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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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어딘가, 오래된 건물의 허름한 사무실.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 다 찢어진 소파 하나. 그 외엔 아무것도 없는 이곳이 바로 양민호의 사무실이었다.
띠링―.
반쯤 드러누워 신문을 보고 있는데 양민호의 핸드폰으로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밸런스 조정팀에서 일전에 보내 주기로 했던 작전 기획서였다.
“빨리도 보내 주네.”
양민호는 퍽 귀찮은 표정으로 pdf 파일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반도 채 읽어보지 않고 핸드폰을 내려놨다.
그다지 흥미가 동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밋밋하네.’
양민호는 미간을 구겼다.
한국 협회를 박살 내겠대서 대놓고 전쟁이라도 일으키려는 건 줄 알았건만, 고작 한다는 게 적대적 인수합병이라니.
심지어 그 방법마저도 밋밋하기 짝이 없었다.
‘이래서 사무직이 세운 작전은…….’
양민호는 혀를 쳤다.
그리곤 다시 의자에 몸을 기댔다.
국내 랭킹 1위. 마법사 클래스.
프리랜서 헌터이자 해결사.
여기까지가 이 바닥에서 알려진 그의 정보였다.
협회는 물론 길드와 다른 프리랜서들 또한 양민호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었지만, 그중에 그의 진짜 소속을 아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국제 헌터 협회 산하 기구, PB 코퍼레이션 소속.
헌터 밸런스 조정팀, 한국 담당.
양민호는 통칭 ‘현장직’이라 불리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현장직의 업무는 국제 협회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인물과 미등록 헌터 및 밸런스를 흔드는 헌터를 처리하는 것.
듣자 하니 한국에 본인 외에도 몇 명의 현장직이 더 있다던데… 그들이 누구인지까진 잘 알지 못했다. 그가 PB 코퍼레이션의 현장직으로 스카우트 된 건 비교적 최근이니 더욱 그랬다.
1년 전쯤. 국내 랭킹 1위를 달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한창 해결사 활동을 하며 ‘청소부’라는 별명이 이 바닥에 퍼지기 시작했던 그 당시,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 남성이 양민호를 찾아왔다.
마르크라고 이름을 밟힌 그는 자신을 PB코퍼레이션 소속의 헌터 밸런스 조정팀장이라 소개했다.
양민호는 당연히 코웃음을 쳤다.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국제 협회에 위협이 될 만한 요소를 배제하고 전 세계 모든 토벌권을 통제하려는 비밀 조직에 관한 이야기.
헌터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한 괴담이었다.
-그 사실을 처음 퍼트린 인물이 누군지 아나?
그날, 마르크 팀장은 그렇게 말했다.
-아마 전 세계 그 누구도 모를 거야. 존재 자체가 삭제됐거든. 뭐…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발설하면 자네도 그렇게 될 수도 있고.
도저히 허세나 농담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말투였다.
그쯤 되니 양민호 또한 남성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PB 코퍼레이션에서 그를 스카우트 한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이전부터 그의 해결사 활동을 유심히 보았고, 앞으로는 자신들을 위해 사용해주길 바랐다.
더불어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활동이 자유로운 상위 랭커였다는 사실도 긍정적으로 여긴 모양이었다.
양민호는 잠깐 고민하던 끝에 마르크의 제안을 수락했다.
해결사 일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을뿐더러, 나름 재미있어 보였다. 게다가 그가 내건 금액이 꽤나 거액이기도 했고.
그렇게 1년 동안 현장직으로 활동하며 몇 개의 임무를 받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처음 기대했던 것만큼 만족스럽진 않았다.
뭔가 다른 게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었지만, 실상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돈을 받고 일을 맡아 처리한다.
그저 그것뿐이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
‘김준우 본부장…….’
느낌상 언젠가 한 번은 다시 만날 놈이다.
그때가 되면 마냥 정의감 넘치고 올곧기만 한 그놈이 자신 앞에선 무릎을 꿇고 살려 달라 빌 게 될 거란 생각에 꽤나 고대하고 있었는데…….
