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
072
텅 빈 대교 위.
“그러니까!”
그곳엔 내 목소리만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중이었다.
“왜! 바쁜 사람 붙잡고! 지랄이야! 지랄은!”
퍽, 퍽―
퍽, 퍽, 퍽―
나는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양민호를 와이퍼로 개 패듯 패는 중이었다. 저항도 못 하는 사람을 일방적으로 패는 광경이라니.
누가 보면 내가 악당인 줄 알겠네.
“그, 그…….”
“어어? 팔 내려. 뼈 나간다?”
“그만…….”
“그만? 지가 먼저 들이받아 놓고 이제 와서 그만? 지랄을 해요 아주.”
퍽, 퍽―.
분이 풀릴 때까지 두들겨주길 잠시, 이내 내 팔이 아파 올 지경이 돼서야 매질을 멈췄다.
보아하니 양민호는 이미 기절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제야 와이퍼를 내려놓았다.
당연하겠지만, 명색이 국내 1위 랭킹 헌터가 와이퍼로 몇 대 때려줬다고 정신을 잃은 건 아니다.
이미 마지막 공격 때 입은 대미지로 한계였을 테니.
“X밥 새끼가…….”
쯧, 혀를 차며 그를 내려다봤다.
사실 트럭에 받힌 직후엔 진심으로 열이 뻗쳐올랐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애초에 진짜로 죽일 생각은 없었다.
지금은 사적인 감정으로 행동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닐뿐더러, 자칫 일을 벌였다간 나 혼자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딱 죽기 직전까지만 패주려고 했는데…….
문제는 이 새끼가 어디까지 죽지 않고 버틸 수 있는지 내가 알 게 뭔가.
때문에 여러 번에 나눠서 조금씩 힘 조절을 해야 했다.
‘그나마 실력 있는 놈이라 다행이지.’
생각보다 잘 버텼다.
뭐, 정작 본인은 사경을 헤매고 있는 중이지만.
“어디 보자…….”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주변을 둘러봤다.
일단 차는 개 박살이 났고, 생각보다 시간도 너무 오래 끌었고. 아무래도 본부까지 갈 시간은 없어 보인다.
물론 이젠 딱히 상관이 없다.
아니, 오히려 잘 됐다고 해야 하나.
연결책이 제 발로 찾아와 준 셈이니까.
짝―.
“야.”
기절한 양민호의 뺨을 냅다 후려갈겼다.
다행히 바로 의식을 찾았다.
그가 희미하게 눈을 뜨며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전화해.”
나는 그 앞에 핸드폰을 툭 던졌다.
“……?”
“너한테 의뢰한 클라이언트한테 전화하라고.”
“흐흐…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어디서 모른 척이야, 뒈지려고. 야 이 새끼야. 그럼 이 타이밍에 니가 날 죽이려고 한 게 우연이라는 거냐?”
말도 안 되지.
누군가 던전을 조작하고 있는 이 상황에 이유도 없이 갑자기 날 습격한다?
이게 어떻게 우연이겠는가.
내가 걸림돌이 될 것 같으니 묶어서 한 번에 처리하려는 거면 몰라도.
던전을 조작하고 있는 누군가.
그리고 날 습격한 양민호.
둘의 관계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는 몰라도,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는가.
“빨리 전화 걸어. 어떤 새끼가 이딴 일을 꾸몄는지 목소리나 좀 들어보자.”
“전화하는 건 상관없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거기랑 엮이면 당신 절대 곱게는 못 죽…….”
짝―.
“말이 너무 많다.”
“…….”
두들겨 패서라도 확인을 해야지.
양민호는 부들거리는 손가락으로 다이얼을 누르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연결음.
「잘 처리했어요?」
수화기 너머로 어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용하는 언어는 한국어가 아니다.
‘근데 목소리가 어째 익숙한데…….’
하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입을 열었다.
“어. 잘 처리했어.”
