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신문을 보던 한 남자는 헤드라인에 적힌 문구를 보며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청소부라… 우연이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술을 홀짝였다.
양민호
마법사 클래스.
공식 세계 랭킹 59위.
공식 국내 랭킹 1위의 헌터.
공식적으로는 프리랜서 헌터로 등록되어 있지만, 이 업계에서 그를 부르는 이름은 따로 있었다.
그때, 남자의 핸드폰이 울렸다.
“예, 양민호입니다.”
핸드폰 너머에선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의뢰 말씀이십니까?”
“음…….”
“뭐, 가능은 한데… 그런 건 단가가 좀 세서 말입니다.”
“예예.”
“예, 그럼 바로 한번 해보죠.”
양민호는 전화를 끊고는 다시 술잔을 들어 올렸다.
이처럼 돈을 받고 해결사 일을 해주는 것이 그의 또 다른 직업이었다.
헌터, 일반인, 정치인.
협박, 납치, 정치공작.
누가, 어떤 의뢰를 하든 상관없다.
돈만 주면 그 어떤 의뢰든 깔끔하게 처리해주었고, 그 때문에 이 바닥에선 그런 그를 ‘청소부’라 불렀다.
***
지원팀, 헌터관리실.
신수지 보좌관은 일전에 있었던 연구시설 증축 건의가 통과되었다는 걸 알리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그, 그게 통과가 됐다고요?!”
아니나 다를까, 이아영은 보고를 듣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예산이 어마어마하게 들 텐데……. 기획서 읽어보시긴 하셨대요?”
“대충은요. 솔직히 저도 당황스럽긴 하네요.”
신수지 보좌관도 머리를 긁적였다.
이아영은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지 혼란스러웠다.
물론 지원팀 연구시설 증축은 장기적으로 봤을 땐 꼭 필요한 사항이었다.
다만 여태까지 지원팀에 대한 지원은 ‘쓸데없는 지출’로 취급받아왔기에 이야기를 꺼내기조차 어려웠다.
그런데 드디어 그 사람이 본부장으로 올라서지 않았는가. 말이라도 꺼내 볼 기회라고 이아영은 생각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이야기라도 꺼내 본 것일 뿐, 큰 기대 없이 보낸 기획서였는데… 이렇게 단번에 통과가 될 줄이야.
“증축뿐만이 아니라 통제팀, 청소팀한테도 대대적인 지원을 하시겠다고 해요. 그것도 다음 분기 예산까지 땡겨서……. 하,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신수지 보좌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모습을 보던 이아영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왜, 왜 웃으세요?”
“아뇨. 나도 그럴 때가 있었는데… 싶어서요.”
신수지 보좌관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수지 씨, 본부장님이랑 같이 일해본 적 없죠?”
“……그렇죠. 저는 입사 때부터 계속 행정본부에만 있었으니. 뭐, 소문으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요.”
“그럼 이해하기 힘들만도 하네.”
“네…?”
“이해는 잘 안 가도…… 그 사람, 절대 생각 없이 일 저지르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그거야 누구나 그런 거 아닌가요?”
“그렇긴 하죠. 근데 그 사람은 수준이 달라요.”
신수지 보좌관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사람은 남들이 보는 것, 앞에 앞을 보고 있어요. 가끔은 대체 어디까지 보고 있는 건가 싶다니까.”
“에이…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이번 일만 봐도 그렇잖아요. 이번 게이트, 다 본부장님이 처음부터 짠 건데?”
신수지는 침묵했다.
이아영 실장과는 업무 때문에 몇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그녀가 이 정도까지 어떤 사람을 칭찬하는 건 처음이었던 까닭이었다.
“게다가 청소팀 소속일 땐 주변 동료를 얼마나 챙겼는데요. 자기 동료 건드리는 꼴은 곧 죽어도 못 보는 사람이고. 부당한 건 절대 못 참고. 하여간 능력 있지, 사람 됐지…….”
이아영의 칭찬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저, 이런 질문은 실례인 줄 알지만…….”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신수지 보좌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본부장님, 좋아하시는 건 아니죠?”
“좋아하죠.”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오히려 질문한 신수지 보좌관이 당황할 정도였다.
그러자 이아영이 씨익 웃었다.
“사람으로서.”
싱긋 미소를 짓곤 이아영은 앉은 채로 기지개를 켰다.
“아무튼… 통과됐다니 잘됐네요. 빨리 저 녀석 연구해보고 싶었는데.”
관리실 구석에 설치된 진공관을 바라봤다.
그 안에서 시간석이 은은한 노란빛을 내뿜고 있었다.
신수지 보좌관 또한 그 오묘한 빛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뱅크 아이템… 맞죠? 연구 목적으로만 취급할 수 있는 아이템.”
“맞아요. 잘 아시네요?”
“대충이요. 그런데 저게 그렇게 위험한 물건인가요?”
“저도 잘 몰라요.”
이아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네, 네?”
“저도 말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거든요. 루프 던전이야 가끔 출현하긴 해도, 모든 던전이 시간석을 떨구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도 국제 협회에서 위험 아이템으로 지정할 정도면 자료를 찾아볼 수 있지 않나요?”
“수지 씨 같으면 그 자료, 공개할 거예요?”
“아…….”
바로 납득이 된 듯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다른 뱅크 아이템은 조금이라도 자료가 있어요. 이능석은 이능력이 없는 이에게 강제로 능력을 부여할 수 있다고 하죠.”
“…그건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네요.”
“사람 외에도 부여할 수 있다는 게 포인트죠.”
