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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뜬금없는 거절에 잠시 벙찔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애초에 왜 거절을 하는 건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길드에서 협회로 스카우트 되는 건, 길드 소속 헌터들에게 있어선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기회다.
그런데 아예 길드장 선에서 스카우트 진행 자체를 막는다고?
계약서를 보지도 않고 거절했다는 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스읍… 당황스럽군요. 계약서를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어디 가서 이런 조건은 절대 못 보실 텐데.”
“금액적인 문제가 아니라서 말입니다.”
“그럼 대체 왜…?”
“우선 그 전에 한 가지. 혹시 우리 길드 외에 다른 길드에서도 스카우트를 진행할 생각이십니까?”
몇몇 후보군을 정해두긴 했지만, 말 그대로 후보일 뿐이었다.
가능한 한 여기서 승부를 볼 생각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계획에 없습니다.”
“그럼 더더욱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군요.”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차석현은 미소를 띠고 있음에도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간을 보는 것 같진 않았다.
“본부장님도 아시겠지만, 원체 협회와 길드 간의 사이가 그리 좋진 않습니다. 길드가 협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요.”
“그건 알고 있습니다.”
“특히나 요즘엔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간 쌓인 감정도 있고, 현재 협회의 사정이야 모두가 잘 알고 있고… 뭐, 그동안 협회가 했던 짓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지만요.”
나는 팔짱을 끼며 등을 뒤로 기댔다.
‘협회가 그동안 했던 짓이라…….’
뭐, 썩 틀린 말은 아니다.
민간 길드는 협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고 할 수도 없다.
통제팀에서 일정에 맞춰 작전을 배분하고도 던전이 남으면, 그때야 길드에 남은 토벌권을 넘겨주는 시스템이니까.
협회는 악성 재고를 처리하고 민간 길드는 수수료 없이 던전의 모든 수익을 챙겨간다.
이것이 협회와 민간 길드의 관계다.
한 개 던전의 수익을 오롯이 가져갈 수 있으니 몇 번의 토벌로도 큰 이득을 챙길 수 있는 반면, 던전 재고가 없으면 한 달 넘게 손가락만 빨아야 할 수도 있다.
물론 협회 관할이 아닌 곳에서 자율 토벌을 진행할 수도 있지만, 그마저도 통제팀 허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결국, 길드는 던전을 하나라도 더 받아내기 위해 협회에 무조건 고개를 숙여야 했고 협회는 그런 입장을 이용해 길드를 부려먹는, 소위 말하는 갑을관계가 굳어진 것이다.
지금까지야 서민철이 그 짓을 해왔겠지만, 회귀 전에 그걸 가장 잘 이용해 먹은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심한 경우엔 재고 던전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길드 인원을 부려먹다가 한 달도 안 돼서 입 싹 닦는 일도 있었으니.
‘그때 면전에서 이런 말을 들었으면 절대 가만 안 뒀을 텐데.’
속으로 혀를 찼다.
어쨌든 협회와 길드의 관계란 그렇고 그렇다.
그동안 쌓인 악감정.
철저한 갑을의 관계.
충분히 이골이 날 만도 하지.
“그런 상황에 우리가 협회와 스카우트 계약을 체결했다는 게 알려지면 공공의 적이 되겠죠. 나름 명색이 1위 길드인데, 다른 길드를 적으로 돌리는 건 아무래도 피하고 싶습니다.”
“영리를 추구하는 곳인데 상도를 신경 쓰는 줄은 몰랐군요.”
“하하, 상도는 그쪽에서 꺼낼 이야기가 아닐 텐데요.”
여전히 입엔 미소를 머금었지만, 눈빛은 꽤나 날카로웠다.
나는 이마를 턱 짚었다.
뭐,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어이가 없긴 하네.
적은 서민철이 만들었는데 비난은 왜 내가 감수해야 하는 건데.
그대로 옅은 한숨을 내뱉길 한 차례.
“잘 알겠습니다. 사정이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군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인사를 건네고 등을 돌리자 차석현이 다시 나를 불렀다.
“현재 서울 내 길드들의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혹시 다른 길드를 찾아갈 생각이시면 우리처럼 환대해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이게 환대였다니.
다른 데는 뭐 뺨이라도 치려나 보군.
고개를 가로저으며 사무실을 나섰다.
***
김준우 본부장이 돌아가고 나서도 차석현 대표는 여전히 회의실에 남아 있었다.
곧바로 다른 손님이 찾아온 까닭이었다.
“그래서, 그걸 그대로 다 말했다고? 그러다 앞으로 던전 못 받으면 어떡하려고?”
이야기를 듣고는 잔소리를 쏟아내는 단발의 여성.
바로 옆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아프로디테’ 길드의 대표, 유지우였다.
“어쩔 수 없잖아. 어떤 인간인지 보고 싶었다니까?”
“너무 도박이잖아! 그러다 밥줄 끊기면 직원들 월급은 니 돈으로 줄 거야?”
귀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음성.
차석현은 말로 그녀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자 유지우도 한풀 꺾인 듯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어땠어?”
“생각했던 거랑 비슷하던데.”
차석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대놓고 협회 욕을 하는데도 눈 하나 꿈쩍 안 하더라. 서민철 같았으면 절대 가만히 안 있었을 텐데.”
“흐음…….”
“최소한 서민철 같은 부류는 아니야.”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거기까진 모르겠고… 뭐, 나쁜 놈은 아닌 것 같아.”
차석현이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어도 면전에서 그런 말을 들었는데 계속 좋은 사람일 수 있을까?”
“뭐, 그러면 딱 그 정도 사람인 거지.”
