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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80화 (80/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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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를 다시 세워주겠다, 협력해달라.

그 한 마디에 후인은 정말이지 한참을 고민했다.

이렇게까지 고민할 일인가 싶을 정도로 재고를 한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정말 자신 있어? 완전히 맨땅에서 시작하는 수준일 텐데.”

“예상한 바입니다. 그리고 애초에 그 질문은 제가 아니라 본인한테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는 후인을 슬쩍 흘겼다.

“후인 씨가 꼼짝 못 하는 그 윗분을 등져야 할 수도 있습니다. 등지는 것뿐이면 다행이지, 때에 따라선 척을 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후인 씨는 그럴 자신이 있습니까?”

“…….”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조금이라도 망설여지면 관두시지요. 괜히 나중에 가서 이건 안 된다, 저건 못 한다, 방해하지 마시고.”

후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곤 널브러져 있는 몬스터와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알았어.”

이윽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믿어 볼게.”

“에이, 그게 아니죠.”

나는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뭐, 뭐가?”

“그게 어딜 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태돕니까. 부탁할 땐 정중히 하셔야죠. 이게 어디 나만 좋자고 하는 일도 아니고.”

“…….”

잠시 당황스러워하더니 이내 주먹 쥔 손이 부들거리는 게 보였다.

그것도 잠시, 이내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부, 부탁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좋습니다. 그럼 일단.”

나는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말을 이었다.

“당신 윗대가리라는 사람부터 만나보죠.”

“……네? 바로 말입니까.”

“안 됩니까?”

“아니, 뭐 안 되는 건 아닌데…….”

“그럼 됐습니다. 저흰 현장 처리하고 있을 테니 그동안 후인 씨가 연락을 좀 부탁드립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등을 돌렸다.

괜히 또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였다.

***

며칠 후, 하노이 시내의 어느 레스토랑.

우린 후인을 통해 꽤나 어렵사리 비엣 총정치국장과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나와 김민주, 한유빈은 가만히 앉아 그를 기다리는 중이었고, 후인 또한 함께였다.

비엣, 총정치국장.

국방부 지휘 조직 중 하나인 총정치부의 수장으로 군부 내의 많은 실권을 쥐고 있는 자.

듣자 하니 곧 국방장관이 될 거라는 소문도 있던데…….

던전이 열린 그 날부터 당의 권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고 했으니, 베트남에서의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가늠할 수 있었다.

‘하긴, 그 정도 힘이 있으니까 협회를 통째로 날려 먹고도 잘살고 있는 거겠지.’

나는 팔짱을 낀 채 연신 다리를 떨었다.

김민주와 한유빈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거물을 만나리란 생각에 긴장한 건 아니다.

“배짱이 대단하네. 감히 우리를 기다리게 하고 말이지.”

“그러게 말이에요. 기본적인 예의가 없네요.”

“거물은 맞아도 안 아픈가?”

두 사람의 지극히 사적인 감상은 제쳐두고라도 벌써 30분이 지났다.

약속 시각이 한참 지났는데도 오늘의 주인공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역시 글렀나.

그냥 일어나야 하나 싶던 그때였다.

레스토랑의 문이 요란스럽게 열렸다.

“아이고, 미안해라. 내가 좀 늦었네.”

키가 작고 배가 불룩 튀어나온 남자가 실실 쪼개며 다가왔다.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눈에 봐도 그가 비엣 총정치국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워낙 공사가 다망해서 말이지, 클클. 오래 기다린 건 아니지?”

“아니긴요. 충분히 오래 기다렸습니다.”

“……흠?”

잘못 들은 건가 싶은 표정.

덩달아 그의 경호원인지 수행비서인지 모를 이들이 경계심을 내비쳤다.

이를 무시하고 난 아무렇지 않게 미소를 지었다.

“반갑습니다. 대한민국 이능차원관리협회 소속 김준우라고 합니다.”

“같은 소속에 김민주입니다.”

“한유빈입니다.”

차례로 악수를 건넸다.

비엣은 그런 우리를 위아래로 훑었다.

“생각보다 젊군. 신입들인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되긴 했습니다.”

“한 번 만나자길래 얼마나 대단한 놈들인가 했더니, 이런 핏덩이들일 줄이야.”

그는 우리에게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눈빛을 보냈다.