사람 외에 이능력을 부여한다?
대체 어떤 효과인지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반대로 반능석은 이능력을 없앤다고 하고… 차원석은 임의로 던전을 생성할 수 있다고 하고. 뭐 별게 다 있다니까.”
“흐음.”
신수지 보좌관은 적당히 대답했다.
딱히 관심 가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근데 딱 저것만 자료가 없어요. 대체 무슨 물건인지 감도 안 온다니까요.”
“…신기하네요.”
“그래서 연구실 증축을 건의했던 거예요. 무슨 물건인지 좀 보려고.”
“그렇군요.”
“참, 바쁜 사람 데리고 너무 티엠아이였네.”
이아영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괜찮아요. 그렇게 바쁘진 않아요.”
“엥? 이번에 대규모 스카우트 진행한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그거 본부장님이 전부 직접 진행하고 계세요. 벌써 어제부터 사무실엔 들어오시지도 않는걸요.”
“그 사람답네. 어차피 한 달 뒤에 나갈 거면서 뭘 그렇게까지 열심이래.”
하여간…….
이아영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
송파구 잠실.
내리꽂는 뙤약볕 아래에서 고층 빌딩 사이를 헤매기도 벌써 30분째였다.
“이 근처인데…….”
핸드폰 지도와 주변을 번갈아 보며 확인했다.
그러다 이내 익숙한 번지수가 붙어 있는 한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기 맞네.’
다시 한번 위치를 확인한 뒤, 곧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에 도착하자 사무실 입구에서부터 ‘아레스’의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그려져 있었다.
‘1위 길드답군.’
언뜻 유치해 보이는 그 로고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그때.
“아, 오셨군요.”
사무실에서 한 여성이 나왔다.
“반갑습니다. 경리부 허진아라고 합니다.”
“연락드린 김준우라고 합니다.”
“들어오세요. 마침 대표님도 방금 출근하셔서 기다리고 계세요.”
그녀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섰다.
내부는 평범한 회사 같은 분위기였다. 20명 남짓한 직원들은 자리에 앉아 업무 중이었다.
“이쪽 회의실로 들어가시면 돼요. 차 한 잔 드릴까요?”
“아, 예. 시원한 거로 부탁드리겠습니다.”
혼자 회의실로 들어서자 먼저 대기하고 있던 우락부락한 남자가 벌떡 일어나 악수를 건넸다.
“이야! 반갑습니다!”
마치 고릴라를 연상케 하는 저 남자가 이곳, 아레스 길드의 대표이자 현 국내 랭킹 2위의 헌터.
메카닉 클래스의 차석현 길드장이다.
“차석현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 번 만나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직접 찾아와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뭐, 전생에서도 그렇게 연이 깊진 않았지만… 그래도 몇 번 마주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호들갑 떠는 건 여전하구만.
“반갑습니다. 이능차원협회 서울 작전본부장, 김준우입니다.”
“암요, 암요. 이 바닥에서 본부장님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습니까? 눈에 띌 만한 일을 한 기억은 없는데.”
그러자 차석현이 소리 내어 웃었다.
“겸손이 지나치십니다. 청소부 출신 인사가 작전본부장에 올랐는데, 소문이 안 나면 그게 더 이상하죠.”
하여간, 길드 놈들 협회 일에 관심 갖는 건 예나 지금이나…….
“솔직히 저도 좀 궁금합니다. 그 꼰대 집합소에서 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하신 겁니까?”
“글쎄요. 딱히 이렇다 할 만한 일은…….”
마땅히 해줄 말이 없었기에 말끝을 흐렸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이토록 알려지게 된 건 좀 의아하거든.
차석현은 또다시 큰 소리로 웃어넘기며 바로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덩치에 안 맞게 눈치가 빨랐다.
“연락 주신 내용은 잘 보고 받았습니다. 스카우트를 진행하고 계신다고요?”
“예. 협회 내부적으로 일이 좀 있어서, 작전 인원이 많이 비는 실정입니다.”
“그래도 나름 협회잖습니까. 몇 명 빈다고 급하게 충족시킬 정도는 아닐 텐데요.”
“당장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지만… 통제팀 정보에 따르면 조만간 인천항에서 수중 던전이 열릴 것 같다더군요. 어차피 충당해야 할 거, 미리 대비하려고 합니다.”
흠, 팔짱을 끼며 그는 옅은 숨을 내뱉었다.
“그런데 굳이 저희 길드를 선택하신 이유라도 있습니까?”
“선택하고 말고도 없었습니다. 명실공히 1위 길드 아닙니까.”
“하하하! 저번에 저희 부 길드장이랑 마찰이 있지 않으셨습니까. 당연히 눈 밖에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순간 내 눈이 가늘어졌다.
아레스 부 길드장이랑 만나 적이 있었나 싶던 찰나, 뒤늦게 청소팀 채용 면접 때의 일이 떠올랐다.
신태환이 여기 부 길드장이었지 참.
“뭐, 공과 사는 구분하는 편입니다.”
“하하하! 그렇군요.”
차석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챙겨온 서류를 꺼내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건 스카우트 계약서입니다. 읽어보시면 꽤나 좋은 조건이라는 걸 아실 겁니다. 혹시 이직 대기 명단이 있으면…….”
“죄송합니다만, 거절하겠습니다.”
차석현이 고개를 꾸벅였다.
아직 서류를 다 꺼내기도 전이었다.
“……예?”
“여기까지 오시게 해놓고 이런 말씀 드려 죄송하지만. 스카우트는 진행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게 대체 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