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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83화 (83/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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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본부기획실.

후인이 가져온 문서를 반으로 찢은 직후.

오히려 당황한 사람은 줄곧 말을 아끼고 있던 김민주와 한유빈이었다.

“서, 선생님…?”

“그, 그렇게 단번에 결정할 일이…….”

“협회, 넘겨줍시다.”

내 난데없는 결정에 말문이 턱 막힌 듯했다.

“인수 한 번 하자고 다들 감방 갈 거 아니잖습니까? 그렇다고 현지 직원들 방패로 세워서 도망가는 것도 모양 빠지고.”

물러날 때는 미련 없이 물러나는 게 낫다.

괜히 어중간하게 붙잡고 있다간 오히려 상황이 더 꼬일 수 있다.

“어쩌겠습니까. 협회와 허브를 다 넘겨줄 테니 우리한테서 손 떼 달라고 해주는 수밖엔. 일단 결재란만 잘 숨기면 당장은 손을 댈 수 없을 테고.”

“그놈이 원하는 대로 하겠다는 거예요?”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

“…….”

그녀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녀들로서도 그게 가장 옳은 선택이라는 걸 알고 있다. 다만, 분한 마음이 드는 건 그것과는 별개의 일이었다.

하나 같이 죽을상을 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표정들 푸시죠. 당연히 그냥 넘겨줄 생각은 없으니까.”

“……네?”

“뭐, 자세한 건 차근차근 설명하기로 하고……. 일단은 세 분 다 지금 당장 주변 협회에 연락 좀 돌려주셔야겠습니다.”

후인을 포함한 세 명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주변 협회에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라면, 기대는 안 하시는 게…….”

“아뇨. 그 반대입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허브 유통비, 세 배로 올리겠다고 통보하세요.”

“……네, 네?”

“추가로 유통되는 부산물 중 5%를 베트남 협회에 지불하라고도 전해주시고요. 만약 이에 응하지 않을 시 무력 충돌도 고려하겠다고요.”

“자, 잠깐만요! 이미 협의도 다 끝났는데 갑자기 그렇게 나오면 주변 협회에서 반발이 어마어마할 텐데요.”

“상관없습니다.”

“지부뿐만 아니라 국제 협회 본부에서도…….”

아, 후인이 짧게 신음했다.

그제야 뭔가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건 김민주와 한유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

기어이 욕심을 내겠다면 원하는 대로 실컷 떠먹여 줘야지.

이걸 받아먹고도 괜찮을지는 모르겠지만.

***

―국제 협회 소속, 말레이시아 지부.

“뭐?”

늦은 새벽, 말레이시아 지부장 이스마일에게 어처구니없는 소식이 전달됐다.

“허브 유통비를 세 배로 올리겠다고?”

“네. 추가로 한 달 유통량에서 5%를 지급하라고…….”

쾅―!

“이런 미친 새끼들을 봤나! 진짜 전쟁이라도 하자는 거야 뭐야?”

이스마일 지부장의 목소리가 격양됐다.

그에게 소식을 보고한 수행비서 또한 애써 참고 있을 뿐, 입장은 마찬가지였다.

“요근래 급성장을 하더니 아무래도 욕심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시발, 정도껏 해야지! 허브 세우는 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줬더니, 이딴 식으로 뒤통수를 쳐?!”

“그나저나 이런 식으로 나오면 동남아 지부를 다 적으로 돌릴 게 뻔한데… 누가 이런 멍청한 지시를 한 걸까요.”

“누구겠냐? 이딴 짓 할 놈이 비엣, 그 새끼밖에 더 있어?”

상황을 알 턱이 없는 그로선 당연한 오해였다.

“어쨌든 시발, 이딴 식으로 나오면 우리도 가만히 못 있지.”

이스마일 지부장이 이를 갈았다.

일방적인 인상 통보에 잔뜩 화가 난 건, 비단 말레이시아 지부뿐만이 아니었다.

―캄보디아 지부.

집무실에서 보고를 들은 중년 여성, 밀리어 지부장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요새 갑자기 성장세를 올리더니, 비엣 이 개새끼가 이젠 눈에 뵈는 게 없나 보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다른 협회들 반응은 어때?”

“마찬가지 반응입니다. 다들 가만히 안 있겠다고…….”

“당연히 그래야지. 지금 그 돼지 새끼가 우리를 개 호구로 보고 있는데.”

밀리어 지부장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아마 그 새끼, 곱게는 못 죽을 거야.”

그녀는 곧바로 대응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태국 지부

“주변 협회를 다 적으로 돌리겠다고? 하물며 국제 협회 지부들을?”

드디어 돈 앞에서 이성을 잃었군, 쁘라셋 지부장이 중얼거렸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저희도 강경책으로 나가야 할 것 같은데…….”

“뭘 어떻게 해. 이거, 우리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냐?”

“아니죠.”

쁘라셋 지부장이 옅은 한숨을 쉬었다.

“본부에 연락해.”