이젠 너무 익숙해서 별다른 감상조차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날 보자고 한 이유는?”

“일단 앉으시죠.”

비엣이 큼, 헛기침을 하며 맞은편에 앉았다.

이내 웨이터가 다가왔고, 비엣 국장은 커피를 주문했다.

그의 옷부터 액세서리까지 한눈에 봐도 꽤나 고가의 물건들이었다. 옆에 앉은 후인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그 괴리감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새어 나올 뻔했다.

“이제 말해봐.”

“저희 한국 협회는 베트남 협회와의 인수합병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음…?”

당황스러운 낯빛.

당연한 반응이다.

인수고 나발이고 협회가 남아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였으니.

“그……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인데, 우리 협회가 상황이 좀 어려워서…….”

“돌려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베트남 협회는 현재 실질적인 해체 상태이고 서류상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까요. 물론 그 지원금을 국장님께서 전부 받아 가고 있다는 것도 포함해서요.”

“…….”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후인에게 향했다.

후인은 제 발 저린 얼굴로 연신 다리를 떨어댔다.

비엣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그걸 빌미로 날 협박해 협회를 얻어내겠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협박이라니.

때가 어느 땐데 그런 유치한 방법을 쓰겠는가.

“인수합병 결의서에 사인만 해주시면 됩니다. 어차피 서류로만 존재하는 협회인데,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싫다면?”

“사인만 해주신다면 지금 챙기시는 지원금에서 정확히 10배를 더 받아 갈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싫으십니까?”

“뭐……?”

그의 동공이 순간 흔들린다.

“10배?

“예.”

“일시불인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매달 10배입니다.”

“……!”

벌써부터 그의 눈에서 숫자가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서류 처리만 해주신다면 지원금의 10배를 매달 꼬박꼬박 챙겨드리겠습니다. 뭐, 사실 말이 10배지, 계약상으론 앞으로 진행할 사업의 50%를 드릴 생각이니 그보단 더 될 겁니다.”

“큼… 설마 아무것도 없이 믿어달라는 건 아니겠고.”

“물론입니다.”

준비했던 서류를 꺼내 들었다.

지부 개발을 비롯, 허브 사업에 대한 첨부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비엣 국장은 꽤나 집중해서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토벌 시장에 관해 기본적인 상식조차 없는 그에겐 생각도 못 해본 사업이었을 것이다.

“주변 협회들의 부산물을 우리 쪽에서 출하한다라…… 뭐, 대충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이윽고 준비했던 설명이 끝나자 그는 차분한 표정으로 물었다.

“패를 너무 많이 까는 거 아닌가? 이 말만 듣고 내가 직접 추진할 수도 있잖나.”

“이 정도는 까야 국장님도 마음을 여시지 않겠습니까. 뭐, 그리고…….”

나는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감히 말씀드리는 거지만 이걸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 베트남엔 없습니다.”

“……하. 하하.”

그가 헛웃음을 뱉었다.

“그러니까… 자네가 직접 협회를 다시 세워주고, 허브를 만들어서 매달 용돈까지 챙겨주겠다. 단, 한국 협회에 인수되는 조건으로. 내가 이해한 게 맞나?”

“정확하십니다.”

“사실이라면 나쁘지 않군.”

지랄, 나쁘지 않긴.

속으론 좋아 죽으려고 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

“사인 말고 내가 또 해줘야 할 건?”

“아무것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 사업 추진은 우리 방식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오히려 더 좋군. 내가 신경을 안 써도 된다는 소리니.”

“더불어… 토벌 수익금도 당분간은 건들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뭐?”

그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토벌 수익금은 작전 능력에 비례해서 가져가는 게 원칙 아닌가?”

“……?”

설마 지금 본인이 처먹는 수익금이 합당하다는 소린가?

시발 염치가 없어도 정도가 있지.

“예, 뭐…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작전에 더 많은 기여한 사람, 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높은 비율을 가져가는 게 합당하죠.”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에 그렇다는 소리다. 원칙이 제대로 돌아가면 문제야 없지만, 현재 이곳 꼴을 보면 기가 차다 못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뭐, 그게 다 누구 때문이겠는가.

“그래서 국장님은 건들지 말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허! 이런 미친놈이…….”

“국장님.”

나는 두 손을 포개어 입에 가져다 대며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국장님 배를 불려 드리려 이런 제안을 하는 게 아닙니다.”

