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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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역 인근.
김준우 본부장을 비롯한 작전 1팀이 던전에 진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
김준우의 명령에 따라 통제팀은 던전 입구를 중심으로 반경 10m를 완전히 봉쇄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다른 길드들이 출입 금지선을 넘어 던전으로 달려드는 소란이 일었지만, 작전팀이 서둘러 그들을 제압했다.
물론 그것만으로 그들의 흥분을 진정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통제팀이 현재 작전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나서야 다들 조금씩 진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놈들. 우리만 고생시키고…….’
편 팀장은 고개를 저었다.
평소 길드에 악감정은 없었다만, 지금은 충분히 그들에게 화가 날 만한 상황이었다.
수십억 규모의 인터셉트를 일으킨 것도 모자라 기어이 사고를 쳤으니.
상당히 아니꼬운 얼굴로 혀를 내두르고 있던 그때.
“뭐예요?! 어떻게 된 일이에요?”
한유빈 팀장과 함께 모든 청소팀이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경황이 없는 그들 또한 크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한 길드가 던전 등급을 착각하고 진입했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지금 본부장님이 작전 1팀이랑 직접 구조 작전 중입니다.”
“주, 준우 씨가요?!”
“아니, 그놈이 대체 왜? 길드가 잘못한 걸 왜 지가 나서?!”
편 팀장의 설명에 문소연과 한상혁이 목소리를 키웠다.
물론 편창현 또한 김준우 본부장의 행동이 전부 이해되는 건 아니었다.
김준우는 여태껏 본인이 만난 사람 중 가장 인격자다. 당연히 구조 작전 또한 어떤 수지 타산도 없이 순수한 선의로 나선 거겠지.
하지만 그릇이 작은 본인의 입장에선 아무래도 계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구조에 성공해야 본전.
만에 하나 실패라도 한다면, 의도가 어찌 됐건 모든 비난의 화살이 협회를 향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오렌지 등급 던전에 준비도 없이 진입했다. 생존자 구조는 둘째 치고 작전팀 또한 무사하리란 보장도 없는 상황이다.
물론 김준우 본부장이 그걸 염두에 두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럼 그가 구조 작전을 진행한 건, 그깟 자질구레한 것보다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뿐이겠지.
‘역시 그릇이 달라.’
이러니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더욱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는 사람은 비단 편 팀장뿐만이 아니다. 한 씨 남매와 문소연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대부분 팀원 또한 마찬가지였다.
편 팀장은 이를 보며 실감했다.
김준우가 이제 작전본부에 없어선 안 될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그러니 제발 무사히 나오시죠.’
편 팀장은 시커먼 던전 입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그냥 밖에 있을 걸 그랬나.’
보스 몬스터인 거대 거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몸소 나선 걸 후회했다.
토벌 가능 여부를 떠나서 토벌 자체가 꽤나 까다로울 것 같은 몬스터로 보였다.
‘여기까지 와서 후퇴하는 것도 모양 빠지고…….’
쯧, 혀를 찼다.
그리곤 다시 한번 보스 방을 둘러보며 상황을 정리했다.
일반적으로 구출 작전은 두 가지 경우로 진행이 된다.
첫 번째는 몬스터를 먼저 토벌한 이후에 생존자를 구출하는 것.
두 번째는 토벌을 제쳐 두고 생존자만 구출하는 것.
당연히 첫 번째 방법이 이후 다시 던전에 진입할 필요가 없으니 제일 깔끔하고 좋은 방법이지만, 그것도 몬스터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있을 경우의 이야기다.
지금처럼 드래곤이라고 해놓고 거미가 튀어나올 정도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선, 섣불리 전투를 벌이다간 생존자는 물론이고 우리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전투를 벌이기엔 공간이 너무 좁은 것도 문제다. 이래서는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나 혼자였다면 어떻게든 해봤겠지만, 괜히 무리할 필요는 없겠지.
“김민주.”
“네.”
“아무래도 생존자만 데리고 나가야 할 것 같다. 토벌은 나중에 정보가 쌓이면 그때 다시 하자.”
“저도 그게 좋을 것 같긴 한데… 보스를 무시하고 반대편까지 갈 수 있을까요. 소리에 반응해서 공격한다면 움직이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내가 유인할게.”
김민주의 눈이 벌어졌다.
“어떻게든 시선을 끌어볼 테니까 너흰 달려가서 구조부터 해.”