「……!」
“니들 정체가 뭐야. 진짜 국제 협회 소속이냐?”
발랄하던 목소리는 어디 가고, 한껏 긴장된 침묵이 반대편에서 느껴졌다.
참 나, 이제 와서 무슨.
“원하는 게 뭔지 말을 해봐. 이유도 없이 이딴 짓을 벌이는 건 아닐 거 아니야.”
「…….」
“……그래. 묵비권 좋지.”
팍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뭐 벽이랑 말하는 것도 아니고.
기대도 안 했지만, 좋게 대화로 푸는 건 단념해야 할 듯했다.
다시 와이퍼를 들었다.
콱―!
“끄아아악!!”
양민호의 허벅지에 내리꽂았다.
“이 새끼가 입을 여는 게 빠를까, 아님 네가 대답하는 게 빠를까.”
「…….」
와, 이래도 말을 안 해?
아니, 이럴 거면 전화는 왜 붙들고 있는 거래.
“흐음…….”
어쩔 수 없지.
먼저 이쪽 패를 보여 줄 수밖에.
“알았어, 그럼 나 혼자 얘기할게. 그쪽은 그냥 듣기만 해.”
나는 양민호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야기가 좀 길어질 테니까.
“자, 내 추측은 이래. 누군가 차원석을 이용해서 던전을 임의로 조작하고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국제 협회, 혹은 그와 관련이 깊은 어느 조직이다.”
「…….」
“그런데 그 조직이 대체 우리한테 무슨 원한이 있다고 이런 짓을 벌일까. 우리한테 원하는 게 뭘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리 봐도 하나밖에 안 떠오르더라.”
잠시 말을 끊고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그리곤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니들, 시간석 노리고 있지?”
「……상상력이 꽤나 풍부하시네요.」
침묵을 유지하던 그녀가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계속 들어. 내 말 아직 안 끝났으니까. 뱅크 아이템은 협회 간 양도가 불가능. 그런 물건을 얻으려면 무력을 써서 뺏어가거나 협회를 통째로 인수하는 방법밖에 없지. 하지만 무력을 썼다간 니들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으니,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
「…….」
“그래서, 내 결론은 이거야.”
핸드폰을 바꿔 쥐며 말을 이었다.
“우리를 상대로 적대적 인수합병을 진행하려고 했다. 그것을 위해 던전을 열어 우리 소속 헌터를 대거 처리하려고 했다. 어때. 그럴싸해?”
「……당신, 대체 뭐야.」
“오늘따라 그 소리 되게 많이 듣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근데 시발, 누군지도 모르면서 죽이려고 한 거야?”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순간 진심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래, 얼굴도 모르는 사람한테 화를 내봤자 뭐하겠는가.
나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무튼, 그건 둘째 치고…… 좋은 말로 할 때 던전 다시 열어.”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요.」
“그쪽이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푸욱―.
“끄아아아아악!!”
귀를 찢는 비명.
“너, 이 새끼 입에서 니들 정체가 안 나올 거란 자신 있어?”
「…….」
“던전만 다시 열어. 그럼 아무 일도 없었던 거로 해 줄 테니까. 만약 10분 내로 열지 않으면…….”
다시금 분노를 삭이며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찾아간다.”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전할 건 모두 전했다.
이 정도면 내 진심이 전해졌으리라 믿으며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아,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보자.”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른 궁금증.
“니들 혹시 괴담에 나오는 걔네들이냐? 거슬리는 놈들 다 죽여 버린다는 국제 협회 산하 비밀 조직…….”
뚝―.
“…….”
거 대답 한 번 친절하네.
“흐흐, 흐흐흐…….”
“이런 상황에서도 잘도 웃네. 아직 덜 맞았나 봐?”
“당신 지금 누굴 건드린 건지나 알아요?”
고통에 버둥거리면서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양민호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당신뿐만이 아닙니다. 이제 당신 주변까지 전부 좆 된 거야.”