“……뭐?”

“이건 거래입니다. 서로의 이익을 위한 거래 말입니다. 다른 머저리들처럼 국장님에게 이쁨 좀 받으려고 아낌없이 퍼주려는 걸로 보시면 곤란합니다.”

“…….”

“아, 물론 친구 정도는 되어드릴 수 있겠군요. 이 거래가 서로에게 좋게 진행되는 한 말이죠. 그러니 제가 떠먹여 드리는 것만 드십시오. 더 욕심내다가 돈도, 친구도 모두 잃는 수가 있습니다.”

“……하하하.”

겨우 정신을 차린 비엣이 턱을 긁적거린다.

“이봐, 여긴 한국이 아니야. 여기서 나와 척을 지면 누가 더 손해일지는 너무 뻔하지 않나?”

“동감입니다. 누가 손해를 볼지는 안 봐도 뻔하죠.”

뭐, 보아하니 서로 정반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 비엣을 응시했고,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묘한 분위기 속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내 비엣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뭐, 배포는 있군. 겁만 많은 누구랑은 다르게.”

그는 슬쩍 후인을 흘겼다.

“그래. 알았다. 앞으로 수익금은 일절 건들지 않겠네. 대신 자네도 약속한 건 지켜야 할 거야.”

“물론입니다.”

또 다른 서류를 꺼내 내밀었다.

현 베트남 협회를 담보로 허브 건설 사업에 투자한다는 계약서였다.

당장 인수합병 결의를 할 것도 없이, 사업이 엎어지지만 않는다면 자연스레 베트남 협회가 우리 손에 넘어오게 된다.

비엣은 계약서를 몇 번이나 훑어본 후에야 서명을 갈겼다.

“이제 계획이나 좀 들어보지.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하려는 건가.”

“처음 베트남에 와서 보니 기초 인프라조차 미흡한 부분이 많더군요. 그중 가장 큰 문제인 던전 위치 정보와 이동 시간. 일단은 그 두 개를 먼저 잡을 생각입니다.”

“그다음엔?”

“그다음엔…….”

잠시 머릿속을 정리한 후, 곧바로 입을 열었다.

“청소팀을 꾸릴 생각입니다.”

***

“저, 그런데 기초 인프라는 어떻게 보완하실 생각이에요? 구체적인 목표라도 있어요?”

비엣이 돌아간 직후, 한유빈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구체적이랄 게 있습니까. 결국, 도로 까는 거죠. 뭐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습니까?”

“아뇨, 도로를 까는 건 저도 동의하긴 하는데…… 그 비용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닐 텐데.”

“인수 비용 아꼈잖습니까. 그걸 써야죠.”

“얼마나요?”

“전액.”

“…….”

한유빈은 질겁하는 표정이었다.

예산이 모자라다, 부족하다 했지만 그럼에도 수백억은 되는 돈이다.

그런 금액을 잘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기초 인프라에 모조리 때려 박겠다니 그럴 만도 하지.

“물론 그거로도 모자랄 겁니다. 다른 곳에서 투자를 받아야겠죠. 뭐, 그건…….”

말끝을 흐리며 후인을 슬쩍 바라봤다.

“후인 씨가 맡아주십시오.”

“예?”

“오늘 제가 했던 대로만 설득하실 수 있다면 충분히 투자자가 붙을 겁니다. 뭐, 기업이면 더 좋고요.”

“…….”

그는 대답을 아꼈다.

“왜, 자신 없으십니까? 못하겠으면 안 하셔도…….”

“……아니요. 해보겠습니다.”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김민주는 현지 작전팀 데리고 급한 토벌부터 진행해줘. 시간 남을 때마다 작전 기획 교육도 좀 해주고.”

“네.”

“한유빈 씨는 괜찮은 놈들로 모아서 청소팀을 좀 꾸려주십쇼. 최소 10개 팀은 돼야 합니다. 당연히 기본적인 교육도 병행해주시고요.”

“알았어요.”

“아까 말한 대로 후인 씨는 투자자 서치하시고, 저는 건설사부터 좀 알아보겠습니다.”

바빠지겠군.

열심히 일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긴 한데.

“뭣들 하십니까. 알아들었으면 바로 움직이세요.”

남은 커피를 목구멍에 털어 넣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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