‘밸런스 조정팀에서 먼저 선수를 쳐버리다니.’
업무가 되어버린 이상, 개인적인 욕심으로 일을 처리할 순 없다. 괜히 일이 난잡해지면 회사에서도 싫어할 테고.
‘그러게 살고 싶었으면 적당히 까불었어야지, 왜 쓸데없이 나대서…….’
죽고 싶지 않으면 눈에 띄지 말라더니, 정작 본인이 더 눈에 띄어 버렸다. 그것도 PB 코퍼레이션 눈에.
‘제 명이지 뭐.’
양민호가 쯧, 하고 혀를 찼다.
개인적으로 상대할 수 없는 건 꽤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담백하게 가는 수밖에.
***
이번 작전 협력 요청을 위해 찾은 아레스 길드 사무실.
“당연히 오케이입니다.”
차석현 길드장이 즉답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옆에 앉은 여성을 바라봤다.
“유지우 씨는 어떻습니까. 거듭 말씀드리지만, 꼭 참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쪽에서도 상당히 위험한 작전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니.”
“저희도 당연히 참가해야죠.”
유지우, 아프로디테 길드의 대표 또한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흔쾌히 수락해서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이 사람들 제대로 이해하긴 한 건가.
왠지 불안한데…….
“다들 가능하시다니 다행이군요. 필요한 장비는 저희 쪽에서 지원할 예정입니다. 각 길드에서 투입할 수 있는 인원이 대충 얼마나 될까요?”
차석현이 이마를 톡톡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그나마 실력 있는 놈들로만 추리면…… 대충 열 명 정도 될 겁니다. 물론 저 포함해서!”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알겠습니다. 그럼 구체적인 명단이 나오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토벌대에 명단 올려놓겠습니다.”
대충 이야기가 마무리된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찰나, 차석현 길드장이 넌지시 물었다.
“그나저나 이번 작전, 혹시 본부장님도 참가하십니까?”
“저도 그러고 싶었는데, 작전 팀장 중 한 명이 열렬히 반대하더군요.”
본부장씩이나 됐으면서 또 위험을 감수하는 게 말이 되냐면서 말이지.
남 걱정할 거면 본인부터 걱정하라 얘기하고 싶었지만 귀찮아서 관뒀다.
“아쉽게 됐군요. 꼭 한 번 본부장님과 함께 작전에 나가보고 싶었는데!”
“뭐, 작전이 이번만 있겠습니까.”
“그렇죠. 다음에는 꼭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차석현이 큰 소리로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아! 혹시 한 가지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혹시 본부장님…… 헌터십니까?”
“…….”
순간 눈썹이 꿈틀했다.
굳이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굳이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런데 같이 작전에 나선 적도 없는 저놈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건가 싶었다.
“처음에 청소부 출신이라고 들었을 땐 당연히 일반인인 줄 알았는데……. 뉴스에서 얼굴을 딱 보는 순간, 아무리 봐도 일반인은 아닌 것 같더군요. 뭐랄까, 눈빛이 약간 짐승 같다고 해야 하나.”
…시비 거는 거지?
“그런데 이번 구출 작전을 직접 지휘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싶더군요. 어떤 청소부가 오렌지 등급 던전에 제 발로 들어갈 생각을 하겠습니까. 아무리 깡이 좋다고 해도 그렇지. 하하하!”
나에 대한 감상은 제쳐놓고라도, 역시 덩치에 안 어울리게 눈치가 빠른 놈이다.
“뭐, 이능력자는 맞습니다.”
“역시! 그럼 혹시, 랭킹이 어떻게 되십니까?”
“헌터는 아닙니다. 랭크 등록을 안 했으니까요.”
차석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굳이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뭐 급한 것도 아니고, 나중에 필요하면 할 예정입니다.”
“그러시다면 뭐…… 그래도 되도록 빨리 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유라도 있습니까.”
