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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78화 (78/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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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에 위치한 베트남 작전팀 헌터들의 임시 기지.

기지라고 해봤자 통나무와 야자수 잎으로 대충 얽어 만든 천막이 모여 있는 캠프에 가까웠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작전지휘실 안에서 응우옌 작전 1팀장은 수화기를 붙잡고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끊었는데요?”

“뭐라는데?”

“관심 없다고…….”

후인의 눈썹이 물결쳤다.

본인 직원들을 납치했다는데 관심이 없다고?

“혹시…… 잘못 데려온 건 아니겠죠.”

응우옌 작전팀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들어볼 생각조차 안 할 정도면 그놈들, 협회 사람 아닌 거 아닙니까?”

“우리를 떠보려는 걸까요.”

“아니면 정말 납치되든 말든 관심이 없는 걸 수도…….”

팀원들 또한 의문을 쏟아냈다.

그들로서도 꽤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사실 지금 누구보다 당황스러운 건 후인 본인이었다.

사람을 잘못 데려온 건 아니다. 분명 몇 번이나 확인했으니까.

‘근데 저건 대체 뭔…….’

후인이 손톱을 깨물었다.

생각해보니 그놈들, 아까부터 전혀 긴장감이 없다.

수십 명의 무장 헌터가 무기를 겨누고 있었음에도 겁을 먹긴커녕 지들끼리 떠들며 하품이나 쩍쩍 해대지 않았던가.

게다가 직원이 납치됐음에도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는 협회장.

‘아, 설마…….’

협회에서 가장 말단들을 보낸 건가?

후인의 머리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그래,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안 된다.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는 말단들이라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이다.

말단이라 협회장의 안중에도 없는 것이고.

‘빌어먹을 한국 놈들…….’

은근히 무시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협회끼리의 인수합병 건에 이런 말단 새끼들을 보내?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저쪽에서 계속 저런 반응이면 저놈들을 납치한 의미가…….”

응우옌 팀장이 조심스레 입을 연 그때, 후인의 핸드폰이 울렸다.

수신자를 확인하자 후인의 미간이 좁혀졌다.

「어, 나다.」

국제 협회와의 인수를 막은 장본인이자, 정부 지원금을 모조리 꿀꺽하고 있는 당 군부 내 거물급 인사.

비엣 총정치국장이었다.

「다른 게 아니라, 남부 쪽에 옐로우 등급 던전 하나 출현했다더라. 그쪽 추정 수익이 더 높으니까 그거 먼저 진행해.」

“저번 마피랭 협곡에 출현한 그린 등급 던전이 벌써 한 달째 방치되고 있습니다. 몬스터 탈출 시점까지 아슬아슬하니 그쪽을 먼저…….”

「너 지금 내 말에 토 다는 거냐?」

비엣 국장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무엇보다 지금 여건으로 옐로우 등급은 무리입니다. 최소한 지원금이라도 더 내려주시던가…….”

「하여간 시발 이 쓸모없는 새끼들은 허구한 날 돈타령이야. 야, 이 새끼야. 다른 나라 협회는 땡전 한 푼 없어도 잘만 토벌해. 능력이 없으면 목숨이라도 갖다 바치던가.」

“…….”

「더 말대꾸하지 말고 내가 말한 데 먼저 토벌해. 니들 죽으면 내가 책임질 테니까.」

무능력한 새끼들, 비엣 국장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후인은 핸드폰을 내려놓곤 이를 갈았다.

늘 이런 식이다.

오로지 수익에만 혈안이 된 놈이었기에, 지금처럼 며칠간 준비한 작전도 전화 한 통으로 엎어진 것이 부지기수다.

물론 이쪽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지시였다.

현재 후인이 책임지고 있는 팀은 고작 작전팀 두 개. 그마저도 각각 20명이 채 안 되는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통제팀은 본인 한 명이고 청소팀은 단 세 명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린 등급 던전 하나 제대로 토벌할 수 있는 규모도 아니다.

그런데 옐로우 등급을 토벌하라고?

이건 정말로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빌어먹을 새끼…….’

후인의 주먹이 떨렸다.

때려치우자는 생각은 하루에도 백 번은 더 한다.

당장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대우를 받을 바엔, 차라리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훨씬 나았으니까.

하지만 그럴 수도 없다.

지금 방치되고 있는 던전만 해도 100개가 훌쩍 넘는다.

그나마 지역 곳곳에 자신들과 같은 비공식 작전 세력이 있으니 어떻게든 급한 불은 끄는 중이었지만, 그마저 손을 놓는다면 그땐 정말로 끝이다.