차석현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솔직히 청소부 출신이라고 해서 한편으론 만만하게 본 것도 있었다.
하지만 몇 번 대화를 나눈 후에는 그 생각을 접어야 했다.
만사가 귀찮다는 얼굴에 딱히 힘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마치 이런 사소한 일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느낌.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놈은 딱 두 가지 부류다.
전역을 앞둔 말년 병장이거나.
혹은 이런 일 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훨씬 커다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놈이거나.
뭐, 본부장이 된 지 일주일도 안 된 놈이니 전자일 리는 없고…….
‘그릇이 다르다 이건가.’
그 맥 빠진 눈빛 뒤에 어마어마한 속내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자 차석현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다른 길드 놈들도 제발 눈치가 있어야 할 텐데.”
그 순간 유지우가 무언가 떠오른 듯 손가락을 튕겼다.
“아, 맞다. 나도 그 얘기 하려고 온 거야. 아무래도 서울 내 길드들 움직임이 좀 이상해서 말이지.”
“이상하다고? 뭐가?”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나 봐. 꼭 대규모 토벌이라도 나갈 것처럼.”
“흠, 시위라도 하려는 생각인가.”
“글쎄, 이번엔 느낌이 달라.”
“뭔 소리야.”
“나도 몰라. 그냥 뭔가를 단단히 벼르고 있는 것 같아.”
유지우가 턱을 만지며 말했다.
동시에 차석현의 낯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불안한데…….”
“뭐가?”
“원래 사람 좋은 놈이 화내면 더 무서운 거 알지.”
“그걸 아는 사람이 면전에 대고 협회 욕을 했어?”
“…….”
하여간, 저 뒤끝은…….
차석현은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아무튼… 친구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괜히 쓸데없는 짓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
차석현은 이미 비어버린 종이컵을 톡톡 건드리며 중얼거렸다.
***
다시 본부로 복귀했을 땐 이미 해가 저문 시각이었다.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넥타이와 셔츠 소매부터 풀어 재꼈다.
“젠장…….”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확실히 차석현의 말 대로였다.
결과적으로 스카우트는 모두 허탕이었다.
아레스 이후로 다른 길드도 몇 군데 더 돌아 다녀봤지만, 사무실 안까지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아레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길드장이 자리를 비웠다고 에둘러 문전박대를 하는가 하면 아예 약속을 잡아주지도 않는 곳도 있었다.
심한 곳은 사무실 앞까지 찾아갔지만 대놓고 무시하기까지 했다.
‘빌어먹을 놈들, 옛날 같았으면 밥줄을 죄다 끊어버렸을 텐데…….’
이를 빠득 갈았다.
물론 지금도 못 할 거야 없다만… 지금 상황에 그런 짓을 했다간 무사 퇴사에서 한 걸음 멀어질 뿐이다.
대놓고 길드와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소리밖에 안 되니. 이제 와서 일을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에휴…….”
고개를 뒤로 팍 젖히곤 천장을 향해 깊은 한숨을 늘어뜨렸다.
생각보다 골이 깊다.
확실히 그간 협회에 쌓인 게 한두 가지가 아닌 듯하고… 무엇보다 작전 본부장을 그렇게 대할 정도면 이젠 대놓고 적개심을 드러내겠다는 입장인 듯했다.
그래, 그간 당한 게 있으니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있는데…….
그동안 당한 걸 왜 나한테 푸는 건데!
갑질을 내가 했어?
‘청소부 출신이라고 만만하게 보는 건가.’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여태까지는 서민철 눈치를 보느라 어쩔 수 없이 숙였지만, 이젠 만만한 놈이 왔으니 숨길 것도 없다 이건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본인들 밥줄을 쥐고 있는 사람인데, 고작 출신 하나 때문에 그런 멍청한 짓을 한다고?
‘이것들을 진짜…….’
순간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됐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곧바로 팍 식어버렸다.
화낼 의욕조차 나지 않는다.
오늘도 뺀찌만 먹으니까 정말 아무것도 하기가 싫네.
더 이상 여기에 열을 내다간 대머리로 퇴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지.
스카우트 건은 이제라도 편 팀장한테 위임하고 농땡이나 쳐야겠다.
……라고 생각한 그때.
“본부장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 댔던가.
편 팀장이 사무실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아, 마침 잘 오셨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스카우트 건은 편 팀장님이…….”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편 팀장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설마 뭔 일이라도 난 건가 싶어 침을 꼴깍 삼켰다.
“지금 서울 각지에서 인터셉트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아, 난 또 뭐라고.”
긴장한 볼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편 팀장은 대체 무슨 반응이냐는 듯 여전히 심각해 보였다.
“본부장님! 이거 심각한 일입니다! 그렇게 쉬이 넘길 일이 아닙니다!”
“에이, 고작 던전 몇 개 가지고 그렇게 열 내지 맙시다.”
“고작 몇 개가 아니니까 이러는 거 아닙니까! 18건입니다. 18건이요! 그것도 두 시간 사이에요!”
“……?”
“심지어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얼굴이 바짝 굳었다.
두 시간 새에 인터셉트가 18건이나 일어났다고?
근데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대체 어떤 미친놈이 그딴 정신 나간 짓을 하고 있단 말인가.
“양아치 몇 명이 벌인 짓이 아닙니다. 이 정도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조직적이라면… 민간 길드의 소행이라는 말입니까?”
“그것도 한두 개 길드가 아닙니다. 서울 전 지역에서 이 정도 인터셉트를 성공시킬 정도면 서울 내 거의 모든 길드가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허, 이런 미친.”
헛웃음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편 팀장은 그런 웃음조차도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본부장님, 아무래도 이거…….”
이내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선전포고 같습니다.”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