“…….”
나는 양민호의 등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여전히 나자빠져 있는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조금이라도 엮인 순간 당신은 이미 끝난…….”
“상관없어.”
“……?”
“내가 몇 달 전부터 존나게 찾고 있던 새끼가 있었거든? 근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요즘엔 아예 잊고 있었단 말이야?”
핸드폰을 그의 눈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그런데 지금 찾은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
PB코퍼레이션, 뱅크 아이템 컨트롤 센터.
늘 엄숙했던 평소와 다르게 꽤나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아니, 어수선하다기보단 단체로 패닉 상태였다. 그 어느 누구도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 까닭이었다.
“일단 위치 추적 못 하게 방해전파부터 흘려!”
“이미 번호가 노출됐습니다!”
“당장 USIM 폐기하고, 데이터 전부 리셋해!”
“저, 팀장님?”
그때 팀원 중 한 명이 클로이에게 다가왔다.
“이, 이제 어떡합니까? 번호가 노출된 건 그렇다 쳐도, 현장직이 붙잡힌 이상 정체를 발설할 가능성이…….”
그에 대해서는 클로이 또한 쉬이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사실 던전이 닫히자마자 김준우가 국제 협회를 의심하리라는 건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그의 정보력과 판단력이라면 다른 사람이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것도 단번에 파악해낼 테니까.
그러니 어떤 형태로든 연락을 취하긴 했을 거다.
다만 연락을 해도 국제 협회 본부에 하겠지, 설마 여길 직통으로 뚫을 줄이야.
“양민호, 이 머저리가 진짜…….”
클로이가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한 나라의 랭킹 1위라는 놈이 청소부 하나 처리 못 한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PB코퍼레이션의 제1 수칙인 보안까지 무너뜨리다니.
절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겠지.
‘일단 그건 둘째 치고…….’
클로이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래, 지금 중요한 건 그 새끼의 처분이 아니다.
김준우 본부장이 알아버렸다.
추측이라고 지껄인 것들이 죄다 적중했다.
설마 우리 조직에 대해서도 전부 알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다행히 거기까진 아니다. 굳이 괴담 속 조직이냐고 확인한 거로 봐선.
그러니 늘 그렇듯 입 꾹 다물고 모르쇠로 일관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양민호가 그놈 손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녀석이 PB코퍼레이션에 대해 한 마디라도 지껄이는 순간, 대표 아래에 모든 직원의 목이 날아갈 것이다.
처음 ‘괴담’을 퍼트린 놈 때문에 실제로 PB코퍼레이션의 모든 직원이 물갈이됐었던 걸 생각하면 더욱이 그렇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김준우를 무시하고 시간석 회수를 속행하느냐.
아니면 이제라도 작전을 취소하고 보안을 유지하느냐.
클로이는 남은 4분 안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물론 찾아오겠다는 말은 단순히 허세를 부린 걸 수도 있다. 아니, 허세가 아니라도 진짜 자신들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무엇보다 양민호도 나름 밸런스 조정팀 소속이다. 어쭙잖은 고문에 입을 열 놈이 아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당연히 무시했을 것이다.
그래, 다른 사람이라면…….
쾅―!
“빌어먹을!”
그녀 앞에 있던 책상이 크게 흔들렸다.
동시에 온갖 욕설을 내뱉길 잠시.
“……거기 너.”
그녀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팀원을 불렀다.
“지금 당장 밸런스 조정팀한테 연락해서 김준우 서울 본부장 1순위 타깃으로 올리라고 하세요. 그 인간 주변 감시 레벨도 같이.”
“주변이라고 하시면 어디까지…….”
“싹 다! 작전팀이든 청소팀이든, 그 인간이랑 엮인 것 같으면 전부 감시 들어가라고!”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클로이는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을 어렵게 떼며 말했다.
“……차원석, 다시 가동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