나라 전체가 걷잡을 수 없이 터져버리겠지.

그래, 너무 X같은 일이긴 해도…… 자신들이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후인 또한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비엣의 말처럼 본인들은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는데.

그러니 협회를 다시 세운다느니, 그런 가당치도 않은 생각 따윈 집어치우고 지금은 그저 눈앞의 일이나 신경 쓰는 수밖에 없다.

“팀원들한테 전해. 작전 변경한다.”

마침내 후인이 결정을 내렸다.

“작전 변경이라뇨…?”

“비엣의 명령이야. 옐로우 등급 먼저 토벌하란다.”

“예, 예?!”

응우옌 팀장의 목소리가 격양됐다.

“아시잖습니까! 지금 예산으로는 방어 장비 하나 못 갖춥니다! 이대론 입구에서 전멸이에요!”

“나도 알아.”

후인이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몸값을 받아내야지.”

후인은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곤 인질을 가둬놓은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단단히 각오한 눈빛이었다.

***

우리가 갇힌 곳은 베트남 전통 가옥, 냐산과 비슷한 형태의 공간이었다.

손목에 두꺼운 수갑을 채워 놓긴 했지만, 그것 말곤 딱히 별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지금쯤 협회랑 열심히 협상 중인 것 같고…….’

나는 가만히 다른 두 녀석을 바라봤다.

김민주는 가만히 앉아 눈만 끔뻑이고 있었고, 한유빈은 아까부터 쉬지 않고 하품을 해대는 중이었다.

이러나저러나 긴장감이 없긴 매한가지였다.

“근데 말이에요.”

그때, 한유빈이 넌지시 물었다.

“이럴 거면 그냥 베트남은 포기하고 다른 협회 알아보는 게 낫지 않아요? 굳이 이런 고생까지 하면서 여길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베트남 협회는 포기할 수 없어요. 제가 왜 여길 첫 번째로 골랐을 것 같습니까.”

“……글쎄요.”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싱가포르, 태국 등등. 주변 모든 국가가 국제 협회 소속입니다. 그 사이에서 베트남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독립협회죠.”

뭐… 지금은 그마저도 해체됐지만.

어쨌든.

“아시다시피 국제 협회 지부는 던전 토벌 시 일정 비율의 부속품과 아이템을 본부로 납품해야 합니다. 그런데 항공편으로는 운반하지 못하죠. 비행기로 아이템을 운반하게 되면 미세한 이능파 때문에 기체 결함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저도 나름 국제 협회 지부 출신이었거든요?”

한유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알고 있으면 다행이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뭐 아무튼, 결국 동남아시아의 지부들은 물건을 운반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육로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 유일한 루트가 베트남 북쪽에 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협회는 그러한 이점을 살리지 못했다.

주변과 비교하면 너무 약소 협회였으니 눈치가 보였던 거겠지.

“지금까지는 베트남 협회가 힘도 없으니 기존 통관비만 받고 육로를 열어준 것 같은데, 바보 같은 짓이죠.”

“아, 설마…….”

한유빈이 불안한 기색을 띠었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 운송 루트를 차지할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여기에 지부를 세워야 하고요.”

“아,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국제 협회에서 개지랄을 할 텐데요.”

“애초에 그게 목적입니다. 견제할 수단을 만드는 거.”

“…….”

“그리고 뭐, 그놈들이 어쩌겠습니까. 그렇다고 아이템을 포기할 순 없을 텐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물론 통관비를 올리자는 소리는 아닙니다. 애초에 그건 우리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우린 그저 지부와 본부 간 중간 운송책을 직접 맡는 겁니다. 각국에서 반입된 아이템을 분류해서 대륙으로 반출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사실 국제 협회 지부에도 나쁜 조건은 아닐 것이다. 돈으로 수고를 더는 셈이니까.

물론 그 자체가 굉장히 거슬리긴 하겠지만.

“이제 곧 동남아시아의 모든 아이템과 부속물이 베트남으로 모여들게 될 겁니다.”

“허브로 만들겠다는 거예요…?”

“그냥 허브가 아니죠.”

고작 그 정도만 생각했다면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려 하겠는가.

“베트남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허브가 될 겁니다.”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비전을 생각한다면 베트남 협회는 포기할 수가 없죠.”

“말씀은 알겠는데…… 이런 상황에서 가능한 계획이에요? 저쪽은 아예 우리 말을 들을 생각도 없는데.”

“……흠.”

작게 신음했다.

확실히 그렇다.

정부가 끼어 있다곤 해도, 사실 그쪽은 협상이든 설득이든 뭐라도 시도해볼 수 있다.

문제는 여기 있는 놈들이다.