“……알았어요.”
난 이내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저벅, 소리와 함께 한 발짝을 내디뎠다.
그 순간.
피융―.
날카로운 실이 정확히 머리통을 향해 날아들었다.
재빨리 고개를 숙였음에도 실은 아슬아슬하게 내 뺨을 스쳐 지나갔다.
…깜빡이는 좀 켜고 들어오지.
[시전자를 향한 공격 감지]
[현 시간부로 전투태세에 돌입합니다]
[스킬 발동]
[습득 스킬 : 하이퍼 부스트]
전신이 타오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나는 김민주와 눈을 맞췄다.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셋을 세길 잠시.
탓―!
“달려!!”
내가 먼저 좌측으로 진입하며 소리쳤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저 이를 악물고 전력으로 보스 방을 가로질렀다.
예상대로 보스는 내게만 공격을 퍼부어댔다. 완벽하게 유인한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작전은 순조롭게 풀린다고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파바바바바박―!!
‘뭐, 뭐가 이렇게 빨라?!’
공격이 너무 매서웠다.
날카로운 실들이 내 꽁무니를 따라 비처럼 쏟아졌다. 하이퍼 부스트가 발동된 속도로도 피하는 게 겨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생에 이동 스킬에도 투자를 좀 할걸.’
1초라도 주춤하는 순간 고슴도치가 되겠지만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도망만 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긴 한데.’
문득 내 처지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피슝―!
“어이쿠.”
꼬챙이가 되고 싶지 않으면 집중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거미형 몬스터가 까다로운 이유는, 몬스터 그 자체보다 뿜어내는 거미줄 때문이다.
회귀 직후 날 거의 죽일 뻔했던 ‘폭스트롯 센티피드’의 혈액에 견주는 접착성이 이 거미줄에도 있었다.
만약 피부에 스치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 발이 묶이고 만다.
게다가 거미줄이라는 특성상 잘 보이지도 않는데 이걸 지금 투사체로 발사하고 있으니 더욱 까다로울 수밖에.
하지만 그 무엇보다 위험한 건, 이 공간 어딘가에 거미줄이 설치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그래서 거미형 몬스터를 토벌할 때는 최대한 조심히 움직이며 전투를 벌이는 게 정석이지만…….
‘지금은 그런 거 따질 상황이 아니지.’
파앙―!
조금 더 가속을 붙였다.
굉음과 함께 거센 바람이 뒤꽁무니에서 터져 나왔다.
벽을 타고 달리며 최대한 변칙적으로 움직인다.
다행히 공격 패턴도 슬슬 눈에 익었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익숙해졌다.
움직임에 여유가 생기니 덩달아 시야도 넓어졌다.
보스와는 일정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며 투사체를 피할 시간을 벌고, 시야 확보가 어려운 구석은 피한다.
동시에 작전팀과 생존자의 위치를 주기적으로 살피며 그들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몬스터를 유인한다.
거미 몬스터의 공격이 빠른 게 예상외긴 해도 이대로 가면 구출 작전은 문제 없…….
쾅―!!
그 순간 내 머리 위로 거대한 무언가가 떨어졌다.
“큿…!”
바로 몸을 던져 피했지만 타이밍이 어긋나 자세가 안 좋았다.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몬스터의 붉은 눈 8개가 내 정면에서 번뜩였다.
‘성가시게 됐네…….’
재빨리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계속 천장에만 붙어있던 보스가 결국 직접 앞으로 나선 거다.
아무래도 실로 쏴서는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 보스 몬스터잖아.
겁나 귀찮게 말이지.
스스스―.
보스가 거대한 턱을 들이밀며 나를 탐색했다.
공격해야 하나. 아니면 방어?
잠시 고민하던 그 순간.
팍―.
두 개의 날카로운 턱이 덮쳤다.
“업화!”
[습득 스킬 : 업화]
[스킬 발동]
쾅―!
검은 불꽃이 정확히 보스에게 날아가 작은 폭발이 일었다.
물론 C급 마법 스킬로 해치울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대미지는 줄 수 있을 터였다.
최소한 발이라도 묶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저건 또 뭐야…….”
스스스스스―.
눈앞의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혀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스킬이 닿지도 못했다.
거대 거미 몬스터가 순식간에 수천 마리의 거미로 분열한 것이다.