수행비서는 짧은 대답과 함께 집무실을 나섰다.

“그 욕심쟁이 새끼, 기어이 지 무덤을 지가 파네.”

동시에 쁘라셋 지부장은 헛웃음을 뱉었다.

―프랑스, 국제 협회 본부.

똑똑―.

건물 꼭대기 층에 위치한 사무총장실에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예.”

중후한 음성이 깔리자 수행비서가 조심스레 사무실로 들어섰다.

“사무총장님, 지금 베트남 협회에서…….”

“소식은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헌터 랭크 시스템을 도입, 전 세계 모든 헌터를 관리 등록하는 기관.

동시에 전 세계 총 52개의 지부를 두고 있는 최고 국제 헌터 기구.

현 국제 헌터 협회의 우두머리, 웨슬리 사무총장이 수행비서의 말을 자르며 입을 열었다.

“베트남 협회가 고집을 부리고 있다고요.”

“예. 덕분에 동남아 지부들의 항의가 거셉니다. 뭐, 지부들 반응은 둘째 쳐도…….”

“우리로서도 반가운 일은 아니죠.”

흐음.

웨슬리 사무총장이 한숨을 쉬었다.

베트남 협회의 실상을 어렴풋이 알고 있던 그로선 사실 별로 흥미가 동하지 않았다.

작년에 추진한 인수합병이 베트남 정부에 의해 엎어지고 난 후로는 신경조차 쓰지 않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조차 손을 뗀 베트남 협회가 한 달 새에 갑자기 성장세를 올린 건 꽤나 놀라운 일이었다.

“뭐, 비엣 그 멍청이가 직접 추진한 건 아닐 테고…… 어디서 백기사 하나는 잘 구했군요.”

“그…….”

그때, 수행비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실 PB 코퍼레이션에서 올린 보고에 의하면, 아무래도 한국 협회 놈들이 움직인 것 같다고…….”

“한국 협회가?”

웨슬리 사무총장의 눈이 꿈틀했다.

“네. 며칠 전에 김 본부장과 그의 동료들이 베트남에 입국했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케인 팀장의 의견으로는 한국 협회가 베트남 협회를 키워서 인수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러니까, 한국 협회가 해외에 지부를 두려 한다…?”

“네.”

“하아…….”

웨슬리 사무총장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김 본부장이라면 그 또한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미국 지부 건부터 해서 몇 번이고 보고가 올라온 적이 있다.

어쩐지 하는 짓이 너무 똑똑하다 싶었다.

부산물 유통 루트를 정확히 공략한 것도 그렇지만, 국제 협회 지부들을 상대로 이득을 챙기는 동시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거래를 진행했다.

처음 제시한 허브 비용 또한 마찬가지.

한눈에 봐도 적정선을 지키겠다는 입장이 보일 정도였다.

그런 놈이 갑자기 협의가 끝난 유통비를 세 배나 올리겠다고 할 리가 없다.

그런 멍청한 짓을 할 만한 사람은 딱 한 명뿐.

“아무래도 비엣이 중간에 뒤통수를 쳤나 보군요.”

“동감입니다.”

“쓰읍, 이러면 곤란해지는데요.”

사무총장의 미간이 확 좁아졌다.

사실 그 욕심쟁이가 저지른 일 자체는 해결이 그리 어렵지 않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리면 그만이니까.

어차피 안팎으로 적이 많은 놈이다. 언제 갑자기 목이 날아가도 이상할 것 없으니 처리하기엔 더할 나위 없겠지만…….

문제는 한국 협회가 끼어 있는 지금, 비엣을 죽여 버리면 결국 한국이 베트남 협회를 먹는 걸 도와주는 셈이다.

그렇다고 내버려두자니 지부들의 반발을 무시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비용적인 손해가 막심해지겠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뭐, 어쩔 수 없죠. 지금 와서 김을 죽여 봤자 한국 협회로 넘어가는 걸 막을 순 없을 테고… 손을 쓰기엔 이미 늦은 것 같으니. 이번엔 한발 물러나 주는 수밖에요.”

이미 끓을 대로 끓어 뜨거워진 주전자를 건들다가는 손을 데기에 십상이다. 여기선 잠시 기다리는 게 이롭다. 하지만…….

“한국 협회 분들한테도 확실하게 경고할 필요는 있을 것 같군요.”

“그 말씀은…….”

“마르크 팀장 좀 불러주세요.”

결국, 밸런스 조정 팀장이 나서야 할 때였다.

***

취조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구, 국제 협회에서 연락이 왔다고? 대체 왜?!”

공안이 전해준 소식에 비엣이 크게 당황하며 물었다.

“이번에 허브 비용 인상 통보에 대해서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가 차원에서 강경 대응을 하겠다고…….”

“비용 인상 통보? 그게 뭔 개소리야!”

“저, 저도 자세히는 잘…….”

비엣에겐 어리둥절하기만 한 이야기겠지만, 뭐 무슨 상관이겠는가.