“왜, 그런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국제 협회에 비밀 조직이 있는데, 그들이 위협될 만한 인물이나 미등록 헌터를 찾아 죽인다는…….”
“하하하…….”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웃음이 터졌다.
이전에 한유빈도 언급한 적이 있고, 무엇보다 전생에서도 한때 꽤나 유행했던 이야기였으니까.
다만 그건 그냥 괴담이지 않은가.
“그런 걸 믿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글쎄요…….”
차석현은 말끝을 흐리더니 이내 목소리를 깔며 말을 이었다.
“이유 없는 괴담은 없다지 않습니까.”
그리곤 곧바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뭐… 조언 감사합니다.”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적당히 대답했다.
“그럼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저희 쪽에서 준비하는 대로 연락드리죠.”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쇼!”
건물을 나오면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작전 준비는 큰 문제 없이 순탄하다.
인원도 충분, 지원도 충분.
지원팀의 장비도 훨씬 좋아졌고, 통제팀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분석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작전팀 헌터들도 큼지막한 작전을 몇 번 겪으니 자신감이 붙어 있었고, 무엇보다 김민주도 이전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칼을 갈고 있는 중이었다.
회귀 후 첫 레드 등급 작전.
하지만 내가 작전권을 잡은 이상 아무 문제가 없다.
이것저것 생각하던 사이, 핸드폰이 울렸다.
이아영 실장이었다.
「미팅은 끝났어요?」
“예, 끝났습니다. 점심 먹고 복귀할 예정입니다.”
「그래요? 그럼 복귀하면 관리실 한 번 들려요. 부탁하신 장비랑 수중 전투용 슈트 다 준비됐으니까.」
“벌써 완료했습니까? 생각보다 꽤나 빨리 제작됐군요.”
「음? 제작한 거 아니에요. 예전에 쓰다 남은 거 몇 개 고치고, 부족한 건 해외에서 급하게 가져온 건데.」
“…중고라는 거군요.”
「설마 그거 가지고 뭐라 하려는 건 아니죠? 이렇게 안 하면 작전 일정엔 죽어도 못 맞추거든요?」
이아영 실장이 톡 쏘아붙였다.
나 또한 뭐라 할 생각은 없다.
그저 일정에 맞춰 장비를 준비해놓은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
「아, 그리고 슈트는 일정도 그렇고 물량 구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작전 참가 인원에 딱 맞춰서 준비했어요. 여분은 없으니까 허튼 생각하지 마세요.」
“…? 그게 뭔 소립니까.”
「나중에라도 작전 참가할 생각 말라는 소리예요. 당신, 부하들이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잖아요.」
“……?”
내가?
대체 언제?
혹시 돌려 까는 건가?
「암튼 위험한 일에는 적당히 빠지고 그래요. 그동안 고생깨나 했잖아요? 조금 농땡이 부린다고 뭐라 그럴 사람 아무도 없어요.」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시간석 연구는 진척이 좀 있습니까?”
이대론 잔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 같아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뭐, 어느 정도는?」
“뭔 대답이 그럽니까.”
이아영 실장이 모호한 신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더 잘 알겠지만, 루프 던전은 특정 조건을 만족할 때까지 시간이 루프 되잖아요. 아무래도 그 힘이 시간석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것참 대단한 발견이군요…….”
그 정도는 누구든 추측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고작 그거 알아내려고 500억을 갈아 마신 거야?
「근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거 던전에서만 적용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럼 또 어디에 적용이 되는 겁니까.”
「그건 몰라요. 더 연구를 해봐야겠는데, 일단은 공간뿐만 아니라 물체나 인체에도 적용이 되지 않을까 추측은 하고 있어요.」
추측은 하고 있다.
결국, 알아낸 게 없다는 소리지 않은가.
뭐라 한소리 해야 하나 싶던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이아영 씨.”
「네?」
“혹시 괴담 같은 거 믿는 편입니까?”
머릿속에서 한 가지 가설이 세워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