스스스스슥―.
사람 머리통만 한 수천 마리의 거미가 순식간에 흩어져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야, 야! X 된 것 같다! 서둘러!”
김민주를 향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쪽도 예기치 못한 변수를 만난 듯했다.
“생존자들이 거미줄에 묶여 있어서 꿈쩍도 안 해요!”
고개를 돌려 반대편을 바라봤다.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렸다.
생존자들이 몸을 웅크리고 있던 게 아니라, 거미줄에 뒤덮여 고치가 된 상태다.
‘아껴먹는 타입이었던 건가.’
바로 잡아먹히진 않아서 다행이지만, 이래서는 탈출에 시간이 걸린다.
“기다려줄 시간 없어. 어떻게든 끊어!”
“네!”
김민주가 다급하게 허리춤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고유 스킬 : 천수관음]
푸른색 안광과 함께 시퍼런 검날이 번쩍였다.
스스스스스―
“젠장!”
마침 타이밍 나쁘게 그악스러운 소리와 함께 모습을 숨겼던 수천 마리의 거미들이 작전팀을 향해 달려들었다.
“뭐, 뭐야!!”
“으아아악!!”
“시발, 시발!”
“이, 이것 좀 어떻게…!”
어떻게 손을 써보기도 전에 거미들이 순식간에 작전팀 전원을 완전히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일제히 거미줄을 뿜어댔다.
김민주는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거미줄에 몸이 묶였고, 다른 헌터들도 속수무책이었다.
“으읍… 으브븝.”
“으그극…….”
불과 몇 초.
작전팀은 이미 생존자 무리와 똑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끼어들어서 어떻게 하기엔 늦었다.
괜히 저걸 막아보려다가 나까지 거미줄에 발이 묶인다면 정말로 끝이다.
나는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숨을 죽였다.
곧바로 정적이 내 주위를 감쌌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처럼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완전한 어둠 속, 홀려 남겨진 나는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했다.
던전이 위험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헌터라고 해도 매년 던전에서 사망자가 나오는 이유는…….
사전 정보 부족.
그린 등급 이하라면 모르겠지만, 옐로우 등급 이상에선 정보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런 정보가 없는 현재, 사실상 오렌지 등급을 혼자서 토벌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작전을 바꿔야겠네.’
이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래, 정보가 없다면 그걸 커버할 만한 힘이 있으면 된다.
한 마리씩 공격해선 턱도 없다.
어쭙잖은 공격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수천 마리를 한 번에 날리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방이 너무 좁아 닥치는 대로 스킬을 난사하다간 생존자는 물론 작전팀까지 위험해질 수 있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여기서 다 같이 죽는 것보다 뭐라도 해보는 게 나을 테니까.
‘이렇게 된 이상 진지하게…….’
[습득 스킬 : 형상 - 우리엘]
[형상이 유지되는 동안 시전자가 지정한 아군은 사망하지 않습니다]
8개의 거대한 하얀색 날개가 등에서 솟아난 순간.
고치가 된 녀석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군 지정이 완료되었습니다]
[해당 아군의 사망 면역까지 앞으로 10초]
[9초]
[8초]
스스스스스―.
스킬을 감지한 거미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당황해선 안 된다.
최대한 집중을 유지해야 한다.
[습득 스킬 : 한계돌파]
[시전자의 모든 스테이터스가 일시적으로 한계치를 넘어섭니다.]
[해당 스킬의 효과가 종료되면 모든 스킬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습득 스킬 : 과몰입]
[전투 중 시전자가 사용하는 모든 스킬의 효과가 대폭 상승합니다]
[습득 스킬 : 타천사]
[일시적으로 시전자의 마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과몰입 스킬로 인해 마력 상승률이 증가합니다]
[현재 마력 수치 : 921,240 (913,440↑)]
[마력 수치가 마법사 클래스를 초과하였습니다]
[클래스 각성]
[고유 클래스 : 대마도사]
“후우…….”
검은 기운은 더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뿜어져 나왔다.
어느새 거미들은 사냥감을 노리듯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곧 사방에 퍼져 있던 검은 기운이 손가락 끝으로 빠르게 압축되었다.
지금이다.
[습득 스킬 : 디스트로이어]
[전방을 향해 강력한 폭발 마법을 발사합니다]
[스킬 발동]
번쩍―
눈앞의 모든 생명체가 소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