우리가 여기서 뭘 하든, 베트남 협회의 유일한 잔존 세력인 저들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협력은커녕 아예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조차 없으니.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다고 지레 못을 박아 버린 것 같은데…….

‘쯧, 나름 협회 출신이라는 놈들이 뭐 이리 겁이 많아.’

어떻게 해야 이놈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때였다.

덜컹―

굳게 닫혀 있던 문이 벌컥 열리며 후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멱살을 잡아끌었다.

“와…….”

김민주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선생님이 멱살 잡히는 걸 다 보네요.”

“신종 자살법인가?”

그리곤 저들끼리 배시시 웃는다.

“지금 웃음이 나와?”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

딱 봐도 협상이 생각대로 안 된 모양이다.

강하게 나서겠다, 이거군.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협상이 결렬되면 당신들만 다 뒈지는 거야. 대가리 구멍 나기 싫으면 어떻게든 본부에 연락해서 돈 받아내!”

“글쎄요. 그 노인네 죽어도 안 믿을 텐데. 뭐, 아마 몇 번을 연락해도 똑같을 겁니다.”

차라리 내가 사고 쳐서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면 믿을지 모르겠는데.

“제가 확신하는데, 당신은 한국 협회로부터 단 한 푼도 받아낼 수 없을 겁니다.”

“아니.”

후인이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든 받아낼 거야.”

불쑥 단검을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하.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더 이상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대화가 안 되면 무력으로라도…….

“팀장님!!”

그 순간, 누군가가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들어왔다.

“뭐야?”

“작전 취소하신 그린 등급 던전 말입니다……. 몬스터가 던전을 탈출했답니다.”

“……빌어먹을.”

후인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위치는.”

“마피랭 협곡에서 감지된 게 30분 전이고, 지금 민가로 향하고 있답니다.”

후인이 얼굴이 사색이 됐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심상치 않은 상황임은 분명하다.

시가지에 던전이 출현했다거나, 아니면 몬스터가 탈출했다거나.

단검을 쥔 손이 떨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이가 으득 갈리는 소리가 들려오길 한 차례, 그는 칼을 바닥에 내던지며 소리쳤다.

“가능한 인원 모두 소집해. 당장 출동한다!”

“무슨 일입니까?”

“넌 알 거 없어.”

“몬스터라도 탈출한 겁니까?”

내 말을 무시하고 막 나가려던 그가 미간을 확 좁히며 돌아본다.

“……그렇다고 하면 당신이 뭘 어쩌게.”

“맞나 보네.”

내 표정도 덩달아 굳었다.

“아까 보니까 작전팀이라고 해봤자 3, 40명밖에 안 되던데, 그 인원으로 탈출 몬스터 토벌 가능하시겠습니까. 시민들 대피에, 구출에… 턱없이 모자랄 것 같은데.”

“……지금 놀리는 거야?”

“설마요.”

그럴 거였으면 이렇게 길게 말도 안 했다.

“도와드릴까 해서 말하는 겁니다.”

“하…….”

후안이 헛웃음을 뱉었다.

“말단들 주제에 누가 누굴 도와. 틈타서 도망가려는 거 모를 줄 알고?”

말단?

누가?

……뭐 그건 일단 둘째 치고.

“우리도 협회 사람입니다. 시민들이 위험에 처한 걸 알고도 우리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놈들은 아닙니다. 그건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당을 설득하겠다, 협회를 세워주겠다, 토벌을 도와주겠다…… 말하는 거만 보면 뭐 못 하는 게 없군.”

“…….”

“허세는 작작 부리고 가만히 찌그러져 있어.”

후인은 그렇게 이곳을 떠났다.

정말이지, 이런저런 의미로 답답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어떨 거 같습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김민주와 한유빈을 향해 물었다.

“저 인원으로 탈출 몬스터 토벌? 전멸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어려울 것 같긴 해요. 장비도 꽤 낡아 보였고요.”

한유빈과 김민주는 같은 의견이었다.

“이래저래 곤란하군요.”

“뭐가요?”

“기존 작전팀이 전멸해버리면 우리가 지부를 세워도 작전팀을 처음부터 새로 꾸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채용부터 교육까지 다 맡아야 할 겁니다.”

“…….”

“…….”

침묵이 이어지길 잠시.

“그럼 뭐, 고민할 것도 없네요.”

한유빈이 옅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민주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뒤따라 몸을 일으켰다.

캉―.

힘쓸 것도 없다는 듯, 손목에 걸려 있던 수갑을 너무나 쉽게 끊어버렸다.

“가요. 일 늘어나기 전에.”

그녀들의 눈빛이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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