“국제 협회뿐만이 아닙니다. 주변국들이 전부 들고 일어났어요. 빨리 대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비엣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왜 절 보십니까?”

“너 대체 무슨 개짓거리를 한 거야!”

“음?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습니다. 협회의 최고 책임자는 국장님이시지 않습니까. 책임자가 알아야지 왜 저한테 그러십니까.”

“이, 미친놈이…!”

그가 내 멱살을 들어 올린 그때.

취조실로 몇 명의 공안이 또다시 들이닥쳤다.

“국장님! 방금 말레이시아 지부에서 연락이 왔는데, 모든 국교를 단절하겠답니다!”

“필리핀 지부에선 비용을 낮추지 않으면 무력도 불사하겠다고 합니다.”

“태국 지부는 아예 국경을 막겠다고…….”

비엣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제야 지금 상황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국장님, 이거 잘못하다간… 진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시발, 내가 한 거 아니라고 해! 내가 아니라 이 새끼가 벌인 짓이라고!”

“당연히 우린 모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귓등으로도 안 듣습니다.”

“……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간의 행적이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겠죠.”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다.

난 여기에 한 숟갈의 계기만 더했을 뿐이지.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은 당사자가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평소 행실을 바르게 했어야지.

‘……왜 내가 찔리지?’

뭐 아무튼.

“그동안 많이도 쥐어짜셨습니다. 뭐, 국민의 존망이 달린 협회를 그저 돈방석으로만 보고 계시니 주변 상황 따윈 관심도 없으셨겠죠. 심정은 이해합니다. 저도 예전엔 자주 그랬으니.”

더 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던 찬란한 과거가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사시면 적이 많아집니다. 나중에는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객사하실 수도 있어요.”

“너…… 지금 나 협박하는 거냐?”

“협박이 아니라 조언입니다. 사실 죽는 건 그렇다고 칠 수 있어요. 다만 그것보다 억울한 건 말입니다.”

비엣의 눈을 정확히 바라보며 말했다.

“죽는 그 순간까지 누구 손에 뒤졌는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동시에 비엣의 대답이 멈췄다.

“제가 말씀드렸죠. 욕심부리다간 돈도 친구도 다 잃게 될 거라고. 근데 방금 한 가지가 추가됐습니다.”

“뭐?”

“국장님 자리까지 잃으시게 될 것 같거든요.”

내가 말을 마친 그 순간이었다.

쾅―.

취조실의 두꺼운 문이 벌컥 열렸다.

“야, 이 개새끼야!!”

열댓 명의 공안들과 함께 들이닥친 그 남자는, 다름 아닌 베트남 내 권력 서열 1위, 당 서기장이었다.

“너 대체 일을 어떻게 한 거야!!”

“서, 서기장님! 이건 제가 한 게 아니라…….”

퍼억―.

비엣의 턱에 난데없이 주먹이 날아들었다.

“너 새끼 몇 번 못 본 척해주니까? 이젠 아예 나라를 갖다 팔려고 작정을 했지?!”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거 다 이 새끼가…….”

두 남자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책상 위에 놓인 계약서를 가리켰다.

당 서기장의 얼굴이 우락부락해졌다.

“제가…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뭘 어떻게?”

“지부에 찾아가서 무릎이라도 꿇으면…….”

“야.”

당 서기장의 서슬 퍼런 목소리가 깔렸다.

“지금 이게 장난 같냐? 너 진짜 그거로 해결이 될 것 같아?”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뭐 하고 있어. 데려가.”

“자, 잠깐만요! 서기장님! 서기장님!!”

서기장은 볼 거 없다는 듯 공안을 향해 고갯짓했다.

그들은 곧바로 국장의 양팔을 붙잡아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복도를 따라 울려 퍼지는 애절한 목소리.

당 서기장은 그 절규를 들으며 쯧, 혀를 찼다.

“그러게 멍청하면 욕심이라도 적당히 부렸어야지.”

그 직후, 정적이 내려앉은 취조실.

서기장이 날 돌아보았다.

“자넨가? 이번 사업을 추진한 게.”

“예, 맞습니다.”

“지금 이거, 우린 감당 못 해. 자네가 만든 거니까 자네가 책임지고 다시 가져가.”

“글쎄요. 저도 그러고 싶긴 한데…….”

나는 계약서를 슬쩍 흘겼다.

그러자 당 서기장은 다짜고짜 계약서를 집어 들더니, 내 앞에서 반으로 쭉 찢어버렸다.

“이제 됐나?”

“…….”

그냥 저렇게 해도 되는 건가?

서열 1위답게 화끈하네.

“부탁함세. 도로 가져가고 앞으로 우리랑은 엮이지 말아 주게.”

“엮이지 말라심은…….”

“수습은 자네가 알아서 하라는 소리야. 우린 모르는 일이니.”

우리와 엮이지 말아라.

나는 그 말에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뜻이었겠지만, 그건 결국 하나의 어엿한 독립 협회라는 걸 정식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호박이 굴러 굴러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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